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매달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하여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2023년 5월의 독립운동가>으로는 후세 다쓰지 선생과 가네코 후미코 선생이 선정되었는데요,
산지니를 관심 있게 지켜봐 온 독자분들이라면 '가네코 후미코'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영화 <박열>로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인물이지만, 산지니에서 출간된 옥중수기 『나는 나』 속 주인공이기도 하니까요!
오늘은 『나는 나』와 함께,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은 독립운동가 가네코 후미코의 생애를 들려 드리려 합니다.
가네코 후미코는 배우자 박열과 함께 일본에서 한국인이 조직한 사회주의, 무정부주의운동 단체 '흑도회'에서 항일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러던 중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박열과 함께 구속됩니다. 재판 과정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일본 정부에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오히려 박열과 함께 사형을 요구했습니다.
당시 예심판사는 재판에 도움이 되도록 가네코 후미코에게 일대기를 써 보라고 명령하였는데요,
이때 작성된 옥중수기가 바로 『나는 나』입니다.
이 수기가 재판할 때 어느 정도 참고가 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재판도 끝난 지금, 이 수기는 판사에게 더 이상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판사에게 수기를 돌려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이 수기를 나의 동지들에게 보내려 한다. 그 이유는 동지들이 나를 더 깊이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며, 다른 이유는 행여 조금이나마 유용하다면 이것을 책으로 출판해주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나는 더 많은 세상의 부모들이 이 수기를 읽어주었으면 한다. 아니, 부모들뿐만 아니라, 더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교육가, 정치가, 사회사상가 모두가 읽어주었으면 한다.
-「머리말」 중에서
『나는 나』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가네코 후미코의 유년기와 청년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가네코 후미코의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가네코 후미코는 출생신고도 하지 못했습니다.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도 학교에 다닐 수 없었고 사설 학교에서 공부했으나 생활고 때문에 꾸준한 공부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헤어지면서 후미코는 조선으로 건너와 고모 집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식모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오랜 시간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받은 후미코는 이후 일본으로 돌아와 배움의 뜻을 안고 도쿄로 갑니다. 도쿄에서의 생활 역시 순탄하지 않았는데요, 신문팔이, 노점상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후미코는 공부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고된 노동과 임금 체불로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요. 후미코는 일하며 사회주의자, 부르주아, 조선인 유학생, 기독교도 등 여러 계층의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의 만남을 배움의 기회로 삼습니다.
책에 가네코 후미코가 겪은 어린 시절의 폭력과 고난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요,
어린아이가 어떻게 이 일들을 버텨 낸 것인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학대의 환경에서 자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하도록 만들었을까요?
책의 제목인 『나는 나』를 생각해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나의 불행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요코하마에서, 야마나시에서, 조선에서, 하마마쓰에서, 나는 줄곧 학대당했다. 나는 '자신'이라는 것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모든 과거에 감사한다. 나는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도, 외삼촌에게도, 이모에게도. 아니, 내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고, 가는 곳마다 모든 환경 속에서 학대받을 만큼 학대받은 나의 운명에 감사한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나의 아버지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집에서 부족함을 모르고 자랐다면, 아마 나는 내가 그토록 혐오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성격, 생활을 그대로 받아들여 결국에는 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적으로 불운한 탓에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벌써 열일곱 살이 되었다. 나는 이미 자립할 수 있는 연령에 달해 있다. 나는 내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
-본문 중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창조하고자 하는 마음, '나'로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네코 후미코가 자신의 불행한 환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영화를 통해서만 가네코 후미코를 접했던 저는 수기에서 서술된 솔직한 자기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의 이상과 욕망에 충실하게 삶을 꾸려 간 가네코 후미코를 더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나』는 작년 서울국제도서전의 '다시 이 책'에 선정되어 새로운 표지로 출간되었습니다.
이전에 출간된 책의 표지는 가네코 후미코의 무덤가에 핀 꽃을 모티프로 하였고,
리커버 표지에는 가네코 후미코라는 사람 자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딸과 아내가 아닌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가네코 후미코의 강렬한 눈빛을 담았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가네코 후미코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습니다.
일본인으로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후미코.
비록 늦었지만 그의 활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았다고 생각하니 다행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다음 달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기도 합니다.
어느 한 시기에만 의례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달의 독립운동가'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국가를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가 더 널리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알려지지 않은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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