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9월 5일, 베트남을 처음 방문했을 때 호찌민시는 동냥하는 아이들과 소매치기 등 전쟁의 상처가 잔존하는 곳이었다. 호찌민시는 '사이공의 흰옷'(2006년 '하얀 아오자이'로 재출간)이라는 소설의 주 무대로, 이 책을 처음 출간한 출판사는 1986년 당시 부산에 있던 '친구' 출판사였다. 소설은 소박한 성공을 꿈꾸던 평범한 소녀가 학생운동을 통해 다른 삶에 눈뜨며 겪는 사랑과 우정, 성장의 아픔을 잘 그려내 1980년대 대학을 다니던 세대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1992년 국교수립 후 양국교류가 시작되면서 베트남으로 3000여 개 한국 기업이 진출하였고 직접 고용자 수만 60만 명이 넘는다. 최근에 불고 있는 한류의 영향으로 베트남에서는 한국에 관한 관심이 뜨겁다. 그 열기에 비해 베트남 관련 한국 출판물은 어느 위치에 있을까?


2007년에 부산을 방문하였던 응웬옥뜨 소설가의 '끝없는 벌판', 올해 베트남어판을 저본으로 번역된 바오 닌 소설가의 '전쟁의 슬픔', 반레 소설가의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등 몇 작품에 한정된다. 베트남 문학은 상흔에서 피어난 생명의 문학이다. 베트남 전쟁문학은 조국통일과 민족해방의 영광, 정의로운 항쟁, 구국의 의지, 집단을 위한 개인의 영웅적이고 숭고한 희생을 노래하는 것이 전부였다. 응웬반봉의 '하얀 아오자이'도 더 큰 꿈을 위한 희생을 잘 묘사한 전형적인 베트남 전쟁문학에 속한다. 반면, 통일 이후에 출간된 소설 중 '전쟁의 슬픔'은 전쟁만이 아는 슬픔을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게 그려낸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권헌익 교수의 저서 '학살, 그 이후'와 시민단체 '나와우리'의 회원들이 하노이에서 호찌민까지 자전거로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현장을 답사하고 집필한 '미안해요! 베트남'은 베트남전쟁이 지금도 진행 중인 과거임을 환기하게 한다. 권헌익 교수의 '학살, 그 이후'는 인류학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기어츠상 수상작으로, 1994년 베트남 중부지방 하미를 비롯한 꽝남성의 여러 민간인 학살지역을 직접 방문하여 학살의 역사를 마을 차원에서 민족지적으로 연구한 결과이며,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저술로 평가받고 있다. 인간의 모든 죽음은 좋은 죽음이든 나쁜 죽음이든, 이편의 죽음이든 저편의 죽음이든 애도와 위로를 받을 절대적인 권리가 있다. 


   

2004년 다시 베트남을 방문하였을 때 민간인 학살지역에서 목격한 이야기 중 남부 베트남 군인 또는 경찰 가족 또한 한국군에게 학살되었고 통일 이후에도 베트남 당국의 소극적 대응에 유가족이 슬퍼하던 장면이 다시 기억이 난다. 기억을 통해 우리는 하잘 것 없어 보이는 낱낱 인간들이 지니는 생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와 영토 문제로 한국과 일본 간에 한랭전선이 형성되고 있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베트남과 한국의 역사도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미래를 위함이다. 지금 하잘것없어 보이는 상대라고 넘기기엔 베트남은 너무나 가까운 나라가 되었다.


도서출판 산지니 대표



# 하얀 아오자이


- 응웬반붕 지음/동녘/1만2000원


# 전쟁의 슬픔


- 바오 닌 지음/도서출판 아시아/1만2500원


# 학살, 그 이후


- 권헌익 지음/아카이브/1만5000원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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