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13일부터 7월 4일까지 민락수변공원 일대에서 🌊부산바다도서관📚이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27일 토요일에는 에세이 <이야기를 걷다>와 <밤의 눈> <보이지 않는 숲> 등 다수의 소설을 집필하신 조갑상 소설가와 문예지 <문학/사상>의 편집위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만석 평론가의 북토크가 있었습니다.
북토크를 아쉽게 놓치신 분들을 위하여 그 현장을 전달합니다.

김만석 평론가
조갑상 선생님께서는 소설집과 장편소설은 물론, 부산이라는 공간을 문학으로 풀어낸 『이야기를 걷다』를 펴내기도 하셨습니다. 부산 곳곳을 직접 걸으며 소설 속 공간과 실제 장소를 연결해 소개한 책인데요. 먼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부터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조갑상 소설가
소설은 문학 장르 가운데 가장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사회, 그리고 공간의 변화가 가장 생생하게 담기는 장르이지요. 그래서 부산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읽다 보니, 소설을 따라 도시를 걸으면 부산이라는 공간을 또 다른 시각으로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 좋은 작품을 두고 '명작'이라고도 하고 '문제작'이라고도 합니다. 명작은 시대를 뛰어넘어 오래도록 읽히는 작품이라면, 문제작은 당대의 현실과 사회를 예리하게 포착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 가운데도 우리 문학사에서 중요한 문제작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작품들을 따라가며 부산이라는 도시를 다시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도심과 영도, 해운대, 낙동강처럼 부산을 대표하는 공간을 중심으로 작품을 묶었습니다. 직접 현장을 답사하며 소설 속 장면과 실제 풍경을 함께 소개했고, 부산이라는 도시를 문학으로 읽어낼 수 있는 길잡이 같은 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김만석 평론가
책의 첫 장을 조명희의 『낙동강』으로 시작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부산에는 다양한 작품이 있는데도 가장 먼저 이 작품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조갑상 소설가
누구에게나 특별하게 기억되는 장소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구포와 낙동강이 그런 공간입니다. 학창 시절 친구를 만나기 위해 구포를 자주 오갔고, 배를 타고 대동까지 건너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런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조명희의 『낙동강』을 읽었을 때 작품이 더욱 깊이 다가왔습니다.
『낙동강』은 단순히 강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아닙니다. 3·1운동 이후 농촌 사회의 현실과 식민지 시대의 억압,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희망을 함께 담아낸 작품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프로문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조명희라는 작가의 삶 역시 매우 비극적입니다. 일본의 탄압을 피해 소련으로 망명했지만, 훗날 일본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숙청당했습니다. 시대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은 작가였던 만큼 그의 작품에도 현실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조명희가 부산에서 출판사를 세우고 작품집을 펴냈다는 점입니다. 충북 진천 출신이지만 부산에 머물며 '백악사'라는 출판사를 설립했고, 『낙동강』을 비롯한 작품들을 묶어 출간했습니다. 부산에서 현대소설 작품집이 나온 최초의 사례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도 부산 문학사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소개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만석 평론가
말씀을 듣고 보니 『낙동강』은 단순히 한 편의 소설이 아니라 부산 문학의 출발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개항 이후 부산이라는 도시는 초기 소설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을까요?
조갑상 소설가
부산의 근대적인 풍경을 가장 먼저 담아낸 작품 가운데 하나가 이인직의 『혈의 누』입니다. 흔히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로 알려져 있는데, 작품에는 부산항을 드나드는 전기기관선과 객주, 여관이 즐비한 거리 등 당시 사람들에게는 낯설고도 새로운 풍경이 등장합니다. 개항 이후 부산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이인직이라는 인물은 여러모로 복잡한 평가를 받는 작가입니다. 친일 행적 때문에 비판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근대소설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가장 먼저 시도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을 때는 문학사적 의미와 시대적 한계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만석 평론가
개항은 부산을 조선과 일본을 연결하는 관문으로 만들었고, 이후 많은 소설들이 그런 공간성을 담아냈습니다.
조갑상 소설가
대표적인 작품이 염상섭의 『만세전』입니다. 이 작품은 도쿄에서 출발한 주인공이 시모노세키를 거쳐 관부연락선을 타고 부산에 도착한 뒤 경성으로 향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작품의 상당 부분이 부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식민지 조선으로 들어오는 과정 자체를 통해 시대의 공기를 보여줍니다.
당시 관부연락선은 일본과 조선을 잇는 핵심 교통망이었습니다. 부산항은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출발점이자 식민지 조선의 관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산은 근대 문명이 가장 먼저 들어온 도시인 동시에 식민지 현실을 가장 먼저 체감한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초기 소설 속 부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입니다. 부산항은 근대화의 상징이면서도 식민지의 모순이 함께 응축된 장소였고, 많은 작가들이 그 변화의 풍경을 소설 속에 기록해 남겼습니다.

김만석 평론가
초기 소설을 살펴보면 부산은 근대화의 상징인 동시에 식민지 현실을 가장 먼저 마주한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부산은 '항구도시', '유흥의 도시', 심지어 '문화의 불모지'처럼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로도 자주 묘사됩니다. 이런 이미지는 어떻게 형성됐다고 보시나요?
조갑상 소설가
부산은 일본에 의해 가장 먼저 개항한 도시였고, 식민지 체제가 가장 빠르게 자리 잡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산을 이해하려면 '이중도시'라는 개념을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 부산에는 동래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도시가 있었고, 개항 이후에는 초량왜관을 중심으로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졌습니다. 서로 다른 두 도시가 하나의 공간 안에서 공존하며 성장한 것이죠. 서울이나 평양도 일본인 거주지가 있었지만, 부산처럼 항구를 중심으로 도시 전체의 성격이 크게 바뀐 사례는 조금 다릅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부산은 식민지 시대 소설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전초기지이자 항만도시로 자주 등장합니다. 항구를 통해 사람과 물자가 끊임없이 드나들고, 군사기지와 산업시설이 들어서면서 도시의 풍경도 빠르게 달라졌습니다. 그런 변화가 소설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죠.
김만석 평론가
그런 이미지가 해방 이후에도 꽤 오래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부산을 '문화의 불모지'라고 표현한 기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조갑상 소설가
맞습니다. 그런 표현이 오랫동안 반복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 역시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부산의 이미지가 쉽게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산은 오랫동안 산업과 항만 중심의 도시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문학과 예술이 태어난 공간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산은 영화와 공연, 출판, 미술 등 다양한 문화예술이 성장한 도시가 되었고, 이제는 과거의 이미지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도시가 됐습니다.
도시는 계속 변화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이미지에만 머무르기보다, 그 변화의 과정까지 함께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만석 평론가
선생님의 책을 읽다 보면 영도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등장합니다. 부산 안에서도 영도는 유난히 많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갑상 소설가
영도는 하나의 섬이면서도 부산의 역사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행정구역으로는 하나의 '구'이지만, 바다를 사이에 둔 섬이라는 점에서 다른 지역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도는 근대 이후 산업과 노동의 중심지였습니다. 대평동에는 일본인들의 어업기지가 들어섰고, 이후 조선소와 도자기 공장, 석유회사 같은 근대 산업시설이 잇따라 자리 잡았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조선업이 발전하면서 영도는 부산 경제를 떠받치는 중요한 공간이 되었고요.
그래서 영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부산의 산업사와 노동의 역사를 함께 만나게 됩니다. 영도는 부산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만석 평론가
영도를 배경으로 한 작품도 정말 다양하지요.
조갑상 소설가
그렇습니다. 방인근의 『마도의 향불』에는 당시 영도에 실제로 있던 대한도기와 석유회사가 그대로 등장합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공장에서 일하던 젊은 노동자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는 장면도 나오는데, 소설이 당시 영도의 풍경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는 셈입니다.
최근에는 이민진의 『파친코』를 통해 영도가 세계 독자들에게 알려졌습니다. 『파친코』는 영도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가족의 삶을 따라 일본으로 이어집니다. 반대로 리처드 김의 『순교자』는 마지막 장면을 영도에서 마무리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작품 모두 영도를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삶이 시작되고 기억이 남는 공간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대도 다르고 작가도 다르지만, 영도라는 장소가 지닌 상징성은 서로 닮아 있습니다.
김만석 평론가
영도를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노동의 역사도 떠오릅니다. 특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까대기 노동'이 인상 깊었습니다.
조갑상 소설가
지금 영도를 찾으면 카페나 문화공간부터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그런 변화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땀으로 유지되던 공간이었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부산항으로 들어온 화물을 보세창고까지 옮기던 노동자들을 '까대기 노동자'라고 불렀습니다. 두 사람이 긴 막대를 어깨에 메고 무거운 짐을 나르던 일인데, 오랜 세월 그 일을 하다 보면 어깨와 목뼈가 변형될 정도로 고된 노동이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그 흔적을 쉽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도시는 계속 새롭게 바뀌지만, 그 공간을 만들고 지탱했던 사람들의 삶은 점점 잊혀집니다. 그래서 저는 소설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사라지는 풍경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기억까지 함께 남겨주는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김만석 평론가
결국 도시를 기억한다는 것은 건물이나 장소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함께 기억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갑상 소설가
맞습니다. 풍경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공간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누군가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그래서 문학은 단순히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삶을 기억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부산이라는 도시를 소설로 읽는다는 것은 결국 그 도시를 살아낸 사람들을 함께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만석 평론가
부산은 항구도시인만큼 사람들의 이동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일본으로 향하는 노동자들, 귀환동포, 피란민까지…. 부산 문학을 이야기할 때 '이동'이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조갑상 소설가
맞습니다. 부산은 처음부터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도시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으로 건너가는 노동자들이 대부분 부산항을 거쳤습니다. 당시에는 '도항 노동자'라고 불렀는데, 단순히 배를 타고 떠나는 일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나는 절박한 선택이었습니다.
특히 1930년대 이후에는 전쟁이 확대되면서 노동자의 성격도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향했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후에는 징용이라는 이름 아래 강제로 끌려가는 경우도 늘어났습니다. 같은 바다를 건너더라도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던 것입니다.
그런 모습은 이동구의 『도항 노동자』 같은 작품에도 잘 나타납니다. 배 맨 아래 선창에 몸을 누인 노동자들의 모습이 마치 종잇조각처럼 흩어져 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 한 장면만으로도 당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만석 평론가
부산은 떠나는 도시이면서 동시에 돌아오는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일본에서 귀국하는 동포들이 가장 먼저 발을 디딘 곳도 부산항이었지요.
조갑상 소설가
그렇습니다. 해방 이후 부산은 귀환동포들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도시가 됩니다. 여기에 한국전쟁이 더해지면서 전국 각지의 피란민들까지 몰려왔습니다. 부산은 원래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도시였지만, 이 시기를 거치면서 그 성격이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그래서 부산을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경상도 사람들만의 도시도 아니고, 특정한 문화만 존재하는 도시도 아니었습니다. 일본과 중국,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며 새로운 도시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부산이 지닌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런 개방성과 혼종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속 부산을 읽다 보면 그런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김만석 평론가
그런 변화는 한국전쟁 이후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도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조갑상 소설가
전쟁은 부산이라는 도시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피란민들이 몰려오면서 산비탈마다 판잣집이 들어섰고, 도시의 인구는 순식간에 늘어났습니다. 동시에 미군 원조물자가 들어오면서 새로운 산업과 시장도 만들어졌습니다.
이호철의 『소시민』은 바로 그런 시기의 부산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원산에서 피란 내려온 젊은이가 부산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당시 국수공장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이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집니다.
특히 소설 첫머리에 '부산에 오면 누구나 소시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의 표현이 나옵니다. 피란민이든 노동자든,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던 도시였다는 뜻입니다. 저는 『소시민』이 전쟁 직후 부산을 가장 입체적으로 담아낸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김만석 평론가
전쟁은 부산 사람들의 식문화까지 바꾸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밀면이지요.
조갑상 소설가
전쟁 당시에는 미국 원조물자로 밀가루가 대량으로 들어왔습니다. 원래 냉면을 만들고 싶어도 메밀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밀가루를 이용해 새로운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것이 지금의 밀면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가 먹는 밀면은 당시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부산이라는 도시가 시대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는 매우 상징적인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도시가 변화하면서 사람들의 삶도 바뀌고, 그 변화가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기록됩니다. 그래서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한 도시의 생활사를 읽는 일이기도 합니다.

김만석 평론가
선생님의 소설 『도항』도 그런 맥락에서 읽히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특히 우키시마마루 사건을 다룬 이유가 궁금합니다.
조갑상 소설가
우키시마마루 사건은 해방 직후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귀국하던 과정에서 일어난 비극입니다. 일본 아오모리를 출발한 귀국선이 교토 앞바다에서 폭발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지만, 왜 침몰했는지, 희생자가 얼마나 되는지 지금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사건이 단순히 과거의 비극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사 속에서 제대로 기억되지 못한 사람들을 다시 불러내는 일이 소설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작품 마지막에는 일본 어부들이 살아남은 사람들을 구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비극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연민과 연대는 남아 있다는 사실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증오를 키우는 일이 아니라, 다시는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김만석 평론가
선생님의 작품을 읽다 보면 역사적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살아낸 사람들의 삶과 기억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도항』뿐 아니라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룬 『이름 석 자로 불리던 날』도 그렇고요. 부산이라는 도시는 워낙 빠르게 변해왔는데, 그럴수록 문학이 해야 할 역할도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
조갑상 소설가
도시는 끊임없이 변합니다. 건물이 새로 들어서고 길이 바뀌고, 사람들의 생활 방식도 달라집니다. 하지만 그렇게 변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사람들의 기억입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골목이나 항구, 오래된 건물 하나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됩니다. 저는 소설이 바로 그런 기억을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산이라는 도시를 소설로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그곳을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을 함께 읽는 일입니다. 도시의 역사는 결국 사람들의 삶으로 완성되는 것이니까요.
김만석 평론가
요즘은 '소설을 읽는 사람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게다가 AI가 글을 쓰는 시대가 되면서 문학의 역할을 다시 묻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갑상 소설가
사람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삶은 아주 제한적입니다. 평생 살아도 자신이 겪을 수 있는 일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 다른 사람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만나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를 걸어보고, 전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결국 문학은 공감의 힘을 키워주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서로 기대고,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 점에서 타인의 삶을 상상하고 이해하는 능력은 앞으로도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AI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습니다. 기술은 많은 것을 대신해 줄 수 있지만,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하고, 기억을 함께 나누고, 삶의 의미를 질문하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입니다. 저는 문학이 앞으로도 그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만석 평론가
오늘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부산이라는 도시를 다시 바라보게 됐습니다. 항구와 낙동강, 영도와 산복도로처럼 우리가 익숙하게 지나쳤던 공간들이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소설이 단순히 이야기를 만드는 장르가 아니라, 사라져 가는 기억을 붙잡고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기록이라는 점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도시가 빠르게 변할수록 문학의 역할은 오히려 더 커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귀한 말씀 들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조갑상 소설가
감사합니다. 부산이라는 도시를 조금 더 천천히 걸어보고, 그 공간에 담긴 이야기를 한 번쯤 떠올려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은 결국 사람을 이야기하는 문학이고, 도시를 이야기하는 것도 결국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이니까요.

도항 | 조갑상
역사와 부산을 서사화하는 소설가라는 평가를 받아온 조갑상이 8년 만의 신작 소설집이자 다섯 번째 소설집인 『도항』을 출간했다. 조갑상 소설가는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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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걷다 | 조갑상
부산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빌려 과거와 현재의 부산을 재조명한 에세이집. 2006년 9월, 처음 출간된 이후 11년 만에 만나는 개정판이다. 초판 출간 당시 문학공간학 및 문학작품의 현장답사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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