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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 이벤트

정영선 소설가의 작품 세계를 탐방하다 :: <문학/사상> 라이브 북토크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4. 3. 26.

 

 

한 해의 시작도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개나리와 벚꽃이 피었습니다.

차츰차츰 봄이 다가오던 지난 21일, 산지니x공간에 정영선 소설가를 초청하여 <문학/사상>이 주관하는 북토크 시간을 가졌는데요. 제5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아무것도 아닌 빛』을 중심으로 정영선 소설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 풍부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따뜻하면서도 치열했던 현장을 공개합니다. 

 

 

이번 북토크는 구모룡 문학평론가의 사회로 김대성 문학평론가와 정영선 소설가의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구모룡 평론가의 소개로 정영선 작가의 작품 활동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구모룡 평론가: 첫 장편인 『실로 만든 달』이 2007년입니다. 그리고 2010년에 『물의 시간』 장편을 썼고, 그 후에 『생각하는 사람들』. 2018년에 쓴 이 작품이 요산문학상을 받았고 2023년에 『아무것도 아닌 빛』이 나왔죠. 이 네 권의 장편들을 보면 다 좋은 장편이지만 『실로 만든 달』보다는 『물의 시간』이 더 좋은 것 같고,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빛』에서 그동안의 역량이 집약된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왼쪽부터 구모룡 문학평론가, 정영선 소설가, 김대성 문학평론가

 

이어서 김대성 평론가와 함께 아무것도 아닌 빛이 가지고 있는 구체적 맥락에 주목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거대한 역사 속 흐름에서도 인물 개인들이 지니는 고유한 이야기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김대성 평론가: 우선은 안재석이라고 하는 인물이 빨치산 출신의 비전향 장기수로서 사회에 나와서 아주 조용하게 늙어가는 그 일상들이 빛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향자라는 인물을 역사적인 틀에서 문제적 개인이라고 설정하지 않고, 구포 지나서 북구 쪽에 대저와 갈라지는 그 어딘가 쯤에 17평짜리 아파트에서, 소일거리를 찾아 아주 조용히 살아가는 한 나이 많은 여성의 일상과 생활과 또 살림으로 그려냈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디아스포라 서사라든지 어떤 역사의 질곡의 지워진 개인의 역사를 복원하는 이야기로 볼 수도 있겠지만, 두 인물을 그릴 때 그 생활의 면면들을 티 나지 않게 촘촘하게 펼쳐두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보여 주는 것이 좋았어요. 마치 강물처럼 흘러가는 방식으로 이런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나가는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에 이끌렸어요.

정영선 소설가: 저는 소설에서 가장 기본은 구체성이라고 배웠습니다. 제가 저라고 이름을 밝히는 게 중요하지 않고 제가 먹는 음식, 제가 보고 있는 풍경, 제가 사는 장소나 옷을 써야 하고, 그렇게 해서 사랑을 드러내야 된다고 늘 배웠고 그렇게 썼기 때문에 그렇게 쓰지 않으면 이제 쓰지 못하죠. 제가 너무 급히 나가고 있다, 이야기가 너무 빨리 나간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바로 서서 다시 말씀하셨던 그 일상으로 돌아오려고 굉장히 애를 씁니다. 일상이 다 이렇게 맞춰지면 이야기를 끌고 다시 밖으로 나가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작품을 집필하게 된 계기와 과정에 있어 정영선 소설가는 공간을 보면 소설을 앉힌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이곳은 소설의 공간이다라는 판단의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일본 오사카 디아스포라 여행이나 조선학교 방문과 같은 여정에서 만나는 구체적 장소가 글쓰기를 촉발시킨다는 작가의 말에 이어 김대성 평론가는 낙동강과 문학에서 지역을 그리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김대성 평론가: 저는 소설에서 낙동강을 그리는 방식이 되게 재미있었거든요. 조향자가 매일 아침 강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이 드러나는 것이요.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낙동강을 보면서 식민지시기를 떠올리지 않거든요. 그냥 일상적으로, ‘낙동강 오니까 이제 숨을 한 번 쉬네,’ 하는 것이죠. 저는 이런 방식으로 장소를, 지역을 재현하는 태도가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은유적인 의미와 역사적인 이야기를 반드시 연결해야만 공간과 장소에 대해서 쓰는 가치와 의미가 생긴다고 느낄 수 있는데,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정영선 작가는 산지니에서 나온 신불산을 집필에 참고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빨치산 구연철의 실제 삶을 그려내는 이 책과 작가가 맺었던 관계에 대해서도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정영선 작가: 빨치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기는 하지만, 저는 ‘이것은 뭔가를 걸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아주 젊었을 때부터 생각했습니다. 조선학교에 방문할 때 구연철 선생님과 같이 갔는데, 선생님이 나타나니까 한국 국적도 일본 국적도 아닌 조선적 분들이 선생님을 막 에워싸고 눈빛이 반짝반짝하는 겁니다. 저는 깜짝 놀랐어요. 저분들은 평생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저렇게 살고 있을까. 뭔가를 지키고 산다는 게 저렇게 쓸쓸하고 외로운 일이구나, 했죠. 이념을 떠나 저는 그냥 한 인간으로 봤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그냥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기다리면 통일이겠죠, 라고요. 저는 한 인간의 외로움에 대해서 쓰고 싶었습니다.

 

 

안재석과 조향자, 두 중심인물을 그려내는 방식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인물을 그려내게 된 이야기도 작가를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정영선 작가: 그냥 우리가 살다가, 만날지 만나지 못할지 모르지만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은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나는 70살이 돼도 저 사람을 기억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또, 사람은 각자 떨어져 살고 있는데 예전에 했던 맹세들은 이상하게 잘 안 잊혀지더라고요. 그런데 아직 사람도 살아있고 맹세도 살아있기 때문에, 조향자와 안재석 같은 사람이라면 뭐라도 얘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요?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르겠지만, 정영선 작가에 따르면 소설 쓰기는 작품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나를 타인과 연결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소설에는 지난하고 힘든 작업이라도 계속 써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제가 투쟁심보다는 겁이 많고 개인적이고 남에 대한 배려가 없는데, 계속 남의 삶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까 남의 입장을 조금은 생각해 보는 그런 버릇은 든 것 같습니다. 소설을 쓴다는 게 굉장히 답답한 일이라 이걸 이겨내면서 이제 제가 한 단계 더, 한 걸음 더 내디뎠다는 생각이 들죠. 그래서 결국 저를 성장시킨 건 소설 쓰는 과정이 아니었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북토크를 통해 소설이 쓰인 과정부터 작품에 대한 작가의 생각, 평론가와 플로어 독자의 관점까지 두루 접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도 즐겁지만, 쓰고 읽는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언제나 귀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을 내어 방문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문학/사상> 영선 소설가 초청 북토크는 유튜브 '채널산지니'에서 다시보기 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live/0HWZsUksAuU?si=wx-eYxQL_uITgLef

 

 

 

 

아무것도 아닌 빛

정영선 소설. 소설의 무대는 도시 주변부이고 주된 등장인물도 노년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산의 외곽 끝자락인 낙동강 유역 ‘은곡’의 서민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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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사람들

부산소설문학상, 부산작가상, 봉생문화상을 수상한 정영선 작가의 장편소설. 21세기에도 여전히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지 않은 유일한 곳, 북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국경을 넘어 남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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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시간

정영선의 장편소설. 명성황후의 시해사건을 시간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소설은 중세와 근대의 시간이 교차하는 1895년 조선을 배경으로 조선에 사는 사람과 조선에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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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자 소개

정영선 경남 남해 출생. 1997년 중편소설 「평행의 아름다움」으로 『문예중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 시작. 장편소설 『실로 만든 달』, 『부끄러움들』, 『물컹하고 쫀득한 두려움』, 『물의 시간』, 『생각하는 사람들』, 소설집 『평행의 아름다움』을 펴냈다. 부산소설문학상, 부산작가상, 봉생문화상(문학), 요산김정한문학상을 수상했다.

구모룡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된 후 문학평론가로 활동해 왔다. 『앓는 세대의 문학』, 『구체적 삶과 형성기의 문학』, 『한국문학과 열린 체계의 비평담론』, 『신생의 문학』, 『문학과 근대성의 경험』, 『제유의 시학』, 『지역문학과 주변부적 시각』, 『시의 옹호』, 『감성과 윤리』, 『근대문학 속의 동아시아』, 『해양풍경』, 『은유를 넘어서』, 『제유』, 『시인의 공책』, 『예술과 생활』(편저), 『백신애 연구』(편저), 『폐허의 푸른빛』 등의 저서가 있다.

김대성 1980년 부산 출생. 2007년 계간 『작가세계』 평론부분에 「DJ, 래퍼, 소설가 그리고 소설」이라는 글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한국 노동자 글쓰기에 대한 박사학위논문을 쓰며 동아대와 한국해양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2013년 생활예술모임《곳간》을 열어 활동하면서 제도 바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대끼며 사는 삶으로 이행할 수 있었다. 2015년부터 생활글을 근간으로《회복하는 글쓰기》모임을 기획 및 진행하고 있으며 구성원들과 함께 『문이야, 무늬야』(chaaak, 2016)를 함께 썼다. 문화이론계간지 『문화/과학』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생활예술모임《곳간》과 모임《회복하는 글쓰기》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무한한 하나』(산지니, 2016)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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