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8일 부산 산지니X공간에서 『문학/사상』13호 출간을 기념해 『문학/사상』편집주간 김만석 문학평론가와 북토크를 진행했습니다.
바다가 일상적 삶에 어떤 방식, 모습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땅 혹은 육지를 대상으로 규정하는 개념 노모스(nomos) 용법을 바다로 전환시켜 생각해 보는, 섬세한 두 비판-비평을 김만석 편집주간의 꼼꼼한 해설로 함께 읽었습니다.
부산을 담은 소설과 그림에서 무의식적으로 체화된 낯선 이면을 탐구했던 그날 북토크를 옮겨 싣습니다.
안녕하세요. 산지니 출판사 이소영 『문학/사상』 편집장 이소영입니다. 로컬 문예지 『문학/사상』이 13호를 맞이했습니다. 13호는 '바다의 노모스'라는 제목 아래 김건우 선생님 그리고 윤인로 선생님의 글을 실었는데요. 어떤 내용일지는 잠시 후 『문학사상』의 편집주간이시자 문학평론가인 김만석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예, 반갑습니다. 소개받은 김만석입니다. 『문학/사상』 13호에 대한 내용들을 좀 더 쉽게 열어 보려고 PPT를 준비해 봤는데 적합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제목이 바다의 노모스라고 돼있듯이 노모스라고 원래 땅 혹은 육지를 대상으로 했던 용법을 바다로 전환시켜서 생각해 보는, 사유의 문제를 굉장히 섬세하게 다룬 특집이기 때문에 제가 개념적인 차원에서 전달하는 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맥락을 조금 바꾸어서 같이 한번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회를 먹거나 뭐 생선을 구워 먹는 정도를 제외하고 바다가 일상적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는지 조금 가늠해 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감각적으로 우리가 바다와 어떤 연관성을 맺고 있는지 같이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거창하게 바다와 대지 사이라고 돼 있는데 이 특집에서 다루고 있는 노모스는 땅을 분할하는 힘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경계 짓고 구획 짓고 땅을 나누어서 어떤 방식으로 정치적인 것이 실현되는지 검토하는 개념입니다. 노모스는 이름을 붙이는 말과도 사실 장통해 있습니다. 이름을 붙이는 건 형상의 경계를 확정하는 일이고 특정한 공간을 점유하는 일이기 때문에 노모스를 근대 이래로 정치적인 것을 가능케 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보는 테제를 제안한 이론가들이 있습니다. 칼 슈미트부터 시작해서 여러 이론가가 있는데 어 이번 특집 두 필진들께서도 칼 슈미트의 이론을 바다라고 부르는 문제로까지 확장해서 검토하는 글을 쓰신 거로 이해가 됩니다. 시간이 나시면 이 두 분의 섬세한 글들을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물론 개념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더 집중력을 가지고 보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노모스라고 부르는 건 ‘이름 붙이기’를 생각해 보면 근원적인 행위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이 행위들이 이제 바다라고 부르는 세계로 나가면 어떻게 되는가? 그렇게 상상해 보시면 땅은 실제로 굳어져 있는 상태인 거잖아요. 그 안에서 이름 붙이고 구획 짓고 경계를 만드는데 바다는 끊임없이 파도를 일으킵니다. 파도는 끝나는 게 없고 그다음 파도가 또 진행이 되죠. 그런 점에서 파도의 노모스, 바다의 노모스라고 부르는 건 영구적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운동 상태를 규정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죠.
우리는 특정한 질서, 특정한 시공간에 살고는 있지만 시공간이 변화하면 당연히 노모스의 형태도 변화할 수밖에 없고, 반드시 대지의 형태 안에서만 노모스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바다의 노모스를 한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모두가 바다의 항해자로 참여하고 있다라는 게 이제 김건우 선생님의 중요한 논점이라고 정리를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제 바다의 노모스를 직접 사유하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어서 바다와 육지가 이렇게 맞부딪치는 해안선을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사실 이제 해안선을 사고했던 철학자들도 있죠. 기슭이라는 문제로 자크 랑시에르 같은 철학자가 현대의 정치적인 것이 출연하는 중요한 장소로 해안선과 기슭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제 부산이라고 부르는 삶의 조건을 생각하면 해안선이 기본이죠. 그런데 생각보다 해안선이 굉장히 깁니다. 부산의 해안선이 몇 km일까요? 해안선 길이가 한 302km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직선거리로 하면 여기서 광주까지가 300km 정도 되는 거리, 이 해안선만 다 돌면 이제 세 시간이 걸리죠. 해안선에서 작동하는 파도와 육지 사이의 경합 구조가 굉장히 역동적이죠. 역동성이 부산을 구성하고 생성하는 데 굉장히 무의식적인 방식으로 기여를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게 어떻게 작동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런 걸 가시화하는 형태가 저는 문화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점에서 우리가 만약에 지금도 문학을 읽어야 하고 만약 예술을 경험해야 된다면 문화 예술이 무의식화 되어 있는 그런 영역들,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잘 보이지 않고 무의식식화 되어서 처리되어 있는 세계를 가시화하는 데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쓰레기 기억상실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쓰레기 기억상실증이라고 우리가 생산하는 쓰레기양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난지도에 1억 7천만 톤이 지금 묻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이 공원이 되어 있잖아요. 1억 7천만 톤의 쓰레기를 실제로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없고 묻혀 버렸기 때문에 그게 가시화 되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정리해 주는 일종의 힘들이 쓰레기일 수 있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런 망각을 벗어나야 된다. 문학이라는 게 쓸모가 있다면 바로 그 망각을 헤집어내는 어떤 방향타이거나 좌표일 수 있다는 주장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저도 이제 부산이 바다와 인접해 있고, 바나나 모양이라고 해야 할까요? 한쪽 면은 거의 바다와 접해 있는데 바다를 무의식적으로만, 실제로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검토하지 못하면 부산의 미래를 가늠하기 어렵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노모스라고 부르는 걸 부산만큼 역동적으로 잘 대변하는 지역이 없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지배의 노모스는 정치 체제에 훨씬 더 강력하게 작동했습니다. 식민지 시기부터 시작해서 식민주의 체제가 여전히 불식되지 않고 잔존하는 방식으로 삶을 장악하거나 구조화하는 일도 있고, 냉전도 생각해 보면 끝난 것이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 등 여전히 갈등적 역학들을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의 과정이 끊임없이 바다를 통제하고 대화하고 그다음에 그걸 통해서 이제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지배하고자하는 전략을 수립해 온 것도 부장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운동 중입니다. 문화 예술이 그 힘을 받아서 다시 땅으로 되돌려 주는 과정일 수도 있고 혹은 그걸 정밀하게 탐사해 보는 일로 저자는 분석합니다.
김정한 선생님이 실제로 바다를 직접적으로 다루신 소설은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부산을 무대로 다루고 있지만 김정한 선생님의 단편소설이 타고난 지점은 군대 이후 자연 상태로 주어져 있던 땅을 경계 짓고, 구획 짓는 이야기들이 다수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강가 인변 목책이 없던 곳에 목책을 친 국민 국가의 제도와 질서가 사람들을 이탈하게 만들거나, 쫓아내거나, 혹은 금정산에 상수도를 깔고 그 물을 먹고 살고 있었는데 거기에 대도시적 질서를 부여해서 사람들이 그 문화에 의존하게 만들어 지배하게 만드는 이야기, 그리고 홍수가 난 이후 대항하는 이야기라든지 각종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 점도 김정한 선생님 소설이 갖고 있는 특징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김정한 선생님을 앞으로 넣은 이유는 한국 전쟁을 경유했다는 건 기존의 질서가 작동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는 뜻입니다. 굉장히 다양한 방식의 힘들이 교차하는 과정이고, 노모스의 형태가 바뀐다는 겁니다. 그렇게 바뀌는 과정 아래에서 소설과 김정한 선생님의 세계가 어떤 것이냐를 정리하면 이제 세 가지 형태가 있다는 거죠. 한국 전쟁을 이제 이념대결로만 파악하지 않는다는 것, 거기서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형태들을 이제 보여준다는 것, 그리고 전쟁 경험을 일상적인 생활 차원에서 다룬다는 을 말하는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기존 문학사가 50년대 문학을 굉장한 결핍에 대해 쓰고 있다면 오히려 김정한 선생님은 이제 활력을 갖고 있는 지역의 어떤 모습들을 나름대로 보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보면 한국 전쟁을 경유했던 부산의 포지션이라고 부르는 게 지금 유네스코에 등재되고 있지만, 일종의 번역의 자리, 새 것과 기존의 것들이 각축할 때 그걸 나름 구체적인 방식으로 전환하는 언어들을 생산하는 고유의 장소일 수 있는 거, 그래서 은연중 해안선 역할과 같습니다. 그리고 물론 역동적인 모습이 오래 못 갑니다. 환도 이후에는 급격하게 부산의 지위가 서울의 하위 도시로 점점 매개되는 과정들을 거칩니다. 고은 선생님이나 곽종원 선생님은 이제 부산을 끔찍한 것으로 이제 묘사합니다. 그런데 이주홍 선생님이랑 윤정규 선생님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부산을 묘사했는데 그 가운데 손창섭의 「생활적」이라는 소설이 굉장히 특징적입니다. 이 생활적이라는 게 초량 산복도로에 있는 한 마을에 공동우물이 있는 마을에서 살고 있는 피난가족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거기 등장하는 인물이 이제 아내가 재조일본인 여성으로 나오고, 그다음에 그 옆방에 살고 있는 사람은 신음 소리를 끊임없이 내는 아이가 살고 있고 그 집에 이제 남자가 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공동우물에 누가 똥물을 퍼 가지고 난리가 나는 이야기가 소설의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재조일본인 아내가 옆집 남자와 관계를 맺고 나가는 이야기가 주 무대로 펼쳐져 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보면서 피난지 부산의 고통스러운 장면을 이 소설이 묘사하고 있긴 하나 그 안에서 굉장히 역동적인 이미지가 조금씩 묘사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 피란이라고 부르는 관점을 조금 탈피해서 다른 방식으로 부산을 조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핵심은 동아시아와 냉전의 동시대성 속에서 부산을 파악하는 방법론 모델을 구성해 보고 싶다 입니다. 이것과 함께 이런 것들 드러내는 작가가 김종식 작가입니다. 부산 1세대 화가이시고 88년에 이제 돌아가시는데 이분이 이제 해방 이후 첫 번째 개인전을 여셨습니다. 이게 전쟁이라는 작품입니다. 한국 현대 미술사에서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그린 최초의 작가이신데 이분을 잘 모르세요. 엄청 중요한 작업을 하셨는데, 바다라고 부르는 것이 해방됐다고 해서 이제 안전한 형태의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매장되거나 수장된 그런 공간임을 그림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가시화합니다. 작품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아드님이 어린이 대공원 가는 길에 김종식 미술관을 만들어서 그곳에 작품이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 제목은 제가 여기 전쟁이라고 했는데 다른 제목도 붙어 있습니다. <수전노<라는 제목으로도 같이 있습니다.. 특이한 제목입니다. 뒤에 보시면 이제 헬기가 날아다니고 여기 원시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형상들이 앞에 나와 있고 그다음 돈을 세고 있는, 이 전쟁이 서로 다른 두 적대 세력의 공격적 형태의 결과물이 아니라 이게 자본 순환의 결과였다는 것을 이 작업만큼 정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없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제 이 작품 이후 <귀환동포>, <부산항 연작>, <제비>, <제빙회사>, <행상>이 있습니다. 부산항 이미지 먼저 보시면 원래 작업은 총 네 작업이 있습니다. 부산항을 주로 그린 작품인데요, 이제 그림을 그릴 때 나타나는 방법인데, 이 뒤 해안선의 윤곽이 이제 분명하게 탁 그려집니다. ‘바다 넘어’의 시선이 가할 수 있는 거를을 회화적 기법으로 차단하는 겁니다. 그래서 시선이 이제 부산항 안쪽으로 머물게 만드는 방식을 취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지금 여기 이제 귀환동포에서 귀환동포를 바라보는 시선의 위치가 지금 왼쪽 끝에 놓여 있습니다. 왼쪽 끝에 놓여 있고 그다음 안쪽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면 시선이 지금 항구 쪽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러면 부산항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바다 넘어를 생각할 수 있는 감각이 부산항을 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는 전달이 안 됩니다. 왜냐면 이 작품이 제작되는 시기로부터 한국 전쟁을 경유하고 난 다음 해안선은 차단됩니다. 냉전 체제에 의해서 실제로 부산에서도 쭉 있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의 감각에서도 바다 너머를 그려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무의식적인 질서에 대한 요청들이 작동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54년도에 김원갑은 지금 부산항을 그리고 있는데 어디서 보고 있냐면 그림을 그리는 위치가 부민동입니다. 사실상 그러니까 안쪽에서 안쪽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그리기 때문에 부산항으로 시선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산항은 국가 기관 시설이었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시선이 차단되었습니다. 양달석 1세대 서양화가도 남부민동에서 부산항 쪽을 바라보고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왼쪽 끝에 마치 시선이 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쪽으로 시선이 안 열립니다. 관객들의 시선은 다시 집중되고 그런 점에서 바다 너머로 생각할 수 없게 됩니다. 이 작품은 1970년대 작품입니다. 마치 바다 너머 뭔가 생각할 수 있어 보이지만 여기 원경에 그려져 있는 섬의 이미지로 인해서 시선이 안쪽으로 폐쇄됩니다. 그리고 박윤성 선생님의 부산항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보시면 바깥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성질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1995년도에야 겨우 바다 너머 바라보는 시선의 감각이 열립니다. 부산의 예술가들이 부산항을 그리거나 바다를 그릴 때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1995년에는 김영삼 정부의 국제화가 선언된 시기이기도 하고, 그게 예술가에게 왔다라는 거보다 그런 전반적인 흐름과 맥락이 바다 너머로 나아가 보도록 독려하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기반 조건들을 형성했습니다. 본다는 것, 이런 감각을 한다는 거, 이런 것도 사실은 이런 작업들을 통해서 살펴보면 노모스라고 부르는 질서가 그냥 단순히 철학적이거나 기능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신체와 감각에 아주 강력하게 작동하는 논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뭐 시선이 저쪽으로 열리지 않는다고 해서 작품들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지금 이제 연대적으로 살펴봤는데 이런 걸 보시다 보면 실제로 우리가 부산항 너머로 보기까지 상당히 오래 걸렸구나. 부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한번 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도 저희 반에 아버님이 원양어선을 타시는 분들이 꽤 있었거든요. 요즘에는 이제 그런 분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도 별로 안 생기는 상태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시선이 안쪽으로 가는, 지금은 약간 달라졌다고도 할 수 있을 텐데 만약 부산이 기존 국민 국가 체제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지배의 구획들을 넘어서려면 바다 너머를 끊임없이 상상하게 하는 문화 실천이 필요하지 않을까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60년대가 되면 이제 추상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구체적인 질서가 작동하는 현장을 정밀하게 그리는 구상적 회화들은 거의 없어집니다. 구상 회화가 다시 등장하기까지는 70년대 후반까지 가야 됩니다. 사실 이제 특정한 회화적 양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사회와 관계를 생각해야 된다면 이런 회화적 양식들을 생각해 보면 구체적인 우리의 현장인 바다와의 관계가 중요하구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해안선이라고 부르는 것을 서로 다른 힘들과 질서들이 교착하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면 민주주의가 서식하는 중요한 원천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부산에서 그런 역사적 사건들을 한번 들여다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이제 밀수 혹은 밀무역이나 아니 밀항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산 수용소라고 있었습니다. 1961년까지 운영되다가 그러니까 5.16 군사쿠데타가 이루어지고 난 다음 없어진 수용소입니다. 오무라 수용소라고 일본에 있었던 밀항자들을 처리하는 수용소가 오무라 수용소였다면 이승만 정부에서는 이제 부산 수용소를 괴정 쪽에 만들어 놓고 일본인 어부와 재조일본인 여성들을 여기다가 수용해서 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비료 협상의 카드로 썼습니다. 이런 걸 하려고 바다에다가 임의적인 하나의 선을 긋습니다. 임의적인 선을 긋고 난 다음에 이 선을 넘어오는 일본 어부들을 그냥 납거를 해 가지고 여기 가둬 놓습니다. 가둬 놓고 난 다음 이들을 무기로 비료 수입을 하는 기획을 짰던 형태입니다. 여기서 일어났던 일들이 이제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1965년 이전까지는 국교가 단절돼 있는 장소였는데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에 왕래가 엄청 활발하게 일어났던 현장이기도 합니다. 이런 연구가 일부는 이루어져 있는데 대부분 다 오무라 수용소에 관한 일본 측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부산 수용소에서 일어났던 이런 문제들을 다룬 연구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조금 다르게 보면 수용소라고 부르는 오목한 질서가 작동하는 세계 안에서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마치 난지도 쓰레기장에서도 난지도의 생태가 있고 난지도의 경제가 있듯이 여기서도 그런 교류의 경제와 생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른 각도로 부산의 지형을 그려 볼 수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진은 괴정에 있었던 수용소 입구입니다.

해안선은 지역별로 조금 다르긴 한데 한국 전체 해안선을 놓고 보면 저기 전남 서해한 쪽은 거의 대부분 두 가지로 바뀝니다. 하나는 풍력 발전이고 하나는 신재생 에너지의 집단 단지입니다. 그래서 염전이라든지 기존의 항포구라든지 이런 것들이 거의 재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상태, 해안선을 통해서 만들어졌던 문화적 기억들은 이미 거의 다 망각되거나 유실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염전이 원래 서해안 일대에 엄청 많았습니다. 염전은 물과 바닷물, 땅이 교차하는 해안선가 닮은 영역입니다. 바닷물을 담아서 염도를 높여 소금 결정을 만든 다음에 그걸 걷어서 간수를 빼며 생명 에너지의 연결성을 가지고 있었던 공간인데 거기가 지금 전남 해안 두 곳 정도 제외하고 전부 태양력 발전으로 다 바뀌었습니다. 100년 이상의 기간 동안 단단하게 있었던 염전이 사라집니다. 인구 구성 또한 바뀌었습니다. 어업자의 50%는 지금 외국인 노동력으로 다 바뀌었습니다. 굉장히 다문화적입니다. 최근 보고에 의하면 어선을 타려는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지금 어선 감축 사업을 통해서 생산력을 높이려 하고 있습니다. 어선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어선이 너무 많아서 수산물들을 채취하고 나면 생산이 높지 않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이제 감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현실을 바다를 통해서 재고상해 보려고 하는 노력들이 있어야 되고 노모스를 이제 지배 질서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강제되는 형태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항해하는 자로서 새롭게 이름 붙여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로 전환하려는 노력들이 요구되는 시점에 우리가 도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마무리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다시 한번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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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 13 : 바다의 노모스 | 문학/사상 13 | 김건우 외
주류 담론에 반격을 가하고, 담론의 지형을 재구축한다는 취지로 2020년 6월 창간한 반년간 문예비평지 『문학/사상』이 13호를 발간한다. 이번 호 표제는 「바다의 노모스」이다. 12호 「바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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