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사] 쉼이 필요할 때 '절' 찾아오세요
충남 '공주 갑사' 거닐어보니
'사찰 중 으뜸'으로 불려... 신라시대 화엄십찰로 명성
입구에 세워진 '철당간지주'로 과거 사찰 규모 짐작
호젓한 숲길 지나 돌계단 오르니 승탑·전각 위용 드러내
중생 병 고쳐주는 부처 '약사여래'에 발길 끊이지 않아
하늘은 높고 푸르다. 신선한 바람을 타고 은은하게 퍼지는 풍경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대자대비한 부처가 전하는 '염화미소'가 속세의 시름을 잊게 한다. 가을 고찰은 이렇게 찾는 이들을 말없이 품어준다. 그뿐이랴. 템플스테이에 참여해 고요한 산사의 밤을 만끽할 수 있고, 인근 산책길을 거닐며 무념무상의 세계에 빠져들 수도 있다. 깊어가는 가을, 호젓한 사찰을 찾아 번잡한 인생에 잠시 쉼표를 찍어보는 것은 어떨까.
"사찰여행을 하고 싶다고요? 그럼 '사찰 중에 으뜸'인 갑사로 갑시다. 이상보의 수필<갑사로 가는 길>이 괜히 교과서에 수록됐겠어요?"
올해 <사찰 문화유산 답사>라는 책을 개정해 펴낸 한정갑 작가(62)에게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하니 그는 망설임 없이 충남 공주 갑사를 추천했다. 한 작가는 부산 소림사 고불을 거쳐 조계종포교사단 등에서 일하며 틈틈이 불교문화를 주제로 한 책들을 써왔다.
12일 갑사 주차장에서 만난 한 작가는 여정을 떠나기에 앞서 절 이름에 얽힌 이야기부터 꺼냈다.
"괜히 절 이름에 으뜸 갑(甲) 자를 쓴 게 아녜요. 420년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679년 의상대사가 중건하면서 화엄십찰로 이름을 떨쳤어요. 거기에다 신흥사라는 암자에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천진보탑이 있거든요. 이런 중요한 절이 금닭과 용의 기운이 서린 계룡산에 자리 잡았으니 가히 국내 최고 사찰로 불릴 만하지 않겠어요?
주차장에서 몇걸음 지나가 '일주문'이라고 쓰인 문이 나타났다. 그는 일주문을 "불교 세계관 속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수미산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라고 했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신선한 땅에 첫발을 딛는 듯한 느낌이었다.
갑사로 가는 길은 일주문에 이어 나오는 갑사탐방지원센터에서 두갈래로 나뉜다. 왼쪽은 포장이 잘된 탐방로(약 500m)고, 오른쪽 숲길(약 600m)이다. 호젓한 숲길 쪽으로 10여분 걸으니 하늘에 닿을 듯한 철당간지주(보물 제256호)가 반겼다. 50cm 지름의 철제 통 24개가 연결된 구조로, 15m나 되는 높이 때문에 사진을 찍기도 어려울 정도다. 당간지주는 주로 사찰 입구에 세우는 일종의 표식이다.
"당간지주는 과거 마을의 솟대처럼 신성한 지역을 표시합니다. 이 당간지주로 두가지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사찰 입구인 일주문이 원래는 당간지주와 절 사이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이렇게 큰 당간지주를 보건대 과거 사찰의 규모가 엄청났을 거라는 겁니다."
10여분 정도 더 걸으니 돌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계단을 느릿느릿 올라가면 승탑과 '대적전'이라 이름 붙여진 전각이 조금씩 그 위용을 드러낸다. 성인남자 평균 키보다 조금 큰 승탑은 상서로운 기운을 풍긴다. 승려의 사리를 모신 부도로, 구름 속 용을 조각한 기단부의 예술성이 빼어나 보물 제257호로 지정됐다.
경내에 들어가기 직전, 우뚝 선 '공우탑(功牛塔)'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에 절을 지을 때 건축 자재를 나르는 등 큰 고 ㅇ을 세운 소가 있었나 봐요. 그걸 기리는 탑이네요. 한낱 미물에 대해서도 그 감사함을 후대에 널리 전하고자 탑을 세웠다니 불교의 생명존중 사상에 경탄하게 됩니다."
30여분쯤 걸었을까. 드디어 경내에 다다르니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들이 한눈에 보인다. 한작가는 사찰여행에선 거축물의 배치를 눈여겨보라고 강조했다.
"절을 지을 때 아무렇게나 건축물을 배치하지 않아요. 해탈교라는 다리를 만들고 일주문→사천왕문→불이문→석등→석탑→법당 순으로 이동할 수 있게끔 해놔요. 어지러운 사바세계에서 불교의 이상향인 정토로 중생을 안내한다고나 할까요."
가람 한가운데 대웅전을 보고 있노라니 자연스레 숙연해진다.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듯한 현판은 조선의 명필가인 한석봉의 작품이다. 디딤돌·벽석·받침돌·지대석 등으로 이뤄진 기초석은 1m 이상 높아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대웅전의 남성미는 맞배지붕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요. 건물 옆에서 볼 때 반듯한 시옷(ㅅ)자 형태인 것이 특징으로 가장 간단한 지붕 형식입니다. 화려한 기교는 최대한 절제하고, 단정하면서도 우람한 대웅전의 면모를 보여주려는 건축가의 의지가 담긴 것이죠."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사찰 오른편에 있는 석조약사여래입상이다. 약사여래는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부처를 뜻한다. 백제문화권에서 널리 퍼진 미륵신앙의 영향을 받았다는 게 한 작가의 설명이다. 그래서일까. 답답한 마음을 약사여래에게 전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불교도인은 아니지만 약사여래 앞에 서서 손을 모았다. 속세에서의 탐욕을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공주=이문수 기자 moons@nongmin.com
288쪽 ∣ 175*235mm ∣ 9788965457367 ∣ 2021년07년05일
사찰문화재를 불교문화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한 책으로, 그동안 (사)파라미타를 비롯하여 조계종 중앙신도회, 조계종 포교사단 등 불교단체와 기관에서 직접 사찰을 안내하고 순례하며 체득한 저자의 경험과 지혜가 오롯이 담겨 있다. 저자는 낙산사 홍련암, 남해 보리암, 석모도 보문사 등 3대 관음성지와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의 삼보사찰 그리고 5대 적멸보궁과 지역별 명찰을 선별하여 모두 33군데 사찰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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