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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에 <보이지 않는 숲>이 소개되었습니다.

by _Sun__ 2022. 11. 16.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숲』 조갑상 “한국전쟁, 분단 계속되는 한 과거 아닌 현재 사건”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열 살 무렵 한국전쟁에서 부모를 잃은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한 시대를 건너왔을까. 만약 그런 두 남녀가 부부가 돼 한 시대를 살아간다면. 부산에서 창작 활동을 해온 소설가 조갑상은 2012년 장편소설 『밤의 눈』을 쓴 뒤 한국전쟁 및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다룬 단편을 서너 편 쓰면서 장편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이때 썼던 단편소설은 2017년 소설집 『병산읍지 편찬약사』로 묶여 나왔지만). 그는 한국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남녀가 과거 상처에 대해, 또 상처 때문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반응하며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전쟁으로 각자 아버지를 잃은 김인철 서옥주 부부를 생각하게 됐어요. 남편 김인철은 전쟁으로 인한 과거의 상처에 대해 냉소적이고 한편으론 자기를 희화화시키면서 말도 많고 다소 공격적이면서도 시니컬한 쪽으로 흘러가고, 아버지를 보도연맹 사건으로 잃은 아내 서옥주는 고향을 떠나서 서울 살이를 하면서 피해 의식으로 보수 이데올로기에 동화돼 자신의 상처를 흐리게 한 인물로 떠올린 것이죠.”

다만 부부 이야기로만 전개할 경우 스토리가 조금 협소해질 것 같아서 하나의 공간을 생각했다. 처음엔 1·4후퇴 당시 남자가 서울에 잔류하는 것으로 그리려 했지만, 서울을 그려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사건과 한국 사회를 좀더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상의 지방 소도시가 필요했다. 마침 김영삼정부 시절이던 1994년 토착비리 세력을 사정하는 과정에서 진주 경상대의 교재 『한국사회의 이해』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이때의 사건을 모티브로 이어갈 경우 한국전쟁에서 1994년 현재까지 연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중견 소설가 조갑상이 가상공간인 지역 소도시 여산의 삼산면을 배경으로 국민보도연맹 및 국가보안법 사건을 모티브로 이념에 뒤틀린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그린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숲』(산지니)을 펴냈다. 40여 년 동안 네 권의 소설집과 두 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한 작가가 소설집 『병산읍지 편찬약사』 출간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한국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었던 잡지사 기자 김인철이 독자 투고란 때문에 경찰서에 호출돼 모욕을 당한 뒤 보도연맹 사건으로 역시 아버지를 잃은 기고자 서옥주와 술잔을 기울이다가 함께 살게 된다. 김인철은 이후 고향 여산으로 돌아와 교사로 일하다가 학교공적비 훼손 사건을 겪으면서 이념 갈등이 깊게 패인 지역의 아픔을 대면하게 된다. 시간은 흘러서 그의 작은 아들 동오가 다니는 대학에서 국가보안법이 연루된 필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념 갈등이 여전히 한국 사회를 옭아매고 있다는 걸 목도하게 되는데.

“김인철은 작은아들에게 네 엄마가 왜 이렇게까지 과민하게 반응하고 걱정을 하는지 아느냐고 말할 수는 없었다. 자식들에게 그들의 할아버지들은 육이오전쟁 중에 ‘어쩌다 일찍 돌아가신’ 분들일 뿐이니 그 선을 넘어서도 안되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증인 출석 문제를 아들놈에게 맡겨두는 것도 괜찮다는 판단도 있었다. 제 할아버지들의 생사를 가른 전쟁을 제 애비 에미가 상처로 싸매고 있다면 손자들은 달라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351쪽)

소설가 조갑상은 왜 가상의 소도시 여산을 배경으로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다뤄야 했을까. 그는 왜 개인의 삶 속에서 깊게 새겨진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조명해온 것일까. 부산에서 생활하는 조 작가를 지난 9일 전화로 만났다.

 

―이번에도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다뤘는데(그는 1989년 단편소설 「사라진 하늘」에서 처음 보도연맹 사건을 다룬 이래 지난 장편 『밤의 눈』에서도 다뤘다).

“보도연맹 사건 희생자는 경남 지역에 제일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저도 어렸을 때 제삿날을 회고해 보면, 어른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집안 이야기도 하고 고향 떠난 이야기도 했는데, 누구는 제사도 못 지내고 그랬다더라, 하는 내용을 들으면 늘 궁금했다.(가족이나 친인척 가운데 혹시 한국전쟁이나 보도연맹 사건 희생자가 있는지) 친척 가운데 보도연맹으로 돌아가신 분도 있고, 한국전쟁 당시 국군으로 전사하신 분도 계신다.”

 

―가상공간 여산의 삼산면을 왜 만들었는지.

“실제 인물이나 지역이 들어올 수 있지만, 아무래도 소설이어서 가상의 인물과 가상의 공간을 설정했다. 역사학자 박찬승씨가 쓴 책 『마을로 간 전쟁』에는 한국전쟁이 전선뿐만 아니라 각 마을에서도 있었다는 것을 정확히 보여준다. 책 속의 실제 장소들은 충청도와 전라도가 대부분이지만, 전쟁의 이런 성격은 어느 지역에서나 일어났을 것이다.”

 

 

―김인철과 서옥주라는 매력적인 인물은 어떻게 나오게 됐는가.

“특별히 모델이 있었던 건 아니다. 열 살 무렵 한국전쟁에서 부친을 잃은 남녀가 있을 때 어떤 태도를 가질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인물을 만들었던 것 같다. 나이로 본다면 저의 형님이나 누님 세대라고 볼 수 있다.(김인철은 점점 후덕한 사람으로 바뀌더라) 대학 시절에 교지 편집을 하다가 졸업한 뒤 출판사 잡지사에 취직했고 나중에는 여산으로 돌아와 교직을 하게 된다. 그 시절 술 마시고 책 읽고 그런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김인철과 서옥주 외에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

“고등학교 서무과 정춘식 주사다. 옛날에는 부잣집이나 지주의 집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살면서 일을 거들어주면서 논밭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의 모습이다. 서옥주가 교회에 가는 데 도움을 준 도서관 직원 오순아도 추천하고 싶다.”

 

―이념 갈등은 김인철의 둘째 아들 동오의 대학 교재 필화사건으로도 재현된다.

“아들 동오는 김인철에게 우리 교수들의 편 좀 들어달라고 말한다. 한국전쟁이나 이념 갈등은 그냥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되는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 때 숨진 세대나 그 자녀들인 김인철이나 서옥주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작은 아들 세대까지 이어지는 문제다. 분단 현실이 계속되고 있으니까.”

 

―이번 소설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소설로 창작해야 했기에 사실과 소설과의 관계 설정, 거리를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가 가장 어려웠다. 소설 속에서 현실을 걷어내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 아울러 김인철과 서옥주 부부에서 그의 아들 대까지 넘어가면서, 즉 1990년대 젊은이들은 (현대사의 상처와 갈등에 대해) 아버지 세대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수한 경상도 말에 대화도 찰지더라.

“이전 중단편을 쓸 때는 호흡이 길고 조금 긴 문장을 많이 썼던 것 같다. 이번에 장편을 쓰면서는 그러면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컴퓨터 앞에 ‘속도감 있게 쓸 것’이라고 적어 놨다. 호흡을 짧게 하고 속도감 있게 쓰기 위해 인물들이 사건을 이야기하도록 했고, 대화를 좀 적절하게 넣으려고 노력했다.”

 

―이번 장편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김인철과 서옥주 등 저의 형님뻘 세대들이 지금 하나둘 떠나고 있는데, 그분들을 잘 보내드리고 싶다. 이 작품이 어떤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책을 좋아했던 학생 조갑상은 평소 즐겨 읽던 학생 잡지 『학원』에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산문을 싣게 된다. 이미 초등학교 때 학교 대표로 백일장 대회에 참가했고, 중학교 때부터 『학원』을 읽어왔던 그였다. 그럼에도 자신의 글이 잡지에 활자화돼 많은 이들에게 읽힌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후 그는 계속 글을 쓰고 싶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한 그는 김동리에게서 소설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대학원에선 소설가 요산 김정환에게 배웠다. 소설가 조갑상의 원점이었다.

 

 

1949년 마산에서 태어난 뒤 부산에서 자란 조갑상은 1980년 총기를 들고 탈영한 한 젊은이가 인질극을 벌이는 내용을 담은 단편 「혼자웃기」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등단 이후 소설집 『다시 시작하는 끝』 『길에서 형님을 잃다』 『테하차피의 달』 『병산읍지 편찬약사』, 장편소설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 『밤의 눈』 등을 펴냈다. 요산문학상과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동아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경성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작품 세계를 조금 설명해 달라.

“처음에는 제가 자란 도시의 사람 이야기, 그러니까 현실의 벽에 막혀서 좌절하면서도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썼다. 설명을 최소화하고 판단도 유보시켜서, 독자들 스스로 읽도록 했는데, 많은 독자들을 흡수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한편으론 지독하게 사랑하다보면 죄가 되거나 서로 파탄 나는 사랑 이야기도 썼다. 중편 『길에서 형님을 잃다』는 전통 문화가 새 문화와 빚는 갈등을 그렸다.”(그는 이 외에도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비롯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개인의 삶 속에서 웅숭깊게 탐구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소설 쓰기의 전략이나 원칙, 방법이 있다면.

“이제는 많이 쓸 수 없어서 좀 야무진 소재를 잡아 쓰려고 노력한다. 속도감 있게 읽히면서 독자들이 쉽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지) 제가 만난 소재를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가, 독자에게 다가가고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자주 원고를 수정한다. 단편의 경우 여러 번 고친다. 수첩에 계속 생각나는 대로 쓰고, 어제 쓴 것을 또 고친다.”

 

―주로 부산에서 창작 및 생활을 해온 것 같은데.

“대학을 졸업한 뒤 부산에 내려왔고, 부산여자전문대학을 거쳐 1986년부터 경성대 국문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제가 자란데다가 직장까지 잡으면서 부산에서 사는 게 당연한 것처럼 살아 왔다. 직장 생활을 이어오면서 조금 과작이 된 것 같다(웃음).”

 

인터뷰가 끝날 즈음, 소설가 조갑상에게 붙은 ‘과작의 작가’라는 레테르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등단한지 42년이 된 그의 전체 소설 편수는 소설집 4권에 장편소설 3편. 작품을 마구 쏟아내는 작가들 기준으로 본다면 과작이겠지만, 오랜 취재와 집필 끝에 대략 10년에 한 편 정도를 써내는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 등과 비교한다면 결코 과작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 현대사와 개인의 삶을 존재론적 탐구한 소설을 읽다보면, 급기야 그에게 ‘과작’을 운운하는 건 모욕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순한 목소리의 작가는 오후에 영화도 보고 산책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다음날 아침이면 글을 쓰려고 노력할 것이다. 일이 있으면 요산 김정환문학관 사무실에 나가고 가끔 친구를 만나서 술도 마시겠지만, 그럼에도 건강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계속 글을 쓰려고 분투할 것이다. 밤 11시 쯤 노곤해진 몸을 방에 늘어뜨리겠지만, 그럼에도 다음날 오전 7시쯤이면 어김없이 일어나서 책상에 앉아 글을 쓸 것이다. 그리하여 둔중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개인의 삶 속에서 존재론적으로....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조갑상 작가 제공
 

▶출처: 세계일보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숲』 조갑상 “한국전쟁, 분단 계속되는 한 과거 아닌 현재 사건” [김

열 살 무렵 한국전쟁에서 부모를 잃은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한 시대를 건너왔을까. 만약 그런 두 남녀가 부부가 돼 한 시대를 살아간다면. 부산에서 창작 활동을 해온 소설가 조갑상은 2012년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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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숲

<밤의 눈>으로 제28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조갑상 소설가의 신작 장편소설. 이번 소설에서는 여산의 삼산면을 배경으로 작가가 오랫동안 견지해온 보도연맹 사건과 함께 국가보안법 사건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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