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시대의 영화학』이 2025년 11월 10일 <교수신문>에 소개되었습니다.

저자가 말하다_『분단시대의 영화학: 남북한 영화의 쟁점들』 정영권 지음 | 산지니 | 444쪽
냉전 끝났지만,
영화 속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분단 이후의 영화’를 묻다
남북한 이미지의 정치학
‘분단’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유효할까. 남북이 서로를 다른 국가로 인정하며 각자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지금, ‘하나의 나라가 둘로 갈라졌다’는 전제는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는다. 그러나 통일이라는 미완의 약속, 한반도라는 공동의 기억이 남아 있는 한, 분단은 여전히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언어다.
나의 책 『분단시대의 영화학: 남북한 영화의 쟁점들』은 이 오래된 언어를 영화라는 렌즈로 다시 비춘다. 책은 남북한 영화 속에 새겨진 전쟁과 냉전, 그리고 탈냉전의 흔적을 따라간다. 한국전쟁을 다룬 남북한 영화들부터 21세기 북한영화의 젠더·세대 문제, 동시대 남한영화가 북한을 상상하는 방식, 그리고 1967년 유일체제 성립 이전 북한의 세계영화사 인식까지 한 권의 영화사가 아니라 영화를 통해 보는 한반도 현대사의 심층 기록이다. 다음과 같이 다섯 개의 쟁점이 이 책의 큰 줄기를 형성한다.

첫 번째 쟁점은 ‘전쟁의 기억·민족·젠더’이다. 전쟁영화는 흔히 전투의 스펙터클을 내세우지만, 남북한의 전쟁영화들은 그 안에서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이라는 죄의식과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있다. 남성의 용맹과 여성의 희생이 교차하는 장면 속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수행된 폭력의 그림자가 드러난다. 남성 영웅의 서사는 냉혹함을 미덕으로 삼지만, 그 이면에는 어머니·연인·고향에 대한 결핍과 무력감이 깔려 있다. 반면 여성은 전쟁의 고통을 온몸으로 견디며 생존과 공동체의 윤리를 만들어간다.
두 번째는 냉전기의 영화정치학이다. 1960년대 북한은 남한의 4·19혁명을 ‘남조선 인민들의 자주적 투쟁’으로 해석하며 이를 영화화했고, 남한은 5·16군사정변 이후 간첩영화를 대량 생산하며 반공국가의 이데올로기를 시각화했다. 한쪽은 혁명과 해방을, 다른 쪽은 반공과 안보를 내세웠지만, 남북한 모두 영화를 체제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선전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흥미로운 것은 남한의 간첩영화가 007 시리즈의 유행을 타고 상업 장르로 변모했다가, 베트남 파병에 반발한 북한의 강도 높은 대남 도발을 계기로 다시 국책적 성격을 강화했다는 사실이다. 냉전의 긴장이 영화의 형식과 유행까지 규정했던 셈이다.
세 번째는 탈냉전 이후 북한영화의 변화다. 사회주의권 붕괴와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은 오히려 고립과 폐쇄를 선택했다. 그 속에서 영화는 청년과 여성을 통제하고 교화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선군정치’의 구호 아래 여군과 청년과학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그들을 인도하는 인물은 늘 아버지 세대의 온정적 가부장이다. 딸은 군대의 부름을 통해, 아들은 과학자의 사명을 통해 체제의 신념을 되새긴다. 이는 세습권력의 세대 전승과 연결되며, 북한영화가 어떻게 가족 서사를 통해 정치적 교리를 은유하는지 알려준다.
네 번째는 남한영화가 탈냉전 이후 북한을 재현하는 방식이다. 남한영화 「역도산」(2004)은 민족성을 지운 ‘세계인’의 이야기로 포장됐지만, 영화가 재현하지 않는 심층 기저에는 역도산이 북녘의 가족을 그리워하는 상실의 감정이 흐른다. 징후적 독해를 하자면, 이 영화 속 역도산은 세계의 무대에 서 있지만, 그를 규정하는 것은 여전히 ‘북한’이라는 결핍이다. 나는 이를 ‘탈냉전 속의 냉전의 얼룩’이라 규정한다.
한편, 남한의 독립영화는 탈북민을 통해 새로운 타자의 얼굴을 제시한다. 그들은 같은 말을 쓰지만 완전히 같은 사회의 일원이 되지 못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2007)과 「무산일기」(2010) 속 인물들은 이주민도, 내국인도 아닌 경계인의 자리를 배회한다. ‘같은 민족’이라는 신화가 더 이상 그들을 품지 못하는 시대의 초상을 영화는 드러낸다.
다섯 번째 쟁점은 ‘주체혁명’(1967) 이전 북한영화의 뿌리다. 오늘날의 북한영화가 폐쇄된 교리체계를 따르는 것과 달리, 1950~60년대 북한은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영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초기 북한영화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며, 사회주의 이상향으로서의 소련을 그렸다. 더 흥미로운 점은 1960년대 북한의 영화담론이 할리우드나 유럽영화의 형식미학까지 폭넓게 논의했다는 것이다. 서구의 영화이론가들을 언급하며 미학적 분석을 시도한 이 당시 기록은, ‘주체혁명’ 이후 폐쇄된 체제로 전환된 북한의 현재를 되돌아보게 한다.
남북한 영화연구라는 학문은 늘 남북관계의 부침과 함께 해왔다.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 연구도 지지부진해지고, 해빙기에는 다시 활기를 찾는다. 영화광이었던 김정일 시대가 끝난 뒤 북한영화는 관심에서 멀어졌고, 영화학계에서도 지속적으로 북한영화를 연구하는 연구자가 드문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 『분단시대의 영화학』은 특정 감독이나 작품의 분석에 머물지 않으면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한반도 현대사의 상처와 이념·욕망을 읽어내며, 전쟁과 냉전이 남긴 무의식이 어떻게 이미지로 지속되는지를 탐구한다. 이 책은 영화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시대의 감정과 정치적 상징이 교차하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한때 분단은 현실의 구조였고, 지금은 언어의 잔향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 언어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우리가 ‘하나였던 기억’과 ‘둘이 된 현실’ 사이를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시대의 영화학』은 그 간극을 영화 속 이미지로 읽어내며, 우리가 잊은 시대의 표정을 복원한다. 전쟁의 기억에서 탈냉전의 그림자까지, 이 책은 남북한 영화의 궤적을 통해 ‘분단 이후의 분단’을 사유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출처: 2025년 11월 17일, 정영권 교수, <교수신문>
전쟁에서 탈냉전까지...분단의 경계에 선 영화들 - 교수신문
[저자가 말하다_『분단시대의 영화학』] ‘분단’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유효할까. 남북이 서로를 다른 국가로 인정하며 각자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지금, ‘하나의 나라가 둘로 갈라졌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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