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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 할인이 시장 왜곡...할인 없애야 소비자에 더 유리" - 한국일보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8. 20.

편집자주

온전히 품지도 못하고, 온전히 버릴 수도 없는 계륵 같은 존재. 도서정가제 얘기다. 좋은 책이 많이 나오려면 저자도 출판사도 서점도 함께 살아 남아야 한다. 도서정가제는 출판 생태계를 지탱하는 최후 보루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당장 책값이 좀 더 저렴해지길 바란다. 3년마다 돌아오는 재검토 시한(11월 20일)을 앞두고 도서정가제 찬반의 입장을 들어봤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현행 도서정가제로는 출판 생태계를 복원하는 게 역부족이라며, 완전도서정가제를 주장했다. 홍인기 기자

 

“지금까지 제대로 된 도서정가제는 없었다고 봐야죠. 15% 할인(10% 할인과 5% 마일리지 적립)에 카드사 제휴 할인까지. 현행 도서정가제는 한마디로 누더기 할인이 판치는 난개발 그 자체니까요.”

2003년부터 도서정가제가 법제화됐지만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한국에서 도서정가제가 제대로 시행된 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출판 문화 진흥'이란 본래 취지와 달리 할인을 권장하고, 강제하는 법으로 전락했다는 점에서다. 그 결과 "할인 공세에 나설 수 있는 자본력 있고 유통 단계가 단순한 대형 온라인 서점에게만 절대적으로 유리해졌고, 출판 생태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백 대표의 진단이다.

 

'도서정가제'는 무엇

책을 판매할 때 일정 수준 이하로 할인을 못하게 하는 제도. 무분별한 가격 경쟁으로 출판생태계가 흐트러지는 걸 막기 위해 2003년부터 법제화됐다. 현재는 정가의 15%(10% 가격할인, 5% 마일리지 적립 등 경제상 이익) 안에서만 할인하도록 정해놨다. 3년마다 재검토 절차를 밟아 폐지 또는 완화, 유지 등의 조처를 취하기로 돼 있는데 11월 20일까지가 합의안 도출 시한이다.

 

 

 

 

 
그가 대안으로 내세운 건 완전도서정가제다. 같은 도서라면 전국 어디서든 균일가로 판매하는 걸 말한다. 신문을 떠올리면 쉽다. “도서정가제의 핵심은 공정한 경쟁 기회를 통해 책 시장의 질 높은 다양성을 구현하자는 겁니다. 공정한 가격 질서를 형성하기 위해서 일단 할인부터 없애야겠죠."

지금도 책 값이 비싸다고 아우성인데, 소비자들의 반발이 크지 않을까. 백 대표는 “할인을 애매모호하게 끼워놓은 현 상태가 외려 가격 상승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당장 15% 할인이 일반화한 상황에 맞춰 가격을 책정하다 보면 거품 가격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지난해 9월 백 대표가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출판사가 직ㆍ간접 할인율을 감안해 책값을 책정할 것이라 본다'는 의견이 그렇지 않다는 의견보다 많았다. 할인 경쟁이 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거다.

백 대표는 완전도서정가제가 도입되면 거품 가격이 생겨날 여지가 차단되고, 궁극적으로 책값 상승도 억제될 것이라 봤다. 근본적으로 출판 시장의 파이가 커지는 것도 가격 안정에 기여하는 요인이다. 할인이 사라지면 지역 서점, 중소 출판사의 수는 늘어나고 다양한 책들이 시장에 더 많이 생산, 유통될 수 있다. “소비자 후생은 가격에서만 오는 게 아닙니다. 다양한 책 생태계 환경이 조성될 경우 가장 이익을 보는 건 책을 읽는 독자들이죠.”

제도가 시장을 바꿀 수 있는지는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무제한 구간(舊刊) 할인 폭탄을 없앴던 2014년 도서정가제 개정안 시행 이후, 책 시장은 구간보다 신간 중심으로 정상했고, 독립서점이 꾸준히 증가하는 한편 오프라인 지역 서점은 감소 추세가 둔화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전자출판물과 관련해서 백 대표는 출판계보다 유연한 입장을 내놨다. 종이책의 소유 방식을 넘어선 구독과 대여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한 만큼 기존 도서정가제를 똑같이 적용하는 건 무리란 판단이다. 그는 “웹툰과 웹소설의 경우 가격 제도를 선택적으로 운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면서도 전자출판물에 대한 예외가 도서정가제 자체를 흔드는 논리로 작용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자출판물까지 더해져 갈수록 고차방정식이 돼 가는 도서정가제. 백 대표는 정부가 여론에만 의지하는 방관자가 아닌 적극적인 균형자로 나설 것을 주문했다. “모든 정책을 여론으로만 끌고 갈 순 없어요. 문체부는 지금까지 의무 방어전만 치러왔지만 이번만큼은 정면돌파 해야 합니다. 책은 일반 소비재와 다른 지식공공재이고, 문화다양성은 제도적 틀로 유지될 수 있다는 걸 설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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