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가을이 찾아왔는지 시원한 바람이 불던 지난 26일, 『스노우 헌터스』를 번역한 황은덕 번역가와 구모룡 문학평론가가 함께한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
『스노우 헌터스』 는 미국 언론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폴 윤의 소설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이었던 폴 윤의 할아버지는 전쟁고아들을 위해 보육원을 설립하였다고 합니다. 조부가 모아둔 한국전쟁 관련 자료와 사진, 특히 고아로 가득 찬 피난민 열차에 대한 이미지가 이 소설을 쓴 계기가 되었다고 폴 윤은 밝혔습니다.
『스노우 헌터스』 의 주인공 요한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북한군 포로로 본국 송환을 거부하고 제3국행을 택합니다. 그는 태양이 강렬한 나라 '브라질'로 이주하고, 그곳에서 일본인 재단사 기요시와 함께 일하며 낯선 환경에 적응해 나갑니다. 이국의 땅, 이질적인 언어와 문화, 그리고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낯선 이들 속에서 요한이 정착하고 삶을 개척해나가는 이 소설은 그동안 영미권 위주로 집중되어 온 한국계 디아스포라 문학의 범주를 남미까지 확장시킵니다.
이 소설은 황은덕 번역가가 직접 발굴하여 번역하였습니다. 책을 발굴하고 번역한 번역가로서 <스노우 헌터스>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책을 번역하기로 마음먹은 계기, 작가와 인물들에 대한 생각, 『스노우 헌터스』 가 한국 문학사에서 갖는 의미 등등. 책을 아직 읽지 않았어도, 읽었어도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그 현장으로 함께 가보실까요?
황은덕 번역가: 원서를 펼치고 첫 장면을 보았을 때 전율이 일었습니다. 최인훈의 <광장>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이명준은 남중국해 바다에 투신하며 끝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요한이 화물선을 타고 중립국 브라질로 들어오며 시작됩니다. 1960년<광장>이 발표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이 책은 4·19혁명의 문학사적 버전이라고 평하며 열광하였습니다. <광장> 이전에 한국전쟁을 다룬 소설들이 대개 리얼리즘에 입각한 휴머니즘, 반공주의에 입각한 리얼리즘인 경우가 대다수였는데 <광장>은 이념 자체를 문제시했기 때문이겠지요. 이명준이 중립국에 성공적으로 도착했다면 어땠을까 하던 차에 이 소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노우 헌터스>가 한국전쟁 문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모룡 평론가: 소년 소녀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광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구모룡 평론가: <스노우 헌터스>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가 1~3장, 2부가 4~11장, 3부가 12~18장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도 작가의 치밀한 의도에 의한 것 같습니다. 작품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황은덕 번역가: 한국 전쟁은 공산군과 유엔군 간의 싸움이었고, 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국가들이 바로 중립국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소설의 첫 장면에서 요한은 중립국인 브라질에 도착을 하고, 그후 적응을 해가는 과정에서 플래시백으로 포로수용소 이야기, 과거 이야기 등이 등장합니다. 소설이 전개되면서 나타나는 인물이라든지 배경이라든지 분위기라든지가 서로 굉장히 잘 연결됩니다. 예를 들어 기요시는 요한의 아버지를 연상시킵니다. 긴머리를 하나로 묶는 독특한 헤어스타일, 과묵함 속에서의 따뜻한 교류 등등. 기요시 외에도 요한과 소통하는 브라질에서 만난 인물들은 과거에 요한이 겪었던 인물들과 연속성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이 역시 작가의 의도겠지요.
구모룡 평론가: 황은덕 번역가님께서 번역하면서 느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황은덕 번역가: 일단은 요한이 굉장히 인상적인 문학적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요한은 1949년에 징집되어서 참전을 하게 되는데요. 굉장히 순박하고, 따뜻한 인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용소에서 부상병들을 돌볼 때에 손을 잡아주고, 시력을 잃은 부상병들에게는 창밖의 풍경을 이야기해주기도 하죠. 소설 자체는 전쟁을 리얼리티에 입각해 그려내진 않았지만, 요한이 갖고 있는 전쟁의 상처 트라우마 등은 충분히 드러냅니다. 비아가 그러죠, "당신의 걸음, 몸짓에 담겨 있는 전쟁의 상처"라고. 이러한 상처를 가지고 있음에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요한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게 기요시였죠. 기요시는 요한의 후원자 역할을 하는데, 요한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한 말은 이렇습니다. "문 열려 있어요, 들어와요." 전혀 모르는 북한군 병사를 소개서 1장만 받고 바로 환대하는 겁니다. 사실 기요시도 전쟁에 참전했었고 브라질의 일본인 수용소에서 생활하다 나온 인물로 요한과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의 처절한 슬픔과 전쟁 트라우마를 짐작할 수 있는 장면도 있었죠. 어린이의 외투를 만들다 우는 장면. 그런 상처가 있음에도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구모룡 평론가: 1부 3장에 요한이 포로수용소에 있었던 때의 이야기가 나오죠. 그리고 3부 12장에서야 요한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러한 구성은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또 후에 풀어주는, 긴장과 이완의 기법을 적절히 사용한 것으로 느껴지는데요. 소설가로서 <스노우 헌터스>를 읽으며 느낀 점이나 얻은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황은덕 번역가: 저는 독자로서 이 소설을 무척 즐겼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위로, 행복, 힐링을 얻었습니다. 희한하게 이 소설은 읽을 때마다, 매 페이지마다 위로를 받게 되더라고요. 이 소설을 번역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위로를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까지 위로를 받았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여전히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느낀 무력감에 이 소설은 명백하지는 않지만 아스라한 희망을 전합니다. 또한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이 어우러지는 언어의 아름다움도 큰 위로를 주었지요.
구모룡 평론가: 언어의 아름다움에 관하여, 이미지로 글을 쓴다는 듯한 느낌이 저 역시 들었습니다. 가령 자전거 이야기가 그렇죠. 어린 시절과 브라질에서의 자전거가 연결되는 등 디테일 속에서 군데군데 섬세한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게 배치된 것 같네요. 참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 소설이 전쟁의 폭력보다는 배려와 환대, 희망 신뢰를 이야기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넓은 의미의 반전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합니다.
황은덕 번역가: 저는 이 소설이 반전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따뜻하게 반전을 이야기할 수 있구나. 아름답고 따뜻하게 희망을 주면서도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것을 정서적으로 느끼게 하는구나, 생각했습다. 아마 작가는 의도하고 반전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독자는 행간 사이 저며져 있는 슬픔과 전쟁의 트라우마를 느끼며 반전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북토크를 마무리하며, 요한이 수감되었던 포로 수용소가 이번 행사가 열린 산지니x공간과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그러한 장소에서 요한의 이야기를 함께 나눈 것이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훌륭한 번역을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 꼭 읽어야 할 작품과 중요한 작가를 소개해주신 황은덕 번역가에 모두 함께 감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한국문학과 전쟁, 이념, 반전 등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토론하는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 『스노우 헌터스』 책 소개
『스노우 헌터스』 폴 윤(지은이), 황은덕(옮긴이) / 2024-07-16 / 272쪽 / 18,000원
한국계 미국인 폴 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자 국내 첫 번역서
★ 뉴욕공공도서관 ‘영 라이언스 픽션 어워드’ 수상
★ 퍼블리셔스 위클리 ‘2013년 여름 최고의 책’
★ 뉴요커 선정 ‘주목해야 할 책’
『스노우 헌터스』 황은덕 번역가 초청 북토크는 유튜브 '채널산지니'에서 다시보기 할 수 있습니다.
▶ 유튜브 채널산지니 『스노우 헌터스』 황은덕 번역가 초청 북토크 링크
▶ 『스노우 헌터스』 구매 링크 :
▶ 황은덕 번역가 소개
소설가. 소설집 『한국어 수업』, 『우리들, 킴』, 철학소설 『한나 아렌트, 난민이 되다』, 산문집 『황은덕 소설가의 공감 공부』, 역서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등을 펴냈다. 현재 부산대학교에서 강사로 일하며 소설과 연구논문을 쓰고 있다. 대표 논문으로 「수치의 윤리와 전쟁 생존자: 이창래의 『항복자』를 중심으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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