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할아버지의 휴가>,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등의 책이 들어 있는 비룡소그림동화 시리즈에는 원서가 좋아하는 책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이 책들은 맨 뒷장에 시리즈 목록을 죽 싣고 있는데요, 원서는 언제부턴가 책을 읽고 나서는 그 목록까지 읽어달라고 하는 겁니다. 어쩌겠어요, 읽어 달라는데 읽어 줘야죠. “1번 <곰>, 2번 <산타할아버지>, 3번 <산타할아버지의 휴가> ……”
한 50개의 목록을 책 읽을 때마다 읽어주고 또 읽어주고 하니 나중에는 한 반 정도는 줄줄줄 외우더군요. 도서관에서 제가 외운 제목의 책들을 발견하면 또 얼마나 기뻐하는지요.
<유모차 나들이>는 그렇게 외운 책 가운데 하나랍니다. 금정도서관에서 빌려 온 이 책을 어린이집의 씩씩이반, 내멋대로반 친구들한테 읽어주었어요.
엄마랑 나들이를 나온 아기는 유모차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가 나비 때문에 잠을 깹니다. 아기는 나비가 유모차를 타고 싶어 하는 것 같아 태워 줍니다. 개구리, 오리, 고양이, 여우, 곰이 차례로 나타나고 아기는 이 동물들을 차례로 다 유모차에 태워 돌봐주지요.
3월부터 어린이집에서 책읽어주기를 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세 살, 네 살 어린 아이들이기도 하고 또 아직 어린이집에도 미처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인지라 책 읽어주는 데 도무지 집중을 해주지 않는 우리 친구들이었어요. 애써 골라간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때는 당황스럽기도 했지요. 조금 글이 많다 싶으면 여지없이 샛길로 빠져버리는 친구들. 점점 더 쉬운 책, 짧은 책으로 가져가 보기는 하는데, 성공할 때보다 실패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나마 몇몇 아이들이 집중해서 볼라치면 여지없이 방해꾼이 나타나서 분위기를 흐트러트립니다.
민재는 그중 대표적인 방해꾼이었답니다.(^^) 아이들 앞을 가로막고, 쿵쿵 소리를 내고, 다른 장난감 가지고 와서 놀고... 그러던 민재가, 책 한 권 제대로 들어주지 않던 민재가 처음으로 집중해서 들어준 책이 바로 이 <유모차 나들이>였습니다. 민재뿐만 아니라 아이들 모두 소리 하나 없이 뚫어져라 책을 쳐다보더군요. 언제나 아이들을 안고 책 읽는 데 같이해주시는 풀꽃 선생님도,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고요할 수가...
“오늘 분위기 정말 좋은 거 같아요, 선생님.”
“정말요. 아이들 모두 유모차 뗀 지가 얼마 안 돼서 그런가요? 호호”
엄마가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가는 저 표지 그림이 마지막 장면입니다. 아이는 동물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서운해서 저렇게 뒤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동물 친구들 안녕, 다음에 또 만나. 포구나무 친구들도 안녕, 다음 주에 또 만나. 우리 친구들이 모두 손을 흔들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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