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성 시인의 시집 『오빠 달려 노래주점』에는, 유흥업소 이름처럼 들리는 표제시의 제목처럼 '건전한 생활'이라는 규범 뒤에 숨겨진 성애의 풍경을 그리는 시들이 담겨 있습니다. 시인이 모두 실화에서 빌려왔다는 시 속에는 유흥업소를 찾는 남자들, 끝없이 출산의 고통을 반복해온 여성들, 자위하는 노인, 성노동에 뛰어든 주부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시인의 시선 속에서 이들은 눈살을 찌푸리거나 손가락질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대상들이 아닙니다.
김보성 시인의 시 속에서, 자신들의 성문화를 가진 평범한 이들의 삶은 도덕주의적인 잣대로 판단되지 않습니다. 글 위에 남으며, 그들의 생활은 어둠 속을 벗어나 유쾌하게 웃음짓거나 솔직하게 꼬집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시인은 시집을 펴내며 '가려워서/긁었다'는 문장을 남겼습니다. 왜 어떤 삶의 장면들은 가려워서 따끔거릴 때까지 침묵해야 하는 일이 되는 걸까요? 그런 질문이 목구멍으로 올라온 경험이 있으시다면,『오빠 달려 노래주점』을 통해 '문란한 삶'의 풍경을 한번 만나보셔도 좋겠습니다. 당혹스러워도 괜찮으니까요.
【인저리타임이 만난 사람】위선의 금기를 깨부순 21세기 첫 ‘남녀상열지시(詩)’ 《오빠 달려 노래주점》 펴낸 김보성 시인
"가려워서 긁었을 뿐"... 남세와 망측 사이, 당혹스러운 성애시 속에 숨은 사람살이에 대한 깊은 공감
박태일 시인, "한국문단의 성애시는 김보성의 《오빠 달려 노래주점》 전후로 나뉠 것"
프롤로그
한국 현대 시단에 유례없는 파격과 당혹감을 던진 시집 《오빠 달려 노래주점》(산지니, 2025년 12월)의 저자, 김보성 시인을 만나기 위해 23일 부산 강서구 식만로 112, 서낙동강변의 '카페 흐른'을 찾았다. 인저리타임은 이번 인터뷰를 통해 단순한 신간 소개를 넘어,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성애(性愛) 현실을 문학의 공론장으로 이끌어낸 이 시집의 독보적인 문학적 의미를 짚어보고자 했다. '한국 성애시의 전후를 가르는 기점'이자 '21세기 첫 남녀상열지시'라는 평가를 받은 늦깎이 신예 시인의 뜨겁고도 생생한 육성을 지면으로 전한다.

요약문
“체면 따위 버리고 가려워서 긁었다”… 60대 똑순이가 터뜨린 삶의 속살
60대에 접어든 늦깎이 신예 시인이 한국 문단이 오랫동안 금기시해 온 성(性)과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시집을 펴내 평단과 독자 사회에 거센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있다.
출판사 '산지니'의 시인선으로 발간된 김보성 시인의 첫 시집 《오빠 달려 노래주점》은 발간 직후 평단으로부터 "이제껏 한국 시단이 도덕주의적 검열로 인해 감추어왔던 구체적인 성행태를 오롯이 수면 위로 끌어올린 기념비적 성과"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태일(시인) 교수는 해설을 통해 이 시집을 "21세기 한국 시단이 낳은 첫 남녀상열지시(男女相悅之詩)"라고 정의하며, 성의 개방(성화)과 사회적 공론화(탈성화)를 동시에 성취해 낸 나침반 같은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김보성 시인은 2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시를 쓰는 행위를 "내 삶과 우리 사회의 가려운 곳을 참지 못해 본능적으로 긁어해친 생존 행위"라고 정의했다. 시인은 서시 〈가려워서 긁었다〉를 통해 이러한 시 세계를 단 두 줄로 선언한 바 있다.
이번 시집의 가장 큰 특징은 성을 은폐하거나 관념적으로 미화하지 않고, 투박한 경상도 방언과 거침없는 비속어를 사용하여 사실적으로 직시했다는 점이다. 노년의 구강성교를 유쾌하게 다룬 〈게이트볼장〉, 가정을 꾸린 여성이 생계를 위해 벌이는 성 노동과 모성을 결합한 〈로켓 모텔〉, 남편이 밖에서 옮겨온 사면발니 때문에 음부에 살충제를 뿌려대는 부부의 소동을 그린 〈에프 킬러〉 등은 독자에게 강렬한 당혹감과 함께 묵직한 인간애를 전한다.
시인은 이러한 파격적인 소재의 원천이 모두 상상이 아닌 100% 실화와 귀동냥을 바탕으로 한 '재현적 진실'이라고 밝혔다. 1960년생인 시인은 젊은 시절 남동생의 학비를 위해 고등학교와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마산자유수출지역 공장에서 주경야독을 해야 했던 척박한 삶을 살았다. 결혼 후에는 40여 명의 직원을 둔 대형 식당 2개를 운영하며 매일 새벽시장을 누볐고, 현재도 김해 장유에서 단팥죽 전문점 '팥고방'을 6년째 직접 운영하고 있는 철저한 '생활인'이다.
김 시인은 "어릴 적 만화방을 하던 집안 환경과 평생 일터의 밑바닥에서 만나온 할머니, 아지매, 소외된 여성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현대사와 애환이 고스란히 시의 밑거름이 되었다"며, 특히 자신이 가장 아끼는 시인 〈하루꼬〉, 〈곰보 배추〉, 〈자궁〉은 가난과 장애, 쉼 없는 출산의 고통을 묵묵히 견뎌낸 이 땅의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말했다.
인류사적 금기인 근친상간(〈거미〉, 〈업〉)이나 노년의 자위(〈아들〉)까지 거침없이 다룬 것에 대해 시인은 "점잖은 척 위선을 떨기 싫었을 뿐, 두려움이나 자기 검열은 없었다"고 담담히 소회를 밝혔다. 아울러 "그동안 우리 사회가 애써 외면해 온 숨겨진 진실을 문학의 힘을 빌려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내는 것이 오늘날 시인의 역할"이라며 "앞으로도 평범하고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 적는 시인으로 역할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Q1: 시인님, 반갑습니다. 오늘 모처럼 찾은 서낙동강변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물결따라 출렁이는 연잎들이 무척 아름답네요. 먼저 첫 시집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연보를 보니 58세에 경남대 평생교육원 시창작반에 들어가셨고, 63세에 등단하셨더군요. 이렇게 늦은 나이에 시의 세계로 뛰어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만화방 소녀,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시창작반 문을 두드리다
김보성 시인: 특별한 문학적 꿈이나 대단한 포부가 있어서 시작한 건 정말 전혀 아닙니다. 젊은 시절엔 먹고살기 바빠서 책 읽는 것도 별로 안 좋아했어요. 다만 어릴 때 우리 집이 시골에서 만화방을 크게 했거든요. 한 달에 한 번씩 용달차로 만화책이 한 가득 들어왔는데, 그걸 밤새워 다 읽으며 컸으니 활자나 이야기에 대한 본능은 그때 길러진 건지도 모르겠네요. 진짜 계기는 10년 동안 차(茶) 공부를 같이했던 동갑내기 지인이자 도반인 분 덕분입니다. 그 친구가 서울에서 시 공부를 하고 내려오더니 제게 자꾸 시를 같이 하자면서 자기가 배운 걸 막 풀어놓더라고요. 늦은 나이에 들어보니 참 괜찮겠다 싶어서 정말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어쩌다 보니 평생교육원 문을 두드리게 됐고, 거기서 평생의 스승이신 박태일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Q2: 젊은 시절부터 그야말로 '주경야독'의 연속이셨더군요. 남동생을 위해 학업을 양보하고 공장에서 일하셨던 기억부터 식당 경영까지, 그 고단했던 일상들이 시를 쓰는 데 어떤 밑거름이 되었습니까?

주경야독과 새벽시장 40년, 고단한 노동은 시의 마르지 않는 샘물
김보성 시인: 제가 1960년생인데,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다 보니 동생과 줄줄이 학교를 갈 수가 없었어요. 부모님이 "니는 학교 가지 마라, 남동생 가르쳐야 된다"고 하실 땐 원망도 참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지게 등짐으로 이골이 난 아버지의 검은 어깨를 보니 차마 고집을 부릴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마산자유수출지역에 있던 일본인 전자회사 자재과에 들어가 자재 출고와 입고를 정리하며 7~8년을 일했습니다. 남들 고등학교 다닐 때 돈을 벌면서, 밤에는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녔지요. 결혼 후에는 창원에서 직원만 40명이 넘는 큰 식당 2개를 운영하며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식자재를 아끼지 않고 직접 검수하려고 매일 새벽시장을 나갔어요. 그 생활을 수십 년 하다가 몸이 너무 부대껴서 "이제 우리 노후를 홀가분하게 즐기며 생활비나 벌자"고 김해 장유에 땅을 사서 단팥죽 전문점 '팥고방'을 차렸는데, 웬걸요. 입소문이 나서 하루에 천 명이 넘는 손님이 쏟아져 들어오데요. 지금도 아야 아야 소리를 입에 달고 살면서 6년째 직접 팥을 삶고 계량해서 퍼주고 있습니다. 주변에선 저보고 '똑순이'라고 해요. 하지만 어릴 때 부모님 따라 다랑논과 천수답을 누비며 몸으로 배운 노동, 그리고 일터의 밑바닥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생생한 땀방울과 이야기가 없었다면 제 시는 단 한 줄도 태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파격적 제목은 전략 … "사회적 위선과 가려움 긁어내고 싶었다"
Q3: 시집의 제목이 굉장히 파격적입니다. 표제시이기도 한 〈오빠 달려 노래주점〉을 책의 얼굴로 내세우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김보성 시인: 네, 아주 철저한 '전략'이었습니다. 제 시의 내용들이 결코 고상하거나 우아한 척을 안 하잖아요. 어찌 보면 너무 노골적이고 직설적이라 독자들이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부담 없이, 좀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휙 집어 들 수 있도록 일부러 속세 냄새가 팍팍 풍기는 유흥가 제목을 골랐습니다. 하지만 제목에 속아 책을 펼친 독자들은 이내 그 유쾌함 뒤에 숨은 우리 이웃들의 아프고 서글픈 현실을 마주하며 마음이 묵직해질 거라는 계산이 있었지요.
Q4: 시집의 문을 여는 서시가 인상적입니다. 〈가려워서 / 긁었다〉 단 두 줄인데, 시인님에게 이 '가려움'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김보성 시인: 보통 사람들은 체면이나 도덕적 가식 때문에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인간의 본능, 위선, 숨겨진 상처를 뜻합니다. 저는 멋모르고 날것 그대로 썼는데, 박태일 교수님조차 "나는 부끄러워서 절대 이런 시 못 쓴다, 이건 김보성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라고 용기를 주셨어요. 제 속을 들여다보니 평생 보고, 듣고, 경험한 가려운 이야기들이 무서울 정도로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우리 사회의 가려운 곳을 누군가는 시원하게 긁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꾸 숨기고 놔두면 더 간지럽고, 결국엔 피가 나도록 긁어 상처가 되니까요. 독자분들도 제 시를 통해 마음속 가려운 곳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길 바랐습니다.
Q5: 박태일 시인은 이번 시집을 두고 "우리 근대 시사에서 볼 수 없었던 남녀상열지시(男女相悅之詩)"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내 안에 이런 게 숨어있었나"… 뼈에 새겨진 우리 어머니들의 잔혹사
김보성 시인: 저는 평가라는 걸 전혀 모르고 무식하게 썼습니다. 제 성격이 보기보다 아주 급해서 빙빙 돌려 말하는 걸 성미상 못 해요. 시라고 해서 은유나 비유를 너무 꼬아버리면 원래 전하려던 삶의 진짜 의미가 왜곡되거나 희석되잖아요. "어차피 쓸 거,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직설적으로 쳐다보자"고 덤볐는데, 교수님이 해설에 그렇게 엄청난 평을 써주셔서 제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내 안에 이런 게 다 숨어있었나, 이런 시가 아직 한국 시단에 없었단 말인가?" 싶어 얼떨떨하기도 하고, 제 투박한 성격대로 쓴 글을 문학적으로 인정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Q6: 시인께서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세 편으로 〈하루꼬〉, 〈곰보 배추〉, 〈자궁〉을 꼽으셨습니다. 이 시들은 한 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해 온 억척스러운 여성들의 잔혹한 연대기처럼 읽힙니다. 특별히 이 작품들에 애착이 가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김보성 시인: 머리로 지어낸 상상이 아니라, 제 뼈에 새겨진 우리 집안 아지매, 작은할머니, 외할머니의 진짜 눈물겨운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루꼬〉는 제 외할머니의 실화예요. 외할머니가 시집을 가니 온 천지가 일본인 배밭이었고, 새댁 때부터 왜인 사택에 가서 고되게 일을 하셨답니다. 그러다 해방되던 날, 신작로에 흰옷 입은 조선 사람들이 "자유다" 외치며 쏟아져 나오니까, 사택의 일본인 안주인(하루꼬)이 겁에 질려 도망치면서 외할머니 손에 슬그머니 '고방 열쇠'를 쥐여주고 본국으로 갔다고 해요. 박 교수님이 이 시를 보시고 '장소시학' 정신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이라며 감탄하셨고, 이 시 덕분에 제가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발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제 시에 나오는 얽고 다리를 저는 여인(〈곰보 배추〉), 평생 자식을 열 하나 낳아 노년에 목욕탕에서 아기 집이 쏟아져 내린 어머니(〈자궁〉)의 이야기는 모두 우리 세대 어머니들의 처절하고도 숭고한 생존의 기록입니다.
예쁜 척, 점잖은 척은 가라… 성적 주도권을 쥔 당당한 아지매들의 도발
Q7: 시집 속 성 묘사를 보면 미화나 포장 없이 비속어와 토속적 방언이 날것 그대로 튀어나옵니다. 은밀하게 감추는 것에 익숙한 주류 문학의 관습과 정반대의 길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보성 시인: 제가 시 공부를 늦게 시작해서 세련되게 포장하고 감추는 기술이 부족해서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점잖은 척, 거룩한 척 위선을 떨기가 싫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뱉어내야 가슴을 치는 진짜 힘이 생기니까요. 독자들이 제 시를 보고 "남세스럽다"고 욕을 하든, "속 시원하다"고 좋다고 하든 그건 온전히 독자의 몫입니다. 저는 그저 세상의 민낯을 정직하게 전달하는 배달부일 뿐이니까요.
Q8: 흥미로운 점은 가부장적 관념을 뒤집고 여성들이 성적 주도권을 쥐거나 남성의 얄팍한 남성성을 풍자하는 설정(〈여행〉, 〈바느질〉)이 돋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런 도발적인 시선은 어디서 포착하셨나요?

김보성 시인: 실제 현실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의 아지매나 친구들을 보면 옛날과 달리 훨씬 강하고, 성적 선택이나 주도권을 당당하게 쥐고 살아요. 늙어가는 남편이 성적 콤플렉스 때문에 비뇨기과에 가서 남성 수술을 하고 오자, 아내가 핀잔을 주는 〈바느질〉의 내용도 제 친구의 실제 부부 이야기입니다. 너무 민망해서 처음에 시집에 넣을까 고민도 많았지만, 현실을 유쾌하게 비트는 거울이 되겠다 싶어 용기를 냈습니다.
생활 속에서 포착한 생활형 성 노동과 인간적 해학
Q9: 〈로켓 모텔〉의 청소부나 〈하의 실종〉의 고속도로 요금소 수납원 등, 주부 성매매와 여성노동자에 대한 성희롱 현실을 보는 시선도 날카롭습니다.
김보성 시인: 생업을 하면서 세상을 직시하다 보니, 우리 주변에 번성하고 있는 '생활형 성 노동'이나 일터에서의 성폭력 문제가 눈에 밟혔습니다. 제 친구가 모텔을 운영했는데, 카운터에 놀러 가 보니 겉보기에 너무나 번듯하고 화사한 아줌마가 들어오데요. 친구 말이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인데, 아이 학원비 벌고 퇴근길에 통닭 한 마리 사 가려고 모텔에서 일을 벌인다는 겁니다. 서글프지만 엄연히 실재하는 자본주의의 그늘이기에 안 꾸미고 그대로 시로 옮겼습니다. 〈하의 실종〉 역시 요금소에 근무하던 동네 아줌마가 정기적으로 출퇴근하며 매너 좋게 굴던 남자의 도착적인 노출증 때문에 겪었던 공포를 담담하게 저격하며 남자의 비루함을 풍자한 실화입니다.
Q10: 독자 추천 시편으로는 〈송학다방〉, 〈서울역〉, 〈에프 킬러〉를 꼽아주셨습니다. 독자들이 이 작품들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읽어내길 바라시나요?
김보성 시인: 이 세 편은 말맛과 리듬감이 살아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송학다방〉은 순진한 로맨스인 척 접근해 마담의 금붙이를 훔쳐 달아난 남자의 실제 이야기고, 〈에프 킬러〉는 남편이 밖에서 사면발니를 옮겨와 부끄러워서 병원도 못 가고 내외가 음부에 모기약(에프킬라)을 뿌려대며 빡빡 닦아내던 배꼽 잡는 소동입니다. 인생의 비극과 밑바닥 일탈 속에서도 터져 나오는 '인간적인 해학'과 생명력을 독자들이 유쾌하게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금기를 넘어 성의 공론화로… 70세 남편은 가장 든든한 자문위원
Q11: 노년의 성병이나 자위(〈아들〉), 더 나아가 형제나 모자간의 근친상간(〈업〉, 〈거미〉) 같은 인류사적 금기까지 거침없이 시로 다루셨습니다. 발표할 때 두려움이나 자기 검열의 빗장은 없으셨습니까?

김보성 시인: 제가 뭣도 모르고 용감했던 거겠지요. 하지만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은 전혀 없었습니다. 뜬구름 잡는 소리, 별이 아름답고 모래가 어떻고 하는 예쁜 시들은 남들이 이미 많이 쓰잖아요. 아무도 쓰지 않는 우리 주변의 강렬하고 어두운 진실을 직시하는 것이 제 시의 강점이라 믿었습니다. 70세 된 제 남편도 제 시집을 보더니 "자기는 밖에서 저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말만 사기 친다"고 껄껄 웃으며, 제가 모르는 남자들의 은밀한 심리를 물어볼 때마다 아주 든든한 자문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Q12: 박태일 시인은 해설에서 '21세기 첫 남녀상열지시'라 칭하며, 숨겨진 성을 공론화하는 것이 문학의 힘이라 했습니다. 시인님이 생각하는 문학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김보성 시인: 그동안 우리 사회가 체면 때문에 애써 외면하고 감춰온 부끄러운 이야기들을 문학의 힘을 빌려 자연스럽게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이 진정한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완전히 지어내거나 꾸민 거짓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실재하는 우리네 현실을 조금 극적으로 가미했을 뿐이지요. 이렇게 빗장을 열어놓아야 다음 사람들이 더 자유롭고 평등하게 성과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성적 선진화'의 기반이 닦이지 않겠습니까.
눈시울 붉힌 늦깎이 시인,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 적는 배달부로 남으리"
Q13: 평생을 억척스러운 생활인으로 살아오시다 마침내 '내 말'을 전하는 시인이 되셨습니다. 앞으로 독자들에게 어떤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첫 시집을 낸 소감과 함께 마무리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보성 시인: (잠시 서낙동강변 연꽃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더니 고개를 떨군다) ...책을 받아드니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생각이 가장 많이 나서 눈물이 좀 납니다. 그동안 나를 학교도 안 보내주고 일만 시킨 부모님을 참 많이 원망했는데,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 척박하고 어렵게 자라지 않았다면 이 세상을 날카롭게 직시하는 눈을 갖지 못했을 겁니다. 고통이 고스란히 시의 덩어리가 된 셈이지요. 제 시집을 본 남동생이 '누나를 다시 보게 됐다'며 고맙다고 울먹이데요. 친정에서 못한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8년 동안 묵묵히 뒷바라지해 준 남편에게도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매주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혹독하게 다듬어주신 박태일 교수님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이 시집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앞으로도 거창한 특별함 없이, 그저 '평범하고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 적은 시인'으로 남고 싶습니다. 소재가 떨어지지 않도록 앞으로 부지런히 계모임도 나가고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에필로그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시인이 남긴 여운이 서낙동강의 잔물결처럼 마음속에 길게 출렁였다. 58세 전까지는 문학이나 시를 전혀 공부하지 않았고, 책 읽는 것조차 즐기지 않았다는 시인의 고백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문학적 기교나 세련된 수사학을 전혀 거치지 않았기에, 오히려 우리 사회의 위선적 금기와 적나라한 성애 현실을 이토록 날카롭고 서슬 퍼렇게 지적할 수 있었으리라. 그녀는 동생의 학비를 위해 진학을 포기하고 새벽시장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평생을 고단하고 억척스럽게 살아왔지만, 인터뷰 내내 마주한 얼굴은 해맑고 소탈한 웃음으로 가득해 보는 이에게 깊은 호감을 주었다. 상처 가득한 삶을 징징거림이 아닌 벼려진 칼날 같은 해학으로 승화시킨 강인한 성품이었다. 늦깎이 똑순이 김보성 시인이 한 걸음 더 정진하여, 위선적인 한국 문단에 거칠고도 숭고한 이정표를 단단히 세워나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 김보성 시인은
1960년 경남 창원군 동면 단계리 출생
1976년 마산여자상업학교 합격했으나 둘을 고등학교 보내기 어려워 남동생에게 양보해 입학을 포기
1977년 마산여자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입학
1980년 경남대학교 가정학과에 합격했으나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등록을 포기. 마산수출자유지역 소와전자 취업
1986년 결혼. 맏며느리로 집안 대소사 참여
1991년 외식업을 시작
1995년 내외 열심히 벌어 42평 아파트로 이사
2000년 창원전문대학교 입학. 식품조리학 전공. 2002년 졸업
2008년 사단법인 화윤선차회 차명(윤정), 차사 자격증 얻다. 창원 람사르총회에서 공수선차 시연
2014년 방송통신대학교 가정학과 3학년에 편입학
2015년 사단법인 중국차, 다예사 자격증 취득
2016년 방송통신대학교 가정학과를 졸업. 식품영양학사
2018년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반에 등록
2023년 『장소시학』 제3호에 『곰보 배추』 외 17편으로 신인상 당선, 문학사회 활동을 시작
2025년 첫 시집《오빠 달려 노래주점》(산지니) 발간
2026년 현재 김해 장유에서 ‘팥고방’(단팥죽, 팥빙수 전문점)을 9년째 운영
출처: 조송현 기자, 2026년 6월 24일,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이 만난 사람】위선의 금기를 깨부순 21세기 첫 ‘남녀상열지시(詩)’ 《오빠 달려
프롤로그한국 현대 시단에 유례없는 파격과 당혹감을 던진 시집 《오빠 달려 노래주점》(산지니, 2025년 12월)의 저자, 김보성 시인을 만나기 위해 23일 부산 강서구 식만로 112, 서낙동강변의 '카
www.injurytime.kr
★『오빠 달려 노래주점』을 인터넷 서점에서 만나보세요
오빠 달려 노래주점 | 산지니시인선 29 | 김보성
엄숙주의 아래 가려졌던 생활세계의 성애 현실을 2023년 『장소시학』 신인상 수상자로 데뷔한 김보성 시인이 첫 시집 『오빠 달려 노래주점』에서 100편의 시로 펼친다. 전통적 태도에서 벗어나
www.aladi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