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2일, 산지니에서는 <하근찬 전집> 2차분이 발간되었습니다.
5권 낙도, 6권 기울어지는 강, 7권 삽미의 비, 11권 월례소전까지
한국 문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소설들이 출간되었습니다.
그 의의를 기념하고, 되새기기 위해 지난 토요일, 오후 2시에 영천평생학습관 우석홀에서 심포지엄이 진행되었습니다.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태어나 처음으로 영천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겨울답지 않은 따뜻한 날씨에 영천의 경치를 감상하며 심포지엄이 열리는 장소로 향했습니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백신애기념사업회 위원분들과 이번 2차분의 해설을 써주신 문학연구자분들,
심포지엄에 초대되어 함께 토론을 하게 된 분들 등
하근찬 작가의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신 많은 분들이 자리에 참석해 주셨습니다.
저 또한 이번 발간을 담당했던 편집자로서 빠질 수 없기 때문에 부산에서 날아가 참석했습니다!
심포지엄은 각 해설을 써주신 4분의 발제, 그리고 그에 대한 토론자의 토론문 발표로 진행되었는데요,
각 해설자분들이 책에서는 하지 못했던 더 심도 있는 내용까지 발표해 주셔서
더욱 풍부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아래는 각 발표자분들의 발표와 토론 내용입니다.
첫 발제는 '망각된 존재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하근찬의 문학'이라는 주제로
5권 『낙도』 해설을 써주신 최슬기 님께서 발표해 주셨습니다.
하근찬 소설의 특징은 '망각된 존재의 흩어진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주변적인 존재들을 가시화한다는 것이다.
또한 여타의 전후문학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직접적으로 전쟁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낙도』에 수록된 단편들은 일제강점기 때 지배 권력, 해방 후의 지본 권력과 결탁하며 전근대적 계급 구조를 답습하는 기형적 사회구조를 보여준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예외 상태에 놓인, '정상 국민'의 경계 밖에 놓인 '하위주체'의 신체를 비인간화하여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산중우화」의 영감과 할미를 '원숭이'와 '너구리'에 비유한 것이 그러하다. (후략)
이에 대한 김현정 대구대학교 강사분께서 토론해주신 내용입니다.
작품을 읽어가는 과정은 역사를 문학적으로 증언하는 것의 의미란 무엇일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를 기록하고 재현하는 데 있어 당사자가 직접 사건을 증언하는 것,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과 달리 시대의 비극을 문학적으로 증언하는 것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또한 「산중우화」와 「이지러진 입」은 하근찬 문학의 특수한 성격을 가진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생명성'이나 '신체성' 등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서 갖는 날것의 속성이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근찬의 문학이 다른 전후문학과 차별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이를 아버지와 관련한 경험이 하근찬 문학의 윤리성을 가능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좀 더 단단한 연결고리가 필요해 보인다.
두 번째 발제는 '유신을 살아내는 민중의 삶'을 주제로
6권 『기울어지는 강』의 해설을 써주신 신현아 님께서 발표해 주셨습니다.
1970년대는 새로운 대중문화가 폭발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 존재했던 착취와 빈곤, 노동문제야말로 1970년대에 새롭게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기울어지는 강』에 수록된 중편들은 전쟁을 다루지 않고 70년대 소시민의 일상을 다루고 있으며, 70년대가 어떻게 식민지와 전쟁의 기억을 억압하였는지 보여준다.
특히 「십오야」에서 병태와 상만은 대구시에서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가는데, 그 길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고향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묘사한다. 고향, 즉 농촌은 새마을운동으로 번듯한 공장과 도로 등이 생기면서 도시로 떠났던 청년들을 놀라게 하지만, 그곳이 도시적인 곳으로 변모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변화를 맞은 농촌과 도시의 새로운 대립을 만들어낸다.
즉, 하근찬은 유 신체제와 그 이후 민중들의 삶 속에서 국가가 어떻게 '잉여적인 존재'들의 삶을 폭력적으로 배제해왔는지를 그리고 있다. (후략)
이에 대한 홍덕구 포항공과대 교수님께서 토론해주신 내용입니다.
「보랏빛 연가」에서 윤형규와 지혜림의 성별 차이는 두 인물의 성격과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죽음에 대한 어떤 기억도 없이 아름다운 과거와 중산층의 삶을 살아가는 윤형규와 죽음과 폭력으로 점철된 과거를 피해 숨듯이 살아가는 지혜림의 삶이 대비되면서 소설의 효과는 극대화된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여기서 두 인물의 운명을 갈라놓은 것은 무엇인가. 신분이나 계급의 차이는 분명히 아니며, 답은 하근찬 소설이 여성을 재현하는 방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하근찬 소설의 여성들은 단지 수난의 주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배나 전쟁과 같은 거대한 폭력의 기억을 체현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문제는 이러한 여성 재현에서 여성의 주체성을 발견할 수 있는지, 아니면 또 다른 방식의 대상화에 그칠 뿐인가?
세 번째 발제는 '이데올로기와 길항하는 보통의 삶이 지닌 가능성'을 주제로
7권 『삽미의 비』의 해설을 써주신 전소영 님께서 발표해 주셨습니다.
최인훈이나 박완서 이호철 등의 작가들은 유년 시절과 청년기에 경험한 '이데올로기의 폭력'으로서의 태평양전쟁과 6·25전쟁으로부터 얻은 의식 세계를 토대로 1960년대, 70년대의 권력과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었다.
하근찬은 스스로 자신의 문학세계를 1기와 2기로 구축하였다고 밝힌다. 일제 말엽을 회상하는 소설, 그 외에 1960년대 및 70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담긴 작품들이 『삽미의 비』에 수록되어 있다.
(중략)
하근찬은 「삽미의 비」의 박만도 형(形)의 인물들을 문학세계의 주체로 내세우면서, 이 세계를 온당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힘은 내면화된 이데올로기와 길항하려는 개인들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에 대한 정미숙 문학평론가님께서 토론해주신 내용입니다.
가장 문제적으로 읽은 작품은 「원 선생의 수업」과 「수양일기」이다. 두 소설은 모두 어린 소년 시절 학교에서 받은 훈육이라 불리는 시련의 과정이 무의식적으로, 오래도록 지속되며 인간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고 삶을 훼손한다는 진실을 말한다.
(중략) 「후일담」과 「성묘행」은 개발 논리에 빠져 침몰해 가는 우리 삶의 지형, 나아가 전 지구적 상황에 대한 사유를 촉구한다. 건설과 파괴, 보상과 망상으로 이어지는 연쇄 고리를 합리적으로 견인할 새로운 역사의식이 필요하다. 이는 하근찬 전집 발간과 함께 새롭게 활기를 더할 하근찬 소설 연구의 새로운 장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만도' 식의 보통의 삶이 아닌, 보통 너머의 정상적인 삶을 희망한다.
마지막 발제는 '강제로 끌려간 여성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을 주제로
11권 『월례소전』의 해설을 써주신 서승희 님께서 발표해 주셨습니다.
『월례소전』은 <여성동아>에 29회 연재된 이후 여러 차례 단행본으로 출간되며 많은 독자들과 만났다.
이 작품은 근현대사를 통시적으로 다루는 여타 소설들과는 변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방대한 시간을 다루고 있지만 주요 시간대는 대부분 식민지 말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공간도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의 농장'이 있는 어느 농촌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서 펼쳐지는 전시체제하 농촌 동원과 수탈상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월례의 인생 유전을 자아내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정신대'라는 역사적 소재와 사할린 한인 문제라는 시의적 이슈를 주요 사건으로 결합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중략)
신문의 생존자 명단에서 월례가 소련 혹은 북한 국적이었다면 월례의 어머니는 흔쾌히 우리, 가족, 민족, 국가의 딸로 월례를 호명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국적 상태임을 공식적으로 증명함으로써 월례는 남한 국민의 일원으로 초대받긴 했으나, 도대체 월례는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데이신타이', '일본군위안부', 사할린 한인, 무국적자 등 월례를 스쳐간 용어들은 그녀가 거쳐 온 삶의 어떠한 단면도 제대로 해명해내지 못한다.
이에 대한 김만석 문학평론가님께서 토론해주신 내용입니다.
일제 말기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영천 지역어와 표준어, 일본어가 복합적으로 얽혀 표현되고 있는 것은 주목해야 할 점이다. 일본어는 물론이고 표준어르 발화될 수 없는 지역에서의 경험, 영천 지역어로도 포착되지 않는 경험으로 일제 말기를 서사화하는 『월례소전』의 언어적 복합성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물론 이 언어들이 수평적으로 취사선택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강제로 주어진다고 하는 편이 더 타당하다.
일본어로 이루어졌을 '하루에 쓰루미'와 '월례'의 대화는 표준어와 영천 지역어로 번역되어 독자들에게 제시되면서, 커뮤니케이션의 비대칭성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번역은 언어 상호 간의 일치를 보여주지 않는데, 오히려 이 번역의 과정에서 민족적, 인종적, 지역적 갈등과 마찰에 대한 '감각'이 확보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후략)
긴 시간 동안 하근찬의 작품을 통해 여러 논의를 깊게 다루면서, 이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하근찬의 작품에서 풍부하게 논의될 주제들에 대해 듣고 배우며 그의 문학이 문학사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배우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심포지엄 마지막 시간에는 참석자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하근찬 작가님의 아드님께서도 참석하여 생전의 하근찬 작가님의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하근찬 문학의 연구는 이제 시작입니다.
앞으로 전집 22권이 모두 발간되는 과정에서 많은 문학연구자들이
함께 하근찬의 문학이 어떠한 의의를 지니는지 등등 여러 논의를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저 또한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하근찬 작가님의 문학에 대해 더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앞으로도 발간될 작품들을 어떻게 구상하고 어떠한 점을 중심으로 다뤄야 할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발간될 <하근찬 전집>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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