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극장문화가 시작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22개의 극장이 존재했을 정도로 극장문화가 꽃핀 곳이었다. 일본식민지로부터 광복을 맞기까지 부산의 극장문화는 대중문화를 이끈 하나의 축이라 할 수 있었다. 우리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주식회사 형태의 규모를 갖추고 자본금 75,000원, 불입금 18,750원을 출자하여 1924년 7월 11일 설립된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설립된 곳도 부산이었다.
<1910년대 부산 영화극장의 삼두마차 보래관, 상생관, 행관>
찰리 채플린의 영화는 그 시대에도 인기가 대단하여 빠지지 않고 상영되었다. 내가 80-90년대에 대학교에서 흑백 무성영화로 보았던 <황금광시대>, <채플린의 월급날> 등이 그 시대에 벌써 상영되었다니 놀라웠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제는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고, 전쟁 홍보영화를 꾸준히 만들어 극장에서 상영하였다. 티브이도 라디오도 없던 시절, 전쟁뉴스를 영화로 만들어 매일 극장에서 상영한다는 것은 그 선전효과가 대단했을 것이다. 일본의 대륙침략전쟁의 전초기지가 되었던 우리나라로서는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기도 했다.
제목 또한 <일장기 펄럭이다>, <국기 아래서 나는 죽는다>, <함락특보>, <입성> 등을 붙여 비장하기도 하거니와 일본의 승전보를 실시간 알리는 식의 상투적인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다룬 『부산근대영화사-영화상영자료(1915∼1944)』는 1915년부터 1944년까지 부산의 13개 영화관에서 상영된 영화 14,697편의 방대한 목록을 수록함으로써 근대 부산의 영화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한국영화자료연구원 홍영철 원장이 쓰고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가 엮은 이 책은 마이크로필름화된 당시의 일간신문에서 일일이 상영자료를 찾아내는 지난한 작업을 통해 목록화한 것으로, 근 30년 동안 부산에서 상영된 총 영화상영자료를 수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화가 처음 전해진 극장 태동기에서부터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부산에 설립되기까지의 과정 등 부산영화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기존 영화사의 오류까지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이 책은 한국영화사에서 부산이 차지했던 비중이 대단히 컸음을 드러내고 부산영화사의 가치를 제대로 자리매김한 성과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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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근대 영화사 - ![]() 홍영철 지음,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엮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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