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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일 시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연변 사람들의 삶_『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 북토크 후기

by euk 2024. 1. 30.

지난 목요일, 산지니X공간에서 2024년 첫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바로바로~ 일곱 번째 시집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를 출간한 박태일 시인 연변에 대해 깊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인 박태일 시인은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미성년의 강」으로 등단했고, 김달진문학상·부산시인협회상·이주홍문학상·최계락문학상·편운문학상·시와시학상을 받으며 꾸준한 문학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산지니시인선 21번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는 중국 연변을 소재로 한 시 101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중 수교 전인 1991년 연변을 처음 방문한 박태일 시인은 2015년 한 해 동안 연변에 머물렀고, 2016~2019년 방학마다 연변을 찾았고, 그곳에 머물며 북한 문학 관련 사료를 모으고 연변에 대한 시를 썼습니다. 작품에서는 연변 체류 기간 동안 시인이 실제 다녔던 헌책방, 수상시장 국밥집, 부르하통하(연길 시를 가로지르는 강변) 등이 등장해 생생한 연변의 풍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2024년 첫 북토크에 많은 독자분들이 찾아주셨는데요~

연변 사람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북토크 현장을 공개합니다!


 

 

Q. 오늘 북토크에 참석하신 분들께 자기소개와 함께 이번 시집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시 쓰는 박태일입니다. 1980년에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문학세계에 얼굴을 내밀었고, 올해로 44년째가 됩니다. 경남대학교에서 32년 동안 교수로 활동했습니다. 

자신을 '시 쓰는 박태일'이라고 소개하셨는데, 선생님의 정체성에서 시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 가장 큰가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시에 모든 것을 건 사람입니다.

이 시집은 제목에서부터 작품이 갖고 있는 특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연변'과 '연길', 중국 대륙에서도 북방지역에 있는 만주라는 연변의 자치주를 돌아보고, 느끼고, 겪었던 것들을 담은 장소시집입니다. 9년 만에 나온 시집이라 저로서는 의미가 깊습니다.

 

Q. 101편이 실린 두툼한 시집을 요즘은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근대 시집은 1920년대 초반에 등장하였습니다. 초창기 시집들은 활판 인쇄로 20~30편이 한 권의 시집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80년대에 들어서 사진 식자 조판이 이루어지면서 시집 한 권에 50~60편이 실리기 시작했고 일종의 문학적 관행이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현재는 70~80편이 한 권으로 묶입니다. 나는 이 버릇, 문학적 관행을 깨고 싶었습니다. 다음 시집도 이와 비슷한 분량으로 출간하고 싶습니다. 자주 출간하지 않는 대신 한 번 낼 때마다 조금씩 더 다져서 내자는 것입니다. 제가 101편의 시를 묶어내었으니, 다른 분들도 욕심을 내어 기존의 관행을 깨어도 좋지 않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 문학이 더욱더 발전하지 않을까요?

 

 

Q. 이 시집의 처음이자 모든 것인 '연변'은 시인에게 어떤 장소인가요? 어떻게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덧붙여 연변이라는 장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 시집을 내면서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연변을 다루었다고 해서 실록, 사실적인 연변의 역사나 그곳 사람들의 삶을 상세히 담아낼 거라는 오해를 할까 걱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연변을 본다는 것은 시를 쓰는, 그리고 연변을 통해 북한 문학을 연구하기 위한 자료를 확보하는 중개적인 장소로서 연변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소극적이고, 지역적이고, 단편적입니다. 시인이 본 연변과 연길입니다. 제가 글로서, 또는 체험으로서 모르는 연변과 연길이 갖고 있는 근대 100년 이상의 역사는 방대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근대사와 맞물려 있습니다.

연변에 처음으로 우리 겨레가 들어간 것은 19세기 후반입니다. 간도 땅과 두만강을 넘어 땅을 개간하기 위해 갔습니다.  1930년대 초반, 만주를 침략하고 그곳을 병참기지로 삼기 위해 일본은 우리 농민들을 그곳으로 들여왔습니다. 그리고 주로 콩, 옥수수 농사만 했던 땅을 벼농사가 가능한 땅으로 개척하도록 했습니다. 그분들은 나라 안에 농사 지을 땅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개척하러 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대를 이어 지금까지 겨레를 이루어 살고 있어요. 이 역사는 우리의 근대사와 바로 맞물려 있습니다. 연변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라는 인식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Q. 처음 연변에 방문한 것이 중국과 수교도 맺기 전인 1991년입니다. 연변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1990년대의 연변과 가장 최근에 방문한 코로나 직전의 연변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1991년에는 홍콩-북경-심양-연길 이 루트로 들어갔습니다. 그때는 중국 사회가 개방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렇지만 경상도, 전라도 등 특정 지역분들의 삶이 온전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곳은 길림성이라고 하는 중국의 큰 행정 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관광지가 되어버렸습니다. 20년 동안 연변이 가치고 있던 전통성, 정체성이 많이 훼손되었어요.

처음에 비해 중국화가 많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Q. 시집 첫머리 '시인의 말 하나'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백 마리에 더 하나./오느라 가느라, 이순에 튼 물골이 만주에서 멀었다 멀리./그리움과 슬픔이 호두알처럼 갇혀 뒹구는 땅./한마디 인사도 없이 떠나온 연변, 연길. 저는 이 문장에서 연변에 대한 시인의  미안함, 아쉬움이 묻어난다고 느꼈습니다. 시인께서는 연변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난처함이죠. 역사로서는 모두 잊혔고, 삶으로서는 모두 무너져버린... 빚쟁이 심정입니다. 그 시대에 두만강을 건너 그곳으로 가셨던 분들이 삶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삶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나라가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연변의 사람들이 어떠한 고통을 겪었는지에 대한 관심이 있긴 하지만, 다른 것에 대한 관심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떻냐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연변에 갈 때마다 슬픔, 난처함, 빚쟁이 등의 감정이 떠오릅니다.

혹시나 연변에 계시는 분이 이 시집을 보게 된다면 '나의 삶이 이렇게 다뤄지는구나, 내가 살아온 것에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박태일 시인이 직접 찍은 연변의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돈화 지역의 시장 풍경
한족 책들. 책 사이에 가끔 한글 책들이 발견된다. 1960~70년대 우리나라 노점과 비슷하다.

바닥에 펼쳐놓고 파는 모습이 이색적입니다. 장이 설 때 빨리 가서 책을 봐야 좋은 책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장이 서는 날은 일찍 출근합니다. 이곳에는 북한 문학 자료도 있습니다. 

 

부르하통하강의 모습. 이 강이 두만강과 만난다. 연변을 남북으로 끊어주는 역할을 한다. 박태일 시인은 이 강을 따라 산책을 했다고 한다.

 

안도현 신촌 어르신의 모습과 집 안 풍경. 밀양 출신 이 부부에 대한 이야기는 시 <깽그랑 깽깽 문 여소>에 담았다.

 

중국 관광객들과 함께 밥을 먹는 풍경. 한족들은 양반다리를 못한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작은 의자에 앉아서 먹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식당에 앉을 때 양반다리를 못하면 한족임을 유추할 수 있다고 한다.

 

 


 

Q.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조선족, 우리 겨레들은 본인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재중겨레를 바라볼 때는 첫째, 그들은 중국의 국민입니다. 그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는, 우리말을 하고 있으며 그 누구보다도 우리와 소통이 가장 잘 되는 우리 쪽에 있는 분들입니다.  이는 '중국 국민'은 제도적, 이성적이며 현실적인 문제이고 감정적으로 보는 '우리 겨레'라는 것은 앞으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국민이기 때문에 가변적이고 상호작용적이고 끝없이 노력해서 만들어 나가야 될 불확실한 정체성의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정체성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Q. 교수님은 2006년 2월부터 2007년 1월까지 몽골에서 연구년을 보낸 후에 산문집 <몽골에서 보낸 네 철>과 시집 <달래는 몽골 말로 바다>를 출간하셨죠. 연변에서의 생활도 마찬가지로 산문집으로 내실 계획이 있으신지요?

몽골에서의 목표는 사진집을 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진에 충실하지 못했고, 제 사진보다 훨씬 좋은 사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산문집에 사진을 넣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연변에서의 목표는 시집 출간과 공부였습니다. 이번 시집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가 조금 어렵습니다. 시는 어려워야 합니다. 그래야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죠.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것은 이 시집에 대한 해설집을 내고 싶습니다. 해설집을 통해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에서 다 하지 못한 연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Q. 선생님께서는 현재 평생교육원에서 시 창작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시 창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은 무엇인가요?

문학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역 사회에서 실전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시를 즐기면서 시를 통해 삶을 바꾸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제가 시인으로서 문학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벌써 20년 넘게 가르치고 있네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친목 모임은 하지 않는다'입니다. 사적인 감정은 다른 곳에서 풀고, 시를 쓸 때는 시 쓰는 것에만 집중하자는 것이죠. 두 번째는 '문학을 하는 것에 크게 기대하지 마라'입니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 그 밑의 현실부터 글로 쓰라고 하죠. 자기 자신이 이 세상의 중심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과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하게 시를 쓴다면, 뒷날에 무엇보다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북토크 후반에는 시인의 목소리로 직접 낭송하는 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개산툰 구월

모아산 질러 넘다
왼쪽으로 내려 서면
화룡에서 룡정에서 너른 평강 들 타고 내린 
해란강 걸음걸음
고요하다

동성진 너머 리민 너머 
옥수수 키잡이로 서서 
파랗게 쏘다니는 구릉 마을 
집들은 산협의 가난을 풀풀 날리고 
창유리 깨진 틈으로 도닥도닥 
옛말 드난다 개산툰

개산툰 구월은
두만강 건너 회령 산천 어디서 
오득오득 개암이나 씹는 것일까 
걸어 내리고 오르는 시장 마당 
지난주 건너왔을 북녘 소식은
어느 집 낮술에 비틀거리고 있을까

아는 이 친척도 없이 나는 
이 골짝에 갇혔다
장대교회 붉은 십자가가 국경 철책을 바라고 선 
뒹겨장 빛깔 어두운 흙길 따라 
룡정으로 연길로 나가는 
버스는 그치고

택시 기사 둘 버드나무 아래 
버드나무 그늘인 양 빈둥거리는 너머 
두만강 수척한 물빛을 숨기며 
개산툰 구월은 
이제 입을 다문다.

Q. 이 시에 대한 설명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개산툰은 연변 지역에서도 북한 땅과 가장 가까운 조그마한 마을입니다. 그곳에서 느꼈던 것들을 이 시에 담았습니다.

북한에서 건너온 분들이 밤늦게 어두울 때 볼 수 있도록 빨간 십자가를 붙여 놓은 장대교회가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아무도 모르게 그리고 소리가 나지 않게 두만강을 건너야 하고, 중국 국경까지 넘어야 하는 북한 분들을 위한 배려를 느꼈습니다. 

여기서 택시 기사 두 분이 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택시를 타면 룡정까지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풍경들을 보면서 북한을 가까이서 보고 느낄 수 있었어요.

 

Q. 작가님은 영감을 받으시면 시 한 편을 빠르게 완성하시는 편이신지 아니면 많이 고민하시고 또 수정하면서 한 편을 완성하시는 편인지 궁금합니다.

시 창작에 있어 좋은 질문입니다.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시인마다 버릇이 있겠죠. 어느 특정 방식에 갇혔다는 것은, 그렇게밖에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뜻이 아니죠. 끊임없이 스스로가 시를 쓰는 방식을 바꾸고 개발해 나가면서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써지는 시가 있고, 어떤 시는 몇 년 동안, 20~30년 동안 써도 완성되지 않는 시가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쓰던 노트를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적은 것들 중 뒷날에 현재 내 삶과 이어져 또 다른 시가 될 수도 있어 차마 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를 쓰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자신의 글 쓰는 버릇을 가져가는 것도 좋지만, 반성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시를 오래 쓰려고 한다면, 시 쓰는 기법들을 많이 배워야 합니다.

 

Q. 김관웅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보면, 신라 마지막 임금의 후손이었던 나는 발해와 나 사이의 핏줄이나 문화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도무지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라는 문장으로 조금의 아쉬움을 표현했는데요.  혹시 선생님께서는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처음에는 이 시집에 해설을 넣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연변 발해사는 역사학자들이 연구할 일이고, 저는 시인으로서 연변을, 겨레공동체를 나름대로 시인으로서 느낀 점을 글로 남기려고 했습니다. 이분의 해설은 시집을 연변에 대한 실록 입장에서 보았고, 저는 감히 이 시집이 실록의 역할을 한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잘 보아주신 겁니다. 김관웅 평론가님이 생각하는 연변과, 제가 생각하는 연변은 많이 다릅니다. 평론가님은 연변을 부여, 고려 위의 세상까지 보고 있고 저는 연변에 대한 상상력은 발해까지가 한계입니다. 저는 제 체험이 책임지지 못하는 것까지 쓰지 않았고, 그래서 해설에서 이런 문장이 나왔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중국과의 수교도 이루어지기 전, 지역문학 연구를 위해 중국 연변 땅을 밟았던 박태일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연변은 여전히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박태일 시인의 목소리로 직접 시낭송도 함께 들을 수 있었던 이번 북토크.

그와 함께 연변에 대해 보고, 느끼고, 알아갈 수 있었던 아주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 북토크 라이브 보러 가기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

지역에서 소외되었던 문학 전통을 되살리는 연구를 이어 온 박태일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의 일곱 번째 시집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가 출간되었다. 『옥비의 달』 이후 9년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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