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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책/인문135

맨눈이 최고, 대활자본이 효자! 얼마 전 책 정리를 하다가, 할아버지가 쓰시던 옥편을 발견했다. 누런색 크라프트 용지로 거풀이 씌어진 옥편은 참 곱게 낡아 있었다. 식민지 시대에 건너온 물건인 듯, 한자-한글이 아닌 한자-일본어 사전이라는 것도 새삼 신기했다. 옥편을 잠깐 쓸어보노라니, 어린 시절 기억 한 자락이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내가 해야 할 커다란 임무가 있다는 듯이 한 번씩 부르시곤 했는데, 달려가 보면 한자 책과 메모지가 펼쳐져 있곤 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깨알같이 작고 복잡한 한자를 크고 시원시원하게 ‘그려 드리는(!)’일이었다. 부수도 획순도 모르던 꼬맹이였던 데다, 인쇄 상태도 조악한지라 그것은 마치 커다란 임무처럼 여겨졌다. 때로는 “할아버지, 글자가 너무 복잡해서 못 그리겠어!” 하고 도망간 적도 있었는데, 그.. 2009. 9. 16.
패전후 미국에 점령당한 일본인들의 삶과 그늘 만들어진 점령 서사 1945년 패전후 일본은 연합국(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점령하에 놓이게 되는데, 이는 일본 건국 이래 처음으로 당해본 일본인들의 피지배 경험이었다. 책은 점령기간 동안 일본인의 삶에 미국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당시의 일본 문학작품을 통해 들여다 본다. 타국에 의한 피점령 기억은 오늘날까지도 일본인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해방 이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직, 간접적 영향을 받으며 일본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가 던지는 내용이 단순히 이웃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1946년 당시, 영양실조로 사망한 사람은 1,00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전국 각지에서 식량난과 싸우는 일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고가의 영·미어 교재가 날개가 돋친 듯이 팔렸던 것은 무엇 .. 2009. 8. 24.
사라져가는 '부채의 운치' 부산대 한문학과 선생님 두 분이 사무실에 오셨다. 올 가을 학기에 맞춰 나올 한자책 교정을 보기 위해서다. 계절학기 강의를 마치고, 더운 날씨에 약속 시간에 맞추느라 부랴부랴 오신 것이다. 시원한 냉수를 대접한 후 한 분이 들고 계신 부채가 눈에 띄어 "여름엔 부채만한 게 없죠. 한문학과 샘이라 다르시네요. 저도 올 여름 나려면 하나 장만해야겠어요" 하며 탐을 냈더니 선뜻 "그럼, 드릴까요?" 하시는 것이다. "고맙습니다." 하고 넙죽 받았다. 괜히 예의상 거절했다간 도로 뺏길까봐 푼수짓을 좀 했다. 대나무 살에 한지를 발라 만든 넓적한 부채가 정말 시원해 보였기 때문이다. 2007년 출간된 란 책이 있다. 중국인과 밀접한 3가지 소재(차, 요리, 부채)를 통해 중국인의 삶과 문화를 들여다보는 중국생활.. 2009. 7. 14.
100여년 전에 쓰인 차(茶)의 고전 ☞ 심미주의 눈으로 본 일본 다도의 뿌리(중앙일보 기사 보기)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을사조약이 체결된 다음해인 1906년, 미국 뉴욕에서 한 일본인이 영어로 된 책을 발간했다. 저자는 당시 보스턴미술관에서 동양부장으로서 국제적 명성을 날리고 있던 오카쿠라 텐신(岡倉天心). 펴낸 책은 바로 “The Book of Tea”. 이후 이 책은 오늘날까지 10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동양의 차를 서양인들에게 알리는 데 가장 인기 있는 책으로 손꼽혀왔다. 이 책은 아직도 미국 온라인서점에서 꾸준히 판매되고 있으며, “다도를 통해 일본의 전통문화를 가장 재미있고 매력 있게 해설한 책”이라는 서평에서는 서양인들이 이 책을 통해 다도(茶道)를 넘어서 일본문화, 나아가 동양의 전통문화에 얼마나 .. 2009. 7. 4.
<무중풍경> -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 기쁜 소식 하나! 이 2009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안개 속 풍경’이라는 뜻의 은 현대 중국영화사와 영화비평에 관한 책입니다. 1999년에 다이진화가 쓴 이 책은 이미 ‘현대영화사의 고전’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중요한 저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중국 내 영화계 종사자들은 물론, 우리나라 중국문학, 영화 전공자들에게도 중요한 필독서로 꼽히고 있으니, 중국영화 마니아들에게도 훌륭한 참고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베이징대학 비교문학과 비교문화연구소 교수이면서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 객좌교수이기도 한 다이진화는 부단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고 있으며, 오늘날 중국 현대문학이나 문화를 연구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주요 비평가입니다. 신시기 20년간의 중국영화의 변천과 더불어.. 2009. 7. 2.
다도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 전설 속의 신농은 기이한 인물로 수정처럼 투명한 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음식을 먹든지 간에 사람들은 그의 위장 속을 훤히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인류는 불을 사용하여 음식을 익혀 먹을 줄 몰랐다. 야생과일, 벌레와 물고기, 금수 등의 먹을거리를 모두 날것으로 먹은 탓에 자주 탈이 나곤 했다. 신농은 인류의 이러한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특수한 배를 이용하여 보이는 모든 식물을 맛보고 이 식물들의 뱃속에서 변화를 관찰했다. 그러고는 어떤 식물이 독이 없고 안전하며, 어떤 것이 독이 있어 먹을 수 없는지를 알 수 있게 했다. 이리하여 그는 백초(百草)를 맛보기 시작했다. 한번은 그가 푸른 나무에 싹튼 연한 잎을 맛보았다. 이 잎은 대단히 신기하여 뱃속에 들어가면 위에서 아래로, 또는 아래에서.. 2009.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