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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일기

[서평]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 『우리는 은행을 털었다』

by ujustice 2025. 3. 12.

『우리는 은행을 털었다』 임정연 소설가의 소설집

우리는 은행을 털 만큼 순수했고, 현재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다.

 

임정연 소설가는 5년 만에 출간하는 소설집에서 극단적인 상황과 함께 그 상황에 놓인 인물의 생생한 감정들을 그렸다. 이 소설집에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현대 사회를 비판한 「너의 마지막 모습」,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자본만을 좇은 나머지 자신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인물들을 그린 「불」, 「용산역」을 비롯해 총 6편의 단편소설이 담겨 있다. 「우리는 은행을 털었다」를 제외한 5편의 작품 모두 폭력성이 짙게 깔려있다. 모두 폭력의 주체는 사람이고, 대상은 사람 혹은 사물이다. 단순한 스릴러처럼 보이는 작품들 속 비틀린 인물들이 품는 끔찍한 생각과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사람 간의 관계를 포기한 결과처럼 보인다.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타인과 연결되기를 거부할 때 우리는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가. 극단적인 인물들을 우리 앞에 펼쳐놓으며 저자는 비효율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관계의 형성과 감정의 교류가 부재한 지금의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만든다.

 

   1. 헬로, 시카고   

로봇 강아지와 한 가족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아들 현수가 길에서 주워 온 로봇 강아지. 죽은 반려견을 떠올리며 아빠는 그것을 수리해 준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 강아지는 정상적인 작동을 하게 되자 자신을 ‘시카고’라고 소개하고 말도 하며 가족이 된다.

좌 P.34 / 우 P.36

인간의 자리를 대체해 가는 인공지능의 편리함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인데, 그보다 소설집의 대주제인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현대 사회와 관련지어서 이야기하고 싶다. 분명 그들은 시카고와 가족이 되었지만, 시카고의 자폭 이후 가장 먼저 걱정한 것은 거실이었다. 아들 현수의 마음을 걱정하는 것도 잠시, 이내 보상받을 계획에 관해서 얘기하곤 한다. 아들 현수만큼은 시카고를 애도하는 듯했다. 아빠가 새로운 로봇 강아지를 사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족은 시카고의 자폭은 없었던 일마냥 잊은 채 새로운 로봇 강아지와 유대관계를 쌓는다. 

밤이 되었다. 모두들 자러 들어갔다. 로봇 강아지는 아이를 따라 문 앞까지 갔다가 다시 타박타박 걸어 전용충전기에 걸터앉았다. 찌익찌익. 로봇 강아지가 고개를 움직이더니 눈에 불빛이 들어왔다. 눈빛이 깜박깜박하더니 파란색이던 눈동자가 초록색으로 변했다. 로봇 강아지가 고개를 찌익찌익 돌리고는 현수? 하고 중얼거렸다.
_P.37-38

 

   2. 너의 마지막 모습   

「너의 마지막 모습」은 명상 동호회를 가장한 자살카페 회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익명을 쓰는 사람들이 역에서 만나 펜션으로 향한다. 함께 맛있는 고기를 구워 먹으며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술이 떨어지자 창문을 테이프로 막고 번개탄을 피운 뒤 수면제를 먹는다. 하나둘 쓰러지는 사람들 사이 ‘솔로’가 산소 캔을 들이켜며 일어난다. 그리고 액션캠을 꺼내 쓰러지는 사람들을 하나씩 화면에 담기 시작한다.

액션캠을 찍으며 여자아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얗게 변해가는 피부, 파르르 떨리는 눈썹, 이마로 툭툭 튀어나오는 핏줄, 점점 일그러지는 표정이 아름답다. 그 모습을 뚫어져라 보았다. 한순간 여자아이가 몸부림을 치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응, 그래. 너 이제 조금씩 힘들어질 거야. 여자아이가 버둥거리며 컥컥 소리를 냈다. 그리곤 거칠게 진저리를 쳤다. 입술이 파랗게 변하며 점점 검은색을 띠기 시작했다. 피부도 파랗게 변해갔다. 산소포화도를 보니 80 이하로 떨어져 있다. 이제 깨어날 일은 없다. 여자아이의 얼굴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액션캠을 닿을 듯 가까이 들이댔다.
_P.69

순서대로 P.57, 59, 60

소설 속 는 도입부부터 유독 여자아이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묘사한다. 이는 결말부까지 이어지고, 의 폭력성을 강화한다. 또 숫기 없는 여자아이의 순수함과 대비되어 더욱 강화된다. 여자아이는 를 처음 만난 회기역에서부터 다 같이 저녁을 먹는 순간까지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그저 앉아 있을 뿐이다. 돈 많은 남자친구를 사귀었던 욜로의 이야기에만 유일하게 관심을 가진다. 욜로를 언니라 부르며 호화스러운 호텔과 여행지에 관해 질문한다. 그리고 는 그걸 지켜본다. 는 좋은 곳을 가보지 못한 여자아이의 죽음을 지켜보며 말한다.

그래. 이제 금방 가. 금방. 조금만 있으면 돼. 금방 갈 거야.
_P.69

 

   3. 마이 리틀 텔레비전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나’는 평범한 회사원처럼 보이지만, 퇴근 후 회사 사람들과 이웃들의 집을 관음하는 악취미를 가지고 있다. 회사 사람의 동선을 파악하고, SNS로 그들의 자취를 유추한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켠다. 그곳에서는 회사 사람들의 핸드폰을 해킹해서 얻은 집 CCTV 화면과 핸드폰 화면, 결제 내역 등이 펼쳐진다. ‘나’는 그들의 가족관계와 연애 등 일상과 그 속의 폭력을 관찰하며 주변 사람들의 숨기고 싶은 모습을 훔쳐보고 즐거움을 얻는다. 동정이나 죄의식 따위는 없이.

위층 집은 신혼 때는 툭하면 포르노 찍는다고 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임신하고 나니까 맨날 싸우고 볼 것도 없다. 
머리를 저으며 중앙 모니터에 동네의 CCTV를 띄웠다. 주르륵 훑었다. 이 아파트는 어떻게 젊은 부부들이 별로 없어. 아, 또 신혼부부들이 들어와야지 볼 게 있을 텐데. 동네의 CCTV는 다들 거실에서 TV 보거나, 치킨 뜯거나 하고 있다. 그런데 한쪽에 있는 화면에서 짐을 싸는 듯한 집이 보였다. 그 집을 크게 띄웠다. 이사라도 가는지 거실에 플라스틱 바구니들이 쌓여 있고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와 남자가 귀중품으로 보이는 것들을 헝겊에 싸고 있다. 앞으로 그 집에 신혼부부들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럼 볼 것도 많고 좋을 텐데.
_P.87
직원들의 위치 정보를 보며 혼자 소리를 했다.
- 최 부장과 박 차장은 집에 있고 정 과장은 내려가고 있고, 어? 현희 씨가 집에 있네?
'내꺼였으면' 채널을 화면에 띄웠다. 중앙 모니터에 텅 빈 거실이 보였다.
- 어라? 어디 갔지?
현희 씨의 휴대폰을 마이크의 볼륨을 올리자 물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게 들렸다.
- 아, 샤워하는구나. 오늘 데이트 있다고 했는데 왜 집에 있지?
거실 화면을 왼쪽에 띄워놓고 중앙에 남친과 나눈 메시지들을 띄웠다.
_P.88
중앙 모니터에 ‘미친개’ 채널을 띄웠다. 거실에서 최 부장이 중학생 아들의 따귀를 올려붙이고 있다.
어, 뭐야? 신이 나서 거실의 화면을 확대했다. 왼쪽 화면의 휴대폰의 볼륨을 최고로 올렸다.
"넌 새끼야. 어? 학원을 빼먹어?"
얼굴이 울긋불긋해진 최 부장의 옆에 마누라가 서있다.
"여보. 여보. 진정해요."
마누라가 말릴 틈도 없이 다시 최 부장이 싸대기를 올려붙인다. 
"너 이 새끼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
최 부장은 분에 못 이긴 듯 식식거리며 계속 아들의 싸대기를 올려붙였다. 아이의 얼굴이 이쪽저쪽으로 픽픽 돌아갔다. 점점 재밌어지려고 한다. 의자에 기대앉으며 앞에 놓인 팝콘 봉지를 뜯었다. 
_P.99-100
민수 씨 패턴을 보면 새벽 2시쯤 라이브 보면 되겠네. 알람을 설정해 놓고 빠져나왔다. 그럼 그때까지 뭐 하나? 그래, 베스트 영상이나 볼까. 베스트 모음집을 클릭하자 3개의 모니터에 영상이 주르륵 떴다. 중앙 화면에는 키스하는 현희와 민수의 모습이 나왔다. 민수가 현희의 옷을 하나씩 벗기고 있다.
- 민수 씨는 참 좋은 취미를 가지고 있단 말야. 여자랑 할 때마다 촬영을 해. 물론 나야 좋지. 그러니까 이렇게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는 거 아냐?
_P.106

아래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일어나는 폭력 중 일부다.

좌 P.75 / 우 P.93
P.102

박 차장은 회사에서는 최선을 다해 최 부장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린다. 집에서는 애들 넷에게 쿠폰 10장 모은 걸로 치킨 한 마리 겨우 사주는 아빠다. 퍽퍽한 몸통살이 맛있는 거라고 어려서부터 교육이라도 시킨 모양인지 닭다리는 본인 몫, 아이들에게는 퍽퍽한 살을 선심 쓰듯 양보한다. 

최 부장도 마찬가지로 부장으로서의 모습과 아빠로서의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 회사에서는 골프 약속을 으스대며 골프채를 휘두르고, 집에서는 아들에게 몽둥이로 휘두른다. 고작 학원에 빠졌다는 이유 하나로, 아들의 뺨을 여러 번 내려치고 골프채로 팬다. 박 차장에게 자랑했던 새 골프채가 아닌, 때리다가 부서져도 되는 원래 있던 걸로 말이다.

이외에도 정도는 다르지만 모두 일상 속에서 폭력을 일삼는다. 그걸 변태적으로 지켜보는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4. 불 그리고 5. 용산역   

「불」과 「용산역」은 고립된 개인들이 가닿는 극단적인 파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두 작품 모두 그 최종적인 파멸에 본인도 포함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불」 P.131

「불」의 주인공은 가상화폐 투자와 실패를 반복하며 고시원에서 살아가는 한 남자다. 그의 일상은 단조롭다. 옆방 알람 소리를 듣고 육두문자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담배를 피우고, 코인 대화방을 구경하고, 식당 냉장고 속 남의 반찬을 훔쳐먹고, 이게 전부다. 어느 날 남자는 옆방의 열린 문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훔쳐 팔게 되고, CCTV를 확인한 총무가 방으로 찾아온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들통나기 직전, 남자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내린다.

 

길거리에 플라스틱 통들을 늘어놓고 잡다한 것들을 팔고 있었다. 통에 들어 있는 것들 중에는 과일 깎는 칼도 있었다. 통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칼을 꺼내 봤다. 손바닥보다 작은 얇은 칼날이 달려 있었다. 패거리가 생각나서 하나 살까 했는데 칼이 너무 약해 보였다. 괜히 설치다가 잘못해서 손이라도 베면 안 되었다.
칼을 내려놓고 옆에 있는 드라이버를 들었다. 손잡이에 빨간 고무가 칠해진 게 잡기가 편했다. 어느새 다가온 주인이 날을 빼서 돌려 끼울 수 있다면서 보여줬다. 이런 것도 힘을 받지 못했다. 드라이버 통에는 투명한 플라스틱 손잡이가 달린 놈이 있었다. 날 길이는 먼저 것보다 더 길었다. 대충 한 뼘이 넘어 보였다. 그놈으로 두 개를 골라 들었다.
_「용산역」P.176

「용산역」의 주인공 ‘나’는 역 근처에서 구걸하며 집 없이 사는 노숙인이다. 자신의 자리에 누워 있는 시체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위협하다 징역을 산 ‘나’는 출소한 뒤에도 이전과 다름없는 삶을 산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역 근처에서 돈을 빼앗는 무리를 만나고, 그들에게 주기적으로 돈을 빼앗기기 시작한다. 분노를 느끼며 복수를 계획한다.

‘나’는 손바닥보다 작고 얇은 칼날에 손이 베일까 걱정은 하지만, 지나가는 이씨 여자를 강제로 추행한다. 손바닥보다 작고 얇은 칼날에 손이 베일까 걱정은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자판기 옆 구석 자리에 누가 앉아있자 사정없이 그 사람의 머리에 소주병을 내려친다. 손바닥보다 작고 얇은 칼날에 손이 베일까 걱정은 하지만, 복수를 위해 콘크리트에 드라이버 날을 간다. ‘나’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있고, 극단적으로 감정을 표출하고 행동한다. 이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는 ‘나’ 혹은 우리의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6. 우리는 은행을 털었다   

표제작 「우리는 은행을 털었다」는 돈과 자본에 잠식된 어른의 세계가 아이들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동네 친구인 은수, 준호, 정우는 용돈이 너무 적어 과자를 충분히 사 먹을 수 없게 되자 영화에서 본 것처럼 은행을 털기로 결심한다. 영화에서 본 대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은행 사전답사까지 마친 아이들은 어린이집 가방을 들고 서로 할 일을 정한 뒤 은행으로 향한다. 작가가 이 작품을 표제작이자 가장 마지막으로 배치한 것은 앞서 나온 폭력적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들과 대비하여 순수한 아이들과 감정 교류가 부재한 어른들의 세계를 극대화해서 보여준 게 아닐까 생각한다. 동시에 아이들은 어른들이 맹목적으로 자본을 좇는 걸 보고 배우고 자란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뭔가 대책이 필요해."
"맞아, 대책."
"용돈 대책."
핸드폰으로 이리저리 뭘 찾아보던 정우가 갑자기 생각난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우리 은행 털까?"
"은행?"
"그게 뭔데?"
은수와 준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영화에서 보면 사람들이 돈 없으면 은행을 털어."
_P.186
은행에 있는 건물에 도착하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썼다. 그리곤 화장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셋이 은행의 문을 열어젖히고 뛰어들었다. 어제 본 경찰 옷을 입은 아줌마가 일행이 들어오는 걸 보더니 웃으며 다가왔다.
"너희들 또 왔네?"
"안녕하세요."
모두 고개를 꾸벅하고 인사했다.
"오늘은 어떻게 왔어?"
"은행 털···."
3호가 말하려는 순간 2호가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 그냥 놀러···."
2호의 입을 막고 1호가 말했다.
"창구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아줌마가 어떤 기계 앞으로 가더니 번호표를 뽑아주었다. 번호표를 쥐고 셋은 의자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띵동, 하는 소리에 3호가 벌떡 일어섰다.
"우리 차례다."
1호가 장난감 총을 들고 의자 위로 튀어 올라갔다.
"꼼짝 마! 우린 은행강도다. 시키는 대로 하면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_P.198
1호가 가방의 지퍼를 찌익 하고 열었다. 안에 만 원짜리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이게 다야?"
"응, 은행도 돈이 없대."
2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_P.202-203

아이들은 꽤나 치밀하게 준비했다. 신원을 숨기기 위해 암호도 정하고, 마스크, 선글라스 그리고 돈을 담을 가방까지 준비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예의 바르게 은행을 털었다. 은행 청원경찰에게 인사하고 들어가 창구에 가기 위해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고, 행인을 위해 길을 비켜주고, 은행에서 나올 때 역시 청원경찰에게 인사하고 나온다. 은행도 돈이 없다는 말을 순진하게 믿는다. 그러나 아이들에겐 과자 몇 개 사 먹을 돈은 얻었으니 '용돈 대책'은 성공이었다.

 

 

우리는 은행을 털었다

우울한 현대 사회의 풍경을 담은 임정연 소설가의 소설집.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현대 사회를 비판한 「너의 마지막 모습」,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자본만을 좇은 나머지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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