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77주년을 맞아 박경훈 작가의 목판화 전시가 열렸습니다. 작가는 사자성어 '백골난망'을 비틀어 만든 말을 제목으로 내걸어, 전시 주제와 작가의 깊은 뜻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백골난감(白骨難堪)' , 죽어 백골이 되어서도 견뎌내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죽어서도 견디기 어려운 것. 죽어서도 견디기 어려운 것. 조용히 되풀이해서 읽어보면 너무나 깊고 슬픈 말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에도 그런 것이 있으신지요.
위령봉안함의 몇몇 위패가 조용히 사라지고, 사람들을 학살한 장군의 추도비는 여전히 꼿꼿하게 서 있는 현재. 학살의 기억만 강조되고, 저항정신의 맥락은 전승하지 못하는 현재. 4·3 77주년 기념 전시 <백골난감: 이름 잃은 항쟁에 바치는 때늦은 조사(弔辭)>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아픔에 대한 애도의 표현이자, 국가폭력으로 잃어버린 정명(正名)을 되찾아야 한다는 외침입니다.
이번 전시는 제주·서울·광주 세 곳에서 동시에 열렸습니다. 작품이 목판화이기 때문에 동시전이 가능했는데요. 대형 작품이 25점이나 걸리는 크고 의미있는 전시입니다. 서울전은 끝이 났지만 제주전과 광주전은 5월 31일까지 열린다고 하니, 여러분들도 꼭 한 번 방문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바로 '움직이고 있는 유골'입니다. 젊음과 늙음이 구분되지 않는 유골 인간들은 뼈의 모습을 하고 총을 메고서 재판장에, 위패봉안실에, 무덤에 나타납니다. 역사와 현실에 개입하는 죽은 이들의 모습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아픔과 잠들지 못한 사람들을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위패봉안실에 있어야 할 몇몇 위패들이 내려갔다.
죽은 이는 자신의 위패가 있었던, 지금은 비어버린 자리를 바라보고 있다.
2022년 3월 29일,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는
제주 4·3 사건 당시 군사재판을 받고 옥살이를 한 수형인들에 대한 첫 직권 재심 공판이 열렸다.
개정 중인 법정 문 앞에서 죽은 이들이 서성대고 있다.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총을 들고 있을까. 아직 놓을 수 없는 것일까.
금이 간 머리가 눈에 띄는 유골과 주름진 여자가 서로를 꼭 안고 있다.
둘은 어떤 관계였을까. 부모, 자식, 형제 · · ·
법은 애도를 해도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을 갈랐습니다. 진짜 피해자와 가짜 피해자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정권에 따라, 시대에 따라 가능한 애도가 있고 그렇지 않은 애도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박경훈 작가는 말합니다.
"이미 백골이 되었을 망자들의 애도에도 배제와 차별이라니."
제주4·3
4·3사건
4·3사태
4·3항쟁
4·3의 현재 공식 용어는 '4·3사건' 입니다. 어떠한 의미도 애도도 없는, 현상만을 언급하는 가장 기초적인 행정 용어로 불리고 있죠. 지워지지 않는 아픔에 우리는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요. 이 아픔을 담을 수 있는 크기의 말이 있기는 할까요. 우리는 언어를 잃어버렸습니다. 일부러 어딘가에 멀리 던져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이름을, 말을, 역사를 찾아야 합니다. 생각을 모으고, 밤새 단어를 이어 붙이고 쪼개고. 그것이 아픈 역사 뒤에 남겨진, 지금 살고 있는 자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 전시를 다룬 기사가 궁금하시다면 ▼
“죽은 자 애도에 차별·배제 있는 한, 4·3은 현재진행형”
“제주4·3 군사재판 수형인은 물론 일반 재판 수형인까지 재심 재판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고,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금 지급이 이뤄지고 있잖아요. 분명히 역사의 진전입니다. 그런데 뭔가 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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