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입니다.😀 달력을 보면 5월에는 기념해야 할 날이 많죠. 그리고 우리는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부릅니다.
신나는 일도 많고, 서로 정을 나누며 기념하기 좋은 지금. 하지만 누구나 이 시기를 즐거워하며 맞이할까요? 누군가는 이 시기에 소외당하지 않는지, 더욱 외로움을 느끼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펭귄의 이웃들』은 가정이 누구에게나 안전한 공간일지, 다양한 가정폭력의 유형을 묘사하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날, 가정의 달에 우리 사회의 가정폭력 문제를 짚어보기 위해 『펭귄의 이웃들』의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펭귄의 이웃들』에는 여러 가정폭력의 양상을 그린 여섯 개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차례대로 「아무도 모른다」, 「펭귄의 이웃들」, 「촉법소년」, 「조건만남」, 「스톡홀름 신드롬」, 「잊히고 있는 집」입니다. 작가는 이 차례를 각 작품의 주인공인 피해자 나이 순서대로 나열했다고 합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피해자의 나이는 어린아이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아무도 모른다」의 주인공 아이는 유치원생입니다. 이 아이는 어른들이 가진 권력욕, 결핍 때문에 상처받고 실어증을 앓다가, 계모로부터 상습적인 폭행을 당해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펭귄의 이웃들」에는 남편이 떠난 후 사채에 시달리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는 여자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 여자 옆에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는 엄마가 죽었다는 것도 모르고 자신의 나이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여덟 살? 혹은 아홉 살쯤? 학령기 아동으로 보이지만 반지하 집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다음은 중학생입니다. 아버지는 재혼을 위해 떠나고 할아버지로부터 학대당하는 아이입니다. 이 아이는 연민을 느끼지 못하고 사이코패스의 기질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남을 괴롭히면서도 전혀 죄의식을 갖지 못하는, 이런 아이가 「촉법소년」의 주인공입니다.”
이처럼 작가는 앞 세 편의 소설에서 가정폭력의 피해자를 아이로 설정하여 가정 내 아동학대 문제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 아동학대의 이면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고 말합니다.
“학대당하는 아이 뒤에는 항상 학대하는 어른이 있음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서열과 등수만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랐죠. 성장하는 시기에 정작 중요한 인성, 감성교육은 부재했습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후에 부모 세대가 되었습니다. 사회에서 하나의 ‘인적 자본’으로만 키워지며 억압된 이들이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분노를 터뜨리는모습이 아동학대의 이면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단순히 ‘아동학대는 문제야’라기보다 아동학대의 이면, 근본적 원인에 접근해야 합니다.”
“첫 번째 소설 「아무도 모른다」의 본문에는 공간이 바뀔 때마다 그 공간이 먼저 명명된 후, 본문이 이어집니다. 예를 들면 ‘S백화점 VIP 전용 라운지’, ‘백화점 옥상정원’, ‘A아파트 58평형 침실’처럼요. 이렇게 일부러 장소를 써 놓은 의도가 있으실 텐데, 궁금합니다.”
“네, 당연히 의도가 있어서 공간을 한정했습니다. 이유는 먼저, 이렇게 함으로써 제한된 특권층만 출입 가능한 공간의 폐쇄성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아무나 기웃거릴 수는 없는 곳이죠. 그리고 고립감의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고립된 공간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타인은 알 수 없습니다. 이 한정된 공간 안에서 정말 아무도 모르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
작가는 이 작품의 모티프를 ‘정인이 사건’이라 불리는, 2020년 서울에서 발생한 아동학대·사망 사건에서 얻었다고 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채로 일어난 일, 힘없는 아이가 아무도 모르는 채로 죽음에 까지 이르게 되는 그 공간의 폐쇄성에 대해 생각했고, 이를 알리고자 했답니다.
“학대받은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결국은 폭력을 휘두르는 어른이 될 가능성이 높더라고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무언가에 결핍이 많은, 혹은 사이코패스적인 기질을 가진, 그런 어른들의 이야기가 뒤의 작품에 나옵니다. 「조건만남」의 주인공은 성(性)을 수단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여성입니다. 소설 말미, 옆집에 살던 노인이 고독사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이 여성은 왠지 모를 감정을 느낍니다. 「스톡홀름 신드롬」에는 무언가에 결핍된 성인 세 명의 남녀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결핍을 ‘정착’하고 ‘집착’하는 것으로 채우려 합니다. 안정된 가정을 꾸려 한 곳에 뿌리내리고자 했으나 그것이 상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죠. 결국 그들은 계속 떠돌아다닙니다. 남편의 사랑에 결핍된 주인공은 자신이 천박하다 여긴 노숙자, 이 남자가 들려준 사랑 이야기를 조금은 동경하게 됩니다.”
가정 내 누군가로부터 상처받았지만 그것이 상처인 줄 모르고,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모르고 살아가는 어른도 많습니다. 작가는 피해자를 설정해 놓았지만 가해자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가해자 없는 피해자는 없겠죠.
“마지막 단편 「잊히고 있는 집」에는 건망증으로 자꾸 깜빡깜빡하는 주부가 나옵니다. 남편은 회사에서 해고당할 위기에 처하자 회사 상사를 집으로 불러들여 자신의 아내에게 성 상납을 하게 합니다. 사실 주부는 그 끔찍한 기억을 잊기 위한 방어 수단으로 건망증을 보이는 것인데, 남편은 그냥 아내 탓을 합니다. ‘그거 출산 후유증이야’라고 말이죠.”
오영이 작가의 소설은 대체로 그 내용이 무겁고, 결말 또한 비극적입니다. 작가는 왜 이렇게 어두운 소설을 쓰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하는데요.
“세상에는 사실 해피한 엔딩보다는 그렇지 못한 엔딩이 많고, 명색이 작가인데 어두운 면의 이야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이야기는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사실을 부풀려 힘든 이 시기에 행복한 이야기를 남발하며 마치 마취제처럼 활용하죠. 저는 작가로서의 소명감을 가지고 사회의 사각지대를 밝혀 보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조금 힘들더라도 제게 에너지가 있는 한 다크한 이야기를 통해 사회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여러분은 이 책의 제목 ‘펭귄의 이웃들’이 책에 실린 여섯 개의 단편소설 중 두 번째 작품의 제목과도 같다는 것, 눈치채셨죠?
“여섯 개의 소설 중 이 두 번째 작품을 표제작으로 꼽으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여러분은 ‘펭귄’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저는 황제펭귄의 ‘허들링’에서 다른 펭귄을 소외하지 않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았고, 이 책에서도 타인이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이웃과 사회를 꿈꾸는 의미에서 표제작으로 꼽아 보았습니다.”
‘허들링’은 알을 품은 황제펭귄들이 모여 피부를 맞대고 서로의 체온으로 겨울 추위를 견디는 행위입니다. 무리 전체가 돌면서 바깥쪽과 안쪽에 있는 펭귄들이 계속해서 위치를 바꾸는 것이죠. 바깥쪽에 있는 펭귄들의 체온이 떨어질 때 안쪽으로 위치를 바꿔줌으로써 추위를 함께 극복해 나갑니다. 작가는 이 행위를 보고 단순히 ‘펭귄이 귀엽다’고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불에 덴 듯 가슴이 아팠고 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가정폭력은 그것이 지닌 은밀함, 폐쇄성, 사적인 느낌 때문에 그 실상이 밖으로 잘 드러나지 못하며, 그리하여 근절되기가 어려운 사회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양육자로부터 폭력 당하는 아이는 그것이 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양육자는 본인이 의지하는 존재이고,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인 피해자는 부끄러워서, 혹은 그 경험이 괴로워서 가정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주저합니다. 가정폭력은 심각한 사회 문제이니 이것을 뿌리 뽑는 방안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피해자로 남고만 이들의 상황도 다방면에서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가정은 태어난 생명 대다수가 생애 처음 마주하는 집단이자 이들에게 소속감을 부여하는 하나의 공간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앞으로 살아갈 날에 겪을 수많은 일을 예행연습 해 봅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대개 오래도록 기억됩니다. 하지만 누구나, 언제나 그 공간에서 즐거운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영이 작가의 말처럼, 세상에는 비극적인 현실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당장 내가 몸담고 있는 가정의 구성원들은 괜찮은지, 내 주변 이웃들은 안녕한지 관심을 가진다면 더욱 의미 있는 오월, 가정의 달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 북토크 전체 내용은 아래 영상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 『펭귄의 이웃들』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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