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서울국제도서전을 위해 수서역에 내렸을 때 길게 늘어선 줄을 보았습니다. 서울삼성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가는 셔틀버스 줄이었습니다.
의정갈등이 지속되면서 지역에서는 적합한 진료를 받을 수 없어 서울까지 왔구나. 지방 의료 붕괴를 눈으로 본 순간이었습니다. 수도권에서라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 않느냐 하겠지만 금전적, 시간적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알맞은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뒤틀린 한국 의료>는 의대 정원 이면의 문제를 들여다봅니다. 한국 의료가 수도권으로 집중된 데에는 대학병원의 수도권 분원 설립, 과도한 입시 경쟁으로 투자의 성취로 취급받는 의대 등. 의대 증원으로 사회적 논란이 이어지며 정말 논의되어야 할 문제는 가라앉고 있습니다.
김연희 기자는 의료 종사자와 환자의 목소리를 통해 의료 개혁을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책에 대한 내용은 아래 <부산일보>와 <조선일보>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의대 정원’ 갈등보다 험한 것이 지역에 온다
수년 내 수도권 병상 30% 늘어
환자·지방 의료 인력 블랙홀 우려
日,지역정원제로 문제 해결 ‘귀감’
지난 2월 6일 정부는 향후 5년간 의대 정원을 2000명 더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얼마나 큰 갈등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모른다. 4·10 총선이 끝난 지가 언제인데 ‘의대 증원’ 문제는 아직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응급실 뺑뺑이’는 더 늘었고, 초등생 대상으로까지 의대반이 확산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다 다 죽는다”는 대사가 떠오른다. 대체 언제까지 이대로 있어야 하는 것일까.
의사와 정부 간에 서로 입장이 너무 달라 누구 말이 옳은지 헷갈린다. <뒤틀린 한국 의료>는 의사 수 늘리기가 정말 필요한 일인지부터 질문한다. 2021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OECD 평균은 3.7명인 데 비해 한국은 2.6명으로 뒤에서 세 번째다. 한의사를 제외하면 2.1명으로 가장 적다. 의사 수라는 수도꼭지를 꽉 잠근 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책은 보건의료를 담당하는 현직 기자가 썼다. 지금은 의사와 정부의 일방적인 주장보다 객관적으로 지켜본 누군가의 증언이 필요한 때이다.
사실 숫자보다 ‘사람 살리는 의사’를 늘리는 그다음 단계가 더 중요하다. 필수의료로 흘러가도록 물길을 내는 작업은 훨씬 더 까다로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필수 과목에 의사가 유입되지 않으니 수가가 낮은 곳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맞는 말이지만 “처음부터 필수의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의대에 더 뽑혀야 한다”는 이 책의 주장이 더 귀에 들어온다.
요즘 의대에서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장학금 대상자를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학생들은 점점 더 어릴 때부터 의대 입시반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고, 부모는 자녀를 의대에 보내기 위해 갈수록 더 많은 투자를 한다. 보상이 확실한 진료과목에 학생들이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의료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진 학생들에게 적합한 분야라고 한다. 의대 정원이 최상위권 학생들의 성적 순서대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몇 년 내로 지방 의료에 쓰나미가 덮칠 것이라는 예언(?)이 더 충격적이다. 대학병원들이 앞다투어 수도권 지역 분원 설립에 나서고 있어서다. 연세 세브란스가 인천 송도, 서울아산병원은 인천 청라, 서울대병원은 경기 시흥에 각각 800병상 규모의 대형병원을 짓는다. 고려대, 경희대, 아주대, 한양대 의료원도 경기도 곳곳에 분원을 낼 계획이다. 향후 5~6년 사이에 기존 병상 대비 30%에 가까운 병상이 수도권 지역에 추가로 들어선다는 것이다. 수도권에 새로 생기는 대학병원들은 환자는 물론 지방의 의료 인력까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게 되어 있다. 지역의 필수의료 공백아 급격히 악화될 수밖에 없는데, 정부와 정치권은 왜 이렇게 조용한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한국 사회가 의료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 다시 한번 의문이 들었다. 의대 정원 조정처럼 큰 변화를 불러오는 보건의료 정책 앞에서 번번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최종적으로 정원을 크게 늘리더라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방식을 고려하지 않은 게 여전히 아쉽다. 의사 집단을 설득하고, 협의하고, 갈등을 최소화하는 과정이 있어야 했다.
일본은 의대 정원을 확대할 때 지역정원제로 갈등을 완화했다고 한다. 전체 의대 정원을 통으로 늘리거나 줄이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에서 의료 수요에 따라 지역 내 의사 정원을 조정했다. 이러니 기존 의사들을 설득하고 반발을 줄일 수 있었다. 의대 선발부터 시작해 일정 기간 지역 복무를 의무화하는 지역의사제 같은 제도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마지막 장 ‘의료의 최전선을 지키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그래도 의료 개혁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지난 정부는 이만큼도 못한 게 사실 아닌가(의대 정원을 400명 늘리는 것조차 실패했다). 한계에 다다른 보건의료 시스템을 어떻게 개혁해야 할지 앞으로도 뜨거운 논쟁이 이어질 것이다. 시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보건의료제도에 대해 우리가 ‘리터러시’를 갖춰야 하는 이유다. 김연희 지음/산지니/272쪽/1만 8000원.
출처: 부산일보 2024년 8월 15일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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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읽기] ‘대기업 사장보다 신나는 온세상 맹렬걷기’ 외
뒤틀린 한국 의료(김연희 지음)=한국 의료의 추락은 계속되고 있다. 주간지 보건의료 전문기자가 ‘의대 증원 논란’의 이면을 낱낱이 파헤쳐준다. ‘사람 살리는’ 의사를 늘리기 위한 논의가 선행돼야 함을 지적한다. 산지니, 1만8000원.
출처: 조선일보(2024년 8월 17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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