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권력과 일상』편집후기
안녕하세요. 온수 편집자입니다:)
화려한 액션이 펼쳐지는 편집후기는 아닙니다.
늘 그런 게 없다고 생각해서 편집후기를 미뤘지요.
그러나 생각해보면 담당 편집자인 저에게는 특별했지요.
오랜만에 들뢰즈와 푸코 두 철학자의 사유를
맛본 즐거운 시간이었거든요.
야외극장에서 상영되는 단편영화 같은 느낌으로
『천 개의 권력과 일상』을 편집하면서
느꼈던 소소한 이야기를 독자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저자의 이력이 특이했습니다
투고 원고로 시작한 이 원고는 저자의 이력과 원고를 면밀히 검토하는 것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자의 이름도 특이했지요. 사공일. 필명이 아닐까 했지만 본명입니다. 이때 제가 찾아본 이력은 이러했습니다.
1.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후 다시 공부를 시작한 점
2. 대학 다닐 때 연극반을 한 점
어떻게 보면 평범하고 어떻게 보면 특이한 이 이력을 보고 저는 저자를 만나게 되면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산지니 내부에서 면밀한 검토와 열렬한 토의 끝에 이 원고를 책으로 출간하기로 했고 드디어 저자와 미팅 날이 잡혔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보다 더 궁금했던 건 들뢰즈였습니다. 저자의 이력에는 논문 이외에도 『들뢰즈와 창조성의 정치학』, 역서로 『들뢰즈와 음악, 회화, 그리고 일반예술』과 『일상의 악덕』으로 온통 들뢰즈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들뢰즈의 매력에 대해 저도 좀 엿듣고 싶었지요
첫 미팅을 한 날, 원고에 대해 또다시 면밀한(?) 대화를 나누면서 저는 살며시 저자에게 이력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대학 때 연극반에 푹 빠지게 되었고 이후 연극이론을 공부하다 들뢰즈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고, 이후 들뢰즈 연구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퍼즐이 착착 맞춰지는구나!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저는 저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서문에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을 때 저자가 어떤 계기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서술되어 있으면 그 책을 읽는데 몰입도가 훨씬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자에 대한 충성도도 높아졌고요.
물론 그런 의미도 있지만 저자에게도 그러했듯 들뢰즈가 독자에게도 흥미로운 존재로 다가가길 원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이 책의 프롤로그입니다. 다소 어려운 부탁이었지만 흔쾌히 집필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제가 좀 거창하게 썼네요. 독자분도 재밌게 읽어 주세요. 하하
+ 프롤로그 9쪽
"회사 생활 동안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연극에 대한 생각이 한 번씩 표출되다가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은 2년 차에 가까워지던 때였다. 정확히 21개월 된 후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입학해 영문학 희곡비평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원을 입학한 후 비평이론을 공부하면서 들뢰즈를 처음으로 조우했다. 2000년 당시 국내에는 들뢰즈에 대한 연구가 초기 단계라서 한글로 된 다양한 책이 없었기에, 들뢰즈 이론이 상당히 난해했다.
하지만 들뢰즈 이론은 지적 호기심에 목말라 있던 나의 텅 빈 머리를 조금씩 채워주는 역할을 하면서, 세상을 차이와 생성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들뢰즈와의 만남은 대학 연극반이 20대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나에게 또 다른 하나의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와 의 만남은 나의 인생에서 새로운 의미가 생성된 사건이자,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한겨레신문에 기사가 났을 때 첫 문장이 이러했습니다.
"복잡하기로 이름난 현대철학자 들뢰즈와 푸코의 이론을 대중적으로 쉽게 설명하며 일상의 권력을 분석했다." 한겨레신문 2014년 7월 14일자 학술. 지성 새책
사실 저 역시 이 책을 편집하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들뢰즈와 푸코는 어렵다. 심지어 들뢰즈와 푸코는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을 편집하면서 이런 생각은 깨끗이 없어졌습니다. 오히려 들뢰즈와 푸코는 내 취향이야, 라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물론 알기 쉽다고 해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나름 철학 이론을 설명한 책이니까요. 그러나 저자가 영화나 드라마를 예로 들면서 알기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고, 다소 어려운 이론은 다음 장에서 다시 한 번 정리해서 서술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구간과 쉬운 구간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어느새 읽기에 탄력이 붙으며 두 철학가의 매력에 빠진답니다.
무엇보다 권력이 특정한 계층의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 일상 곳곳에 편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권력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제 생활에도 소소한 변화가 있었는데요. 철학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생각의 변화도 있었지요.
조금 더 주체적으로!
조금 더 능동적으로!
이 책이 가져온 소소한 변화가
독자분들에게도 전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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