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눈을 가졌다

『밤의 눈』

 



 인턴 박다겸

 

 




해방을 염원하고 해방을 향해 끊임없이 투쟁한 결과. 1945815, 조선은 일제로부터 독립한다. 하지만 염원한 만큼 평화로워야 할 한반도는 또 다시 불운한 역사를 쓰기 시작한다. 독립의 방식과 독립 이후의 정치에서 많은 길이 펼쳐진 것이다.

 

<밤의 눈>은 한반도에 발을 들이고 있다면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중하게 녹여내고 있다. 그리고 그 길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다질지, 어떻게 걸어 나갈지에 대한 고뇌가 경상남도 가상의 지역 대진읍에서 한용범, 옥구열 등의 인물 중심으로 드러난다.

 

1948. 남한에 단독정부가 수립되면서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해당 정권에는 친일파들이 대거 있었고, 1949. 반민법이 제정되면서 좌익을 제거하는 조직이 만들어진다. 이제 일제강점기를 막 벗어난 사람들의 애환은 독립의 기쁨으로 씻겨나가지 못 하고 또 다른 아픔으로 짓무른다. 누군가에게는 고문할 자격이 주어지고, 누군가에게는 해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한용범은 초대 국회위원 선거 때 국민회가 아닌 무소속을 지지했다는 점, 배정식 수장사건에 적극적인 수사 촉구 요구를 했다는 점과 더불어 소식이 끊긴 지 오래인 친우들이 좌익 세력 혐의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지서를 들락거린다. ‘AB B를 선택했으면, A는 싫다는 거 아니야?’ 논리는 끝이 없다. ‘고문할 자격의 논리. 자격은 이전되었다. 일제에서 국가로.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은 그 자격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좌익을 관리한다는 명분이 확고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진의 박고개에는 총성이 울린다. 박고개 말고 다른 곳, 또 다른 곳, 또 또 다른 곳에서도. 하지만 총성을 들었다는 말을 대놓고 할 수 없다. 암암리에 퍼져 공포에 떠는 것밖에, 대진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늘에 걸린 둥실한 달이 너무나 청명하게 내리 비쳐 숨이 다 막힐 지경이었다… 생사를 가르는 엄청난 일이 대낮같이 훤한 달빛 아래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달은 공포 그 자체였다.”(148p)






밤중에 끌려간 곳에서 삽을 든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제가 묻힐 곳을 제 손으로 판 것임을. 한용범은 총을 목전에 두고 하늘을 바라본다. “그는 달이 공포가 아니라 밤의 눈으로 자기를 지켜보고 있음을 의식을 놓기 직전에야 알았다.”(149p) 그래서였을까. 밤의 눈을 봐서였을까. 한용범은 살아난다. 제대로 파묻지도 않았는지 옅은 흙 밭을 파헤치고 올라온다. 구멍 난 허벅지를 이끌고 그렇게 밤의 눈 아래에서 살아난다.
















말만 꺼내지 않았을 뿐 한시명도 지난 시간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렇게 지난 시간을 떠올릴수록 자신이 이런 처지까지 이른 데 대한 스스로의 잘못을 찾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했다.”(201p)

 

"옥구열은 극장 측에다 다른 것은 다 두고라도 태극기만은 꼭 정면 단상에 걸어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유족들이 모두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너무 당연해서 말할 필요조차 없는 그런 사실을 확인해 줄 수 있는 물증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276p)







근대 국가의 정치 원리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국민주권주의가 포함되어야 한다. 왕조와 국가를 구분하는 기준이 그렇다. 근대국민국가에는 백성이 아닌 국민이 있고, 참정권이 있으며, 계급과 계층, 성별 등에 자유를 가진다. 이에 따라 국가 폭력은 한 개인을 억압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한 국가의 국민을 억압하여 아이러니를 만든다. 당연히 아닌 것을 내 잘못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고, 당연한 것조차 당연하다 여길 수 없게 만든다. 단순한 이해관계를 넘어선 권력은 국가의 존엄을 파괴하고 독재의 잔재만 남긴다.

 

장면 정권이 짧게 끝나고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다. 옥구열과 안치홍, 한용범은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유해 수습, 합동묘 건립, 진상 규명 등을 위해 대금 유족회를 조직했고, 이는 다시 빨갱이로 몰린다. 시대는 손바닥 뒤집히듯 바뀐다. 그리고 학생들의 소리가 다시 시작된다.

 

그 시절을 살지 않았더라도 일련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책 밖에서 생각하며 인물을 따라가게 된다. 부산대학생이 온천장까지 나아갔다. 이후에는 동아대학생도 시위대에 가담한다. 그 대열에 있었던 분이 모교의 선생님이셨고, 나는 그 학교를 졸업 후 동아대학교에 재학 하게 되었다. 나는 선생님이 되어 대열에 합류하기도, 그 시절의 선배들이 되어 구호를 외치기도, 소설 속 옥구열이 되어 지켜보는 시민이 되어보기도 한다. 남포동 골목으로 빠지고, 부산극장 사거리에서 샛길로 빠져 광복로로 나오고, 미화당백화점 앞을 지나며 파출소 쪽을 본다. 그리고 국제시장 골목에서 구호를 들어본다. 유신 철폐!” “독재 타도!”








삼거리를 가로지른 육교로 시선을 돌렸을 때 육교를 가득 채운 사람들이 시위대에게 무언가를 던지고 있었다. 빵 봉지와 야구르트였다. 머리끝이 서고 몸이 떨리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자신의 온몸이 자유롭다는 걸 자각하고 있다, 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한번 시작된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379p)








우리는 모두 눈을 가졌다. 시간은 언제나 흐르고 그 속에 가담하고 있다. 그러니 상기하자. 한반도에 발을 두고 있으니 뒤돌아보자. 밤의 눈을 견딘 자들이 일구어낸 길을 걷고 있으니 그렇게 하자.
















옥구열은 오늘 밤 저 하늘에 단 하나의 마음은 새겨 두고 싶었다. 유족회 일이 반국가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이 자기 생전에 밝혀지기를 소원하는 마음.”(380p)







그리고 옥구열에게 말해주자. 그런 세상이 오고야 말았다고. 적어도 우리는 당신을.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밤의 눈 - 10점
조갑상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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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이 편집자 2021.01.11 1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평 잘 읽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빚을 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