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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일기

[서평] 이토록 유쾌한 지옥이! 임정연 작가의 『지옥 만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7. 29.

이토록 유쾌한 지옥이! 임정연 작가의 『지옥 만세』서평

인턴 김소민

250쪽 정도 되는 책인데 2시간도 안 돼서 다 읽어버렸다. 간결한 문장처리와 현실감 넘치는 대사 덕분에 부담 없이 한번에 읽을 수 있어서였다. 출퇴근 버스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 마스크가 없었다면 계속해서 피식거리는 모습을 누군가 봤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스크를 방패 삼아 마음껏 소리 없이 웃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냐고 묻는다면 인물들의 말도 안 되는 행동과 상황도 있지만 그중 먼저 대사를 얘기하고 싶다. 청소년의 입말을 그대로 가져온 대사들은 모두 이름 모를 학생들의 카랑한 목소리로 들리는 듯하다.

 

"근데 별명 특이하네, 두 마디라니, 뭐가 그래."

"아아, 그거. 수업시간 말고 걔한테서 두 마디 이상 들어본 사람이 없대서 두 마디야."

"그렇다고 그런 별명을 갖다 붙이냐"

"그것뿐인 줄 알아?"

"뭐?"

"걔한테 사귀자고 한 선배들이 줄줄이 차였대. 그때도 걔가 한 마디만 하더래."

"뭐라고?"

"싫어요."

- p.12

'두 마디'라는 별명이 지어진 원인을 들어보면, 생각보다 허무하기도 하고 학창 시절에 나올법한 별명이라 납득이 가기도 한다. 그런 별명을 짓는 학생들이 유치하다고 해야 할지, 재치 있다고 해야 할지. 그들만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건 재밌는 일이다.

대사 비중이 높은 『지옥 만세』는 기발하고 재밌는 대사가 많다. 위의 인용처럼 귀여운 대사들도 많지만, 특히 기억에 남았던 건 아래 사진 속, '조삼모사'에 대한 평재와 할아버지의 대화다.

조삼모사를 내 생각만 강요하지 말고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주라고 해석하다니, 여든의 지긋한 나이에도 할아버지의 세상을 보는 관점은 새롭기만 하다. 보통 청소년 소설에서 할아버지는 세대 차가 나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지옥 만세』 평재의 할아버지는 더 깨어있는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듯했다. 할아버지의 이러한 말들은 평재가 더 좋은 사람이 되게끔 이끌어준다.

 

"인생은 다 그런 거다. 옛사랑이 가면 새로운 사랑이 오는 거지."

- p. 215

 

평재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할아버지가 있다면 백수로 빈둥거리면서 의외로 인생살이 명언을 만들어내는 영재 삼촌도 있다. 평재 집안 식구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이지만 이따금 독자들의 마음에 박히는 말을 하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옛사랑이 가면 새로운 사랑이 오는 거지." 영재 삼촌의 인생을 나타내는 대사이자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이다.

위와 같은 대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지옥 만세는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등장인물이 꽤 많은데도 모두 개성 넘치는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평재를 계속해서 호출했던 학교 선배들과 중학생들도 각기 다른 밉살스러움으로 독자들에게 황당한 웃음을 준다. 초 단위로 평재와 시아를 분석하는 전산부장 백덕후, 회장이 아닌 사장처럼 평재를 캐묻는 학생회장, 축구부장 안정한(누군가 생각나는 이름이다) 등 뭐 저런 사람들이 있어, 하면서도 그들의 존재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깝습니다."

존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응?"

"아직 튼튼하고 멀쩡합니다. 계속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존이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건물을 부수면 여기 살았던 사람들의 추억도 사라집니다."

"허허."

 - p.74

 

지옥 만세』의 매력 중 하나는 유쾌함 속의 묵직함이다. 가벼운 대사와 에피소드가 많지만 책에 등장하는 배경을 따져보면 결코 가볍다고만은 할 수 없다. 재개발에 직면한 주민들, 이산가족 등 사회적 문제를 겪는 인물이 많다. 사실 이러한 배경은 소설에 전반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지옥 만세』는 어두운 분위기로, 지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책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옥 만세』는 사회적 문제를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특히 후반부, 시아의 집이 철거 위기에 놓였을 때 평재가 불러들인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장면은 사회적 갈등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모습이 우습기만 하다. 이처럼 유쾌함과 묵직함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 있기에 웃고 나서 다시 한번 내용을 곱씹어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사회적 문제에 놓인 사람들도 역시 밝은 모습이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평재와 함께 하며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일들이 많았다. 아직 꿈을 찾을 나이인 평재의 시야를 넓혀주는 일이며, 그것은 이 책을 읽을 청소년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시끌벅적한 이야기 속에, 우리 사회와 자신의 꿈을 생각해볼 지점이 존재한다. 

 

지옥이지만 만세를 외치리라.

평재는 지옥 같은 일을 경험했지만 결국은 모든 게 끝난 후 만세를 외칠 수 있었다. 이렇게 청소년들의 고민과 성장 스토리를 유쾌하게 담아낸 『지옥 만세』. 같은 시기를 겪고 있는 지금의 청소년들은 물론, 그 시기를 지나왔던 어른들도 책을 통해 학창 시절을 환기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지옥 만세 - 10점
임정연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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