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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와 교수신문에 <유구 한문학>이 소개되었습니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2. 6. 10.

“오키나와 근대 서예 1인자 운세키, 해강 김규진 제자였다”

 

“2015년이었어요. 수십 년치 〈매일신보〉를 몇 년간 읽고 〈한국 근대 서화의 생산과 유통〉을 출간한 뒤 일본 후쿠오카 현립도서관에서 유구 한문학 관련 책을 접했을 때 머릿속에 번쩍하고 불이 켜졌어요. 한 달간 매일 가서 그 책을 읽었고, 이후 방학 때마다 오키나와에 가서 자료를 찾았지요.” 7년 공력이 들어갔다. 이성혜 부산대 점필재연구소 전임연구원이 최근 출간한 〈유구 한문학〉(산지니)이 그것이다. ‘유구 한문학의 배경’ ‘유구 한문학의 인물과 사상’ ‘조선 문인과 유구 문인의 만남’, 3부 구성으로 13편 글이 실렸다.

유구(琉球)는 1429년 개국해 1879년 ‘유구처분’에 의해 일본에 합병되기 전까지 무려 450년간 지속한 ‘류큐왕국’으로, 현재의 일본 오키나와현이다. 왜 유구이고, 한문학인가. “유구는 동아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퍼즐 조각이지만 그동안 소외되었던 부분입니다. 일본에 합병되기 전의 독립왕국이자,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일원이었던 것을 강조하기 위해 ‘유구 한문학’을 조명했습니다.”

 

류쿠, 450년간 존속한 일본 독립왕국

18세기 학자 이덕무 “유구는 작은 조선”

홍길동전에 나오는 율도국 설 등 친숙

그간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서 소외

유학 계보·한문학 이끈 인물 소개

 

유구는 우리와 관계가 깊은 곳이다. 요산 김정한의 수작 소설 ‘오키나와에서 온 편지’도 있고, 홍길동이 간 율도국이 유구국이라는 설과, 삼별초 잔존 세력이 오키나와로 가서 유구왕국의 기틀을 닦았다는 설은 아주 유력하다고 한다. ‘계유년에 고려 기와 장인이 만들었다’고 적힌 13세기 혹은 14세기 명문 기와도 출토됐다. 그런데 그는 전혀 다른 것을 처음 찾아냈다. “자하나 운세키(1883~1975)는 오키나와 근대 서예의 1인자입니다. 이 분이 한국의 대표적 서화가 해강 김규진(1868~1933)의 제자예요. 운세키는 1911년부터 8년간 조선총독부 직원으로 경성에 와 있을 때 해강에게 서예를 익혔습니다. 귀국해서 그는 해강의 제자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분명히 밝혔지요. 예술의 맥으로 한국과 오키나와가 이어진 예입니다. 운세키 작고 4년 뒤인 1979년 그 제자들이 운세키의 뜻이라며 해강의 아들인 청강 김영기를 오키나와에 초청했습니다.”

또 다른 사실도 있다. 14세기 후반 조선 태조 연간에 조선으로 망명해온 ‘유구 산남왕 승찰도’는 오키나와로 간 고려 삼별초의 후손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승찰도는 유구 역사 중 3개 왕국이 각축한 삼산시대에 산남왕국의 왕이었는데 권력을 뺏기고 조선으로 망명해왔어요. 〈조선왕조실록〉에 관련 기록 5건이 있어요. 처음 진양에 와서 살다가 1398년 한양에서 죽었지요. 그가 유구에 가까운 대만이나 중국으로 가지 않고 조선을 택한 것은 삼별초 후손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조선이 세계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지니고 있던 16세기 초반까지 조선 사신은 3번 유구에 갔고, 유구 사신은 무려 46번이나 조선을 찾았다고 한다. ‘동자단’은 유명한 유구 사신이었으며, 그가 신숙주 등과 주고받은 알려지지 않은 시도 많이 찾아냈다. 이 전임연구원은 “1530년 이후부터는 직접적인 사신 교환은 없어지고 북경을 통한 우회 외교가 시작됐다”며 “그럼에도 18세기 조선 지식인 이덕무가 ‘유구는 작은 조선’이라고 했을 정도로 유구는 우리의 지적 감각 속에 있었다”고 했다.

이 전임연구원은 책에서 유구 유학의 계보와 한문학을 이끈 인물도 소개한다. 유구 유학은 구메무라 계보와 수리왕부 계보, 둘로 나뉜다고 한다. 정순칙(1663~1734)은 ‘나고성인’으로 불리면서 자신의 지역에 대한 자부심으로 유구의 실경을 노래한 인물이며, 채온(1682~1762)은 40여 년간 유구왕국의 최고 권력자로 유·불·도를 아우른 사상가였다. 자료(自了, 1614~1644)는 선천적으로 말을 듣지도, 하지도 못했던 유구 최초의 천재 문인화가였다. 이 전임연구원은 “이들의 사유는 유구만의 색채를 겸비하며 형성됐다”며 “그 색채는 동아시아 사상의 일부”라고 했다. 그는 책에서 오키나와의 상징 이미지인 사자(獅子), 즉 ‘시사’의 정체는 ‘눈이 9개 달린 신령한 동물인 백택(白澤)’이라는 주장도 내놓았다.

그는 2018년 한류문화연구소를 만들어 그 소장을 맡고 있다. ‘한류(韓琉)’는 한국과 유구를 뜻한다. 회원은 일본인 2명을 포함해 연구자 12명으로, 매달 줌으로 연구발표회를 진행하고 있다. 일반 회원도 10여 명을 헤아리는데 코로나19 이전에는 후쿠오카 답사를 한 번 했고, 오키나와 답사를 두 번 했다고 한다. “오키나와 도쿄 서울 진주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류문화연구소 회원들은 서로 안부를 물으며 이번 여름방학에 오키나와로 답사 갈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출처: 부산일보

 

“오키나와 근대 서예 1인자 운세키, 해강 김규진 제자였다”

이성혜 한류(韓琉)문화연구소장은 “유구는 동아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퍼즐 조각”이라고 했다. 산지니 제공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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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 한문학

 

이성혜 지음 | 산지니 | 376쪽
동아시아 한문학에서 소외되었던 오키나와, 유구를 바라보다

한자문화권인 동아시아 한문학의 지평을 넓힐 『유구 한문학』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현재의 오키나와, 예전 류큐왕국으로 불린 독립국 유구의 한문학 생성과 발전과정, 특히 조선과 조선 문인과의 교류를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한문학의 연구 영역은 조선과 중국, 일본 본토로 한정적이었다. 오키나와에 관한 연구는 민속학과 역사학에만 치중되어 있었다. 저자는 동아시아 한문학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해 유구 한문학의 전반적인 이해를 시도했다. 이러한 노력은 감춰진 중국 한문학 수용 국가를 드러내는 동시에 한반도의 새로운 상호교류사를 만들었다.

 

유구 한문학에 대한 연구는 ‘동아시아 한문학’이란 시각에서 필요하다. 우리 한문학계는 중국 한문학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이는 종주국으로서의 중국이라는 당위성이 있지만 진정한 동아시아 한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지평을 넓힐 필요가 있으며, 유구 한문학도 그중의 하나이다. 또 유구는 동아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퍼즐조각이지만, 그동안 소외되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_「1장 유구 한문학의 성립 배경」 중에서

저자는 유구 한문학의 전반적인 이해를 위해 조선 전반으로 연구 시기를 확장시키고 다양한 문헌을 참고했다. 또한 서화, 시, 전(傳), 문화 표상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저자만의 견해를 만들었다.
책의 이름이 ‘오키나와 한문학’이 아닌 ‘유구 한문학’인 이유는 1879년 일본에 의해 합병되기 전 독립 왕국이었던 유구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책의 구성은 1부 유구 한문학의 배경, 2부 유구 한문학의 인물과 사상, 3부 조선 문인과 유구 문인의 만남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출처 : 교수신문

 

유구 한문학 - 교수신문

동아시아 한문학에서 소외되었던 오키나와, 유구를 바라보다한자문화권인 동아시아 한문학의 지평을 넓힐 『유구 한문학』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현재의 오키나와, 예전 류큐왕국으로 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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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 한문학

현재의 오키나와, 예전 류큐왕국으로 불린 독립국 유구의 한문학 생성과 발전과정, 특히 조선과 조선 문인과의 교류를 밝힌다. 저자는 동아시아 한문학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해 유구 한문학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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