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고 싶은 마음을 달래보려 잡은 책은 여행을 향한 열망을 더욱 활활 태우는 불쏘시개가 되었다.
맞벌이로 바빴지만 나와 동생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던 엄마는 어릴 때부터 우리의 방학을 캠프로 꽉꽉 채워 여행을 떠나보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걸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틈이 나는 주말마다 연휴마다 우리를 데리고 부지런히 국내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국내엔 안 가본 곳이 거의 없고 기회만 되면 여행을 가는, 심지어 기회를 만들어내서라도 여행을 가는 여행 중독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 여행을 금지당한 코로나 시대는 나에게 큰 고비였다. 이미 계획해둔 수많은 여행을 모두 취소하고 과거에 했던 여행으로의 추억여행을 떠나기도 하루 이틀이지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다행히도 거리 두기와 방역수칙을 모두 지키며 여행을 할 방법인 여행책 읽기가 나의 뛰쳐나가고 싶은 욕구를 겨우 눌러주고 있다. 지난 책들로 싱가포르와 독일에 다녀온 나는 이번에는 제주도로 가상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이 책은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대신 열흘 살기를 하며 쓴 에세이인데, 읽는 내내 작년 1월에 하고 온 스페인 시체스에서의 한 달 살기와 작년 가을에 다녀왔던 제주도 여행이 겹쳐졌다. 두 여행의 최고의 순간만이 섞여 완벽하고 새로운 여행이 머릿속에서 편집되어 방영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꼼꼼히 계획 짜서 바쁘게 돌아다니는 여행과 새로운 곳에서 여유롭게 일상을 보내는 여행은 정말 다르다.
전자의 경우에는 맛집을 찾아다니며 특별한 맛을 보고, 관광지를 돌며 새로운 것을 보고, 이것저것 구경하며 선물 등을 사는 식이다. 이런 여행에서는 평소에는 그다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새로운 경험이 펼쳐진다. 본적 없는 아름다움이나 맛, 예상 못 한 일들을 겪으면서 얻는 즐거움이 있다.
후자와 같은 여행은 평소에 늘 꿈꿨지만 바빠서 하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휴식을 취하거나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이다. 시체스에서 한 달을 사는 동안에 가장 많이 했던 일은 할 일 없이 바다와 하늘을 보며 앉아있는 것과 여기저기 동네를 산책하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누리기 어려운 여유를 즐기면서 여행을 채우는 것은 누군가는 무료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간절한 것일듯하다. 다양한 계획으로 꽉꽉 채운 여행은 “여행지”에 대한 인상이 강하게 남는 반면에 일상 같은 여행은 그 공간과 시간 속의 “나”에 대한 기억이 깊게 남는 것 같다.
“우리 인생이 여행 그 자체임을 느껴보고 싶었다”라며 떠난 제주도 서쪽 바다로의 열흘이 정말 너무나 부럽다. 제주도의 노을이 얼마나 예쁜지 알고, 매일 일 없이 지는 해를 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언제가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여행계획이 또 새로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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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들판을 가로지르다 - 박향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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