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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소리에 <쓰엉>이 소개되었습니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2. 6. 27.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BOOK世通, 제주 읽기] (242) 서성란, ‘쓰엉’, 산지니, 2016.

 

1.
최근 한국계 미국 작가 이민진의 장편 ‘파친코’가 서점가에서 대중의 이목을 끌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Apple TV+의 웹드라마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파친코’에 대한 대중의 관심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원작소설과 웹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삶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자신의 삶의 터전을 떠나 낯선 타방에서 힘겨운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한국사회를 향해 제기하는 여러 문제들을 대중은 일상의 감각으로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 

2.
사실, 전 세계는 숱한 디아스포라들이 존재한다. 국가, 민족, 젠더, 종교, 지역 등과 결합된 정치경제적 문제들이 디아스포라와 분리할 수 없듯이,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디아스포라는 일상에서 접하고 있는 사회적 현안이다. 그래서 코리안 디아스포라 못지 않게 한국사회로 이주하여 살고 있는 외국인으로서 디아스포라에 대해 무심해서 곤란하다. 

작가 서성란의 장편 ‘쓰엉’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쓰엉’ 외에도 이 문제를 다룬 한국소설들이 존재한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외국인 이주노동자 문제가 한국사회의 급격한 현안으로 대두되면서 한국소설의 주요한 문제의식으로 다뤄지고 있다. 그 대부분은 한국사회의 다문화에 초점을 맞춘 데서 알 수 있듯, 한국사회의 순혈주의 및 서구중심주의(혹은 미국중심주의) 문화와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비서구 외국인에 대한 배타주의와 관련한 국민국가의 온갖 문제점들에 대한 비판적 서사다. 이들 작품에서 한국사회는 표면상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낯선 문화와 공존하며 살아가는 세계시민으로서 문화 감각을 일상화하는 데 미숙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쓰엉’을 읽는 내내 아직도 이러한 문제들이 한국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쓰엉’은 한국의 산골 마을 가일리의 농촌 총각에게 시집온 베트남 여인으로, 애를 낳지 못했을 뿐이지 결혼한 한국 여성보다 가정 살림을 하는 면에서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심지어 “젊고 성실한 쓰엉은 마을에서도 유용한 존재”(82쪽)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믿지 않았다. 가일리에서 평생을 살다 죽는다고 해도 쓰엉은 결코 한국인이 될 수 없었다.”(18쪽) 게다가 ‘쓰엉’은 남편으로부터 살가운 사랑은커녕 가정 폭력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하면서 시어머니로부터는 “썩을 년! 빌어먹을 년!”(93쪽)이란 욕설에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하자 있는 물건”(139쪽) 취급을 받는 등 ‘쓰엉’은 가족과 마을로부터 배제된 흡사 “고립된 섬”(18쪽)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쓰엉’에게 “허용된 것은 인내와 순종뿐이었다.”(161쪽)

그런데 만일 이 작품이 작중인물 ‘쓰엉’이 겪는 외국인 이주여성으로서 차별과 배제의 측면만 주목했다면, 앞서 잠깐 언급한바 이 문제의식을 다룬 여타의 작품과 별반 다를 바 없을 터이다. 오히려 기존 문제의식을 반복 재생산한데 불과했다는 혹평을 피해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쓰엉’이 외국인 디아스포라로서 피해와 수난 중심으로만 서사가 진행되는 게 아니라 ‘쓰엉’과 관계를 맺는 한국인 부부의 이야기와 함께 서사가 펼쳐지고 있는 점이다. 

3.
한국인 부부는 가일리의 외딴곳에 아내 ‘이령’의 소설작업을 위해 하얀집을 구매한 채 마을 사람들과 이렇다할 소통 없이 사는데, 남편 ‘장’은 집안 살림을 목적으로 한 가사 도우미로서 ‘쓰엉’을 고용한다. ‘쓰엉’과 이들 부부의 관계는 이 소설을 읽는 흥미를 배가시켜준다. 하얀집의 남편 ‘장’과 ‘쓰엉’은 불륜과 로맨스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줄타기하는 것처럼 보임으로써 ‘이령’을 포함한 삼각관계의 욕망에 초점을 맞춘 듯 하지만, 정작 이들 관계에서 주목할 것은 ‘쓰엉’과 ‘이령’의 관계다. ‘쓰엉’이 외국인 이주여성으로서 디아스포라의 소외와 상처에 대해서는 다시 강조할 필요가 없겠다. 그런데 ‘쓰엉’의 이 실존적 삶, 즉 디아스포라의 삶이 ‘이령’의 삶과 포개지면서 이들의 관계는 한층 농밀해진다. 말하자면, ‘이령’은 “강을 건너 낯선 나라로 시집온 외국인 여자와 다르지 않았다.”(250쪽) 그것은 ‘쓰엉’이 가일리 마을 사람들로부터 감시를 받고 그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되기는커녕 일정한 사회적 존재적 거리두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얀집에 사는 ‘이령’은 가일리에서 ‘쓰엉’과 매한가지일 따름이다. 게다가 ‘이령’이 남편 ‘장’과의 서걱거리는 부부관계뿐만 아니라 시댁과의 불화는 그 구체적 양상이 서로 다를 뿐이지 앞서 살펴본 ‘쓰엉’의 남편과 시어머니와의 불화와 이 역시 흡사하다.

그래서인지, ‘쓰엉’과 ‘이령’은 서로 연민의 시선을 가지면서 금단의 경계를 넘어 사랑한다. ‘쓰엉’에게 ‘이령’은 어쩌면 가일리에서 자신의 삶이 투영된 ‘쓰엉’의 또 다른 자기존재일지 모른다. 한국에서 성공할 부푼 꿈을 갖고 이주한 베트남 여성 ‘쓰엉’이 가일리에서 사그라드는 자신의 꿈을 인정할 수밖에 없듯이, ‘이령’은 한때 저명한 소설가로서 다시 보란 듯이 화려하게 재개하고 싶지만 가일리에서 새로운 작품은 좀처럼 써지지 않은 채 삶의 상처는 지속될 뿐이다. ‘이령’은 그러므로 ‘쓰엉’이 가일리에서 마주한 자기 자신이다. 그런가 하면, ‘이령’에게 ‘쓰엉’은 “낮선 나라로 시집와서 외로움을 견디며 살고 있는 어수룩한 여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령은 한여름 햇빛처럼 날카롭고 강렬하게 시선을 파고드는, 매혹적이고 도발적인 여자의 아름다움을 외면하거나 거부할 수 없”(250쪽)을 만큼 ‘쓰엉’으로부터 ‘이령’이 추구하고 싶은 “완벽한 미적 필연성을 부여할 수 있는 정확한 언어에 대한 믿음”(26쪽)을 길어올릴 수 있는 미적 대상이다. 이 문제를 곰곰이 성찰하건대, ‘이령’의 이 욕망은 좁게는 서성란이란 개별 작가가, 넓게는 2000년대의 한국 작가가 마주하고 있는 디아스포라와 관련한 서사적 재현의 문제를 촉발시킨다.

4.
그렇다면, ‘쓰엉’에서 우리가 한국사회에서 새롭게 주목할 외국인 디아스포라는 낯선 타방에서 피해와 수난을 겪는 데 자족하는 재현의 서사를 넘어 한국사회 곳곳에서 삶을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에 대한 다층적이고 심층적인 재현의 문제와 결부된다. 달리 말해 한국소설은 ‘쓰엉’에서 시도되었듯이, 디아스포라에 ‘대한’ 서사적 탐구는 물론, 디아스포라를 자연스레 ‘사는’ 서사적 탐구를 치열히 병행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디아스포라뿐만 아니라 디아스포라와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쉬운 자국민 모두를 망라하여, 인간의 ‘유동적 불완전성’이 지닌,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18쪽)는 것에 대한 래디컬한 물음을 던진다.

 

고명철 (news@jejusori.net)

 

▶ 출처: 제주의소리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 제주의소리

1.최근 한국계 미국 작가 이민진의 장편 ‘파친코’가 서점가에서 대중의 이목을 끌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Apple TV+의 웹드라마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파친코’에 대한 대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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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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