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주일이 훌쩍 지났군요. 가마골 소극장에서 연 뮤지컬 <미스쥴리>를 보고 왔습니다. 지금은 <오구>가 뜨겁게 상영 중입니다. 첫 회 공연은 매진되었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습니다. 다음달 6일까지 한다고 하니 저도 서둘러야겠습니다. <오구>를 마지막으로 이제 가마골 소극장은 부산을 떠나 폐관을 합니다.
|
|
세상에 비밀 하나, 연극
대학교를 입학하고 봄날, 이상하게 할 일이 없었고 저는 혼자 '출사'라는 명목 아래 자주 카메라를 들고 부산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는데, 그때 제가 다녀 온 장소를 소개했더라도 '파워블로그'는 되지 못했겠지만, 그렇게 자주 여행을 했습니다. 그날은 보수동 헌책방을 둘러보고 용두산 공원으로 가는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용두산 공원 편의점 바로 앞에 조그마한 간판에 '가마골 소극장' 을 보았습니다. 소극장? 호기심이 발동했고 그곳을 조심히 들어가 보니 연극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한 번도 연극을 본 적이 없고 마침 저도 대학생이니 그래, 이제부터 연극을 보는 거야 하며 연극에 심취하려고(?) 했습니다.
이후 자주 친구를 꼬드겨 연극을 봤는데 아무래도 티켓 값이 부담되기도 했는데 마침 같은 학과에 친구가 가마골 소극장에 스텝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절호의 기회가!
사람이 없는 수요일에는 반값 티켓이 올라왔는데 믿을 수 없겠지만 만 원이면 연극 한 편 오천 원, 밥 한끼 삼천 원, 이천 원 차비까지 만 원에 행복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아 물론 커피 값은 별도입니다. 그때 본 연극들이 연희단거리패의 힘을 보여준 <바보각시>, <햄릿>, <어머니> 등이었습니다. 작은 공간 속에 오밀조밀 모여 한 번을 위해 열정을 쏟는 배우들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시시했던 대학 1년 시절에 혼자 세상에 비밀을 하나 알게 된 기분이었습니다.
연극에 비밀 하나
지금도 운영 중에 있는 자갈치 아카데미는 시민이 직접 연극을 배울 수 있습니다. 물론 심취하려 했지만 심취하지 못했던 저는 대신 친한 친구가 연극을 배우러 갔습니다. 방학 동안 자갈치 극단 배우들과 생활하면서 작은 역이라도 배역을 맡아 무대에 오르는 과정입니다. 친구의 고통스런 다리찢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연극에 심취하지 못한 저는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즐거워했습니다. 덕분에 연극의 비밀을 하나 알게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아, 연극을 하려면 일단 다리찢기를 하는 구나'하면서...
여전히 부산을 지키는 많은 연극단들이 있지만 추억이 있던 가마골 소극장이 폐관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왠지 모르게 슬퍼졌습니다. 내가 자란 고향이 댐 건설로 수몰되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단일화되는 매체와 싸우는 문화계
연극계뿐만 아니라 영화계, 출판계는 시름시름 앓고 있습니다. 얼마 전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1985>를 만든 정지영 감독은 영화산업에 거대 자본이 투자에서 배급까지 장악하면서 반대로 그렇지 못한 작은 영화들은 상영권에서 소외당하는 것을 비판했습니다.
-수직계열화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자기가 투자하고 자기가 제작해서 상영까지 한다는 것이죠. 그 안에서 돌리면 손해날 것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어떤 경우는 다른 영화는 희생하는 것이거든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고르는 경우도 많거든요. <남영동 1985>도 상영 1주일 만에 씨지브이에서 오전 11시 반과 밤 12시50분 상영으로 밀려났어요. 자기들이 만든 영화 2편만 열어놓고요. 김기덕 감독이 이야기한 것도 이런 거죠. 상품이 진열장에 없는데 사람들이 무슨 재주로 상품을 골라요? 맨날 관객들에게 사과와 오렌지나 짜장면만 제공하면 관객들을 먹다 질리죠. 현재 수식계열화 체제는 다양성 훼손, 보편적 획일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죠.”
<한겨레> 12월 23일자 정지용 감독 인터뷰 기사 일부
/뉴시스
거대 외국 영화산업에 살아남기 위해 한국 영화계가 든 대책은 '스크린 쿼터제'였습니다. 한국 영화를 일정 기간 상영해 한국 영화의 상영권을 보장받는 것입니다. 이제는 한국 영화산업 안에서 거대 자본에 밀린 영화가 상영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영화계와 연극계 모두,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출판계는 도서정가제로 기나긴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서점의 지나친 할인율로 가격 경쟁에서 밀린 동네 서점들은 문을 닫고 있습니다. 아아... 그뿐인가요, 마트에서 벌어지는 할인 경쟁에 동네 슈퍼가 사라지는 것과 같네요.
물론 책을 팔면 온전히 다 출판사가 갖는 것이 아닙니다. 원고를 쓴 저자, 책을 만드는 출판사, 인쇄하는 인쇄소, 제본하는 제본소, 그 외에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과 책을 팔면서 이익을 나눕니다. 할인율로 수익이 줄어들면 결국 함께 종사하는 사람들 모두 이익이 줄어듭니다. 결국 책을 판매할 수 있는 유통구조가 제한적이고 수직적으로 변한다면 다양한 책을 경험할 수 있는 독자들의 경험도 제한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겠지요.
지금 문화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떠나거나 투쟁합니다. 누군가 연극인이 되고 싶다면, 시인이 되고 싶다면,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면 생계 걱정 말고, 마음껏 해보라고 응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새해는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저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겨운 연애, 그리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연애의 온도> (5) | 2013.04.07 |
---|---|
농담 실컷 한 다음 다음날, 무서웠던 것들 (3) | 2013.04.03 |
왕가위, 발 없는 새를 위하여 (4) | 2012.11.14 |
책드림콘서트-고은 선생님을 만나다. (0) | 2012.10.31 |
아시아문화 한마당에서 가을과 어울림. (2) | 2012.10.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