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강상중, 사계절)



소설도 아닌 이 책을 두고, 저는 주말 내내 무기력하게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죠. 고등학교 삼 학년 때였던가요. 이웃 학교 남학생이 자살했습니다. 같은 학교 학생은 아니었지만, 남녀공학이 아닌 학교이기에 거리상으로 인접해 있던 학교라 친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들 건너건너 아는, 그런 사이였죠. 자살했던 그 친구와 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었지만 그래서였을까요. 뉴스에 그 친구의 사건이 계속 회자되며 보도될수록 제 호기심은 점차로 증폭었습니다. 그러다, 당시 유행하던 아이러브스쿨이라는 커뮤니티 속 그 친구의 사생활을 엿보기도 하였고요.

지극히 정상적이었고 행복했던 그 친구의 삶을 그렇게 내몰았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이 책을 다 읽고 역자 후기에 서술되었던 번역자가 "내 안의 시간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골짜기에 드러눕는다. 같이 운다"라고 한 말처럼, 저 역시 그랬습니다. 지극한 신경증에 자살하였던 아들을 잃었던 저자도 울고, 역자도 울고, 책을 읽은 독자인 저도 우울했던 옛 기억을 떠올리곤 그저 흐르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세상은 정말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일까요? 이 책은 아들의 자살사건과 함께 찾아온 3.11 일본 대지진 사건을 두고 강상중 도쿄대 정치학과 교수가 나름의 고민을 담고 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나름의 결론입니다.





부유층으로 진입하고 싶어하는 가난한 여성의 삶을 다룬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의 한 장면입니다.


고민 한 가지. 사랑에 관하여.

사람들은 왜 이렇게 고독한 것일까요. 텔레비전을 틀면, 드라마가 매회 방송됩니다. 일례로 엘뤼에르 편집자가 빠지지 않고 챙겨보는 <청담동 앨리스> 얘기를 해볼까요. 극 중 한세경(문근영)은 화려한 청담동의 삶을 좇아 장 띠엘 샤(박시후) 회장에게 접근하여 청담동 사회에 편입되고자 하는 요즈음의 사회상을 묘사해내고 있습니다. 문득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지, 돈은 무엇인지, 사람이 살아가는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재벌집 안주인으로 등장하는 서윤주(소이현)가 한세경(문근영)에게 비싼 목걸이를 주문해서 픽업을 지시하는 부분이 등장하는데, 이때 한세경은 그 비싼 목걸이의 보증서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 이후 한세경은 회사 상사에게 엄청난 질책을 받게 되고 다니던 회사마저 그만둘 위기까지 처하게 되는데요. 한 사람의 소중한 가치보다 몇 억씩 하는 비싼 목걸이의 '보증서'가 더 가치로운 시대 속에 살고 있는 요즘 세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사랑에 대한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상중은 주로 나쓰메 소설 속의 문학에 등장하는 개인의 서사를 빗대어 현대인들의 '사랑'풍속도를 그려내고 있는데요. 이는 『명암』이라는 작품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중략)하지만 그들은 생활비를 줄일 생각이 없고, 다이스케가 그랬듯 부족한 돈은 부모에게 얻어 쓰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하지 않는 오노부의 손가락에는 훌륭한 보석 반지가 빛나고 있습니다. 그녀의 머릿속에 부모에게 폐를 끼친다는 생각은 거의 없습니다. 그녀가 생각하는 것은 자신들 부부의 체면과 안락함뿐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무턱대고 '사랑', '행복'이라는 말을 연발합니다. 다이스케나 오노부의 사고나 경제 감각은 신기하리만치 요즘의 우리와 닮았습니다.(p31)


제가 읽은 행간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너무 무턱대고 '사랑'이니 '행복'이니 하는 말을 연발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마 이것은 우리의 외로움과 고독함이 빚어낸 또다른 표현방식일테지요.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그저 입버릇처럼 '사랑한다'라는 말만을 내뱉곤 한단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의 '정치'의 문제에 대해 사유할 수 있었습니다.


고민 두번째. 정치에 관하여.

사 놓은지 꽤 지난 이 책을 다시 펼치게 된 까닭은 격주간지 「기획회의」의 서평의 힘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심한 난독증이 있는 저는 통독해서 한번 읽고, 정독해서 한번 더 읽고, 리뷰를 위해 발췌독해서 다시 또 읽게 되었네요.(그만큼 정말 좋은 책입니다.)  통독할 때 정독을 해야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구절이 바로 정치에 관한 저자의 견해였습니다.


지금까지 정당은 사회 안의 부분적인 이해를 집약·매개하여 정치 전체의 의사결정에 입력하는 역할을 한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개인이 직접 목표에 접근해 간다면, 그런 답답한 것을 '중간 생략'하는 움직임이 나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결과 익명의 불특정 다수인 개인의 자유의사가 민주적인 총의를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익명의 불특정 다수 개인의 의사란 '시장'과 동의어입니다. 즉 시장이 정당에 의한 민주적 대표제를 대신해 정치를 움직이게 되는 것이지요. 시장이 정치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깊이 연구한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라면 아마 '시장이 사회를 삼켜 버린다'고 말했을 겁니다.(p.85-86)


책의 맥락은 이렇습니다. 자의식을 강조하는 사회시스템이 진행될수록, 개인에게 있어 정당의 역할은 무의미해져 갑니다. 저 역시 여론조사때마다 지지정당 없음이라고 답변할 때가 많았거든요. 딱히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정당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내 자신에게 자문하노라면 그저 내가 좋아하는 정책이 나올때마다 지지정당을 교묘히 바꿔왔던 것 같다는 결론으로 귀결되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의견은 공감할 구석이 많았습니다. 바로 저같은 사람이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시장'의 논리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시장주의 체제를 어려서부터 몸에 습득해온 저이기 때문에 '나 자신이 되어라', '개성을 가져라', '패셔너블 해져라', '남과 달라야 한다'라는 구호를 텔레비전 광고로부터 습득해 왔고 이러한 사고로 인해 서로의 의견을 단합해야 하는 '정당'에 지지해야 할 필요성을 못느꼈던 거죠. 다만 내가 한 정당을 지지해야 할 때에는 내가 필요한 정책이 입법화되고 통과되기 위해서, 그게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굳이 반성하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저 저뿐만 아니라 제 세대의 많은 이들이 그러한 정치적 입장을 띄고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불현듯 들어 씁쓸한 기분이 들었죠. 이러한 현대인들의 정치감각의 근간에는 문화적 논리 또한 담겨 있습니다.



홀로 살며, 고독사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고민 세번째. '나'를 찾으면서 잃게 되는 '남'의 가치

앞서 말했듯 시장논리는 끊임없이 '나는 나'가 되기를 주문합니다. 나는 남과 다르다. 내 자신의 개성을 찾자. 자기 자신이 되어라. 이러한 논리 속에서 현대인들은 시름시름 앓고 있습니다. 아니, 나는 꿈도 없고 열정도 없는데 개성을 지니지 못한 나는 이 사회에서 도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말이죠. 사실 저는 의류학과 출신입니다. 제가 의류학을 선택한 이유도 나만의 개성을 가장 적실히 보여줄 수 있는 직업군이 '디자인'에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입학하고 '달라야 한다'는 강박증에 너무 힘든 대학시절을 보냈습니다. 왜 우리는 이처럼 '달라야만' 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정반대로 '자기를 찾아라'라고 외치며 우리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자본주의입니다. 이 빈틈없는 마물 같은 시스템은 '상품이 되는 것'을 찾아내 이용하는 데 매우 뛰어납니다. 특히 '불안'의 냄새가 나는 것을 이용하는 데 무척 뛰어납니다.(p.106)


그래서 저는 취업에 한창 매진해야 할 대학 3,4학년에 전공과목 수강을 포기하고는 다른 학과의 원론 수업을 배회하였습니다. 내게 맞는 진정한 공부에 대해 돌입하는 시간을 보냈었죠. 그 중 가장 재밌었던 수업이 바로 경제학이었습니다. 흔히들 경제학이 '돈 버는 학문'이자 '금융'에 관한 학문으로 오해할때가 많은데요. 사실 경제학의 근본에는 '경제철학'의 저변이 깔려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일을 하며 얻을 수 있는 보람에 관해 사유할 거리를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충분히 제공받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란 말로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아담 스미스도 살펴보면 『도덕감정론』이라는 그의 저서를 통해 경제학 이전의 '윤리학'교수로 유명했었고요. 그렇게, 그때 배웠던 소중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바로 불교경제학에 대해 나름대로 레포트를 쓰며 공부했던 '자타불이'의 정신입니다. 이는, 나와 남은 다르지 않다- 라는 불교의 이론입니다.

토지자본주의가 횡행하고, 물건에 대한 '소유권'을 강하게 주장하게 되는 시장주의 경제체제에서 자연스레 사람들은 '나의 것', '나의 삶'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됩니다. 그로 인해 타인의 '사생활'은 침범해서는 안될 고유영역이 되어버렸고, 누군가가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지만 조금이라도 지나치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이기주의적 가치관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뉴스를 틀면 매일 한번씩은 나오는 고독사 관련된 내용도, 따지고 보면 이와 다를 게 없다고 봅니다. 이웃 주민이 그를 한번이라도 살폈으면 그가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을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아려옵니다.



너무 지나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안될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 스무살 초반에 아픈 과거가 있었고 그로인해 많은 생각을 해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 그것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절망의 세계 속, 자유가 가져온 감옥의 세계 속 우리는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박근혜 당선자가 후보 연설할 때 사형제도를 부활하겠다는 말을 텔레비전으로 시청했었습니다. 제 개인적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사형제도, 부활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책에서도 나왔지만 엄청난 살인자도 사회와 소통하고 싶었던 개인의 비극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러한 살인마를 잘 다독여주지 못한 사회의 잘못이지, 한 개인만을 사형시켜서 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두껍지도 않은 책 한 권으로 많은 사유를 하게 되어 기쁩니다. 책을 읽는 행복은 이런 게 아닐까 하네요. 덕분에 행복한 주말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D




살아야 하는 이유 - 10점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사계절출판사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