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해당되는 글 30건

  1. 2019.05.24 절망 딛고 詩 쓰는 시인의 삶의 방식
  2. 2019.05.10 더 잃을 것도 없는 적빈의 열매 <시로부터>
  3. 2019.05.06 최영철 시인의 시를 위한 산문집 <시로부터>(책소개) (4)
  4. 2018.09.20 고독에 대한 솔직한 고백 -『새로운 인생』 (책소개)
  5. 2018.01.23 [작가와의 만남] '우리'라는 이름으로- 황은덕 작가 인터뷰 (4)
  6. 2017.09.18 언론인이자 시인, 농축된 삶의 시어
  7. 2016.11.29 최계락문학상 시상식에 다녀왔습니다. (수상자-서규정 시인) (1)
  8. 2016.06.23 비 오는 수요일, 부산·경남 대표 문인들이 산지니에 온 이유는? (3)
  9. 2016.05.03 [이 아침의 시] 밥벌 - 성선경(1960~ ) (1)
  10. 2016.04.25 제72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성선경『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2)
  11. 2016.03.25 제71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신정민『나이지리아의 모자』
  12. 2016.03.21 봄날의 시를 좋아하세요?- 신정민 시인과의 만남에 초대합니다! (1)
  13. 2016.03.17 내게 힘이 되어주는 시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 (1)
  14. 2015.07.06 고독은 나의 힘- 『금정산을 보냈다』 최영철 시인 북토크 (5)
  15. 2015.06.15 시의 힘을 믿는 이가 보내는 응원:: 『은유를 넘어서』구모룡 저자와의 만남
  16. 2015.06.11 "은유의 남발은 동일성의 확대재생산" (국제신문)
  17. 2015.06.09 속에 내재된 형식주의 비판 본질은 타자와의 공명·소통 (경기신문)
  18. 2015.06.05 함께 읽는 시의 느낌 :: 구덕도서관 최영철 시인 초청 강연회
  19. 2015.05.22 67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 구모룡『은유를 넘어서』
  20. 2015.04.29 가는 봄에게 무어라 말하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다 (경북도민일보)
  21. 2015.02.23 [저자 인터뷰]문학으로 가는 길(수영을 걷다)/『금정산을 보냈다』, 최영철 시인과의 만남 (2)
  22. 2015.02.17 소멸되어가는 것을 붙잡다- 최영철, 『금정산을 보냈다』, 산지니, 2014.
  23. 2014.01.29 [작가 돋보기] 에로와 그로테스크의 경계, 돌직구 시인 김언희 (1)
  24. 2012.02.17 한국 사회를 읽는 세 가지 키워드
  25. 2011.09.30 『입국자들』 시가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네요

 

최영철 시인은 “시가 나의 오른팔이었다면, 이 산문들은 나의 왼팔이었다”고 했다.

부산일보DB

 

최영철 시인은 1985년 겨울 아침, <한국일보> 하단에 적힌 ‘신춘문예 내일 마감’이란 광고를 보게 된다. 10년 동안 신문사에 투고해 두어 번 최종심에 올랐지만, 본인 재능은 거기까지라고 단정했다. 시인은 그 광고를 보고 “그만 적당히 주저앉고 싶었던 나를 향해 날아든 느닷없는 돌팔매질”이었다고 회고한다. 단칸방에 아내와 아이들이 자고 있고 나이는 어느덧 서른을 넘기고 있었고 변변한 직업이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가난하고 고단했던 시간, 시인은 자신에게 닥쳐온 절망으로 시를 썼다. 이제 시 쓰기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투고한 그해 크리스마스 즈음, 그는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들었다. 

최영철 시인, 산문집 ‘시로부터’ 

시와 시인·시 쓰기 등에 대해 

가감 없이 쓴 깊이 있는 글들 

명쾌한 정의·주옥같은 문장 눈길 

이후 시인은 문명의 이기심과 자본주의에 중독된 세상을 비판하고 주변부와 생명을 보듬는 시인이 됐다. 2015년 시집 <금정산을 보냈다>로 부산 대표 도서를 선정하는 ‘원북’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 시인은 최근 펴낸 산문집 <시로부터>(사진·산지니)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게 온 모든 절망들에게 감사한다. 나는 나의 절망들에게 빚지고 있다. 그 겨울의 절망이 나를 두드려 깨우지 않았다면, 그 겨울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 나를 들쑤셔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만 중도에 시의 손을 놓아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시로부터>는 30여년 간 왕성하게 활동해온 시인이 시와 시인, 시 쓰기, 시의 유용함과 무용함, 시를 안고 살아가는 방식 등에 대해 가감 없이 써 내려간 책이다. 시인이 30여 년 동안 썼던 산문 중에서 시와 관련된 글을 추리고 정리해 묶었다. 시인은 “시가 나의 오른팔이었다면 이 산문들은 나의 왼팔이었다. 독자들이 시에 대해 쉽게 접근하고 시인들은 자기 시에 자의식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펴냈다”고 했다. 

시인은 “시의 재료를 고통과 절망, 실패에서 찾았다”고 한다. 일상에 상처받고 일상에 배신당하고 일상에 걷어차여야 시를 쓸 수 있었다. 고통과 절망을 자신에게 찾아온 귀한 손님으로 여기며 관리하는 게 시인의 책무라 여겼다. 

책에는 시와 시인에 대해 명쾌한 정의를 내린 주옥같은 문장들이 즐비하다. 먼저 시인에 대한 정의. ‘시인이 원하는 것은 완전한 사랑이 아니다. 시인의 성감대를 자극하는 것은 궁합이 잘 맞는 천생연분의 세계가 아니라 서로 어긋나서 삐걱거리는 불화의 세계다. 그 어긋나고 삐걱거리는 세계를 해체하고 조립하고 중재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존재가 시인이다.’

시의 세계에 대한 정의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시가 추구하는 세계는 본래 크고 높고 화려하고 빠르고 시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들을 피해 그것들을 물리치며, 그것들을 넘어서는 세계였다. 작고 적고 낮은 것의 가치, 약하고 여리고 조용하고 느린 것의 미덕을 발견하며 함께 조화를 이루는 세계를 꿈꾸었다.’ 

시인으로서의 의지를 다짐하는 말은 깊은 울림을 준다. “시인에게는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의 관계를 역전시키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산적한 문제들에 감응하고 인지하는 능력과, 그것들을 해결하려는 자구적인 노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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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부터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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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문화/책과 생각] 5월 10일 문학 새 책

 

 

 

 

 

 

 

시로부터 1986년 등단 이후 30년 넘게 시를 써 온 최영철 시인의 산문집. 시와 시인에 대해, 시 쓰기에 대해, 시 과잉과 시 핍박에 대해, 시를 안고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가감 없이 써내려갔다. “눈앞에 널린 수백의 유용을 자진반납하고 단 하나의 무용을 거머쥔 것./ 더 잃을 것도 없는 적빈의 열매.”(머리글 ‘시를 위한 변명’ 중) /

산지니·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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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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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부터최영철 산문집

   

   나는 정말에게 빚지고 있다

   내게 온 모든 절망들에게 감사한다




최영철 시인의 ‘시를 위한 산문집’

시의 대변자가 되어 시를 말하다


최영철 시인의 ‘시를 위한 산문집’. 최영철 시인은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이후『말라간다 날아간다 흩어진다』 『돌돌』 『금정산을 보냈다』 『찔러본다』 『호루라기』 『그림자 호수』 『일광욕하는 가구』 등 다수의 시집을 발간하며 백석문학상, 최계락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산문집 『시로부터』는 30년 넘는 세월을 왕성하게 활동해온 시인이 시의 대변자가 되어 시와 시인에 대해, 시 쓰기에 대해, 시 과잉과 시 핍박에 대해, 시를 안고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가감 없이 써내려간 책이다. 


시인은 쓸모 있음과 유용함만이 중요시되는 세상에 쓸모없음을 설파하며 무용을 거머쥔 시, 그 시의 자리를 묻는다. 그리고 지금껏 밥벌이와 생의 원동력이었던 시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며 시인만의 시론을 펼친다


시인은 시의 재료를 고통과 절망, 실패에서 찾았다고 한다. 일상에 상처받고 일상에 배신당하고 일상에 걷어차여야 시를 쓸 수 있었다. 고통과 절망을 자신에게 찾아온 귀한 손님으로 여기며 관리하는 게 시인의 책무라 여겼다. 『시로부터』는 시라는 존재를 탐구하고 시인의 의무를 고심하면서,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시가 가진 희망을 나누어준다.



애써 쓰려고 하지 않았으나 내 안의 다른 무엇이 

써버리고 말았던 것.


써놓은 것이라도 얼른 감추고 폐기처분해야 했으나

그만 깜빡 잊고 발설해버린 것.


종이를 낭비하고 지면을 어지럽히고 독자의 시간과 감정을

빼앗은 것.


쓸모없는 짓거리였으나 그럴수록 더욱 쓸모있는 것이라

자위하며 의미를 달아준 것.

_머리글 「시를 위한 변명」 중에서





고통을 요리하는 시인, 절망에서 희망이 되는 시. 

혼란한 이 시대에 시인은 무엇을 말해야 할까.


무엇이 시인다움일까? 시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해서 단번에 시인이 될 수 없다. 

시인이 되었다고 해서 계속해서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보장도 없다. 열혈하지 않으면 시인이 될 수 없다. 


최영철 시인은 1985년 겨울 아침, <한국일보> 하단에 적힌 ‘신춘문예 내일 마감’이라는 광고를 보게 된다. 10년 동안 연례행사처럼 신문사에 투고해 두어 번 최종심이 올랐지만 본인의 재능은 거기까지라고 단정했다. 시인은 그 광고를 보고 “그만 적당히 주저앉고 싶었던 나를 향해 날아든 느닷없는 돌팔매질”이었다고 회고한다. 단칸방에 아내와 아이들이 자고 있고 나이는 어느덧 서른을 넘기고 있었고 변변한 직업이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가난하고 고단한 시간이었고 시인은 자신에게 닥쳐온 절망으로 시를 썼다. 이제 시 쓰기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투고한 그해 크리스마스 때쯤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듣게 된다. 


“그대들이 힘 빠져 비척거릴 때 / 낡고 녹슬어 부질없을 때 / 우리의 건장한 팔뚝으로 다스리지 않으면 / 누가 달려와 쓰다듬을 것인가 / 상심한 가슴 잠시라도 두드리고 / 절단하고 헤쳐 놓지 않으면 / 누가 나아와 부단한 오늘을 일으켜 세울 것인가.”_「연장론」


이후 시인은 문명의 이기심과 자본주의에 중독된 세상을 비판하고 주변부와 생명을 보듬는 시인으로, 진솔하고 해악을 담긴 시로 독자에게 다가갔다. 2015년 『금정산을 보냈다』는 시민들의 투표로 부산 대표도서를 선정하는 ‘원북’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고 이례적으로 시집이라는 점에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그동안 시에 대한 글을 묶은 걸로 시의 투명함을 전한다.






시의 사부, 시의 무늬, 시인 산책


시에 대해서만 이렇게 많은 말과 수식어를 쏟아 붓다니. 책을 읽으며 흠뻑 시에 빠져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과욕을 부리며 지나치게 조급하게 살아온 건 아닌지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된다. 한편으로는 시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을 쓸어내리며 더 많은 사람들이 시를 향유했으면 한다.


1부와 2부는 시의 재료인 고통과 절망에 대해 말하며 이를 요리하는 시인에 대해 말한다. 과잉과 포만을 경계하며 도시 문명의 피로와 시의 유용함과 무용함, 쓸모없음과 쓸모 있음을 말한다. 마지막 3부 시인 산책은 유치환, 백석 등 시인을 찾아 떠난 문학기행을 담았다.


[상세 이미지]



<책 속으로>


P.36 아무 소용이 없는 시. “이런 걸 쓰면 밥이 나오냐 뭐가 나오냐고 타박받는 지경이야말로 나를 힘나게 한다. 이것이 운명이라면 다른 하고 싶었던 게 아무것도 없었던 게 운명이었을 것이다. 다른 무엇으로도 내 삶을 변명할 방도가 없었던 게 운명이었을 것이다.

 

P.38 시인은 언어를 빚는 재능을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변화를 감지하는 예민한 촉수를 가지고 태어난다. 철따라 반복되는 사소한 자연의 움직임도 시인에게는 크나큰 희열이거나 절망일 수 있다.

 

P.41 고통의 경험은 불청객처럼 느닷없이 찾아온다. 대부분 그것을 피하거나 그것으로부터 어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지만, 시인은 그것을 아주 귀하게 오신 손님처럼 붙들고 더 강한 고통을 내놓으라고 주문한다.

 

P.48 시는 고통을 관리하는 양식이다. 느닷없이 찾아온, 또한 오랫동안 동행한 고통의 등을 토닥이며 새로운 길 하나를 찾아가는 일이다. 고통을 추궁하고, 고통에 힘을 실어주고, 고통을 발가벗기고, 고통에 그럴듯한 옷 한 벌을 입혀주는 일이다.



최영철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말라간다 날아간다 흩어진다』 『돌돌』 『금정산을 보냈다』 『찔러본다』 『호루라기』 『그림자 호수』 『일광욕하는 가구』 외. 육필시선집 『엉겅퀴』, 성장소설 『어중씨 이야기』, 산문집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외. 백석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최계락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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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부터


최영철 지음 | 판 14,000

9788965455974 03810


산문집 『시로부터』는 30년 넘는 세월을 왕성하게 활동해온 시인이 시의 대변자가 되어 시와 시인에 대해, 시 쓰기에 대해, 시 과잉과 시 핍박에 대해, 시를 안고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가감 없이 써내려간 책이다. 







 



                                              시로부터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 새로운 인생ㅣ송태웅 지음ㅣ산지니ㅣ160쪽

 


▶ 고요에 잡아먹히지 않고
   함께 느긋해지고 함께 팽팽해지다


 

산지니시인선 열다섯 번째 시집 송태웅 시인의 『새로운 인생』이 출간되었다. 2003년 『바람이 그린 벽화』, 2015년 『파랑 또는 파란』 이어 세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외롭고 쓸쓸하고 그립고 비겁한 내면의 풍경을 과장과 꾸밈이 없이 담백하게 담았다. 시집을 내기까지 오랜 준비 기간과 좌절도 있었지만 시인은 좌초되지 않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다.

송태웅 시인은 담양, 광주, 제주, 순천을 돌아 지리산 구례에 터를 잡았다. 전원생활이라고 해서 마냥 편하지 않다.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혼자 사는 외로움과 자연이 준 고독함 속에서 삶의 무게를 오롯이 견뎌야 했다. 그 속에서 시 쓰는 일도 쉽지 않다. 


「시인의 말」에서 “언제부터인지 시가 괴로웠다 / 그건 네 옷이 아니니 벗어버리라고 / 연기암 오르는 길의 시누대들이 / 죽비처럼 등짝을 때려왔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시인은 삶의 무게에 주저앉지 않고 다시 “지금부터 살기 위하여” 시를 쓴다. 시인은 고요에 잡아먹히지 않고 느긋해졌다가 팽팽해졌다가를 반복하며 과거에 짊어진 인생의 상처를 돌아보면서 묵묵히 나아간다.

 

 

 

 

▶ 도약을 준비하는 시인의 「새로운 인생」

 

 

나는 당분간 일용노동자로 살기로 했다
내 등을 떠밀어 다오
서투른 몸동작으로

 

삽과 괭이와 해머와 철사와 커터 들을 다루는 나를
이제야 그들의 눈빛에서
체념과 순응의 본능을 읽을 줄 알게 된 나를
내 어머니에게 이런 나를 보여주고 싶다

 

새로운 인생을 향해
꿀꺽 침을 삼키는 나를

 

_「새로운 인생」부분

 

시인은 선언한다. “당분간 일용노동자로 살기로” 한 것이 바로 새로운 인생이라고. 비록 “서투른 몸동작”이지만, 그도 이제 “삽과 괭이와 해머와 철사와 커터 들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도구의 “체념과 순응의 본능을 읽을 줄 아는” 노동자가 된 것이다. “방 안에 웅크렸던 나라는 짐승”이 자신의 삶 속에 비로소 고요를 넘어서는 생동을 끌어들였다. 시인 스스로를 구원하는 시들로 읽는 이의 마음에도 생동감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 혼자 밥 먹는 날, 고독함에 대한 솔직한 고백


 

시집에는 유독 밥 짓는 내용의 시가 많다. “혼자만의 식사를 위해 이거 웬 짓인가 싶기도 했지만 / 간혹은 내가 내 스스로를 대접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메추리알 장아찌를 담그며」), “소고기를 볶아 미역국을 끓이고”(「새벽에 쓰는 시」) “일생의 저녁을 먹네”(「혼자 먹는 저녁」)처럼 시인이 혼자 밥 짓고 상 차리는 장면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혼자 먹는 밥상 풍경이 쓸쓸하고 애잔하기도 하지만 지극히 평범하기도 하다. 자연 속에 살든 도심에 살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에나 있는 장면이다. 때로는 내가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그런 타인을 훔쳐보기도 한다. 시인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고독에 대해 솔직하게 보여준다.

 

 

 

추천사


오월 광주에 있다가 살아남은 시인은 신산스런 삶을 짊어지고 절대 고독 속으로 투신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송태웅의 시들은 이 비극의 끝에서 자연 그리고 인간과 하나가 된 맑고 깊고 높은 경지를 내보이고 있다. 시인 스스로를 구원하고 있는 이 시들이 많은 사람들을 역시 구원하리라 확신한다. 고독하고 외로운 자만이 모든 것의 혈육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의 영혼이 될 수 있다고 노래하는, 지리산 같은 ‘지리산 고독 시인’이 여기 있다._나해철(시인)

  

 

저자소개

 

송태웅
1961년 전남 담양에서 출생하고 광주고와 전남대 국문과를 나왔다. 2000년 계간 『함께 가는 문학』 시 부문 신인상 수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바람이 그린 벽화』, 『파랑 또는 파란』 등이 있으며 이번 시집은 그의 세 번째 시집이다. 현재는 지리산 자락인 전남 구례에 거주하며 틈만 나면 지리산을 오르내리면서 지리산과 섬진강의 나날들을 구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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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 10점
송태웅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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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우리'라는 이름으로

- 황은덕 소설가 인터뷰

 

안녕하세요. 산지니 인턴 으나입니다. 오랜만에 겨울비가 내린 아침을 뒤로하고, 흐린 기운이 가실 무렵 저는 황은덕 작가님을 만났습니다. 작가님께서는 긴장감으로 굳어 있던 저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주셨는데요 덕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황은덕 작가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지금 바로, 그 대화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 환한 미소를 지어주시는 황은덕 작가님

 

 

# 질문 하나

 2009년 첫 소설집 『한국어 수업』 이후, 8년 만에 신간 『우리들, 킴』으로 독자와 만나시는 기분이 어떠신가요?

 - 우선 '부끄럽다.', '회한이 남는다.' 이 두 감정이 먼저 떠올랐어요. 소설가로서 조금 더 열심히, 성실하게 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반성을 많이 했죠.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다짐의 계기가 되었어요. 책을 묶는 게 그런 과정인 것 같아요. 반성을 하고 앞으로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도 하는 그런 계기요.

 

 

#질문 둘

 공백기 동안 어떤 활동을 하며 지내셨나요?

 - 지역에서 활동하는 소설가로 사는 게 참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사실 『우리들, 킴』을 8년 만에 내기는 했지만, 공백기라고 하기보다는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2009년에 첫 창작집을 내고 난 이후 지금까지 소설 청탁이 온 것을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는데, 모든 걸 소화하면서 책을 내는 데까지 이 정도 시간이 걸린 거죠. 물론, 어떤 작가들은 청탁 상관없이 열심히 써서 각종 문예지 투고를 한다든지 그렇게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 작가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청탁이 들어오면 습작하고 있던 것들을 다듬어서 작품으로 발표했죠. 1년에 한 편 정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셈인데, 이것도 다른 지역 작가에 비하면 운이 좋았던 편이죠.

 

 

#질문 셋

 200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을 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셨는지, 혹시 어릴 적부터 소설가를 꿈꾸셨나요?

 - 소설이나 시, 문학 하시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어릴 적에 '책 읽기'를 다들 즐겨하셨을 거예요. 물론 저도 그랬고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썼죠. 소설보다는 시에 더 관심이 많았고 또 많이 읽기도 했어요. 제가 전라남도 광주 출신인데 대학을 전남대로 진학했어요. 전남대에 문학 써클, 지금 말로 하면 문학 동아리가 딱 하나 있었어요. 이름이 '용봉 문학회'였는데 (전남대가 용봉동에 있어서 '용봉 문학회'라고 불렀어요.) 저는 거기에 가서도 시를 썼죠. 시를 쓰고, 시화전도 하고. 그때가 80년대였고 시가 강세인 시기였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계속 시를 썼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만 해도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등단을 하더라도 시로 등단을 하겠지, 생각했죠. 대학 졸업하고 바로 서울에서 방송작가 생활을 했어요. 5년 정도, 그러니까 항상 글을 쓰는 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대학 때 문학 동아리 활동을 주로 하긴 했지만 전공이 영문학이었어요. 서울 MBC 라디오 국에서 방송작가 일을 하면서 번역도 하고 멘트를 다 썼죠. 책 읽고 글을 쓰는 게 늘 일상적인 일이었어요. 미국에 8년 정도 체류하면서 공백이 있었죠. 그러니까 어릴 적부터 소설가를 꿈꿨다기보다 사실은 시인이 되고 싶었죠. 시인이 되려다 소설가가 된 거예요.

 

 소설가가 아니라 시인이 되셨어도 굉장히 잘 어울리셨을 것 같아요. 그럼 언제 '소설을 써봐야겠다.'라고 생각하셨나요?

- 제 생애 첫 소설은 대학교 4학년 때 나왔네요. 계속 시를 쓰다가 졸업 직전에 난생 처음 단편소설이라는 것을 썼어요. 그 이후로 방송작가 생활을 하면서 소설 쓰는 것을 잠시 접었죠. 방송작가를 하면서도 계속 시로 등단하고 싶었어요. 미국에서 8년간 지낸 후, 귀국을 앞두고 '이제 한국 가서 소설을 써 봐야겠다.'라고 그때 처음 생각했어요. 그게 98년이었죠. 제 등단작이 「한국어 수업」인데 그 소설 첫 문장이, 미국에서 귀국하기 직전에 노트에 써 둔 구절이었어요. '자 다시 한 번 따라해 보세요.' 이 문장이거든요. 아직도 그 문장이 적힌 노트를 들고 있어요. 98년도 여름에 부산에 와서 2000년에 등단을 했으니까 실질적으로는 1년 만에 소설로 등단한 거죠. 그러니까「한국어 수업」이 '소설을 써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쓴 첫 소설이고, 완성한 후에 9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투고했는데 이게 덜컥 당선이 되서 소설가가 된 거죠.

 

 그 당시 신춘문예에 당선되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한국어 수업」은 미국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라 제게는 일상적인 이야기 였거든요. 당선이 되고 나서 보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이야기가 굉장히 신선했나봐요. '나에게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이야기가 되는구나.' 라고 그때 처음 생각하게 됐죠.

 

 저도 작가님의 데뷔작「한국어 수업」을 읽어 보았습니다. 해외 입양아나 그 입양아들이 처한 사회 현실을 담아낸 작품이 그 이전에는 없다보니, 당시에는「한국어 수업」이라는 작품이 낯설기도 하고 굉장히 새로웠을 것 같습니다.

 

 

 #질문 넷

『우리들, 킴』 속 총 7편의 단편소설 중 절반 정도가 '입양', '미혼모' 등 한국 사회에서 민감한 사회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작가님의 담담한 어조가 오히려 한국 사회의 현실을 강조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쓰시는 과정에서 이러한 민감한 사회 문제를 다루시는 데 큰 어려움이 없으셨나요?

- 제가 비 입양인이잖아요, 비 입양인로서 입양 문제를 다루는 것에 대한 큰 심적 부담감이 있어요. 왜냐하면 내가 직접적으로 체험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죠. 저는 2000년 등단작  「한국어 수업」부터 입양인의 삶을 다뤘어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소설은 실제로 미국에서 한국어 강사 생활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인데, 제 수업에 한국 입양인 여학생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가 「한국어 수업」에 등장하는 크리스틴의 모델이죠. 그 이후로도 계속 입양인의 삶에 관심을 가져 왔어요. 그러다보니까 2000년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GOAL'이라는 단체에서 통역 자원봉사일을 몇 년 했어요. 입양에 관심이 있고, 등단작에서도 입양인들의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제가 현실적으로 도움이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말하자면 제가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들은 저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인 거예요. 그러니까 민감한 사회 문제라기보다는 제 주변에 이런 분들이 많기 때문에 저한테는 가까운 문제였던 거죠. 이게 막 민감한 소재구나라는 생각은 별로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럼 작가님께서는 자신의 이야기나, 가까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내셨다는 말씀이시네요.

- 그렇죠.

 

 

#질문 다섯

 실제로 미국 생활을 하시고 귀국 후에 입양 단체에서 일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경험들이 작품 창작에 영향을 끼쳤나요? 

- 엄청난 영향을 끼쳤죠. 소설 속 인물들도 물론 제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이긴 하지만 실제 경험에서 온 부분들이 많았어요. 실제로 부산에 계신 작가 분들 중에 몇몇 분은 10여 년 동안「한국어 수업」이 제 이야기인 줄 아시더라고요. "부모님 없이 어렵게 살았는데..."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제 이야기는 아니구요. 미국에서의 경험들이 소설 속 배경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거죠. 입양 단체에서 일을 했을 때는 가까이에서 직접 입양인을 만났고요.『우리들, 킴』에 등장하는 많은 입양인이 있는데 물론 이들의 모습이 현실과 백 퍼센트 맞지는 않지만 제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온 경우가 많죠. 미국 생활이나 입양 단체에서 일을 한 경험이 제가 소설을 쓰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어요.

 

 그렇군요.『우리들, 킴』을 읽으면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인물들의 상황이 굉장히 구체적으로 설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이는 작가님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주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질문 여섯

『우리들, 킴』의 첫 문을 여는 단편「엄마들」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습니다. 마치 시의 수미상관 형식처럼 '입양은 기쁨입니다.'라는 플랜카드의 문구로 소설이 시작되고 끝을 맺는데요. '나'가 아이를 보내고 '가슴이 아렸다.'라는 부분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이 상황에서 플랜카드의 문구가 참 이질적으로 느껴졌는데요, 소설 속 '나'의 상황과는 별개로 '입양은 기쁨입니다.'라는 이 문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입양은 기쁨일까요?

- 소설 속 '나'의 상황에서 본다면 입양은 기쁨이 아니라, 현실에서 다른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몰리는 경우죠. 소설 속 '나'의 상황과 별개로 이 문구에 대해 생각했을 때는 일단 국내입양, 국외입양 두 가지 측면으로 살펴 봐야 할 것 같아요. 'GOAL(해외입양인연대)' ,'뿌리의 집(해외입양인보호 비영리민간인단체)', 'TRACK(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 모임)' 입양인 권익단체들의 입장을 보면, 해외입양을 반대하고 있거든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입양 활동가이자 작가인 'TRACK'의 대표 정 트렌카 씨(정경아 씨)가 <한겨레 21>에 기고를 한 게 있어요. 중심 주제가 '아기 살 돈으로 친엄마를 지원하라.' 인데요. 이 말을 지금 누구한테 하고 있냐면 해외 입양 부모들에게 하고 있어요.「우리들, 킴」을 보면 해외에서 입양 부모가 아이를 입양할 때 지불해야 할 돈이 나오잖아요. 그렇게 입양을 하지 말고 차라리 고국에서 친엄마들이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지원을 하라는 의미죠. 입양인 당사자들이 계속해서 이런 목소리를 내고 있었던 거예요. 친가족, 친모, 친부가 아이를 스스로 키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나가자는 의미인거죠. 더 나은 복지라든지... 예전보다 상황은 좋아지고 있어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미혼모나 한부모가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긴 하지만요. 결론적으로 입양은 기쁨이 아니죠.

 

 '입양은 기쁨입니다.'라는 표현은 오히려 역설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그렇죠.

 

 

#질문 일곱

「우리들, 킴」 속 마지막 부분에서 '더 나쁜 경우가 될수도 있었어.'라는 문장이 인상 깊습니다. 입양이라는 상황에서 더 이상 나쁜 경우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소설 결말부에서 이 문자잉 가진 의미는 무엇일까요? 특별히 이 문장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으신 것이 있으셨나요?

- '더 나쁜 경우가 될수도 있었어.' 라는 말은 입양인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위로하면서 하는 말이죠. 수록작 「글로리아」에서는 이 문장에서 말하는 더 나쁜 경우가 실제로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이 말 자체가 굉장히 양날의 검 같은 말인데 입양인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 예를 들어서 입양 부모의 경우 입양아를 학대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입양 부모가 아이한테 이 말을 쓴다는 거죠. '내가 너를 구원했어. 내가 널 입양하지 않았더라면 더 나쁜 상황에 직면했을 거야.' 라는 식으로요. 누가 이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 같아요. 입양인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역설적인 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의 말씀을 듣고,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더 나쁜 경우가 될수도 있었어.'라는 말을 듣는 해외 입양인의 입장인에서 생각해보면, 그들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자체가 이미 나쁜 상황일수도 있을 텐데, 이런 말로서 그들의 삶 자체를 수긍해버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우리가 보통 비 입양인으로서 입양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굉장히 극단적이에요. 하나는 아주 유명한 입양 성공 사례가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아주 비극적인 사례가 있어요.  최근까지도 해외 입양아들이 한국에 와서 고독사를 하고 자살을 하는 경우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죠. 하지만 우리가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뭐냐면, 이 극단적인 두 사례들의 가운데에서 정말 평범하게 살아가는 입양인이 많다는 거예요. 제 주변에도 이런 분들이 많고요. 물론 그런 분들이 치명적인 트라우마는 가지고 있죠. '버려진 아이' 라는... 이건 결코 가려져선 안 되는 거죠.

 

#질문 여덟

 「글로리아」를 읽고 마지막 각주를 살펴보다, 이 소설이 2006년 미 플로리다 주에서 발생한 한 사건을 모티브로 창작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몰랐던 부분이라 충격이 컸는데요, 기존에 발생했던 사건을 창작 배경으로 삼으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시지 않을까 합니다.

 - 2006년에 실제로 미 플로리다 주에서 일어났던 사건인데, 이 당시에 제가 미국에 있었어요. 2005년에서 2006년까지 잠깐 미국에 체류를 했었는데 그때 신문에서 이 사건을 접했죠.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미국 사회에서도 큰 이슈였어요. 언론에서도 계속 보도가 되었고요. 정말 아주 비극적인 케이스죠. 이 사건이 아직까지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어요. 입양인 멜린다 더캣과 그녀의 아이 트랜튼 더캣의 이야기. 아직도 아이는 실종 상태고, 당시 범인으로 멜린다 더캣이 제 1용의자로 지목 됐었죠. 근데 이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미국 언론이 21살 한국인 출신 입양아 멜린다 더캣을 마녀사냥으로 확 몰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글로리아」를 보면 CNN 방송국에서 주인공을 인터뷰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도 거의 실제 있었던 일을 활용해서 썼죠. 제가 미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심한 인종차별이 존재하거든요. 해외 입양이 나쁜 이유 중에 하나가 특히, 인종 간 입양이 이루어질 경우 백인 사회에서 노란 피부의 아이가 혼자 살아가야한다는 거죠. 얼마나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겠어요. 누구나 이 아이가 입양인이라는 것을 아는 거죠.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 입양아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이 사건의 핵심인데 결국은 이런 편견들이 멜린다 더캣을 자살로 내몬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이 사건 이후 입양인 권익단체에서 한 입양인이 인터뷰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멜린다 더캣이 다른 입양인과 같이 있었다면, 다른 입양인들과 연대를 했다면 그렇게 혼자 죽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우리들, 킴」에서 입양인들이 서로 돕고 연대하는 모습을 그렸다면,「글로리아」를 통해서는 연대 없이는 이런 비극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했어요.

 

 연대 너머의 다른 모습에 집중해서 「글로리아」를 쓰신 거네요?

 - 그렇죠. 가장 비극적인 경우인거죠.

 

 

#질문 아홉

『우리들, 킴』 속에는 '입양'과 '미혼모'에 대한 내용 이외에도 남녀 간의 사랑 혹은 우정을 표현한「불안은 영혼을,」과 「환대」와 같은 단편도 수록되어 있는데요 특히「환대」에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진숙 그리고 은희의 관계가 인상 깊습니다. 두 인물의 경우 친구 사이지만 친구 이상의 유대감을 나누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그런 사이라고 해야 할까요? 은희의 남편, 진숙의 오빠처럼 주인공에게 상처를 주는 대상이 남성이고 비슷한 상처를 가진 여성들이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 이러한 인물 관계를 설정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 사실 「환대」는 진숙과 은희가 서로 서로를 환대하는 내용이에요. 비록 한 친구는 정신병원에 있고 한 친구도 바깥 사회에서 생활하지만 행복하지 못한 상황이죠. 제한된 공간, 면회실 같은 곳에서 밖에서 사온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고 산책하는 이 정도의 만남이지만 서로에게 엄청난 위안을 주는 사이죠. 사실 이러한 과정은 우정에 관한 이야기인 거예요. 엄청난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상처가 사회적인 시스템 안에서 남성들의 권력으로 인해 비롯되었다는 점이 이 두 인물의 공통점이죠. 이걸 연대라고 말한다면 정말 힘없고 나약한 연대죠. 끊어질 듯 너무나 가느다란 연대긴 하지만, 삶의 순간들을 시간이나 양으로는 볼 수 없잖아요. 어떤 한 순간이 평생을 위로하는 순간이 될 수도 있죠.「환대」를 통해서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우리들, 킴』을 보고 계시는 황은덕 작가님

 

 

# 질문 열 

 작가님의 소설을 보면 주인공이 거의 여성인 경우가 많은데 이 부분에 대해 특별한 이유가 있으시다면요? 소설을 쓰실 때 좀 더 몰입하기 위함이신가요?  

- 다른 작가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소설을 쓰면서 뭘 쓸까라는 고민을 할 때, 가장 먼저 나에게 절실한 것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관심이 있고, 나에게 가장 절실한 것. 저에게는 이런 이야기들이 가장 절실했던 거죠. 이 소설집에서 남성이 나오는 부분은 「불안은 영혼을,」 에서 정수라는 인물이 나오고, 그 외의 다른 단편들에서는 주인공이 다 여성인데요, 제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쓰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당분간은 아마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쓸 것 같아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완전히 여성, 남성으로 가를 수는 없잖아요. 같이 살아야 하니까. 제가 남성에 대해 더 이해하게 되면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쓸 것 같아요. 아직 남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못 쓰는 이유가 가장 크죠. 잘 아는 것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쓰는 사람이 몰입하는 것, 내가 쓰고 싶은 것을 먼저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질문 열하나

 사람의 이름과도 같은 소설의 제목, 이 제목이 주는 힘이 한 편의 소설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우리들, 킴』도 제목 자체가 주는 힘과 분위기가 있는데요, '우리'라는 범주와 '킴'이라는 단어 자체가 새로운 느낌을 줍니다. 혹시 '우리들, 킴'이라는 제목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요?

- 단편 「우리들, 킴」은 복수화자가 주인공이죠. '우리'가 주인공인 거예요. 소설 내에 화자가 나오는데 '비서 킴'도 아니고 '화가 킴'도 아닌 '킴들' 중에 한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자연스럽게 많은 킴들 중에 한 명이 화자인거죠. 킴 중에 한 명이 자기의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킴의 이야기를 하는 구조인데, 여기서 킴은 해외 입양인을 상징하는 보통명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입양인들은 서로서로 아낌없이 돕거든요, 저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요. 사람들이 연대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2년에 '입양특례법'이 개정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입양 권익단체들의 힘이 굉장히 컸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이 연대의 힘을 「우리들, 킴」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우리들, 킴」이 표제작인 된 이유도 이 연대의 힘을 조금 더 집중해서 표현하기 위함이신가요?

 - 그렇죠, 「우리들, 킴」을 제외한 다른 단편들은 입양을 전후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요. 「엄마들」같은 경우에는 미혼모 이야기를 담고 있고 이 과정에서 입양아가 발생하기도 하고요. 「글로리아」도 마찬가지고, 「해변의 여인」은 입양인을 둔 큰엄마의 이야기잖아요. 「열한 번째 아이」도 결국 아이 양육에 대한 문제고, 「불안은 영혼을,」과 「환대」는 여성이 굉장히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말하고 있죠. 이 소설집 전체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이야기가 바로 「우리들, 킴」인거죠.

 

 

#질문 열둘

 소설 속에서 주로 다루셨던 '입양'이나 '미혼모' 와 같은 이런 사회적 사안에 대해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요?

 - 요즘은 미혼모라는 표현보다 '한부모가정'이라고 하죠. 사실, 입양 자체를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서 미혼모나 미혼부가 아이를 충분히 키우며 살아갈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나가야하죠. 지원정책 같은 경제적인 여건이 탄탄하게 형성되어야 하고, 또 '입양'과 '한부모가정'을 바라보는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시선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혼을 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아 충분히 잘 양육할 수 있다.' 라는 인식의 개선이 필요해요. 사회적인 낙인을 없애야 하는 거죠. 더디기는 하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가정 밖으로 끌어내서 공론화하는 게 시작인 것 같아요. 다 쉬쉬하고, 덮고 그들을 그늘에서 살아가게 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거죠. 오늘 우리가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중에 하나예요.

 

#질문 열셋

 황은덕 작가님에게 '소설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 『우리들, 킴』 작가의 말에 '소설을 쓰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썼는데,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요즘 소설이 영상이라든지 미디어, 웹, 웹툰 등에 밀리면서 그 힘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에요. 문학이 주는 힘도 예전보다 많이 약해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쓰면서 항상 '어떻게 살아야하지' 라는 삶의 방식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소설이 삶의 방향성을 많이 가르쳐주는 것 같아요. 앞으로 더 열심히 써야겠죠.

 

#질문 열넷

 마지막 질문입니다. 저도 작가님처럼 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싶은 문청들 중에 한 명인데요, 소설가(혹은 작가)처럼 글을 쓰고자 하는 문청(문학을 하는 청년)에게 전하고 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 이 시대의 문청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가장 어려운 질문 같아요. 참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는구나, 돈도 안 되는 길을 가려고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죠. 제가 문학을 시작했던 80년대에는 문학이 사회를 바꿀 수 있고, 사람들에게 의식의 전환점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그 역할을 영화나 다른 미디어들과 나누고 있는데 특히, 그 속에서 문학은 입지가 좁아진 상태죠. 그렇지만 아직까지 문학만이 가지고 있는 힘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아요.

 

 ▲ 책에 정성스레 사인을 해주시는 황은덕 작가님.

처음에 이름을 물어보시곤 "이름 뒤에 뭐라고 쓰면 좋을까요?"라고 물어보셨다.

 

 

 

『우리들, 킴』을 통해 황은덕 작가님을 만나 본 인터뷰, 끝까지 잘 읽어 주셨나요? 작가님을 만나 뵙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저 역시도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품 속에 묻어 있던 작가님의 따뜻한 마음과 대상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실제로 만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영광이었습니다. '한 작품은 작가 그 자신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만난 『우리들, 킴』은 황은덕 작가님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많이 부족하고 어리숙했지만 질문 하나하나 귀 기울여주시고 답변해주신 황은덕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 작가와의 만남이 있기까지 도움을 주신 산지니 출판사 가족 여러분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행복하고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들, 킴 - 10점
황은덕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윤현주 선생님의 시집 『맨발의 기억력』에 대한

부산일보 기사가 나왔습니다!

정말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시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었는데요,

가을의 들머리에 읽기 좋은 시집입니다^^

 

***

 

 

'나는 노쇠한 개, 이빨은 파뿌리처럼 뽑혔고/야성은 서리 맞은 들풀이오/어둠마저 빨려 들던 눈의 광채는 어둠에 갇혀 버렸고/십 리 밖 악취를 낚아채던 후각은 권력의 향기에만 민감하오'('기자들')
 
현직 언론인인 윤현주 시인이 시 68편을 묶어 시집 <맨발의 기억력>(사진·산지니)을 펴냈다. 시집은 기자이자 시인의 삶에서 빚어진 고뇌의 응축물이었다.

 

(중략)

 

기자로서 사회 부조리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은 여전하다. 홀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지하철에 치여 세상을 떠난 청년('젖은 눈망울'), 죽음조차 뉴스로 바라봐야 하는 상황('사회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재개발의 허상('포크레인'), 불경기('경기 동향에 대한 보고서') 등에서 사회 부조리를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한편 윤 시인은 오는 21일 오후 7시 부산 서면 굴다리(부산진구 서면문화로 49-2)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진다. 

 

윤여진 기자

 

부산일보

 

기사 전문 읽기

Posted by 비회원

 

 

지난 11월 25일(금) 부산 국제신문 중강당(4층)에서

제16회 최계락문학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최계락문학상

최계락 시인은 아름다운 시와 정겨운 동시를 남긴 정갈한 시인의 표상이었습니다. 그는 소박하고 남다른 애틋한 감성적 언어로 일상 속의 인간의 삶과 꿈을 실어 노래했습니다.

1950년대 혼란기를 겪으면서도 향토색 깉은 작품으로 시의 순수성을 추구했던 시인의 순결한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사)최계락문학상재단은 2000년, '최계락문학상'을 제정하여 국제신문과 공동으로 시상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번 최계락문학상은

시집 『다다』를 집필하신 서규정 시인이 수상했습니다.

 

서규정 시인

1949년 전북 완주 출생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는 『참 잘 익은 무릎』, 『그러니까 비는, 객지에서 먼저 젖는다』. 『다다』 등이 있다. 

 

● 제16회 최계락문학상 '다다'의 서규정…농익은 삶 밀도있게 묘사(국제신문)

 

 

 

 

올 5월에 출간한 서규정 시집 『다다』는,

 

현실과 정치에 대한 비판적 시선,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를

투박하지만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다른 시인들이 좀처럼 ‘문학’에 포함시키려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적극적으로 시화”(고봉준, 해설)하는 편인데,

낮은 자세로 우리 삶 구석구석을 헤집으며

서정적으로 풀어내는 시어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 투박한데 따뜻하다…서규정 시인 신작 '다다' (국제신문)

● 삶 팍팍해도… 세상 보는 눈 매섭네(부산일보)

 

▲ 제16회 최계락문학상 심사위원 구모룡 문학평론가

 

 

구모룡 평론가는

"서정적 추상을 경계하면서

시적 발화와 시어의 밀도를 따져

서규정의 시집 『다다』를 선정"

했다고 심사 소감을 밝혔습니다. 

 

또한

"작고 미천하고 버려진 것들의 실존에 동참하는 시인은

 안으로부터 열려 그 외부와 화해하는

서정적 신체를 매우 건강하게 노래하고 있다.

바닥과 허공을 한데 두고

사유하는 그의 시적행보에 거는 기대가 크다"

고 덧붙였습니다.  

 

▲ 서규정 시인의 수상 모습입니다.

 

 

이쯤에서 시집 『다다』에 수록된 작품을 만나보고 가야겠죠?

 

 

낙화

 

만개한 벚꽃 한 송이 오 분만 바라보다 죽어도

헛것을 산 것은 아니라네

 

가슴 밑바닥으로 부터, 모심이 있었고

 

추억과 미래라는 느낌 사이

어느 지점에 머물어 있었다는 그 이유 하나로도 너무 가뿐한

 

 

盤松洞

 

인구 십만 명 이상이 사는 반송동엔

결혼식장이 없다네

그러니 청년들아

어찌 저지 연애를 하다

두둥실 아이를 배

급히 교회당을 빌려 예식을 마치고

첫날밤도 아닌 그 밤에

와인 몇 잔 마신 신부가 핑 돌아

사실은 처녀가 아니었다고 고배을 해도, 무조건 받아들여라

뜨고 지는 이치는 같은 것이고

곧 동백꽃이 진다

결혼식장보다 공동묘지가 가까운

우리 동네에선 그 첫, 이라는 말을 별로 따지지 않는다

 

다만, 첫 죽음들을 묻을 뿐이다

 

 

▲ 수상 소감을 전하는 서규정 시인

 

 

▲ 시상식에서 단체사진이 빠질 수 없겠죠?!

 

 

"엉뚱한 장인정신을 가진 이들에 의해 세상은 바뀔 수 있다 "

는 시인의 말처럼

앞으로도 꾸준히 세상과 만나게 될

서규정 시인의 작품들을 기대해봅니다.

 

다시 한번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다다 - 10점
서규정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이제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됐죠?

 

오늘은 날이 개였지만,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내리더군요.

 

이런 궂은 날씨에도 부산 대표 문인들이 산지니에 모였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바로바로 5·7문학 2호 편집회의!!"

 

 

편집인 조갑상 선생님을 비롯하여

 

편집위원 강동수, 정훈,  박향, 최영철, 구모룡(주간) 선생님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가 진행됐습니다.

 

 

편집회의는

 

1. <5·7문학 무크1 : 다시 지역이다> 출간 이후 경과 보고

 

2. 반 연간지 형태의 잡지 <5·7문학 2호> 구성

 

3. 8월 문학 행사 구성

 

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날 회의에서 계속해서 강조되었던 것은,

 

'작품을 중요하게 생각하자'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하자'

 

라는 부분이었는데요,

문학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더 나아가 지역문학의 활력을 살릴 수 있는

작은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 )

 

 

 

* <5·7문학 무크 1 : 다시 지역이다> 책 소개  

들여다보고 느낄수록 선명해지는 '로컬':: 다시 지역이다: 5·7문학 무크 1

 

* [5·7문학 창간 기념회]

부산 문학계의 '사건'이 일어나다 :: 5·7문학 무크 창간 기념회

 

* [언론스크랩]

'5·7 정신'(요산 김정한 주도 문인단체)으로 지역문학에 활력 불어넣는다 (국제신문)

30여년 만에 부활한 부산 진보문학 열정 (부산일보)

 

 

다시 지역이다 - 10점
5.7문학 편집위원 엮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밥벌이는 밥의 罰이다.
내 저 향기로운 냄새를 탐닉한 죄
내 저 풍요로운 포만감을 누린 죄
내 새끼에게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이겠다고
내 밥상에 한 접시의 찬이라도 더 올려놓겠다고
눈알을 부릅뜨고 새벽같이 일어나
사랑과 평화보다도 꿈과 이상보다도
몸뚱아리를 위해 더 종종거린 죄
몸뚱아리를 위해 더 싹싹 꼬리 친 죄 
내 밥에 대한 저 엄중한 추궁 
밥벌이는 내 밥의 罰이다. 

시집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산지니) 中

세상이 나에게 다그쳐 묻습니다. 젊은 시절 품었던 꿈과 이상은 어찌한 채 밥벌이하느라 그렇게 바쁘냐고. 사랑과 평화를 노래했던 너의 과거는 모두 거짓이었냐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다만 그 대가로 내려진 벌을 받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집을 나섭니다. 세상의 수많은 가장이 자식 입에 밥 한 숟가락을 넣기 위해 ‘밥벌(罰)’을 달게 받습니다. 

양병훈 | 한국경제신문 | 2016-05-02

원문 읽기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 10점
성선경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지난 4월 20일(수) 제72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번 저자와의 만남은 성선경 시집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로 꾸며졌는데요, 

시만큼 위트가 넘치는 성선경 선생님의 입담으로

한 시간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저자이신 성선경 시인과 최학림 부산일보 논설위원의 대담으로

진행된 이날의 행사는 시 속에 들어 있는 의미와

그 의미를 통해 시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날 이야기한 여러 시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몇 편을 옮겨 볼까하는데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분들도 시의 의미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성선경 (이하 성) : 먼저 제목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라는 제목에서 '명태'는 '명예 퇴직'이라는 의미가 겹쳐지도록 만든 말입니다. 그리고 '조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는 왠지 말이 안되잖아요. 명태 씨 정도 됐으면 느긋느긋 일어나서 '석간신문'을 읽어줘야 폼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웃음)  사실 저는 올해 명예퇴직을 했습니다. 제가 꿈에도 그리던 전업 작가가 되어 정말 기쁩니다. 저는 큰 꿈을 꾸지 않아요. 소박한 꿈, 누군가 들어줄 것만 같은 그런 꿈만 꾸는데요. 명예 퇴직을 하고난 뒤에 제가 하는 일이 화분에 물 주는 일입니다. 아주 즐겁게 하고 있는 일이죠. (웃음)

 

아들과 함께 화분에 물 주기

 

세상에서 제일 큰 소리는 우리 귀에 들리지 않지만

세상에서 제일 사소한 일은 화분에 물 주기

그저 시간이 나면 관심을 가지는 척

물 조루를 들고 어디 새잎이 났는지

어디 마른 잎사귀는 없는지 살펴보는 일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서

내가 하는 일 가운데 가장 귀한 일이

화분에 물 주는 일 바싹 마른 화분에 물 조루를 들고

해봤자 표 나지 않는 일에 진지하게

시간을 내는 일 화분에 물 주는 일

세상에서 제일 큰 소리도 우리 귀에 들리지 않지만

세상에서 제일 귀한 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일

누가 봐도 그저 그런 사소한 일

해봤자 표 나지 않는 일 화분에 물 주는 일

아들과 둘이서 무슨 대화를 나누나 싶게

그저 시간이 나서 마주 않아 차 한잔 마시듯

아무 말도 없이 물 조루를 들고 서성거리는 일

세상에 제일 중요한 대화는 말로 하는 게 아니지

그저 눈빛으로만

너도 여기 좀 봐!

응 새잎이 났네!

고개를 끄덕끄덕 다시 화분을 옮기고

물 조루를 들고 해봤자 표 나지 않는 일에

진지하게 시간을 내는 일 화분에 물 주는 일

아들과 함께 화분에 물 주는 일

세상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귀한 일

 

 

최학림 (이하 최) : 이 시를 읽으면 정말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 것 아닌 것의 대단함. 우리가 살면서 도달해야 하는 지점이 이런 생활 속의 어떤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감사합니다. (웃음) 옆에 있는 최학림 기자는 오래된 벗입니다. 여름방학, 겨울방학 이렇게 일년에 두 번 꼭 부산에 와서 술을 먹고 가곤 하는데 그때마다 늘 최학림 기자와 함께 했어요. 그런 인연으로 이번 시집의 뒷표지에 표4를 적어주셨는데요. 이 표4가 참 재밌습니다.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둘러앉은 사람들 모두가 순간적으로 말이 없어지는 진공상태를 '천사가 지나가는 순간'이라고 한다. 이제 명태 씨의 이야기들을 알게 된 내 앞에서는 천사가 함부로 지나가지 못하리라. 일찍이 김종삼은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말했지만 우리는 명태 씨에게서 '내용 있는 구수함'을 맛본다. 골계와 해학의 입담! 거기에 구성진 리듬과 가락이 있다. 이야기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흥겹게 놀고 있다."

 

  : 저는 이 시집의 앞부분은 인생에 대해 허허롭게 이야기하는 원숙한 시들란 생각을 했고, 시집 제3부의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와 들어가노' 이후, 뒷편의 시들은 좀 재밌는 시들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재미삼아 하는 농담이나 잡설까지도 포함하여 시를 쓰고 있는데요, 과연 이런 것들이 생을 통찰하는 시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묻고 싶습니다. 

 

: 저는 지금까지 너무 진지하게만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흔히 야구를 잘하려면 어깨에 힘을 빼라고 하죠? 시도 마찬가지로 힘을 빼야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쳤을 때가 기억납니다. 그때는 가난한 집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는 것은 참 벅찬 일이었죠. 그래서 졸업식이 끝난 뒤 새우깡에 소주를 막 마셨어요. 그 다음날 그 모습을 모두 본 삼촌이 저희를 불러서 어제는 왜 그랬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졸업식이 끝나서 그랬다고 변명을 하다가 친구 중에는 교복을 찢다가 상처난 애도 있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삼촌께서 '갸 가죽은 안 버렸나?'라고 하시더라고요. 사람에게 난 상처를 '가죽을 버리다'라고 이야기하신 거죠. 그 위트, 꾸중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날의 위트 있는 한 마디가 더 깊게 제 마음 속에 남아 있어요. 시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시에 대한 진지한 생각들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는 한 방법이라 생각해요.

 

: 이번 시집에서는 풀어해치고 허허롭게,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가 되냐고 물었고, 이것이 시가 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바로 이 시점이 성선경 시인이 와 있는 지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돈은 늘 남의 말을 하고

 

거북이가 아주 급한 걸음으로

급한 걸음으로 엉금엉금 기는데

이를 보는 사자가 하 기가 차서

심술궂게 한 말씀 하시는데

"너! 토끼와 경주에서 또 졌다며"

옆으로 와 다정히도 놀리는데

거북이는 만사 귀찮다는 듯이

아주 급한 걸음으로 엉금엉금 기는데

사자는 따라오며 또 놀리는데

다정하게 붙어서 놀리는데

"야! 너 가방이나 벗고 뛰지 그랬니?"

아주 다정히도 놀리는데

거북이는 너무 화가 나서

그 자리에 멈춰

척 허리 버팀을 하고

거기 사자를 보고 한 말씀 하시는데

"야! 이년아 머리나 좀 묶고 다니지?"

한 말씀 던지고 뒤도 안 보고 가는데

엉금엉금 빨리도 가는데

이를 보고 사자가 하 기가 차서

"야! 너 정말 가방 안 벗을 거냐?"

심술궂게 또 딴죽을 거는데

거북이는 제 갈 길이나 꾸벅꾸벅 가면서

"미친년! 머리나 좀 묶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꾸벅꾸벅 가면서

엉금엉금 꾸벅꾸벅 가면서

혼잣말로 중얼중얼 엉금엉금.

 

: '사돈은 늘 남의 말을 하고' 이 시를 보면 이번 성선경 시집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 언어유희, 말장난 말놀이를 참 많이 했는데요. 말장난의 범위가 단순히 낱말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 구조 전체로 넓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말놀이가 한 구절에 국한될 필요가 있느냐는 거죠. 전체가 장난이 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우리가 더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서의 말씀도 우리를 감동시키지만 더 오랫동안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은 이솝 우화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꼭 기억되어야 할 진리는 떠도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은 친구들과 농담하다가, 술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시를 만들어 보았는데... 다른 분들도 재밌었으면 좋겠습니다.

 

: 그렇다면 시의 힘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여쭤보고 싶네요.

 

: 제가 마산에 사는데요. 어느 날 길을 지나가다가 어느 노조에서 써 붙인 것같은 플랜카드를 봤어요. 임금 인상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시급이 몇 십원 정도였나봐요. 그래서 표어처럼 떡 하니 붙여놨는데 "10원도 돈이냐 쭈쭈바도 100원이다"라고 돼 있는 거예요. 이야, 엄청 감동적이었어요. 임금 인상 백 번 이야기하는 것 보다 저 문구 하나가 더 강력하게 와 닿더라고요. 급할수록 에둘러 가라는 말이 있죠. 에둘러 가는 것, 그것이 문학이 아닐까 싶어요. 시는 무기가 될 수도 혁명이 될 수도 없지만, 시가 힘이 될 수 있는 것은 에둘러 가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는 원형을 만들어 가는 작업이라 생각해요. 제 세 번째 시집이 <서른 살의 박봉 씨>인데 서른 살 하면 뭐가 떠오를까요? 저는 '박봉'이 떠올랐어요. 나이가 60이 다 되어 가는 사람은 뭐가 떠오르겠습니까. 명예 퇴직, 즉 '명태 씨'죠. 그런 식으로 하나의 원형을 만들자는 꿈을 가지고 장난을 친 것입니다. 

 

: 그런 것 같네요. 그래도 이것은 지적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재밌는 말을 가지고 부려 먹는 것과 그 속에 내가 있는 것, 강인한 시대적 배경이 있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염두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속담, 격언들은 늘 서사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이 시대와 맞아 떨어질 때 통쾌함을 느낄 수 있죠.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것 중에 재밌는 사실 하나는 아이들에게 제가 무엇을 가르쳤는지는 남아 있지 않아요. 하지만 수업 시간에 제가 농담한 것은 다 기억하더라고요. 실질적으로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눈 파는 것'인 것 같아요. 일탈, 이것이 삶에서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성선경 시인의 태도는 이런 것 같습니다. 삶은 누추할지 모르지만 그 장면이 언어로 통과되면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인생의 여러 국면들이 있는데 이것을 말로서 건들일 수 있는 것이 생의 절정이 있는 것이라 표현하는 것 같아요. 성선경 시인은 언어에 대해 굉장히 각별한 마음이 가진 것 같습니다.

 

 : 명명되고, 이름 불리어지는 것, 그것은 참 특별한 힘을 가진 것 같습니다. 제가 늘 책을 내면 어머님께 한 권씩 전해드리는데 어머니는 늘 한 쪽에 밀어두시더라고요. 그러다 제가 산문집을 하나 냈을 때였어요. 산문집 속에 어머니 이야기도 있고 해서 책의 맨 앞에 어머님의 성함을 정성껏 적어서 드렸어요. 다른 책은 다 던져버리시는데 이 산문집은 화장대 위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더라고요.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의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예정된 시간이 되자 성선경 선생님께서

 "자! 이제 술 먹으러 갑시다"

라고 하시며 웃음으로 제72회 저자와의 만남을

마무리 지어 주셨습니다.

 

시를 보며 웃고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멀리 마산에서 와 주신 성선경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이날 대담을 이끌어 주신 최학림 부산일보 논설위원을 비롯하여

참가해주신 모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소박하고,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

 

그럼 산지니 제73회 저자와의 만남에서 또 뵙겠습니다.

다음은 누구일까요? (두둥!)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 10점
성선경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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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였죠?

3월 23일(화) 제71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번의 책은 산지니 시인선 열두 번째 작품인 신정민 시집 『나이지리아의 모자』였는데요,

저자 신정민 시인과 문학평론가 구모룡 선생님의 대담으로 진행됐습니다.

 

 

오늘 행사의 포문을 열어주신 잠홍 편집자님!

『나이지리아의 모자』 중에서 <좋아한다는 말>을 읽고 식곤증을 이겨내셨다는데요.

'좋아한다'는 말이 '전어를 죽이고, 회 한 접시를 만들어낸다'라는 시를 보면서

제목과는 또 다른 반전이 숨어있는 시집이라고 이야기해주셨어요.

 

 

사실 이 날의 행사는 시인과 문학평론가의 '대담'이라기 보다

함께 시를 읽고, 시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혹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여러 편의 시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 중 기억에 남는(저의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으로~) 

시와 이야기들을 옮겨볼까 합니다.

 

<색깔빙고>

 

무지개의 본질은 흑백이므로

 

회색분자들이여

무지개를 그려보자

 

그림자가 우리를 속일 수 있게

 

옷장을 열어보자

새빨간 거짓말 코트를 입어보자

말만 번지르르한 헛소리 흰색으로 칠해보자

 

알래스카의 무지개는 삼원색으로

아프리타 인디언의 무지개는 스물하나 크레용으로

 

검은색은 현상일 뿐

검은 것 아닌 검은색 가까이 다가가 보자

 

가다 만난 회색으로

흰 것 아닌 흰색 멀리 도망쳐보자

도망치다 만난 무지개를 그려보자

 

모든 색을 다 쥐고 있는 태양

 

바다가 갖지 못한 푸른색으로

빨간색만 빼고 나머지 색을 다 감춰버린 원숭이 엉덩이로

익어버린 망고가 내놓지 않은 노란색으로

 

싸우는 자들의 본색이 드러나게

흉내 낼 수 없는 흑과 백 사이의 일탈을

 

구모룡 문학평론가(이하 구) : 눈으로 본다는 것은 문화입니다. 부시맨은 모래를 오십 가지를 구분하는데 호주사람들에게 모래는 딱 한 가지 밖에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것밖에 보지 않았다는 거거든요. 우리가 보는 눈이라는 감각이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색깔빙고>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신정민 선생의 시를 보면 우리가 보는 것이 진실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이 시를 쓰실때 어떻게 착상을 했습니까?

 

신정민 시인(이하 신) : 우리는 보통 흰 것 아니면 검은 것으로 이분을 하잖아요. 이분된 것 안에는 수만 가지의 또다른 것들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굉장히 복잡미묘한 무언가가 있을텐데, 우리는 그저 너는 너고 나는 나로 넘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회색분자여서 검정도 흰 것도 아닌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는데, 아프리카 무지개가 24가지 색이라는 거예요. 저는 무지개가 12가지라고 생각했는데, 색과 색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다른 색이 존재하는 거죠.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시는 그러한 지점에서 시작한 시입니다.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시가 될 것 같지 않아서 빙고게임을 가지고 왔어요. 같은 색이 되어야 빙고!를 외칠 수 있는 게임인데, 이 시에서는 빙고가 되지 못하는 색깔빙고가 되겠네요.

 

: 시를 쓰실 때 어떤 방식으로 쓰시는지요? 예컨데 제목을 나중에 쓴다던가 한 문장 한 문장 고심을 해서 글로 옮긴다던가.

 

: 저는 생각은 오래하고, 쓰기 시작하면 득달같이 쓰는 타입이에요. <색깔빙고>도 평소에 했던 제 생각들이 불쑥 나온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 참 재밌는 착상이고, 재밌는 시네요. 우리는 빙고라고 외칠 수 없는데 빙고라고 외치고 있진 않나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방추상회>*

 

내 머릿속에는 얼굴을 지워주는 가게가 있다

 

배꼽 근처의 타투를 지우듯

당신이 누구였는지 알아볼 수 없게

생전 처음 보는 얼굴로 바꿔주는 곳

 

놀러오세요

구경만 하고 가셔도 됩니다

불편한 호객 따위 하지 않는 곳

 

그래서 나는 언제나 당신을 처음 보고

 

두부 대신 사 온 커다란 양배추 주머니의 속의 붉은 두더지들

 

스물일곱 번의 꿈을 꾸고서도 단 하나의 꿈도 생각나지 않는

잔인한 농담을 처리해주는 곳

 

당신이 버린 얼굴들의 매립지

버린 것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조금 전까지 읽고 있었던 책을

감쪽같이 보관해주는 곳

 

아름다운 건 늘 처음 보는 것

 

생각날 듯 끝내 생각나지 않는

화이트 아웃 혹은 블랙아웃을 포장해주는 집

 

다양한 이목구비

헤어지면서 잊어버릴 수 있게

부위별 깜짝 구매가 가능한 곳

 

방바닥에 귀를 대고 아래층 소리를 엿듣는

목요일이었던 남자를 읽는 깊은 바까지

기어이 잊어주는 곳이 있다

 

(* 뇌 중에 얼굴을 알아보는 기능을 하는 곳)

 

: 제가 기억력이 정말 없어요. 점점 더 기억력이 약해지는 것 같아서 백과사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백과사전에 방추상회라는 것을 보는 순간, '아! 참 재밌겠다'란 생각을 하게 됐죠. 그때 마침 <목요일의 남자>라는 소설도 읽었어요. 사람의 이름을 목요일이라고 명명하는 게 참 재밌는 거예요. 그게 방추상회와 만난 게 이 시가 아닐까 싶어요. 나는 잊어버리지만, 그 기억들은 어딘가에 저장이 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에서 시작해서 방추상회라는 시가 완성됐죠. 착상이 참 재밌었던 시입니다.

 

: 의식이나 기억들이 지워지고, 오히려 최초의 기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의미있는 말인 것 같아요. 시에서 '아름다운 건 늘 처음 보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이 이러한 의미를 잘 보여주지 않나 싶습니다.

 

 

 

<나이지리아의 모자>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모자를 뜬다

빈곤이 만들어낸 심연과 굴욕에 씌워줄

빼앗긴 대지에 씌워줄 무늬 없는 모자

뉴욕만큼 비싼 물가와

사하라 사막에서 날아온 모래먼지의 나라

노예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아이들

강제 노역과 매질에 필요한

강한 바람과 우기의 천둘에게 씌워질 모자

회색의 열풍

나무에 매달린 채로 발아하는

맹그로브 숲의 씨앗들에게 씌워줄 모자를 뜬다

시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단어들만 있고 그리움이 없다면

내일은 오겠지만 당신이 없다면

어머니가 되기 좋은 나라에서 온 편지

답자 대신 모자를 뜬다

시는 사랑이 쓰는 거라서

그리움만이 단어를 찾아 떠나고

당신이 없다면 내일도 없다고

손끝에서 태어나는 모자

생명과 두려움

그 둥근 실타래를 풀어 뜬다

태어난 날 사망하는 나이지리아의 체온

작고 검은 얼굴에 어울리는 푸른 햇살로

모자를 뜬다

한여름 나이지리아의 고무단이 촘촘하다

 

표제작인 <나이지리아의 모자>에 대해 이야기해봐야 겠죠?  이 시에서의 지향점은 인류애, 타자에 대한 이해인데 이는 시인들의 지향점이라고도 보입니다. 

 

: 우리 딸아이가 아프리카로 보낼 모자를 항상 만들어요. 시집도 안 간 이 친구에게는 13살짜리 아들이 아프리카에 있고 그래요. 그걸 보면서 생각했어요. 이렇게 멀리서도 사랑을 줄 수 있는거구나.  이 아이가 뜬 모자를 통해 한 생명이 살 수도 있는거구나. 시집의 제목을 정할 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이 시가 가장 편하고 솔직하다고 생각했어요. 먼 곳에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하나쯤 나올 수 있다고도 생각했고요.

 

 

: 시를 함께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니 신정민 시인의 창작 방법이 궁금해요. 저는 이 시집을 보면서 제목을 먼저 보고, 시를 읽고 다시 제목을 보게 되더라고요. 그만큼 제목이 참 재밌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수께끼 문제를 푸는 것 같은 느낌도 있고.

 

: 이 시집에는 시를 먼저 쓰고 제목을 붙인 것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제목부터 정하고 시를 썼는데요. 가령 <헝그리 복서>, <새로운 신앙>과 같은 작품은 시부터 쓰고 제목을 붙였어요.

 

: <선글라스 선글라스>, <라면은 슬프다>, <뿔> 이런 작품들을 보면 이미지들을 결합하여 하나의 시로 완성했더라고요.

 

: 연상에서 비롯되어 의미를 만드는 시들이 많죠. <마리오네뜨>라는 시는 경험에서 시작해서 여러 연상을 통해 완성한 시인데요. 버스 기사 아저씨가 동전 떨어지는 소리만 듣고 저 승객이 돈을 덜 냈는지 아는 거예요. 그래서 막 소리를 치시는데, 이 승객은 돈이 모자랐는지 어쨌는지 버스 손잡이를 잡고 흔들리며 서 있는데 그 모습이 마리오네뜨 인형처럼 느껴졌어요. 우리는 바삐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지만, 그것이 어쩌면 누군가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쓴 시죠.

 

 

 

끝으로 구모룡 평론가 님께서 <중심>이라는 시를 낭독해주셨습니다.

 

<중심>

 

귀앓이 때에는 귀가

치질 도졌을 떈 똥구멍이

사랑니 솟구칠 떈 잇몸 가장 깉은 곳이

가장 아픈 곳이

 

가장 아픈 곳이 '중심'이라는 이 시의 말처럼

현재 우리를 지치고 힘들게 하는 부분들의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날 봄이라는 계절이 무색할 만큼 날이 많이 추웠는데요,

그래도 많은 분들이 참석하셔서,

함께 시를 읽을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신정민 시인, 구모룡 문학평론가 님을 비롯하여

참석해주신 모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72회 저자와의 만남에서 또 만나요 : )

 

 

나이지리아의 모자 - 10점
신정민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햇살이 따뜻한 오후입니다.

생동하는 생명이 이끄는 기운에 맞추어 좋은 시 한 편을 소개해드릴까 해요.


시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단어들만 있고 그리움이 없다면

내일은 오겠지만 당신이 없다면

어머니가 되기 좋은 나라에서 온 편지

답장 대신 모자를 뜬다

시는 사랑이 쓰는 거라서

그리움만이 단어를 찾아 떠나고

당신이 없다면 내일도 없다고

손끝에서 태어나는 모자

생명과 두려움

그 둥근 실타래를 풀어 뜬다

              ― 「나이지리아의 모자」, 부분


바로 신정민 시인의 「나이지리아의 모자」입니다.

한 NGO단체의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을 바라보면서 시인이 느꼈던 먹먹한 감정을 풀어내고 있는 시입니다. 

따스한 봄날에 맞추어 서정을 자극하는 시가 아닐까 하네요.


신생아 모자뜨기 사업이란 ..?

매년 전 세계에서는 태어나는 날 100만 명의 신생아가 사망하고, 한 달 안에 290만 명의 아기가 목숨을 잃고 있다고 하네요. NGO단체에서 제공하는 신생아 모자뜨기 키트를 통해 모자를 제작한 뒤, 아프리카와 아시아 일대의 신생아들에게 NGO단체로 보내온 모자를 전달하는 사업이라고 합니다. 저체중, 영양부족으로 면역성이 떨어지는 신생아들에게 털모자를 씌우고 포대기로 감싼 후 안고 있으면 아기는 엄마의 따뜻한 체온과 심장박동 소리에 맞추어 호흡하며, 안정감을 얻고 생명의 힘을 키워나간다고 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 소개 참조)


부조리한 현실을 향한 시인의 인간적 유대와 연민이 담긴 이 시 외에도

시집 『나이지리아의 모자』안에는 일상 속에서 미학을 발견해내고, 

문학을 통해 일상의 다양성을 그려내고 있는 시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구모룡 평론가와 함께하는 이번 저자와의 만남에서

신정민 시인과 함께 봄날의 시를 온전히 느끼고

다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많은 참석 부탁드려요.


어머니가 되기 좋은 나라에서 온 편지-『나이지리아의 모자』




일시 : 2016년 3월 23일(월) 오후 6시 30분
장소 : 러닝스퀘어 서면점 (동보플라자 맞은편 모닝글로리 3층)

대담자: 구모룡 (문학평론가)

문의 : 러닝스퀘어 051-816-9610



 

저자: 신정민

1961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2003년 부산일보 신춘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꽃들이 딸꾹』, 『뱀이 된 피아노』, 『티벳 만행』이 있다.


 

산지니 출판그룹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sanzinibook 

산지니 출판그룹 트위터 : http://twitter.com/sanzinibook



나이지리아의 모자 - 10점
신정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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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낮기온이 점점 오르고 있는걸 보면 이제곧 저녁에도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 올것같네요.

여름에 밤공기 마시면서 자전거타고 공원에가서 밤하늘을 바라보는 그느낌을 참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까지는 못하지만^^; 저녁에 운동 끝나고 하늘을 멍하게 쳐다보다 귀가하곤 합니다.
지금은 밤에 하늘을 쳐다보면 별이 잘 보이지 않지만 대학시절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곳에 살아서인지 별이 정말 많이 보였어요. 난생 처음으로 유성도 봤답니다ㅎㅎ 너무놀라서 소원은 못빌었지만 아직도 그 소름돋는 기분이 잊혀지지 않아요.

 

 

갑자기 별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를 소개하고 싶어서 입니다.

2006년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된 명왕성을 주제로한 장이지 시인의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이라는 시인데요 저는 이시를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었어요. 매번 읽을때마다 눈물이 나요...ㅋ

 

명왕성은 얼어 붙은 진흙이 갈라진 '스투트푸니 평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것과 명왕성 지표면 1600km 상공에서 대기를 발견까지 여러차례 명왕성 관찰이 이루어 졌었는데요.

이렇게 명왕성에 대한 관찰이 많음에도 명왕성은 우리 태양계에서 쫒겨날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크기가 달의 3/2 정도로 작으며 궤도가 8개의 행성과 다른 긴 타원형의 형태를 띄기 때문이였죠.

처음 명왕성이 퇴출되었다는 기사를 접했을때 왜 갑자기?? 라는 생각에 명왕성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였는데 지금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명확한것 같네요. 애초에 명왕성은 행성이 아니야 라고하는 친구들도 여럿봤고요ㅋ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 -장이지

안녕,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여기 하늘엔 네가 어릴 때 바닷가에서 주웠던
소라 껍데기가 떠 있어

거기선 네가 좋아하는 슬픈 노래가
먹치마처럼 밤 푸른빛으로 너울대

그리고 여기 하늘에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날마다 너를 찾아와 안부를 물어

있잖아, 잘 있어?

너를 기다린다고, 네가 그립다고,

누군가는 너를 다정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네가 매정하다고 해

날마다 하늘 해안 저편엔 콜라병에 담긴
너를 향한 음성 메일들이 밀려와

여기 하늘엔 스크랩된 네 사진도 있는걸
너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어
그런데 누가 넌지 모르겠어. 누가 너니?

있잖아, 잘 있어?

네가 쓰려다 지운 메일들이
오로라를 타고 이곳 하늘을 지나가
누군가 열없이 너에게 고백하던 날이 지나가
너의 포옹이 지나가

겁이 난다는 너의 말이 지나가
너의 사진이 지나가

너는 파티용 동물 모자를 쓰고 눈물을 씻고 있더라
눈 밑이 검어져서는 야윈 그늘로 웃고 있더라

네 웃음에 나는 부레를 잃은 인어처럼 숨 막혀
이제 네가 누군지 알겠어

있잖아, 잘있어?

네가 쓰다 지운 울음 자국들이 오로라로 빛나는,

바보야,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은 과거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 같습니다.
'있잖아, 잘 있어?' 라고 물으면서 잃어버렸던 어린 그 시절‘나’기 현재 ‘나'에게 안부를 묻고 '있잖아, 잘 있어?' 다시 되물으며 예전의'나'가 현재의'나'에게 용기를 주고 "너 잘하고 있지"라고 확인시켜주는 듯한 느낌입니다.
내안의 영원한 친구가 있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시인것 같습니다.

 

가끔 기분이 우울할 때 이시를 읽고 울고 다시 힘내고 그랬었어요^^;

시가주는 힘이라는게 이런걸까요. 우연히 알게된 시였는데... 우울할 때 내게 힘이 되어주는 시들을 더 찾아두고 싶어지네요.

 

 

나이지리아의 모자 - 10점
신정민 지음/산지니
소금 성자 - 10점
정일근 지음/산지니
금정산을 보냈다 (양장)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은근히 즐거운 - 10점
표성배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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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나의 힘

- 『금정산을 보냈다』 최영철 시인 북토크

 

 

안녕하세요. 인턴 기자 정난주입니다.

저는 지난 7월 2일(목), 올해의 원북원부산 선정도서인 최영철 시인의『금정산을 보냈다』 북토크에 다녀왔습니다.

부산에서 출판된 도서로서, 시집으로서 최초로 원북원으로 선정되어 그 의미가 더 뜻깊은데요.

최영철 선생님께서는 이 이례적인 현상(?)을 부산 사람들의 남들과 똑같이 하지 않고 싶어하는 성질 덕분이 아닌가, 하시며 그들의 '부산성'에 공을 돌리셨습니다. ^^

부산이 사랑한 시인, 최영철 선생님의 북토크 현장으로 함께 가볼까요?

 

 

북토크는 범어사 역 근처에 있는 금정도서관에서 열렸습니다.

금정중학교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금정도서관이 나오는데요, 금정중학교를 따라 올라가는 길이 아름다워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북토크가 시작하는 오후 2시가 되자, 시를 사랑하시는 많은 분들께서 참석해주셨습니다.

 

취미는 고독

최영철 선생님의 학창시절에는, 지금 학생들이 SNS를 즐겨하는 것처럼 펜팔이 굉장히 유행이었다고 하셨어요.

펜팔의 자기소개란의 취미는 재미있게도 대다수가 고독이었다고 하는데요.

최영철 선생님께서 추억 속의 그때처럼 가슴이 뜨거워지는 시조 한 편을 읽어주셨습니다.

배경은 노을이었다
머릿단을 감싸 안으며
고요히 떴다 감기는
호수 같은 눈을 보았다
내게도 그녀에게도
준비해둔 말이 없었다 

/「첫사랑」 , 이우걸

북토크에 참석하신 분들께서 최영철 선생님과 동년배인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신 것처럼 이 시에 많은 공감을 해주셨습니다.

 

고독은 나의 힘

옛날은 고독을 취미라 할 정도로 고독이 인기였는데, 요즘은 고독할 틈이 없지요.

혼자 있고 싶은 날에도 어김없이 "까톡! 까톡!"울리는 전화에 감은 눈을 뜰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고독이 필요한 여러분께, 작가님께서 금정산을 보내셨습니다.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먼 서역으로 떠나는 아들에게 뭘 쥐어 보낼까 궁리하다가 나는 출국장을 빠져나가는 녀석의 가슴 주머니에 무언가 뭉클한 것을 쥐어 보냈다 이건 아무데서나 꺼내 보지 말고 누구에게나 쉽게 내보이지도 말고 이런 걸 가슴에 품었다고 함부로 말하지도 말고 네가 다만 잘 간직하고 있다가 모국이 그립고 고향 생각이 나고 네 어미가 보고프면 그리고 혹여 이 아비 안부도 궁금하거든 이걸 가만히 꺼내놓고 거기에 절도 하고 입도 맞추고 자분자분 안부도 묻고 따스하고 고요해질 때까지 눈도 맞추라고 일렀다 서역의 바람이 드세거든 그 골짝 어딘가에 몸을 녹이고 서역의 햇볕이 뜨겁거든 그 그늘에 들어 흥얼흥얼 낮잠이라도 한숨 자두라고 일렀다 막막한 사막 한가운데 도통 우러러볼 고지가 없거든 이걸 저만치 꺼내놓고 그윽하고 넉넉해질 때까지 바라보기도 하라고 일렀다

/ 「금정산을 보냈다」 中

 

최영철 선생님께서는 이 시로, 시간이 지나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내며 우리의 고독을 허락하는 산을 전하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시는 실제로 작가님의 아드님께서 중동의 회사로 취직 되어 떠나시면서 쓰신 시라고 합니다.

아버지로서 미안함에 이 시를 쓰시기 시작하셨는데 다 쓰고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후련한 기분이 드셨다고 합니다.

이것 또한 산의 침묵이 주는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 살고 계시는 도요리 마을에 대한 자랑도 해주셨는데요.

그곳 또한 고독의 소중함을 아는 마을이라고 합니다.

고독을 단순히 외부와의 단절이 아니라,

매일 아침 일어나 마당의 꽃잎을 만지며 하루를 시작하는 최영철 선생님처럼 '고독할 줄 아는' 하루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최영철 선생님의 소식은 http://blog.daum.net/jms5244/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금정산을 보냈다 (양장)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문학평론가 구모룡 교수의 최신작은 시 평론집『은유를 넘어서』입니다.

"많은 시인들은 필생의 과업을 은유로 생각한다"고 시인(!)하는 이로써

이런 제목의 책을 낸 데에는 어떤 배경이 있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지난 화요일에 열렸던 저자와의 만남에서 탐색해 볼 수 있었습니다. 


바야흐로 장미의 계절. 지인분들께서 축하 화환도 준비해주셨어요.


행사 전 주부터 메르스에 대한 우려가 높아져 있어 

행사를 진행해도 될지 걱정스러웠지만, 많은 분들께서 참석하셨습니다 :) 



이 날 행사는 『은유를 넘어서』에 등장하는 작가 최정란 시인과

문학을 탐하다의 저자인 최학림 부산일보 기자와의 대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최정란 시인은 "시와 시인 자체가 소통이 되지 않고, 또 시와 독자가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시와 독자가 소통되지 않는 그 이면에 평론가의 역할이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며 대담을 여셨습니다. 또 구모룡 교수가 '미래파'와 '극서정시'라는 두 극단이 아닌 그 사이에 있어 평론가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시들을 다루고 있는 점에 주목하셨습니다. 

이에 구모룡 평론가는 "양끝만 보이는" 진자운동이 아니라 "이 사이에 무수한 궤적들"이 있기에 그 "구체적인 궤적들을 추적"하고자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최학림 기자는 구 교수의 글에서 "은유의 도서관에서 나와 진실 속으로 나아가자. 시쓰기는 자신의 바깥으로 나가는 과정이다"라는 부분을 인용하며 제목의 의미에 대해 물으셨는데요.


구모룡 평론가는 "영어로 하면 실존이란 existence입니다. 그런데 existence의 ex가 바깥이란 듯이거든요. 실존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는 것입니다."라며 말문을 트셨습니다. 

아래에 이어지는 답변에서 '은유를 넘어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까요?


"사실 언어가 은유죠. 그런데 많은 이론가들이 시는 은유라 말하거든요. 실존의 욕구라는 것은 외부기 때문에 들어가기 위해서 바깥의 사물에 대해 은유를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보면 굉장한 동일성의 확대재생산일 수 있다는 거죠. 

은유를 넘어선다는 건 단지 언어의 차원이 아닙니다. 주체의 문제인데, 서정시인이 가장 먼저 극복해야될 게 나르시시즘입니다. 시인이 자기 이야기 속에 갇혀 있으면 안됩니다."





이에 대해 최정란 시인이 "나약한 시인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며 웃자 


구모룡 평론가는 "시인은 나약하지 않다"며 

오히려 "자기만의 고통이 아니고 타자들의 고통"에 대해 말하는 시로 나아가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리얼리즘 시과 서정시, 일상시와 정치시, 생태시 등 여러 구분을 넘어서

그동안 많은 시인들은 우리 사회에서 '잠수함의 토끼' 역할을 해 왔습니다.

용산 참사에서 4대강 사업, 세월호 사건까지, 

시인들의 방식으로 낮은 곳에서, 약한 이들과 함께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두운 시대에 '문학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시와 시인에게 세상을 변화하기를 주문하는 것은, 그만큼

시의 힘을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유를 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겠지만

시, 그리고 시인이 전혀 '나약하지 않다'고 믿는 이에게서 오는 부탁이자

함께하겠다는 약속이지 않을까요?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비회원

구모룡 평론가 '저자와 만남'서 "시인은 나르시시즘 극복해야"


중진 문학평론가 구모룡(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가 평론집 '은유를 넘어서'(산지니)를 최근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시인과 시가 다시 변화를 감행할 시점에 닿았다고 고찰했다. 그 방식은 '은유를 넘어서'라는 제목이 상징한다.

'은유를 넘는 것'는 어떤 걸까. 지난 9일 산지니출판사는 부산 러닝스퀘어 서면점에서 구모룡 평론가를 초청해 제67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을 열었다. 은유를 넘어서는 것의 의미와 접근법이 궁금한 이들이 많았던 듯했다. 좌석 30여 석이 순식간에 가득 찼다.

사회와 진행을 맡은 최정란 시인, 최학림 부산일보 논설위원은 저자를 친절하게 대하는 척하다가 이내 돌변해 몰아치듯 질문했다. 저자는 꿋꿋하게 의견을 내고 설명했다. "사실 언어 자체가 일종의 은유('A는 B다' 또는 '내 마음은 호수다' 식의 표현)다. 그러므로 은유 없이 소통이 안 되는 측면이 있다."

그의 설명은 은유 자체를 아예 부정하는 게 아니라, 죽은 은유를 남발하거나 무의식 상태이든 의도를 했든 간에 과도하게 은유에 기대어버리는 시 창작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이해됐다. "(남 또는 사물을 표현하기 위해)계속해서 이런 식 은유를 만들어내는 것은 굉장한 동일성의 확대재생산일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동일성의 확대재생산'은 실제로 시에서 굉장히 위험한 요소다. 별 고민 없이 'A는 B다'라고 해버리거나 '내 마음은 호수다'라는 식으로 식상하게 표현할 경우 이는 일단 창작 주체인 시인 내면에 아무 변화도 못 일으키고, 'A를 B'에 '내 마음을 호수'에 가둬버려 문학을 파괴할 공산이 매우 커진다.

저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러므로 서정시인이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것이 나르시시즘(자기도취)이다. 시인이 자기 이야기에 갇혀서는 안 된다. 그걸 넘어서야 한다. 그 점을 표현하려니 '은유를 넘어서자'는 제목을 고르게 됐다. 이 중에서도 자기 아름다움에 도취하는 나르시시즘은 큰 문제 아닐 수 있다. 언젠가 극복 과정에 가닿을 수 있으니까. 문제는 타자를 외면한 나르시시즘이다."

수많은 이가 자기 세계에 갇혀 의미 없이 과장하고 호들갑 떠는 시를 쓰는 세태를 그는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어 최영철 송경동 시인 등을 언급하며 시와 삶이 일치하는 시인, 세월호 사고를 예로 들며 주체에서 확장을 거듭해 세계로 나아가는 소통의 시를 강조했다. '은유를 넘어서' 갈 방향이었다.

조봉권 | 국제신문ㅣ201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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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를 넘어서 - 10점
구모룡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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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룡 문학평론가가 평문과 비평을 통해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시적 지향에 대해 살피고자 한 시 평론집.

이 책은 은유로서의 ‘시’가 아닌 은유의 도서관을 나와 현실 지향적인 구체성을 획득한 시학을 개

▲ 은유를 넘어서 구모룡_산지니_350쪽_2만5천원

진하고 있다. 저자는 시적 경험을 형성하는 것은 주체와 언어, 세계라 말하며 오늘날 시 속에 내재된 형식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이른바 ‘극서정시’와 ‘미래파’ 논쟁이 그것인데, 소통불능의 과소비적 시들에 대해 서정시 본연의 절제와 여백을 활용하고자 등장한 ‘극서정시’와 더불어 과잉된 수사와 난해한 독백과 해체로 가득한 ‘미래파’ 시를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미래파’ 시는 젊은 세대로 갈수록 시를 쓰고 읽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는 현상과 함께 새로이 나타난 한국 현대시의 흐름이다.

그럼에도 이들 두 흐름이 갖춰야 할 시의 본질은 ‘타자와의 공명’이자 ‘소통’에 있다며 시적 주체와 언어 세계가 만나 빚는 상호작용과 변증법을 모색함과 동시에 시인의 표현이 자기 자신을 넘어 타자와 세계의 지평에 가닿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 오늘날 ‘시라는 제도’ 안에서 ‘시인이라는 위신’에 만족하는 이들이 많은데, 저자는 소수 시인들에 한정해 작품을 엄선하는 종합문학지와 달리 많은 시인들의 작품을 싣고 있는 시전문지에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견해를 내비친다.

저자는 시인 자신의 내부로 침잠하는 시가 아닌 타자와 공명하는 시적 지평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타자와 시인의 관계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작업이 시쓰기에 선행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김장선 | 경기신문ㅣ201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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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를 넘어서 - 10점
구모룡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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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쨍쨍했던 목요일 (6/4), 구덕도서관에 다녀왔습니다.

앞마당에는 폐백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고

도서관을 두르는 울타리 건너편으로는 숲으로 난 산책길이 보이는 곳.

나무그늘 아래 책 읽기 좋은 

아담한 '동네 도서관' 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도서관 구경/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이 날 제가 도서관에 간 건

가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올해의 원북원부산 선정도서, 최영철 시인의 『금정산을 보냈다』



"다 말하지 않고 더 말하는" 시


최영철 선생님은 시가 오늘날에는 소수자의, 변방의 장르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여셨습니다.

80년대에는 문창과 학생들 대부분이 시를 쓰는 이들이었던 데 비해 

오늘날은 드라마나 시나리오 작가를 지망하는 이들이 대다수라고 합니다.

쓸모와 효율의 논리가 지배적인 지금, 시는 주변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그러나 "다 말하지 않고 더 말하는" 시의 속성 때문에

최영철 시인은 "그래도 시가 담당하고 있는 영역"이 있다고 하십니다.


길게 설명할 것 없이 시를 한 편 나누기로 합니다. 

선생님께서 낭독하실 테니, 저희 참석자들은 시를 써보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시를 눈으로 읽다가 소리내어 말하고 들으면 다르듯이, 

써보는 것도 느낌이 새롭습니다.


    첫사랑 

              -이우걸

배경은 노을이었다

머릿단을 감싸 안으며

고요히 떴다 감기는

호수 같은 눈을 보았다

내게도 그녀에게도 

준비해둔 말이 없었다


3장 6구로 이루어지는 시조에서는, 마지막 두 구가 클라이막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시의 마지막 두 줄이 그리는 풍경은 뜨겁기는커녕 오히려 심심합니다.

최영철 시인은 청산유수로 상대를 유혹할 수 있다면 그건 첫사랑이 아닐 것이라 하셨습니다.

아직 경험이 없어서,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머뭇거리는 

그 순간을 추억하는 시를 함께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시인은 근본적으로 바람쟁이다"


시의 또 다른 특징은 익숙하고 훈련된 것이 아니라 

낯설고 처음인 것마냥 세상을 경험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시인은 근본적으로 바람쟁이다"라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매년 돌아오는 봄이고 꽃이지만, 시인은 그 꽃을 매번 새롭게 봅니다.

"수없이 마음을 뺏기는" 사람이 시인인 것입니다.


"동네에 자기만의 나무를 가져보라"

최영철 선생님께서 즐겨 찾으시는 수영 사적공원의 곰솔나무


시인은 표제작인 <금정산을 보냈다> 이야기를 꺼내시며

가난한 아버지 때문에 아들이 요르단으로 떠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 아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시인들은 사실 엄청난 부자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빈손이어야 삼라만상이 자기에게 안깁니다. 

좋은 차 타고 흙길 밟지 않는 사람에게는 들꽃이 보이지 않습니다."


"동네에 자기만의 나무를 가져보세요." 라는 제안을 하실 때에는

선생님이 오래 사시던 수영에 있는 

사적공원의 푸조나무에 대한 시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잎-푸조나무 아래


동반 강사로 자리해주신 조명숙 소설가님!


최영철 시인의 짧은 강연이 끝난 뒤, 

조명숙 소설가의 진행으로

시를 함께 읽고, 읽은 시에 대한 질문을 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표제작 <금정산을 보냈다>를 참가자 분의 낭독으로 함께 읽고,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질문: 이 시의 주제는 부모의 사랑입니까? 시가 너무 어렵습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같은 시는 평소에 쓰는 말로 쓰여져 있어서 이해하기 쉬운데요.

답: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있어야 시입니다. 이것은 시 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좀 몰라야 시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시를 이해할 수 있나요?

답: 시의 관문은 이해가 아닙니다. 이해는 서사적입니다. 시는 공감의 예술입니다. 또, 시는 이해되기를 바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 걸 볼 수 있는 사람'만을 위해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문학적 소양이 없는가'하지 마시고, 시행착오를 거쳐야 합니다. 이해의 통로로 접근하기보다, 느낌을 주는 시를 찾아 읽으시길 바랍니다. 



번외 질문: 시집 뒤에 실린 대담에서 선생님께서는 들꽃을 만지실 때도 꼭 "만져봐도 되겠습니까?"하고 묻고 만지신다 읽었습니다. 정말인가요?

답: 네, 정말 그렇습니다. 물어봐야 되요. 꽃을 만져보면 꽃이 부끄러워서 몸도 비틀기도 하는데, 그 정도로 내밀한 소통을 하는 게 시심을 가진 자들이 누리는 특혜라고 생각합니다.


 

강연회를 마치고 나오니 구덕도서관의 얼굴마담이라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도서관을 드나드는 사람마다 계단참에 쭈그려 앉아

고양이를 반갑게 쓰다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시가 우리와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금정산을 보냈다 (반양장)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금정산을 보냈다 (양장)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안녕하세요, 산지니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시를 읽으시나요? 

소설에 비해 어렵다는 선입견과 추상적 언어 구사 때문에 

시는 우리의 현실과는 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모룡 평론가는 시쓰기란 

주체에서 시작하여 세계로 열려가는 과정이라 말합니다.

은유, 그것보다 더 넓은 시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번 만남은

문학을 탐하다의 저자인 최학림 부산일보 기자와 

최정란 시인과의 대담으로 이뤄집니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다과가 제공됩니다. 

추첨을 통해 산지니 책을 받으실 기회도 있으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일시 : 2015년 6월 9일(화) 오후 6시 30분
장소 : 러닝스퀘어 서면점 (동보플라자 맞은편 모닝글로리 3층)

대담자: 최학림 (기자), 최정란 (시인) 

문의 : 러닝스퀘어 051-816-9610



구모룡(具謨龍)


1959년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대학과 대학원에서 시론과 문학비평을 전공하였다.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평론(「도덕적 완전주의―김수영의 문학세계」)이 당선되었고 그 이후 문학평론가로 활동해왔다. 박사학위논문은 「한국 근대 문학유기론의 담론분석적 연구」(1992)이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한국해양대학교 동아시아학과에서 지성사, 동아시아 미학, 문화연구 등을 가르치면서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 『앓는 세대의 문학-세계관과 형식』, 『구체적 삶과 형성기의 문학』, 『한국문학과 열린 체계의 비평담론』, 『신생의 문학』, 『문학과 근대성의 경험』, 『제유의 시학』, 『지역문학과 주변부적 시각』, 『시의 옹호』, 『감성과 윤리』, 『근대문학 속의 동아시아』, 『해양풍경』, 『예술과 생활-김동석문학전집』(편저), 『백신애 연구』(편저) 등을 출간하였다. 현재 제유(synecdoche)의 수사학으로 동아시아 시론과 미학을 설명하는 저술을 준비하는 한편, 새로운 시론과 평전 쓰기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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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최영철 시인 열번째 시집… 경험 녹아든 표제시 등 68편



 



 
 

금정산을 보냈다
최영철 지음 l 산지니 l 142쪽 
l 1만1000원

언제 왔는지 모를 봄이 가고 있다. 활짝 핀 꽃들은 어느새 제시간을 다해 사그라져 간다. 가는 봄에게 무어라 말하지 못한 우리들은 속으로 서럽게 눈물을 삼킨다. 그렇게 계절처럼 사람도, 사랑도 떠난다.
 최영철 시인의 열 번째 시집 ‘금정산을 보냈다’. 총 68편의 시가 수록된 이번 시집에는 생성과 파멸의 연속, 환희와 비명의 공존하는 삶의 눅진함에 대해 그린다.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먼 서역으로 떠나는 아들에게 뭘 쥐어 보낼까 궁리하다가 나는 출국장을 빠져나가는 녀석의 가슴 주머니에 무언가 뭉클한 것을 쥐어 보냈다 이건 아무데서나 꺼내 보지 말고 누구에게나 쉽게 내보이지도 말고 이런 걸 가슴에 품었다고 함부로 말하지도 말고 네가 다만 잘 간직하고 있다가 모국이 그립고 고향 생각이 나고 네 어미가 보고프면 그리고 혹여 이 아비 안부도 궁금하거든 이걸 가만히 꺼내놓고 거기에 절도 하고 입도 맞추고 자분자분 안부도 묻고 따스하고 고요해질 때까지 눈도 맞추라고 일렀다 (…) 그 놈의 품은 원체 넓고도 깊으니 황망한 서역이 배고파 외로워 울거든 그걸 조금 떼어 나누어줘도 괜찮다고 일렀다 그렇게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살다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때는 무엇보다 먼저 그것부터 잘 모시고 와야 한다고 일렀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네가 바로 그것이라고 일렀다 이아비의 어미의 그것이라고 일렀다”(‘금정산을 보냈다’ 중)
 특히 표제시 ‘금정산을 보냈다’는 시인의 경험이 녹아든 시다. 대학 졸업 후 100여 번 낙방 끝에 어렵사리 한 기업에 취업했다. 요르단에서 근무한다는 조건으로. 시인은 그런 아들을 말리지 못했다. 그럴 명분도 그럴 여건도 되지 못했다. 시인은 아들을 떠나보낸 뒤, 집으로 돌아와 이 시를 썼다. 시인이 덤덤하게 써 내려간 단어 하나하나가 내 아비의 마음과 같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는 현대시가 가진 난해함을 벗어던지고 ‘공감’을 단 하나의 강력한 무기로 내세웠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저릿하던 마음 한구석에 반창고를 붙인 듯하다. 
 그는 삶이란 만남과 헤어짐, 기쁨과 슬픔의 연속이라고 그저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시집은 다른 시집과 달리 해설 대신 대담을 실었다. 최 시인과 호형호제(呼兄呼弟) 하는 최학림 부산일보 논설위원과의 가감 없는 대화는 이 시집의 또 다른 매력이라 할 수 있다.
 “가긴 꼭 가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어디로 가시려는지, 뒤를 한번 돌아봐 주면 안 되는지 물었습니다. 가는 길이 춥지는 않으신지, 그 말은 왜 끝내 안 해주셨는지 물었습니다. 내일도 어제처럼 바람 불고 비 오는 날인지, 갈 때는 그렇게 아무 말도 않는 게 좋은지 물었습니다. 어제가 해 맑고 쨍한 날이었는지, 내일이 더 그런 날인지, 이제 그만 옆구리 아프지 않아도 되는지, 처방전 끊지 않아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거기도 꽃 지고 있는지, 눈물 한 방울 촉촉이 꽃 피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때 박은 가슴의 대못은 언제 빼주시려는지 물었습니다. 가실 때는 미처 그러하였으나 다시 오실 때는 미리 전갈이나 해주시려는지 물었습니다.”(‘문상’ 전문)
 봄 한 철을 위해 사력을 다해 폈던 꽃잎이 바람에 졌다. 영국의 시인 T.S엘리엇은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어나게 하고 추억과 정욕을 뒤섞어 버리며 잠든 뿌리를 봄비로 뒤흔드는 4월이 흐르고 있다. 100여 년 전 태어나 살다간 영국의 시인과 김해 촌락에서 살고 있는 한 시인은 시로써 소통하고 있다. 아스라이 져가는 꽃잎들이 아린 것은 아마도 그것이 우리의 숙명이기 때문이 아닐까. 쓸쓸한 봄바람에 꽃잎이 지고 있다.


이경관ㅣ경북도민일보ㅣ2015-04-20

원문 읽기

금정산을 보냈다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안녕하세요, 솔율입니다. 축하2

  설 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오늘은 제가 추위도 물리칠 만큼 아주 따끈따끈한 소식을 가져왔는데요. 바로 이전에 포스팅 하기도 했던, <산지니>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시인선의 첫 주자, 금정산을 보냈다의 저자 최영철시인을 제가 만나 뵙고 왔습니다. 문학을 좋아하고 특히 시와 소설을 주로 썼던 저는 마치 우상을 뵙는 기분이었는데요. 선생님을 만나 뵙기 전부터 벅찬 가슴을 억누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이번 만남은 특별히 수영사적공원 일대를 거닐며 이루어졌습니다. 문학이야기와 함께 과거 수영에 얽힌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어 참 뜻깊은 시간이었는데요. 구체적인 여정이 궁금하시다면 어서어서 오세요!

 

# 수영을 거닐다

  2015210일 화요일 오후 130, 솔율은 함께 인턴을 하는 규형92’님과 지하철 3호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선생님과의 약속 장소인 수영역으로 가기 위해서였는데요. 일일 사진사를 맡으신 규형92님께 DSLR 카메라에 관한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새 도착!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렀던 덕에 근처에 있는 수영팔도시장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약간의 기다림 후, 짜잔! 드디어 최영철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선 곧 환갑이 다가온다 하셨지만 너무나 정정하신 모습에 저희는 연세를 듣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답니다) 선생님께선 저희를 수영 사적 공원으로 안내해 주셨습니다.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 한적한 골목을 따라 드문드문 점집이 보였는데요. 선생님께서 산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수영은 과거 어촌이었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어부들이 많은 만큼 점집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음은 분명한데요. 수영을 비롯해 영도다리 근처와 같은 바다 어귀엔 현재까지도 옛날 점집들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또한 저희가 미리 다녀왔던 수영팔도시장 역시 옛날 모습에서 크게 변하진 않았다고 하네요. 지금은 센텀시티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면 과거엔 강과 바다를 끼고 많은 물자들이 드나들었던 수영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골목의 끝에 야트막한 언덕과 같은 곳, 수영사적공원이 있었습니다. 옛날 수영성의 위치에 조성되어 있는 이 공원은 국보급 천연기념물 나무가 두 그루 있고, 수영야류 전승관도 있습니다. 공원으로 들어서기 전 뒤로 아파트 몇 채가 보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과거 아파트자리엔 군인아파트가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잠깐, 생각나는 시가 한 편 있네요.

집 근처 폐가로 방치된 군인아파트

나는 날로 기울어져가는 그걸 바라보며

날로 기울어져가는 우리 문학을 생각했던 것인데

그걸 정부보조금으로 빌려 한국문학 부활 프로젝트

간판 붙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인데

군인아파트니까 보초는 군인들이 서는 게 좋겠지

아무 쓸모없는 꼬투리나 물고 늘어지는 글쟁이들에게

모종의 적개심 또는 열등감을 키워온

그래서 인정사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그리고 또 한 부류

웬만한 글 앞에서는 미동도 않는 노장들로 심사위를 구성해

잘 써야 하는데 배가 불러지면서 잘 못 쓰고 있는 놈

잘 쓸만한데 뚜렷한 전기가 없어 허송세월하는 놈

백 명쯤 추려 쥐도 새도 모르게 체포해 오는 거야

모든 우아한 소지품 압수

사흘 정도 냅다 굶기고 두들겨 패는 거지

지랄발광들을 하겠지 눈을 시퍼렇게 뜨겠지

이유라도 알려달라며 통사정이겠지

- 최영철, 한국문학 생생 프로젝트전문, 금정산을 보냈다, 2014.

  살짝 시를 언급하자, 선생님께선 시에 담긴 의도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전에 우리 문학이 가장 왕성했던 때는 군사독재시기, 거슬러 일제시기, 조선왕조시대 선비들의 귀향살이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만큼 문학의 역사는 오래 되었는데요. 한국문학 생생 프로젝트는 스러져가는 아파트를 다시 세워 글을 잘 쓸 수 있음에도 농땡이를 치는 문인들을 그곳에 넣어서 질타를 하고 싶은 화자의 심정이 잘 드러나는 시입니다. 하나의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문인들에게 강한 일침을 날리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으신가요?

 

  공원으로 들어서자 돌담 아래 작은 비석들이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바로 ‘25의용단인데요. 25의용단은 왜구가 바다를 통해 침략해왔을 때, 성주들이 다 떠나고 전투에 참여했던 부하들과 수영성 어민 중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신 25명의 넋을 기리는 마음으로 지어진 사당이라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최영철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

 

  25의용단을 지나 조금 올라가자 옆으로 자라는 나무가 나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나무를 와목(臥木)이라 이름 붙이셨는데 누워있는 나무라는 뜻입니다.

  앞서 선생님께서는문학의 장소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문학이라는 것은 실재하는 공간은 필요 없이 오로지 상상으로만 만들어 내기도 하고, 구체적인 공간을 가지고 쓰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문학의 장소성인 것이지요. 최영철 선생님께서는 구체적인 장소, 성장하고 자랐던 공간에서 소재를 많이 얻으신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과거 수영에 사시면서 (수영을 배경으로) 4~5권정도의 시집을 내셨다고 하셨습니다. 수영사적공원을 매일같이 거니시면서 시를 많이 낚았다고 말씀하셨네요.^^

내 머리맡 어디쯤 쓰러져 크고 있는 사철나무를

와목이라 이름 붙였다

기울어진 나무는

자기를 슬며시 쓰다듬고 가는 여인에게로 기울다가

행장 챙겨 무작정 따라나서기도 하다가

저렇게 호된 회초리를 맞고 쓰러졌을 것

위로만 바라보아야 할 본분을 잊고

옆으로 옆으로 한눈 판 죄를 벌하려고

하늘이 나무의 다리몽둥이를 꺾어놓았을 것

그러나 그때

나무를 쓰다듬고 간 그 여인은

먼 여정에 눈앞이 아득해져

잠시 손 짚어 찰나를 쉬었다 갔을 뿐

- 최영철, 수영성 와목

  실제로 와목은 사철나무며 넘어진 채로 죽지 않고 살아서 크고 있는 나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로 문학적 대상을 볼 때 자신과 동일시를 많이 하지요. 선생님께서도 마찬가지라 하셨습니다. 10대 때 교통사고로 병원생활을 오래 하셨을 때와 와목을 동일시 한다고 하셨는데요. 산책을 가실 때마다 와목을 쓰다듬으며 얼마냐 힘드냐한마디 남기시기도 하고 꿋꿋이 살아있는 모습에 기특함을 느끼기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산책을 하면서 처음 일 년 정도는 그런 나무가 있는지도 모르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고 하시네요. ‘나무가 나를 오래 기다렸을 텐데 바라봐주지 않으니 얼마나 섭섭했을까하고 와목을 쓰다듬는 선생님의 손길에 애정이 듬뿍 담겨있었습니다.

  오목조목 돌들이 박혀있는 예쁜 돌담을 지나 수영야류전승관도 잠시 들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전에는 없었는데 지금은 공연장에 지붕이 생겨서 이제 우천시에도 공연이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더운 여름에 햇빛을 가려주고 비를 막아주는 것도 좋지만, 저는 없어도 그 나름대로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푸른 나무들 사이에서 햇살을 받으며 전통 탈놀음을 즐기는 기분, 생각만 해도 설레지 않나요?

 

  전승관을 넘어 아래로 걸어가며 저희는 선생님의 지난날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수영사적공원과 팔도시장의 기운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사적공원을, 재래시장을 한 바퀴 돌고나면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느껴지신다고 하셨네요.

  보통 성장환경이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지요. 선생님께서는 태어난 창녕보다는 부산에서의 추억이 더 많으십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기 부산으로 나와서 범일동 산동네 단칸방에서부터 생활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또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매축지라는 곳에 사셨다고 하셨네요. 매축지는 부산진시장에서 부두 쪽으로 가면 보이는 동네로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선생님께선 지금도 가끔 찾아간다고 하셨는데요. 옛 골목이나 집들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하네요. 그렇게 성장기를 보냈기에 번화가보다는 오밀조밀한 동네가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하셨습니다.

 

# 시간 앞에서 잠시 머물다

  50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 앞에 있는 벤치에 선생님과 저는 잠시 몸을 기댔습니다. 앞에서 수영사적공원에는 천연기념물인 나무가 두 그루 있다고 말했는데요. 이 나무가 바로 국가 차원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푸조나무입니다. 처음 선생님께서 이 나무를 보셨을 땐 쓰레기와 연탄재에 뒤덮여 있었다 하셨는데요. 나무치료사들이 치료도 하고 시에서도 여러 노력을 한 끝에 지금의 멋진 모습으로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푸조나무와 공원 안에 있는 또 다른 천연기념물인 곰솔 소나무는 원래 무당들이 치성을 드리던 나무였다고 하네요.

  선생님께서는 푸조나무가 살았던 시간에 비하면 자신이 산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라 하셨습니다. 힘들거나 절망스러울 때마다 종종 들리셔서 나무를 보고 만지시면서 오백년을 묵묵히 견디는 나무도 있는데 나는 엄살이 심한 것이 아닌가하며 반성을 하신다고 하네요.

  세월이 지나 고향에 왔을 때, 그곳이 자신의 고향임을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자연물들입니다. 사람, 건물은 조금씩 변화하길 마련이니까요. 선생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마음속의 표적으로써 이런 나무가 남아있으면 잠시 멀리 떠났다 돌아오더라도 이전의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누군가가 만졌던 가지를 또 만지면서 좋은 기운을 나누는 것 또한 가슴 따뜻한 일이겠지요. 이렇게 깊은 의미가 담긴 푸조나무는 선생님의 작품 중 푸조나무 아래라는 부제가 달린 연작시로도 남아 있습니다.

잎 하나 피우는 내 등 뒤로

한 번은 당신 샛별로 오고

한 번은 당신 소나기로 오고

그때마다 가시는 길 바라보느라

이렇게 많은 가지를 뻗었답니다

 

잎 하나 떨구는 발꿈치 아래

한 번은 당신 나그네로 오고

한 번은 당신 남의 님으로 오고

그때마다 아픔을 숨기느라

이렇게 많은 옹이를 남겼답니다

 

오늘 연초록 벌레로 오신 당신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이렇게 많은 잎을 피웠답니다

- 최영철, -푸조나무 아래

  푸조나무의 풍성한 가지들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가지들이 조금은 애달프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벤치에서 일어나 선생님의 뒤를 따르니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습니다. 바로 앞서 말했던 곰솔 소나무인데요. 작은 소나무는 부산시에서 지정한 보호수이며 큰 소나무는 국가에서 지정한 천연기념물이라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큰 소나무를 남성성으로 보고 작은 나무를 여성성으로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마주보고 서로 이야기도 하고 의지를 하면서 오랜 시간을 꿋꿋이 버텨온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 북적함, 그 속의 묵직함

  곰솔 소나무 앞에는 남문이 있습니다. 그곳을 따라 내려오면 수영팔도시장이 이어집니다. 시장을 따라 걸으며 정겹고 소담스러운 시장의 북적북적함 속에서 선생님과 저는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산지니 시인선 1호이자, 부산 원북원 프로젝트 후보도서에도 오른 금정산을 보냈다는 부산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이 시집을 편집하면서 구성이 바뀌는 일도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처음엔 가벼운 분위기의 시들을 배치하고 후반부로 가면서 무게가 있는 시를 배치할 예정이었으나 편집과정에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면서 무거운 시를 앞으로 보내셨다고 하네요. 시 한 편 한 편에도 있지만 어떻게 배치하느냐와 같은 편집과정에서 들어가는 의도도 중요한 것이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주 밝지만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그 어둠을 대중문화나 소비를 통해 피해가려고도 하는데요. 누군가는 그 어둠을 정면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것이 바로 기초 장르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시인의 역할은 위기에 반응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며 출판 역시 문제적이고 중요한 고민들을 엮어서 전파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산지니>는 힘든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고 아주 잘 해내고 있어서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는 아낌없는 격려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순수문학과 실용문학의 흐름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문학의 힘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지금, 두 가지 경향의 비율이 어느 정도 평균을 이룬다면 더 좋을 것 같은데 한쪽으로 쏠리는 것 같아 조금 아쉽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저 역시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문청으로써 동감했네요. 시나 소설보다 장르문학, 영상매체가 이슈가 되는 요즘. 문학의 위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최영철, '부산釜山이라는 말' 中

  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장르와 달리 시만이 할 수 있는 강점을 살려나가는 것이 필요하지요. 한 가지 이야기를 통해 많은 것을 유추하게 하는 것이 문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재의 문학은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하려 하는 것 같아 그것이 오히려 문제적인 현상이 되고 있진 않은가 하는 우려도 살짝 내비쳐 주셨습니다.

 

# 문학으로 가는 길

  팔도시장을 나와 선생님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맞은편의 카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엇! 저의 가방이 없었습니다. 머리를 스치는 장면, 바로 푸조나무였습니다. 잠시 앉았던 벤치에 가방을 두고 온 것이었습니다. 선생님과 규형92님께 양해를 구하고 저는 다시 수영사적공원으로 달렸습니다. 다행히 가방은 벤치 위에서 묵묵히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선생님께서 반갑게 저를 맞아주셨습니다. 제 어깨에 들려있는 가방을 보시곤, ‘푸조나무 할매께서 지켜주셨네!’라고 웃으며 말씀해주셨습니다. 무릎을 탁 쳤습니다. ‘이게 시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푸조나무 할머니 이야기를 하며 선생님과 저희는 또 한 번 웃었습니다.

  카페에서는 선생님과 함께 현재의 문학에 관해 조금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부산에서도 문창과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고 합니다. 부산 여전, 부산 예대를 비롯해 많은 대학에 문창과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남아있는 곳도 통합이 되어버려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한 세기마다 기운이 있다고 합니다. 18세기는 18세기 나름대로, 21세기는 21세기 나름대로의 기운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21세기로 오면서 장점도 보이지만 단점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문학이라는 장르가 균열을 직면하고 아픈 소리를 내질러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핵심이지요.

  선생님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현대 사회가 오히려 문학에 대한 집중도를 낮추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 원하지도 않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문학과 같은 선의의 장르들이 본연의 기운을 잃고 잘 팔려야 한다, 독자들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평균을 유지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에 대해서 선생님도 저도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학을 하는 것이 어렵고 힘든 일만은 아닙니다. 제가 선생님께 작품을 쓰시는 것 말고도 출판일을 하시면 글을 쓰시는 분들도 많이 보실 텐데 그런 분들을 보며 어떤 느낌이 드는지 여쭤보았더니 이렇게 답변해주셨습니다.

 출판을 한다는 건 문학사회 안에서 산다는 건데 좋은 친구들도 많고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섞여 사는 즐거움이 있지. 물론 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책이 많이 팔리는 것도 좋은 거지만, 순수한 예술을 하는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서로를 위해주면서 힘들 땐 잘 도와주고 도움 받고 하니까 좋지. 그게 문학하는 즐거움이지."

  선생님의 말씀에 저도 크게 공감을 했습니다. 예술, 그중에서도 문학의 자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는 지금도 소설을 쓰고 시를 쓰는 문청들은 많습니다.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글을 쓰고 글을 논하는 사람들을 저 또한 많이 만나고 있지요. 서로 얼굴을 맞대고 토론하고, 합평하는 그 시간이 저는 참 좋습니다. 보수와 능력과는 상관없이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장르를 열정적으로 논하는 그 시간은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아주 값진 시간이 아닐까요.

 

싸인을 하시는 최영철 선생님 (feat. 뒷풀이장소)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문학이 가야할 길은 상처와 균열을 조명하며 아픈 소리를 내지르고 사람들도 그 아픈 소리를 들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단 선생님뿐만 아니라 많은 문청과 문학가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쉽게 읽히는 책도 좋지만 약간의 무게가 있는 도서, 혹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말을 하는 책 또한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선생님의 바람 또한 공감이 되었습니다.

  많이 보는 TV프로그램을 좋은 시간대에 배치하고, 많이 팔리는 책을 서점에서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하는 것, 이러한 구조를 바꿔야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요. 이슈가 된 원북원 프로젝트를 비롯해 책을 선정하는 방식이 많이 팔리는 책으로 순위가 정해지는 기준은 바뀌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많이 팔리고 독자들이 많이 찾는 것과 같이) 단지 양으로 판가름을 내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좋은 기준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완전한 다수결이 아닌 시민을 포함해 여러 분야의 사람들의 많은 의견을 듣고 종합하여 기준의 절충안을 만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께서는 출판 역시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출판 본연의 의미를 가지고 출판사가 나아갈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격려가 필요하고, 부산시에서 시행하는 부산문화재단 우수도서선정과 같은 제도가 출판사들에겐 힘을 불어 넣어주고 있는 현상을 통해 시()를 비롯한 여러 기업들도 관심을 가져주면서 지역출판을 장려하고 힘을 실어주는 제도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작은 바람입니다.

 

  보통의 인터뷰 형식과는 달라 많이 당황하셨죠? 수영 일대를 거닐며 색다르게 진행된 만큼 리뷰 역시 딱딱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어떻게 느끼실지 흠흠..). 최영철 선생님과의 만남, 저는 아주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스승님이자 함께 문학을 하는 든든한 동반자를 만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문학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시고 계신 선생님을 본받아 저 역시 쉽게 흐트러지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엔 아직 치열하게 글을 쓰는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사회 속에서의 고독한 싸움이겠지요. 그러나 결코 의미 없는 움직임이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갑작스런 연락에도 흔쾌히 만남을 응해주신 최영철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이상 저자 인터뷰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뿌잉3

Posted by 비회원

 

  안녕하세요. 솔율입니다호호

  요 며칠간 날씨가 매우 스펙터클 했지요. 귀가 떨어져나갈 듯 추웠던 날도 있었는데요. 이럴 때일수록 모두 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겠습니다.

 

금정산. 부산광역시 금정구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東面) 경계에 있는 부산의 대표적인 산

  오늘은 또 하나의 서평을 가지고 왔습니다. 바로 <산지니>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시인선의 첫 주자 최영철 시인의 금정산을 보냈다라는 시집인데요. 최근 원북원 부산 프로젝트의 후보 도서로도 올라 후끈후끈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부산이 활동무대였던 최영철 선생님의 지난날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시집이기도 한데요. 더불어 물질과 속도에 중독된 현대인들이 마주해야 할 세계의 진면목 또한 담고 있습니다. 그럼 차근차근 얘기해보도록 할까요?

 

  먼저 최영철 선생님은 1956년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나 오랜 시간을 부산광역시에서 보내셨습니다. 1986<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셨으며 제2백석문학상, 2010년 제10최계락문학상, 2011년 제6이형기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선생님 작품의 특징은 소외된 존재에 대한 관심을 두고, ‘자연과 인간의 화해를 모색하는 것이며 현실과 일상에 집중하는 건강한 서정시라 볼 수 있습니다. 대표작으론 시집 찔러본다(문학과지성사, 2010), 산문집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산지니, 2008), 성장소설 어중씨 이야기(산지니, 2014) 등이 있습니다.

 

  시집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봅시다.

 

  『금정산을 보냈다는 앞서 말했듯이 산지니 시인선의 첫 번째 시집입니다. 그리고 최영철 선생님의 등단 30년을 기념하는 열 번째 시집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표제인 금정산을 보냈다는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시 제목이기도 한데요. 아들을 요르단으로 보내고 난 후 집으로 돌아와 단숨에 써 내려갔다는 시는 아버지로써의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납니다.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먼 서역으로 떠나는 아들에게 뭘 쥐어 보낼까 궁리하다가 나는 출국장을 빠져나가는 녀석의 가슴 주머니에 무언가 뭉클한 것을 쥐어 보냈다 이건 아무데서나 꺼내 보지 말고 누구에게나 쉽게 내보이지도 말고 이런 걸 가슴에 품었다고 함부로 말하지도 말고 네가 다만 잘 간직하고 있다가 모국이 그립고 고향 생각이 나고 네 어미가 보고프면 그리고 혹여 이 아비 안부도 궁금하거든 이걸 가만히 꺼내놓고 거기에 절도 하고 입도 맞추고 자분자분 안부도 묻고 따스하고 고요해질 때까지 눈도 맞추라고 일렀다 서역의 바람이 드세거든 그 골짝 어딘가에 몸을 녹이고 서역의 햇볕이 뜨겁거든 그 그늘에 들어 흥얼흥얼 낮잠이라도 한숨 자두라고 일렀다 막막한 사막 한가운데 도통 우러러볼 고지가 없거든 이걸 저만치 꺼내놓고 그윽하고 넉넉해질 때까지 바라보기도 하라고 일렀다

/ 금정산을 보냈다

  "부산대를 졸업한 아들이 100번 넘게 입사 지원서를 내 모두 떨어졌다. 간신히 한 대기업에 걸렸는데 조건이 요르단 근무였다. 환경도 그렇고 위험해서 말렸는데 아들은 가겠다고 했다. 그게 다 무능한 애비를 만난 탓인 것 같아 미안했다. 딱히 줄 건 없고 뭔가는 줘야겠기에 시로 금정산을 선물했다." 아비는 힘 넘치는 젊은 혈기가 고지가 없는 사막에서도, 밀려오는 파국에도 지켜야 할 세계가 무엇인지 시로 당부하고자 했던 것이다.  - 최영철 시인 인터뷰 <국제신문> 임은정 기자 2014-10-13 본지 23

  저는 이 시에서 부모자식 관계에서의 아버지와 함께 남편으로써의 아버지의 모습 또한 느낄 수 있었는데요. ‘네가 다만 잘 간직하고 있다가 모국이 그립고 고향 생각이 나고 네 어미가 보고프면 그리고 혹여 이 아비 안부도 궁금하거든 이걸 가만히 꺼내놓고 거기에 절도 하고이 짧은 대목에서 어머니보다 물러나 있는 아버지의 위치가 느껴졌습니다. ‘혹여 아비의 안부가 궁금하거든이라는 부분이 보이지 않는 자식과의 미세한 거리를 화자가 은연중으로 드러내는 것 같았습니다. 가장의 외로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시에서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과 함께 남편, 그리고 가장의 모습까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자식을 보낸 아버지의 마음이 그리 편하진 않을 터

 

  최영철 선생님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한 소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선생님의 지난 발자취가 드러나는 작품이 많은데요. 선생님의 주요 무대였던 부산, 그리고 지금 살고 계시는 김해 도요마을이 작품 속에 종종 등장합니다. 이번 시집에서도 금정산을 보냈다를 비롯해 서면 천우짱, 부산釜山이라는 말등 부산을 품은 작품이 많은데요.

집과 학교 사이 가로막고 섰던 하야리아 부대

하루 두 번 그 길 빙 돌아 오가며

세상에는 눈앞에 두고도

바로 지나갈 수 없는 길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반도의 남쪽에 그어진 또 하나의 분단선

지름길 막아선 총부리에 걸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을 빙빙 돌아서 갔습니다

<중략>

스무 살 무렵 부대 담벼락에 오줌을 갈기기도 했으나

나의 꿈은 오래 주눅 들어 힘없이 뚝뚝 끊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오래전 일제 차지였고 동란 후 미군 차지였던

언젠가부터 나는 그 길을 피해서 걷고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앞집 옆집 양공주들이 붉은 등으로 걸리고

양키들이 낄낄대며 그 등을 하나씩 거두어 갔습니다

버터냄새 풍기는 불빛들이 다 잦아든 뒤에도

양공주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담은 다시 헐렸지만

분수가 요염하게 춤추는 평화로운 주말이 되었지만

동강난 길은 여전히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 하야리아 부대

  여러분, 하야리아 부대를 아시나요? 하야리아 부대는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전동 및 연지동에 설치되어 있는 주한 미군의 기지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의 경마장으로 사용하다가 1945UN 기구, 1950년 한국전쟁 이후에 주한 미군 부산 사령부가 설치되었습니다. 2006810일에는 공식적으로 부대가 폐쇄되었고, 이후 주한 미군과 반환 협상이 이어지다가 2010127일 부산시에 반환되면서 부산시민공원조성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부산시민공원이 위치한 곳이 바로 과거 하야리아 부대의 자리입니다.

  위의 시를 읽으며 저는 하야리아 부대에서 부산시민공원으로 이어지는 세월이 작품 속에 녹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현재 시민공원으로 바뀌어 분수가 자리 잡은 모습까지 담겨 있어 후반부가 인상깊게 들어왔는데요. 공간의 변화와 함께 하니 동강난 길이 여전히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문구로 전해져오는 씁쓸함과 같은 것이 더욱 배가 되어 느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과거 하야리아 부대의 모습 1

과거 하야리아 부대의 모습 2

 

  또한 에 관한 화자의 생각이 돋보이는 작품도 많았습니다. 시인, 한때 시와 같은 작품들을 읽으며 우리문학이 처한 현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뜨겁고 생생했으나

그때는 서로 앞서가겠다고 야단법석이었으나

마을 입구 공동수도 끝없이 줄선

양동이 다 채우고도 철철 넘치던 봇물이었으나

산동네 꼭대기까지 나누어 쓰던 한 바가지 선심이었으나

비수처럼 번득이던 표적이었으나

잠든 그대 머리통 쥐도 새도 모르게 지나간 기별이었으나

이제는 흘러갈 곳 잃은 도랑물

천리길 한달음에 와놓고 남은 백리 앞에 주저앉은

아무도 받으러 오지 않는 헌혈 차량의 사과 반쪽

부끄럼만 늘어난 미지근한 침묵

출처를 알 수 없는 비행물체로 진화한

겨울 탕자 당신만이 입 훔치는 후식

이 엄동설한 떨지도 않고 배회하는 해독 불능의 허기

그래, 좋아, 죽어도, 당신만이 받아먹고 배 두드리다

어디 먼 곳 적선할 수도 내다버릴 수도 없게 된 미지근한 정표

그래도 괜찮다고 찾아오셨으니 천천히 꼭꼭 씹어

천리만리 가시다 배고픈 동무 만나면

아직 저 길모퉁이 끝집 아무 술꾼이나 받아주는

만만한 주막거리 하나 있더라 전해주시길

다 타버린 꽁초로 떠내려가다

마지막 남은 재로, 흐릿한, 문질러진 자국

/ 한때 시전문

  과거엔 양동이 채우고도 철철 넘치던 봇물, 비수처럼 번뜩이던 표적과 같은 것이었으나 현재는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는 헌혈차량의 사과 반쪽, 그리고 부끄러움만 늘어난 미지근한 침묵과 같은 것. 이렇듯 화자는 이렇게 과거의 시가 아닌 현재의 시를 조명합니다. 치열했던, 날카로운 비수 같았던 시들이 지금은 적선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이지요. 과거에 비해 시가 온전히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인공호흡을 해줄 사람조차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시인은 배고픈 동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화자는 아무 술꾼이나 받아주는 만만한 주막거리를 알려주며 그들을 위로하고픈 것일지도 모릅니다.

시, 세상과의 고달픈 싸움

 

  앞에서 과거의 시가 날카로운 비수 같았다고 말씀드렸지요. 금정산을 보냈다속에서도 그러한 경향을 가진 시가 등장합니다.

옛날 시계 분침보다 시침이 더 길었다는 사실

분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

분침 따위 무시해도 좋은 잔챙이였다는 사실

그런 분침이 지금 시침을 졸병으로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

그렇게 사람들이 야금야금 시간을 다 파먹었다는 사실

이대로 가다간 초침이 제일 길어질 날 올 거라는 사실

그 아래 조금 작은 분침이 돌고

그 아래 시침은 떨어져 나와

서랍 속 다이어리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

/ 시간의 진화전문

  「시간의 진화는 빠름을 추구하는 현대에 일침을 던집니다. 현대 사회는 흔히 속도전이라고도 하지요. ‘빨리빨리가 대중화 되어버린 세상에서 느리다는 것은 배척 받을 행동이 되고 맙니다. 화자는 시계바늘을 통해 점점 빨라지는 사회를 직시합니다. 시간 단위가 점점 짧아져 초를 넘어서는 아주 미세한 단위까지 측정할 수 있게 된 지금, 시 속의 내용대로 어느새 시계에서 시침이 사라지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속도의 시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 스마트폰

 

  배추 한 포기 오백원입니다 허리 한 번 숙인 값 오원입니다 땅을 향해 절한 값 오원입니다 비지땀 한 방울 오원입니다 도어보이 치어걸 하루 삼만원입니다 허리 숙여 웃어준 값 삼원입니다 어서 오라 또 오라 인사한 값 삼원입니다 손 한 번 내어준 값 십만원입니다 가슴 한 번 드러낸 값 백만원입니다 지랄발광 물리치지 않은 값 천만원입니다 요리조리 배팅 한 번 억입니다 아무렇게나 내던져 굴러온 십억입니다 밑져도 그만이라고 던져놓은 수백억입니다 한 끼 오백원입니다 저 흑장미 요염한 웃음 한 번 억입니다 백의 눈물과 억의 웃음 뼛속 깊이 사무칩니다 그 먼 거리를 넘나드느라 세상은 이토록 바쁘고 아득합니다 그 먼 거리를 은폐하려고 세상은 이토록 빛나고 향긋합니다

/ 향긋한 양극화전문 

  위의 시는 양극화 된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과거에 발생했던 배추값 폭등을 기억하시나요? 배추 한 포기가 5000~10000원을 넘나든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배추를 재배하는 농민들이 받는 돈은 포기당 500원 가량이었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돈을 펑펑 쓰면서도 돈을 벌고 누군가는 메말라가면서도 돈을 가지지 못하는 현실의 간극이 너무나 크지요.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점을 시로 표현하신 것이 아닐까 합니다.

배추 한 포기 오백원입니다 허리 한 번 숙인 값 오원입니다 땅을 향해 절한 값 오원입니다 비지땀 한 방울 오원입니다 /「향긋한 양극화」 中

 

  이처럼 금정산을 보냈다에는 가족을, 부산을, 시를, 그리고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특히 현재에 소멸되어가는 과거의 것들을 놓치지 않고 드러내고 있는데요. 시 속에 많은 현실이 담겨져 있지만 선생님께서는 그것을 넘어 시가 가야 할 온전한 방향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꾸밈없이 드러내는 것, 짧은 문구 속에 강력한 힘이 들어 있는 것이 바로 가 아닐까요. 그렇기에 우린 시를 더욱 보듬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발을 담고 있는 그 자리를 잊지 않고 깊게 바라보면서요. 최영철 선생님께서 묵묵히 부산을 담아내고 있으신 것처럼…….

 

  이상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2015년엔 모두에게 행복한 일만 가득가득 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레스토랑

 

 

금정산을 보냈다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경남 작가의 재발견]

에로와 그로테스크의 경계, 돌직구 시인 김언희


김언희 시인의 시는 쎄다. 참혹했다. 그것이 제가 받은 그녀 시의 첫인상이었습니다. 김언희 시인은 1953년 7월 20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경상대학교 외국어교육과를 나왔고 1989년 현대시학에서 대뷔했지요. 2005년 경남문학상을 받은 전례도 있구요, 계간 '시와 세계'가 주관하는 제6회 이상 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최학림 문학기자는 『문학을 탐하다』안에서 '타협 없는 무서운 엽기'라고 그녀의 시를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그녀는 2000년도에 발간한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에서도 자서(自序)에 '임산부나 노약자는 읽을 수 없습니다. 심장이 약한 사람, 과민 체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읽을 수 없습니다. 이 시는 구토, 오한, 발열, 흥분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드물게 경련과 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시는 똥 햝는 개처럼 당신을 // 싹 핥아 치워버릴 수도 있습니다.'라고 경고하지요. 그쯤 '엽기'코드가 유행했으니 그녀의 시가 당시의 시대 코드를 잘 반영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녀는 쭉 그런 시를 쓰고 있습니다. 여전히 에로틱하고 그로테스크한 시를요.



그녀의 출판 저서로는 『요즘 우울하십니까』(문학동네, 2011), 『뜻밖의 대답』(민음사, 2005), 『트렁크』(세계사, 2000),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민음사, 2000)가 있습니다.

저는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와 『뜻밖의 대답』안에 있는 시들을 읽었는데요, 속도감 있게 읽히는 반면 불쾌한 감정을 들게하는 시들이었습니다. 시 안에 나오는 표현들 전부가 부정적인 이미지였으니 당연한 기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녀의 시세계를 이해하고 싶으신 분들은 일단 그녀의 시를 읽어보도록 하죠.

우선은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에서 뽑은 세 편을 소개할까합니다. 제 주관적인 해석이므로 반기를 드셔도 됩니다. 시는 읽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 여러 가지 옷을 입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는 아직도 죽지 않았다 양 한 마리가 무릎을 꿇은 채 여자의 잠속을 절룩절룩 걸어다닌다 도끼에 찍힌 자국들이 헐벗은 사타구니처럼 드러나 있는 앵두나무 저 여자는 언제 죽을까 죽은 앵두나무 아래 죽을 줄 모르는 저 여자 미친 사내가 도끼를 들고 다시 등뒤에 선다 미래의 상처가 여자의 두개골 속에서 시커멓게 벌어진다 앵두나무 죽은 앵두나무 말라죽은 앵두나무 도랑을 가득 채우고 흐르는 것은 검은 머리카락이다.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저는 이를 읽으면서 영화 <이웃사람>이 생각 났습니다. 왜일까요? 앵두는 애정관련 표상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앵두가, 그것이 맺히는 앵두나무가 말라죽었다는 건 이 시에 나오는 여자의 처녀성 상실로 생각되네요. 미친 사내의 도끼질을 보며 강간범을 떠올렸구요. 그것도 강간살인범이요. 시를 곱씹으면 계속 그런 장면이 머릿속에 되감기되어 재생되서 끔찍해요. 어쩌면 이 시는 처녀성을 잃고 무참히 살해당하는 여자에게 보내는 추모시가 아닌가. 이런 사회적 성범죄 문제를 각성하라는 시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자궁으로 가는 길은 불태워졌다

소작(燒灼)된 길

위에서

타고 남은 내 몸은

내가 낳은 난자를 먹어치운다

피가 벌건

입으로

* 소작Coagulation : 난관(난관)을 태우는 영구 피임.

-『가족극장, 소작*된』

 

소작된 길은 생명 잉태를 막는 차단로가 됩니다. 영구피임은 더 이상 임신하지 않으려고 선택하는 불가피적인 것이지만, 여자의 몸 안에 남아있던 난자들은 생명으로 부화하지 못한 채 무참히 죽음을 당하지요. 현대 의료시술에 의해 살해되는 겁니다. 그리고 결국 여자의 달거리로, 그들의 시체가 빠져나오게 되지요. 벌건 핏덩어리로 말입니다. 이미지 자체가 좀 징그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편으로는 소작된 길로 인해 상실되는 여성성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구요.

 

자궁의 목구멍에 아버지가 걸려있다

하수구에 걸린 슬리퍼처럼

-『가족극장, 삭망(朔望)』


삭망(朔望)은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을 아울러 이르는 말인데요, 이것과 같은 말로 삭망전이 있습니다. 삭망전은 상중(喪中)에 있는 집에 매달 초하룻날 보름날 아침에 지내는 제사라는 뜻입니다. 제목으로 유추하여 보자면, 상중에 있는 아버지가 지금 성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저 불쾌했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날 만큼은 엄숙해야하는 거 아닐까요. 하물며 상(喪)의 중심에서 상주(喪主) 역할을 해야하는 아버지는 특히요. 그래서인지 하수구에 걸린 슬리퍼를 생각하니 짜증이 났습니다. 아니 짜증보다는 분노에 가깝습니다. 심지어 이 시 속의 아버지가 미친놈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다음으로는 『뜻밖의 대답』안의 세 편을 추려봤습니다. 아래로는 더 주관적인 해석이 달려있습니다. 이 시인이 사회적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구나, 생각이 들어서요.


그것은, 어디에나, 있고,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간에, 극장이라, 부르거나, 유치원이라, 부르거나 간에, 그것은, 도살장이고, 도살장임에, 틀림없고,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들의, 공공연한 용도를, 사무치는, 용도를, 모르는 사람, 역시, 없다, 어떤 간판을, 달았든지 간에,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이, 자신의 집, 안방에서, 또는 욕실에서, 家傳의, 도살 기구들이 흔들거리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흡사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 섬뜩한 항등식, 무엇을, 대입해도 성립되는, 도살의, 등식을, 모르는 사람, 또한,

-『벙커 A』


우리는 벙커 안에 갇혀있습니다. 시인의 말대로라면 항상 어느때나 어디서나 우리는 벙커 안에 갇혀있는 셈입니다. 그 벙커에는 이름이 있지만 벙커는 그냥 벙커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무참하게 도륙당하고 있는 것이지요. 무엇이요. 우리는 그 벙커안에서 무엇을 도륙 당하고 있는 걸까요. 아마 벙커 안에서 도륙되어지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생각'이 아닐까요? 극장에서는 같은 화면을 똑같이 앉아 보고, 유치원에서도 똑같은 내용을 배우죠. 공장에서 찍어내듯 균일화된 사람들이 탄생합니다. 말그대로 이름만 다른 벙커죠. 도살장이지요. 각기 다른 개개인을 죽이는, 벙커는 도살장이군요. 김사과 소설가의 『미나』가 생각나네요.


이자의 개가 되고

호출기의 개가 되고

더 이상 변명일 수 없는 변명의 개가 되고

단말기의 개가 되고

땅거미의 개가 되고

숙취의 개가 되고

시의 개가 되고

구멍의 개가 되고

입에서 나온 입으로 뻐꾹

뻐뻐꾹 성교를 하고 백날이고 천 날이고

연기가 피어오르고 마침내

마침내 그것의 개가 되고

백날이고 천 날이고

누린내가 피어오르고

-『마침내 그것의』


<마침내 그것의>는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을 힐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여기서 '개'는 '노예'로도 바꿔말할 수 있겠네요. 자신의 생활 수준에 안맞는 소비 때문에 이자의 노예가 되는, 휴대폰 단말기처럼 기기의 노예가 되는, 땅거미지도록 술을 퍼마시는 술의 노예가 되는, 상대에게 뻐꾸기 날리며 교접을 원하는 성의 노예가 되는, 개가 되는 그러한 현실. 그리고 결국 누린내가 피어오르죠. 이 누린내는 죽음을 뜻하는 걸로 보이는데요, 얼마나 허무한 인생입니까. 평행 무언가의 노예로, 개로 사는 현실은요.


나에게는

뾰족하게 깍은 연필 한 자루 있네

나에게는 뾰족하게 깍은

자지 하나 있네

뾰족하게 깍은 자지, 아버지의

자지로 오늘도 나는

내 눈을

찌르네

아버지, 아버지가 밴 아이는

내 아이가

아녜요

-『나에게는』


비약적일지도 모르지만, 전 연필을 사람이 쓰는 ‘말(言語)’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뾰족하게 날이 선 말이지요. 그것을 다시 아버지의 성기에 빗대어 말한 것은 그 습관을 아버지로부터 받았다는 말이 됩니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배우지 않습니까. 화자는 뾰족하게 날이 선 자신의 말로 자신도 아버지도 상처입히지요. 아버지가 밴 아이는 내가 준 상처의 말이지만 화자는 그것을 부정하지요. 그 말은 애초에 아버지의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화자는 아버지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답습했을뿐이죠.



시를 보고, 읽고, 나름대로 해석해보면서 역시 생각한 것은 ‘김언희 시인은 시는 쎄다.’였습니다. 부패된 부정한 사회와 가정에게 돌직구를 날리는 스타일이랄까요. 괜스레 독설가 언니를 만나고 온 듯한 느낌도 들었구요.

 

김언희 시인은 “종이가 찢어질 정도로 훌륭한 시를,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쓰고 싶었습니다.”라고 그녀의 네 번째 시집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당신은 김언희 시인의 시를 읽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김언희 시인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아래 책을 참고해보세요.


문학을 탐하다 - 10점
최학림 지음/산지니

『문학을 탐하다』는 2014 '원북원부산운동' 후보 도서입니다.

책 읽는 부산을 만드는 소중한 한 표 부탁드립니다.

2014 원북원도서 올해의 책 투표하러 가기>> http://www.siminlib.go.kr/onebookone2/

Posted by 비회원





2011년 <해석과 판단>은 '폭력', '실재', 공동체' 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국 현대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하는 '타자성'의 윤리적 접점들을 찾아보고 있다.




1부 _ 폭력



고은미「폭력의 스펙터클과 윤리적 되갚음」
<아저씨>,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악마를 보았다>를 중심으로 잔혹한 폭력 이미지와 복수의 의미를 고찰한다. 
  

 

이 영화 속 폭력 이미지는 대중의 피해 의식과 불안, 배설 욕망을 포착하였지만, 자본주의적 교환 의지를 바탕으로 전시 욕망의 스펙터클을 위해 활용될 뿐이다. 앙갚음을 원하는 복수극 안에서 분개심의 정의를 넘어 윤리적 되갚음을 고민하는 영화적 시선이 필요함을, 글쓴이는 역설하고 있다.



김필남 「폐쇄된 세계, 역류하는 신체 - 김기덕론」
김기덕 영화는 관객들에게 ‘구역질’을 유발하는데 이 의미는 몸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을 게워내려는 가역반응이다. 봉합하고 감추기 급급한 이 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에 구역질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영화는 사회 규칙과 규범 등을 부정하기 때문에 관객들과의 소통에 실패했으며, 이 지점이 바로 개인들에게 윤리적 존재가 되게끔 강요하는 사회를 똑바로 직시하게 만든다. 

 


박정민 「고통의 심연」 
이창동의 영화 <밀양>(2007)과 <시>(2010)가 고통을 다루는 방식에 주목한다. 이창동은 자극적인 사건의 재현을 생략한 채, 인물들의 고통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대화하고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서로 다른 두 입장은 시선의 반복되는 상호교차 속에서 손쉬운 이해와 연민으로 남기를 거부한다. 고통을 단순한 볼거리로 전락시키지 않으려는 이창동의 안간힘 앞에서, 우리는 고통과 함께, 타자의 고통의 심연을 그 윤곽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다.

<시>의 마지막 수업시간, 미자의 시를 읽기 전에 시인은 시 써온 사람 또 없느냐고 묻는다. 수강생들이 "어려워요"라고 대답하며 멋쩍게 웃을 때, 그 모습은 고통의 재현물 앞에서 가벼운 연민 뒤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진다.






2부 _ 실재



오선영 「환상은 없다-황정은론」
황정은 소설에서 나타나는 ‘환상’의 배치와 맥락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황정은 소설 속 인물들은 자기 자신이나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서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을 기이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그들의 담담한 태도에 놀라는 것은 독자, '우리들'이다. 여기에서 황정은 소설의 새로움과 특별함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황정은의 환상은 베일에 가려진 진실의 이면을 들추어내면서 예외적 존재들의 자기 목소리를 들려준다. 거기서 삶의 진실에 대한 앎이 아닌 행동의 문제를 제기할 때 주체의 윤리적 태도는 나타날 수 있다. 



조춘희 「노동하는 사람들-박현덕 시조(時調)를 읽는 한 방식」
 


 
과연 노동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가, 라는 역설적인 물음 앞에 오늘에 복무하고 있는 우리가 던질 수 있는 답변이 있을까. 현대시조가 설 자리를 탐색하는 하나의 방식은 노동의 오늘을 진단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박현덕의 시조에서 찾을 수 있다.
 

 

손남훈 「르포르타주와 글쓰기의 윤리-김곰치의 르포·산문론」 
김곰치의 르포르타주에서 글쓰기의 가능태를 보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준다. 작금에 일어나는 르포르타주 글쓰기는 당대 현실의 부조리에 반하는 실재를 향한 충동의 결과인데, 김곰치의 르포르타주는 ‘직각’과 ‘의심’의 글쓰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글쓰기=행동에 근접하고자 하는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

부산의 어느 길거리, 그들이 왜 한낮에 부산역까지 가는 초행의 길에 있게 되었는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막내야, 니가 물어봐라, 했던 듯이 셋을 '대표하여' 가장 젊은 축의 사내가 나선 것이고, 길을 묻는 일에 '대표'가 필요했구나, 하고 나는 직각(直覺)했다.

-김곰치 「한 사람」『지하철을 탄 개미』


그의 르포르타주는 논리적 근거를 찾아 자료들을 많이 읽고 준비해가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되레 현장의 생생한 사태들과 맞부딪칠 때 생겨나는 "고유성" "유일무이함"을 그는 신뢰한다.




3부_공동체 


장수희 「죄의식의 정치, 윤리의 기술(Art)」
지금까지 스타일리스트로 평가되어온 소설가 이기호를 읽는 다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기호가 화두로 삼아온 ‘죄의식’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하고, 근대 체제를 만들어온 이 죄의식을 벗어나기 위한 이기호의 전략을 분석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것은 이기호의 근작(近作) 「밀수록 더욱 가까워지는」과 『사과는 잘해요』에 잘 드러나고 있으며,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서 죄의식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소설과 소설가의 작업 내용은 소설가 이기호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한다. 

"나중에 혹시 나한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말이야."
"그러면?"
"그냥 너한테 해."

-이기호  『사과는 잘해요』

이 말은, 죄의식을 지배하는 자에 대한 기계적 사과의 공허함을 체득한 자에게서나 나올 수 있는 용서의 말이다. 반성적 사유를 통해서 자신을 스스로 반성하는 것-그것이 지금, 필요하다고 이기호는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방법이야말로 죄의식과 고백의 무한 순환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희원
「‘아무도 아닌 자들’의 윤리 ― 배수아의 『북쪽거실』을 읽는 어떤 시선」

 배수아의 장편소설 『북쪽거실』을 통해 공동체의 윤리적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있다. 필자는 이 작품에서 동일성의 논리로는 계산해낼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진실과, 그것에 충실하기를 멈추지 않는 자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정념과 소통의 방식, 그 속에서 흔적으로 남는 아이러니한 역사를 좇아가면서 공동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북쪽거실』의 인물들은 충돌로 서로 도래하고 일체화된 합일로서의 소통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래서 관계를 단절하는 것에도 특별한 고통이 따르지는 않아 보인다. 때문에 이러한 인물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는 매우 건조해 보이며 때때로 공동체에 대한 상정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이 건조함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그들의 입장이 비동일적인 낯섦을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지 열정이 없거나 무관심한 때문은 아니다. 


 



김수현 「경계, 불안, 눈(seeing)」
영화 <황해>(나홍진, 2010)와 <무산일기>(박정범, 2011)를 통해 조선족과 탈북자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입장과 태도를 분석한다. 이는 영화 속의 이방인의 존재가 국민국가-자본주의라는 틀 속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가운데, 기본적으로 윤리란 사회적 관계 속에 놓인 주체의 입장과 태도에 관련된 질문을 의미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황해>의 카메라가 빠르게 질주하는 방식을 통해 조선족의 삶을 밀어내고 외면한다면, <무산일기>의 카메라는 끊임없이 머뭇거리고 서성이는 방식을 통해 탈북자의 삶에 밀참함으로써 현실의 구조를 반추하고 되돌아보게 만든다.




박형준 「불화의 공동체-지역학문공동체와 지역학의 윤리」
우리가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은 중앙 그 자체가 아니라, 중앙이라는 대타적 관념을 작동―점멸시키는 정치회로다. 비평적 논쟁의 실종과 침묵의 공모를 가능하게 하는 주체의 취약함,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입에 발린 지역적 연대가 아니라, 오히려 지역, 더 넓은 의미에서의 ‘로컬’을 ‘불화의 장소(local trouble)’로 사유하는 것이다.  

학문적 논쟁이 실종되고 풍문과 추문이 횡행하는 지역학문공동체, 이 불화로 가득한 장소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만이 '지역'이라는 곤혹스러움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임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비평의 윤리, 윤리의 비평』 해석과 판단5

| 문학 | 평론

해석과 판단 지음
출간일 : 2011년 12월 30일
ISBN : 9788965451686
신국판 | 270쪽 

2011년 한 해 동안 '폭력', '실재', '공동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치열하게 사유한 결과물. 이 세 가지 키워드는 한국 현대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하는 '타자성'의 윤리적 접점들을 찾아보고자 찍은 방점으로 각각의 글들은 지금-이곳의 현실성에 대한 비평적 개입이자 가장 치열한 방식으로 현재를 사유한 글들이다. 




저자 : <해석과 판단> 비평공동체
 
2006년에 결성된 <해석과 판단> 비평공동체는 부산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평 그룹이다. 경성대, 동아대, 부경대, 부산대, 부산외대 등에서 연구와 강의에 임하고 있는 젊은 비평가들이 대학이라는 학연적 위계를 넘어, 함께 소통하고 교류함으로써 문학 비평의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비평의 현재성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지금-여기의 문제들을 온전히 돌출해내고, 그것에 치밀하게 개입함으로써, 단지 ‘부산’ 지역의 비평이 아닌, 보편적으로 정초 가능한 비평의 가치를 모색하고 있다.  


비평의 윤리, 윤리의 비평 - 10점
해석과 판단 비평공동체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며칠 전 창비 저작권팀에서 한 통의 메일이 왔는데요.

“중, 고등 국어교과서가 국정이 아닌 검정 교과서로 바뀌면서 여러 종의 국어 교과서가 발행되어 있습니다. 창비는 검정 국어교과서에 수록된 문학작품 중에서 좋은 작품을 선택하여 학생들이 다양한 문학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시리즈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편에 귀사의 저작물 「밴드와 막춤」(출전:입국자들)을 사용하고자 아래와 같이 문의를 드리오니 검토하시고 허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략)”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밴드와 막춤」이라는 시를 다른 작품들과 같이 묶어 책을 발행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밴드와 막춤」은 저희 출판사에서 출간한 하종오 시인의 『입국자들』에 실려 있는 시인데요.

『입국자들』 소개글 보기

작년에도 『입국자들』에 실려 있는 시 「사전」을 싣고 싶다는 이런 메일을 창비에서 받은 기억이 나네요. 「사전」은 중학교 생활 국어 2-2에 실려 있답니다.
그때 허락 메일을 보내드렸더니 책이 나오고 나서 저희 출판사에 2권을 보내왔더군요.
한 권은 저희 아들놈 읽으라고 집으로 싹~. 마침 제 아들도 중2이거든요.

『입국자들』에 실려 있는 시 중에서 이 외에도 몇 편이 더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데요.  이 시집 만들 때 저희 출판사에서는 처음 출간하는 시집이라 꽤 많이 공력을 들였는데 교과서에도 실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게 되어 좋네요.

창비의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시리즈에서 작품을 선정할 때도 재미와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작품을 고르는 것이 첫 번째 기준이라고 하더군요. 이런 좋은 시를 많이 접해서 우리 주위의 사람, 사물, 세계에 대한 인식이 훌쩍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이주민에 대한 인식도 좀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고요.^^


 

사전

시어머니 손에 잡혀 나오면서도
영문을 몰랐던 며느리는
서점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시집온 지 겨우 한 달
한국어는 말하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해도
베트남어는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는
며느리가 시어머니 손을 잡고 앞장섰다

각종 외국어 사전이 꽂힌 서가 앞에서
베트남어 한국어 사전을 뽑아 든
며느리는 빠르게 책갈피를 넘기고
한국어 베트남어 사전을 뽑아 든
시어머니는 천천히 책갈피를 넘겼다

사전 한 권씩 들고 집에 돌아온 고부는
그때부터 편해지고 마음 놓이는지 
굳이 사전을 뒤적여 찾지 않아도 
한국말과 베트남말로
제각각 한마디씩 해도 살림할 수 있었다


입국자들 - 10점
하종오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