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라고 하지만, 아무나 마음을 움직이는 시를 쓰지는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1980년대 중반에 등단한 이후로 시집을 발표할 때마다 독자들의 감성을 흠뻑 깨우는 작품으로 다가오는, 조성래 시인은 참 대단합니다.
드물게 선보이는 까닭에 발표하는 시를 기다리는 마음은 더 간절하고, 존재 내면에 깃든 생명성을 형상화하는 시가 많은 이유로 시를 살피는 눈길과 손끝은 더 일렁입니다.
원고를 받아들고 시인과 소통하며 책이 나오는 순간을 가장 처음 들여다본, 보라색을 좋아하는 편집자는 이번 시집이 더 특별합니다. 산지니에서 어루만지는 마지막 시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인께 글을 다듬지 않고, 보듬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쪽배』를 가득 껴안고 오래도록 두고 읽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늘거울, 쪽배
우포늪 맑은 물에 쪽배 한 척 잠겨 있다
세월 놓치고 뒷전으로 밀려나 천천히
물 아래 가라앉는 생의 한 부분 보여주고 있다
무엇으로 채우려던 욕심 비운 지 오래
수초와 펄을 헤집던 삿대도 잃은 지 아득
삭은 관절 편안히 수면에 내맡기고 있다
생각하면 지난날들 모두 뜬구름
한 몸 고요히 해체하여 물로 돌아가는 것을
고물에 달라붙는 왕성한 물풀
생이가래도 이젠 생광스러울 뿐이다
한랭전선 떠메고 올 철새 기다리며
시린 물낯의 하늘거울에 담긴, 환하게 굴절된
잎 진 나무들 물구나무선 그림자
쪽배 빈 가슴에 또 다른 풍경 매단다
…… 이쪽 언덕에서 유심히 지켜보면
쪽배가 가라앉는 속도만큼, 기척 없이
저문 산이 저쪽으로 자리를 비켜 앉는다
이전의 쪽배는 ‘푸른 하늘 은하수~’의 동요 <반달>에 나오는 가사로 기억되었다면, 이제부터 쪽배는 조성래 시인의 시집으로 기억될 듯합니다.
따스한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독자들의 감성을 흠뻑 깨우는 조성래 시인의 시집 『쪽배』를 추천합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1718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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