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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 문화 곳곳에 남은 그의 시선을 기억하며 _ 임재철 영화평론가를 추모하며

by jh5169455 2026. 3. 24.

임재철 평론가가 곁을 떠났습니다. 작년 하스미 시게이코의 『제국의 음모』 표지에서 이름을 만나서 반가웠는데 시간이 너무 빠르게 느껴집니다. 영화 기자, 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 제작자, 영화 잡지 편집장, 출판사 대표에 이르는 영화 및 문화 산업 전반의 전문가이신 평론가의 시선은 시네필들이 들르는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스무 살 무렵 영화의 전당에서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낯선 감독, 낯선 단어에 꽤 당황했지만 날카로운 눈빛을 한 시네필들에게 기죽지 않으려 허리 세워 강의를 들었는데요. 앙리 랑글루아, 존 포드, 구마시로 다쓰미. 월드 시네마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현수막과 기사에 함께 있던 이름을 기억합니다. 임재철 평론가가 진행하던 gv를 듣고 집으로 가는 길 골똘히, 곰곰 생각하며 멍하니 걸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를 함께 보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를 느낀 건 아마 그 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산지니에서 출간하고 임재철 평론가가 번역한 리차드 라우드의『영화 열정』을 서재에서 찾았습니다. 옮긴이 후기에서 2018년 당시 이 책을 처음 읽은 시기가 26년 전이라고 하셨으니, 8년이 지난 지금 저는 34년 전 서른한 살이던 평론가를 생각합니다. 독자들에게 너무 늦게 찾아온 책이라는 생각에 켕긴다고 하셨지만 아직도 『영화 열정』이 도착할 곳은 너무 많아 보입니다.

『영화 열정』, 옮긴이 후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경향신문>

 

임재철 영화평론가 별세…향년 65세

국내에 낯선 예술영화를 소개하는데 힘써온 임재철 영화평론가 겸 이모션북스 대표가 22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65세. 고인은 두 달 전 갑작스럽게 쓰러진 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고인은 서울대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기자로 8년간 일했다. 영화담당 기자로 일하던 중 퇴사해 미국 뉴욕시립대에 진학했고, 영화이론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광주 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서울시네마테크 운영위원장을 거쳤다.

또 영화이론지 ‘필름 컬처’를 창간했고, 국내외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극장 ‘필름포럼’을 운영했다. 고인이 서울 종로구에서 운영하던 필름포럼은 현재 서대문구로 자리를 옮겨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고인은 예술영화 작품과 작가들은 물론 프랑스 범죄영화, 일본 로망 포르노 등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장르영화들을 소개했다. 스즈키 세이준, 구로사와 기요시, 두기봉 등이 고인의 안목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소개되거나 재평가된 대표적 감독들이다. 고인은 2002년 광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자격으로 <프레시안>과 한 인터뷰에서 “지금 같은 ‘영상시대’에 옛날에 극장에서 인기를 얻었던 장르영화들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했다.

고인은 영화 이론과 작가를 소개하는 출판 작업도 활발히 했다. 대중영화 이론의 교과서로 꼽히는 <대중영화의 이해>를 비롯한 다수의 책을 번역했고, <알랭 레네> <장 마리 스트라우브-다니엘 위예> 등을 저술했다. 2015년에는 출판사 이모션북스를 설립해 <영화의 맨살: 하스미 시게이코 영화비평선> <에센셜 시네마> <존 포드> 등 다양한 고전 예술 서적을 출간해왔다.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4일 정오다.

출처 : 서현희 기자, 경향신문, 2026년 3월 23일

 

임재철 영화평론가 별세…향년 65세

국내에 낯선 예술영화를 소개하는데 힘써온 임재철 영화평론가 겸 이모션북스 대표가 22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65세. 고인은 두 달 전 갑작스럽게 쓰러진 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고

www.khan.co.kr

 


 

책 소개

영화를 구한 사나이, 앙리 랑글루아

1968년 2월 말, 드골 대통령은 자신의 보좌관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가 들은 대답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공동창립자이자 사무총장이며 실질적 운영을 맡고 있는 사람.’ 이 대답에는 틀린 것이 없지만 충분한 대답은 아니다. 이 간단한 설명으로는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가 랑글루아를 해임했다고 해서 프랑스 영화계 전체가 거리로 나선 까닭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정 ‘앙리 랑글루아는 누구인가?’

『영화 열정: 시네마테크의 아버지 아버지 랑글루아』는 앙리 랑글루아의 생애를 담기 위해 그의 지인 및 관계가 76명을 인터뷰해 만들어졌다. 괴짜 영화광에 대한 흥미로운 평전인 이 책은 랑글루아 개인의 궤적을 따라가면서도 무성 영화에서 70년대에 이르는 영화 문화사의 형성기를 들여다본다.

1920년대, 대부분의 사람들(심지어 영화 산업 종사자들까지도)은 영화를 그저 값싼 일회성 오락의 형태로 인지했다. 하지만 앙리 랑글루아에게 있어 영화는 보존할 가치가 있는 귀중한 예술의 한 형태였다. 그리고 1935년, 그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설립한다. 이곳은 잘 알려진 대로,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자크 리베트, 에릭 로메르 등 누벨바그 감독들의 주요 모임 장소였다. 고다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랑글루아는 당시 젊은 감독들에게 그야말로 ‘빛을 준’ 인물이었다.

 

전설적인 영화인들의 학교이자 도서관, ‘시네마테크 프랑수아’

1935년 프랑스, 무성영화가 사라지던 시절 청년 앙리 랑글루아는 무성영화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무성영화만을 상영하는 ‘영화의 서클Cercle du Cin?ma’을 만든다. 이후 영화의 서클은 세계 각국의 영화들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로 재탄생한다.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는 시네마테크를 향해 “영화에 대한 신념을 깃들게 하는 영화 교회이자 전설적인 영화인들을 배출한 영화 학교이자 도서관”이라고 칭했다. 이처럼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상영하고 보존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넘어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에릭 로메르 등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자신의 영화적 세계관을 키워나간 곳이자 세계 영화사를 다시금 쓴 곳이라 할 수 있다.

나치 독일의 위협 속에서도 2만 편이 넘는 영화를 지킨 앙리 랑글루아는 1948년 본격적으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운영한다. 그곳에는 수많은 예술인과 영화관들이 매일같이 넘쳐났다. 영화관이었지만 때때로 영화를 주제로 한 토론의 장이 되기도 했다. 이를 경험한 당시 어린 관객들, 시네마테크의 아이들은 이후 세계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누벨바그의 감독들이 되었다.

그의 생애를 통해 영화사의 복원하고 재발견하다

이 책에 나오는 앙리 랑글루아의 삶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범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에 그의 과대망상적 성향과 음모론에 대한 믿음까지 겹쳐지면 정말로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 된다. 이 책은 이러한 인물의 생애를 따라가며 필름 아카이브의 역사와 필름 보존에 대한 문제를 언급한다. 영화산업의 쇠퇴(혹은 변모)라는 문제가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세기의 말부터이지만 그와는 역방향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영화사의 재발견 혹은 영화사의 복원이라는 움직임이다. 이 분야는 무엇보다도 아카이브의 존재가 중시되는 분야이다. 특히, 책의 5장 「시네마테크의 아이들」에서 언급되는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의 <웨딩 마치>의 사운드판 복원의 에피소드 같은 것들은 분실 내지는 결손된 작품을 다시 되살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책은 이를 통해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알아보고 지켜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앙리 랑글루아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은 단지 영화필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문화, 예술, 사회적 가치들을 발견하고 공유하며 이를 통해 배우고 소통하는 일련의 모든 활동들을 지켜나가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영화를 사랑했던 어느 괴짜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에 예술과 문화의 존재의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

p56 랑글루아는 필름을 보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는 곧잘 필름은 마치 페르시아의 카페트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p103 랑글루아는 자신을 시네마테크의 대표라고 한 적이 없다. 항상 자신을 사무총장이라고 했다. 사실 초기에는 대표 혹은 회장을 둘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전쟁 동안 장 그레미용의 가장 성공적인 영화인 <하늘은 당신의 것>이 개봉된 후에 그에게 시네마테크의 회장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당시 시네마테크는 조르쥬 사둘에 따르면 그저 '이상한 픽션 혹은 괴상한 용암' 같은 상태였지만 말이다.

p131 40년대에서 5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에 랑글루아의 활동은 메신느 거리를 넘어서 여러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같은 시기, 프랑스에는 새로운 영화문화를 만들어내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다. 최초의 중요한 이벤트는 1949년에 비아리츠에서 벌어진 '저주받은 영화'(문자 그대로 '저주받은 영화'로, 개봉되지 못했거나 혹은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 영화들을 말한다.) 페스티벌이었다. 메리 미어슨에 따르면 이 행사는 랑글루아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이다.

p234-235 하지만 랑글루아의 마음에서 이것은 일시적으로 불법일 뿐이다. 그에게는 필름이 거기 있다는 사실이 제일 중요했다. 왜냐하면 거기에 필름이 있다면 언젠가는 상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그것은 '퍼블릭 도메인(공공의 것)'이 되거나 혹은 법적인 문제가 정리되는 때가 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 소개

지은이 리차드 라우드

미국의 영화비평가이자 영화 큐레이터. 1929년에 태어났으며 1950년 위스콘신 대를 졸업했다. 1951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파리로 갔고 이후 런던에 머물면서 비평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내셔널 필름 씨어터의 프로그래밍을 맡았으며 런던 필름 페스티벌, 뉴욕 필름 페스티벌의 디렉터로 일했다. 프랑스 및 유럽 영화를 영미권에 소개하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누벨 바그의 감독들과 절친한 사이였다. 편집한 책에 『영화: 비평 사전Cinema: A Critical Dictionnary』(1980, 2권)이 있으며 쓴 책에 『고다르』(1967, 증보판 1970), 『장 마리 스트라우브』(1972) 등이 있다. 1989년 프랑스 님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번역 임재철

영화평론가. 서울대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기자로 일했다. 그 후 서울 시네마테크 대표, 광주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현재 출판사 이모션 북스를 운영하고 있다. 엮은 책으로 『알랭 레네』 『장 마리 스트라우브 | 다니엘 위예』 등이, 옮긴 책으로 『앙드레 바쟁』 『정신의 위기: 폴 발레리 비평선』 『영화로서의 영화』 등이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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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수아 트뤼포의 서문
    감사의 말
    서문

    1 시작
    2 욕조
    3 타고난 국제주의자
    4 독일 점령기
    5 시네마테크의 아이들
    6 세느 강을 건너며
    7 친구들과 적들
    8 국가 대 앙리 랑글루아
    9 시네마테크를 위한 투쟁
    10 대서양을 넘어서
    11 영화 박물관
    12 아치 아래에서
    13 종말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영화 열정
시네마테크의 아버지 앙리 랑글루아

지은이 : 리차드 라우드 
쪽 수 : 317쪽
판 형 : 155*223
ISBN : 978-89-6545-546-2 03680
발행일 : 2018년 10월 24일
분 류 : 
예술/대중문화 > 영화/드라마 > 영화감독/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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