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이 넘어 첫 책을 펴낸 신명자 시인의 시집 『거제, 파도로 쓴 시』에는 시인의 생활 반경인 거제도 곳곳의 풍경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바다를 건너 옆 도시로 향하는 길목에서 손님들을 만나는 주막 주인, 미역을 파는 일로 자식을 키운 어머니, 남들에게는 독특하다고 여겨지지만 알고 보면 매우 타당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할메'들, 마을 이장과 목수도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 안으로 들어옵니다.
참 작게 느껴지기도 하는 거제의 모습이, 다르게 본다면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하는 것은 어쩌면 시가 담고 있는 그 속의 사람들이 섬의 생김새와 평행을 이루며 자신만의 법칙을 세워 나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장소시학', '장소의 미학'이라는 말은 곧 그곳을 지키고 있는 이들의 시학이 아닐까 싶어집니다.
지역을 말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고 무엇을 말해야만 할까요? 어떤 것이 가장 진실된 '지역'을 말하는 방식일까요? 신명자 시인은 인터뷰에서, 미사여구 없이 그저 솔직하게 쓰는 것이 자신의 시라고 말합니다. 그러다 보면 섬의 산과 들과 파도는 자연히 사람의 세상과 연을 맺는 법이라고 말입니다.
【인저리타임이 만난 사람】《거제, 파도로 깎은 시》 펴낸 신명자 시인, "절망의 끝에서 잡은 펜, 내 삶도 파도에 씻겨 시가 되었다"
부동산 사기 피해와 절망 끝에서 만난 시 … 모진 세월을 해학과 긍정으로 돌려세우다
칠순에 선보인 첫 시집, 거제 바다의 샛바람과 사람들의 애환을 담아낸 '본격 거제 장소시학'

[프롤로그]
올초 출간되어 한국 시단에 '본격적인 거제 장소시'라는 깊은 울림과 평가를 받는 시집 《거제, 파도로 깎은 시》. 그 뜨거운 시어들의 주인을 만나기 위해, 전국이 가마솥더위로 펄펄 끓어오르던 7월 30일 오후 시인의 고향인 거제 남부면을 찾았다.
제주 다음으로 큰 섬, 거제. 그중에서도 남쪽 끝자락 다대와 다포의 바다는 거칠고 당차다. 바람이 한 번 불어치면 나락도 보리도 납작 엎드리는 그 바닷가, 거제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살던 사람들의 굽이진 애환을 구체적인 '장소 경험'과 담백한 언어로 포착해낸 신명자(73) 시인을, 다대항이 한눈에 마주 보이는 다대어촌체험휴양마을 3층 ‘카페 다대’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요약]
70대에 펜 잡은 신명자 시인, 첫 시집 《거제, 파도로 깎은 시》 출간
부동산 사기 시련과 삶의 굽이, 해학과 '장소시학'으로 승화
칠순의 나이에 첫 시집을 내며 한국 시단에 '본격적인 거제 장소시'를 선보인 신명자(73) 시인이 삶의 모진 풍파를 시적 언어로 승화시킨 소회를 밝혔다.
신 시인은 지난 7월 30일 거제시 남부면 다대항 인근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친 시가 나를 구했다"며 뒤늦게 시인의 길에 들어서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1953년 고향인 거제 남부면 다포리에 포로수용소가 들어서면서 건너마을 다대리에 설치된 집단이주촌의 천막에서 태어난 신 시인은 젊은 시절 시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60대 중반 무렵 막대한 부동산 사기를 당해 재산을 잃고 경매에 넘어가는 등 극심한 삶의 위기를 겪었다. 식은땀과 불면 속에 세상과 단절되어 지내던 그가 절망의 순간 속마음을 글로 적어 내려간 것이 시 쓰기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후 2017년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반에 입학한 신 시인은 지도교수인 박태일 시인을 만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박 교수의 "미사여구를 버리고 자신의 진짜 삶과 거제의 구체적인 장소 경험을 쓰라"는 가르침에 따라, 신 시인은 고향 거제의 바다와 사람들의 애환을 솔직 담백하게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 결실로 2024년 계간 《장소시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거제, 파도로 깎은 시》는 거제 남부면 다대·다포 마을의 거친 샛바람과 파도, 그리고 그 속에서 모진 세월을 견뎌낸 사람들의 생생한 서사를 담고 있다. 신 시인은 시집 서문의 "내 발자국과 샛바람 발자국은 쌍둥이"라는 구절에 대해 "시댁의 빚을 안고 가족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삶의 상처와 후유증이 고향의 샛바람 자국과 꼭 닮아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시집에는 미역 장사로 칠남매를 키워낸 어머니의 가쁜 숨소리를 담은 〈진을수 여사〉, 길목의 간이역 역할을 하던 주막의 사연을 그린 〈곱다이고개〉, 선거 때마다 후보 모두에게 표를 나누어주던 정겨운 이웃을 그린 〈박산 할매〉 등 고향의 구체적인 장소와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특히 무거운 삶의 고단함을 비관 대신 웃음으로 돌려세우는 해학적인 입담에 대해 신 시인은 "서른아홉에 홀로 되어서도 품위와 유머를 잃지 않으셨던 할머니와, 바닷가 동네 사람 특유의 구수한 입담에서 체득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시인은 시를 쓰기 시작한 이후 일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시적 탐구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삶에 대한 자존감과 품위가 높아졌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도 유명세를 바라기보다는 내 삶의 깊은 내면과 슬픔을 진솔하게 깎아낸 시를 써서, 단 한 사람의 독자에게라도 마음의 위로를 전하고 싶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Q1. 신명자 시인님, 반갑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신명자 시인: 제가 뭐 아주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소소하게, 소박하게 그냥 공부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오히려 제가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저 살아가는 일들을 이어가면서, 틈틈이 시 생각도 하고, 또 마음에 남는 장면들을 적어보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Q2. 이곳 거제시 남부면 다대리 다대어촌체험휴양마을 '카페 다대'에서 마주 보이는 해변 마을이 시인의 고향 다포리지요. 시집에 〈다포항〉이 있더군요. 시인에게 고향 거제와 그 바다는 어떤 의미이자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까?
신명자 시인: 예전에는 지금처럼 정리된 풍경이 아니었고, 물이 빠지면 뻘밭이고 물이 들면 수영장 같은 데였어요. 여름이면 아이들이 거의 벗고 들어가 놀기도 하고, 참 천진난만했지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고도 많았습니다. 친구 동생이 떼목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져 죽는 걸 제가 직접 봤거든요. 그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다포항을 생각하면 그런 추억과 아픔이 함께 떠오릅니다.
고향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내 삶의 뿌리입니다. 결혼하고 객지에서 살아온 50년 세월은 까마득하게 잊히는데, 이상하게 25살 이전에 살았던 고향 거제의 기억은 나이가 들수록 더 또렷해집니다. 제 고향인 거제 남부면 다포 마을은 바람과 파도가 아주 거센 곳이에요. 매서운 샛바람이 한 번 불어치면 들판의 나락이나 보리가 납작 엎드리고 장독대가 깨지곤 했지요. 시댁의 큰 빚을 떠안고 시동생과 시누이,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며 샛바람처럼 쉼 없이 달려온 제 삶의 굽이굽이가 모진 파도를 견뎌내는 거제의 몽돌밭, 갯바위와 꼭 닮아 있더군요. 거제의 자연과 바다는 제 삶의 상처와 애환을 오롯이 비춰주는 거울이자 시의 원천입니다.
Q3. 시를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신명자 시인: 젊었을 때는 시라는 걸 전혀 몰랐습니다. 결혼 전 남편이 면사무소 공무원으로 일할 때 찾아오던 책장수들에게 산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단편소설을 빌려 보는 게 유일한 문화생활이었지요. 그러다 60대 중반쯤 인생의 가장 큰 위기를 맞았어요. 땅을 팔았는데 상대방이 대출만 몽땅 빼먹고 도망치는 바람에 거액의 부동산 사기를 당했고, 땅이 경매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몇 년 동안 밤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참 살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싶을 정도로 막다른 골목까지 갔었지요. TV마저 끊고 세상과 단절한 채 내 심정이라도 어디엔가 적어보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시가 되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순간순간 올라오는 감정을 적어 밴드에 올려보기도 했습니다.
Q4. SNS에 글을 올려보셨군요. 반응이 어떻던가요?
신명자 시인: 처음에는 남들의 글을 보면서 "아, 시를 이렇게 쓰면 되는가" 싶기도 했지요. 한두 달 올리다 보니까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주기에 ‘나도 시를 쓸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건 정식 공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혼자 '놀이마당'에서 노는 정도였지요. 그래서 제대로 공부를 해보자 결심하고 2017년 2학기에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반에 등록했습니다.
Q5. 처음 시창작반에 들어가 수업을 들으셨을 때의 기억이 궁금합니다.
신명자 시인: 아무것도 모르고 멋대로 쓴 글 하나를 내놨더니 박태일 교수님이 단칼에 야단을 치시더라고요. "이게 무슨 시냐, 시처럼 보이게 겉멋이나 미사여구만 쓰면 안 된다. 자신의 삶과 구체적인 장소 경험이 솔직하게 보여야 한다" 하시는데, 그 말이 참 아프면서도 맞는 말이었습니다. 눈물도 났습니다. 그냥 내 생각만 적는 건 쉽지만, 내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건 어렵거든요. 그때부터 남의 시를 흉내 내지 않고 정식으로 다시 배우기 시작한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Q6. 서문의 "내 발자국과 샛바람 발자국은 쌍둥이"라는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뜻인가요?
신명자 시인: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 동네는 샛바람이 정말 셉니다. 겨울이면 바람이 며칠씩 몰아쳐서 나락이며 보리를 다 눕히고, 집 안팎을 엉망으로 만들며 항상 상처와 후유증을 남기지요. 제 삶 역시 장남의 아내로서 시댁의 과도한 빚(당시 400만 원이 넘는 큰돈)을 십수 년간 남편과 함께 세일즈와 온갖 고생을 하며 갚아나갔고, 시동생과 시누이, 자식들을 공부시키느라 가만히 앉아있을 틈 없이 샛바람처럼 쫓아다녔어요. 열심히 뛰었지만 돌아보면 내 삶에도 항상 가슴 아픈 상처와 후유증이 남았기에, 그 모습이 샛바람이 지나간 자국과 꼭 닮아 쌍둥이 같다고 느꼈습니다. 둘 다 내 몸에 붙어 함께 살아온 것 같아서 그리 썼지요.
Q7. 고향 거제에서의 기억 중 시인님의 삶과 시에 가장 깊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신명자 시인: 우선 어머니(진을수 여사)가 계십니다. 봄과 여름이면 자연산 미역을 예쁘게 다듬어 단으로 묶은 뒤, 어선을 타고 부산 남항동 상회까지 오가며 미역 장사로 칠남매를 키워내셨어요. 손마디가 나무껍질처럼 터져가며 고생하신 어머니의 가쁜 숨소리가 제 시의 가장 큰 아픔이자 원천입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불심이 깊으셔서 절에 다녀오신 뒤 하수구 도랑에 뜨거운 설거지물을 부을 때도 "거기 사는 미물이 데인다"며 식혀서 붓게 하셨고, 밥 한 톨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하셨어요. 미물조차 귀하게 여기시던 그 마음과 생활불교 같은 태도가 제 삶의 정신적 뿌리가 되었습니다.
Q8. 이번 시집에서 추천작으로 꼽으신 〈곱다이고개〉, 〈박산 할매〉, 〈다포항〉에는 어떤 인물과 배경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까?
신명자 시인:
〈곱다이고개〉: 저구와 다포를 이어주는 길목의 고개입니다. 통영 가는 배를 타거나 학교에 갈 때 꼭 넘어야 했던 곳인데, 그 고개 한가운데서 '곱다이 아지매'가 주막을 운영하며 지친 나그네들의 간이역 역할을 해주었지요. 고개의 이름이 바뀌어가는 과정과 사람 사는 방식이 다 들어 있는 장소입니다.
〈박산 할매〉: 어릴 적 우리 집 뒷담 너머 높은 곳에 살던 하얗고 정갈한 할머니였는데, 어린아이에게도 존댓말을 쓰실 만큼 교양 있으셨어요. 선거 때만 되면 후보자 모두에게 표를 똑같이 나눠 찍어주며 "아이고, 나는 오늘도 고루고루 찍어줬다" 하시던 유쾌하고 정겨운 기억이 서린 분입니다.
〈다포항〉: 어릴 적엔 물이 들면 훌륭한 수영장이 되어 놀던 추억의 공간이지만, 15살 무렵 뗏목 놀이를 하던 친구 동생이 물에 빠져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던 충격적인 현장이기도 합니다. 세월이 흘러 해상 둘레길이 생기며 옛 풍경은 변했지만, 그리움과 슬픔이 함께 떠오르는 곳입니다.

Q9. 〈진을수 여사〉, 〈낮달〉, 〈갈곶리〉, 〈계묘년〉을 스스로 마음이 많이 가는 시편이라고 꼽아주셨는데.
신명자 시인: 마음이 많이 아픈 시죠. 〈진을수 여사〉는 평생 가족을 위해 미역 장사를 하며 마디마디 손이 부르터라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름을 불러드리고 그 아픔을 기리기 위해 쓴 시입니다. 어머니가 살아생전 "시집와서 책을 썼으면 열 권도 썼을 거다" 하셨는데, 그 아픈 삶을 제가 대신 쓰는 마음이었지요. 그리고 〈낮달〉은 현재 고성 구절산 밑 농막에서 홀로 묵묵히 농사지으며 고생하는 남편을 바라볼 때 느끼는 미안함과 짠한 감정을 담은 시라 애착이 깊게 갑니다. 또한 밤중에 어린 딸을 업고 도깨비불 소문이 무성하던 해금강 갯길을 넘던 고단함이 담긴 〈갈곶리〉와 보릿고개의 배고픔을 그린 〈계묘년〉도 가슴 깊이 남습니다.
Q10. 《장소시학》 신인상 수상소감을 두 편의 시로 대신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명자 시인: 제가 늦게 시를 시작했잖습니까. 그 마음을 〈구절초 향기는 더 진하다〉에 담았고, 〈11월의 비〉는 제가 힘들었던 시절을 비유한 겁니다. 11월에 오는 비는 참 쓸모없어 보이잖아요. 저는 그때 제 자신이 세상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시로 옮긴 거지요. 그냥 인사말로 끝내기보다는, 제 마음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시로 대신하고 싶었습니다.
Q11. 박태일 교수님은 시인의 길에 어떤 분입니까?
신명자 시인: 굽이굽이 모서리가 많았던 제 삶의 마지막 길목에서 만난 최고의 스승이십니다. 미사여구로 꾸민 가짜 시를 단칼에 버리게 하시고, 거제의 산과 바다, 사람이라는 구체적인 장소 경험을 솔직하게 쓰도록 정체성을 잡아주셨지요. 박 교수님이 "거제의 산·바다·사람이 녹아든 본격 장소시"라고 평해주신 것은 참 고맙고 값진 평가입니다.
Q12. 시집 출간 이후 가족들이나 독자들의 반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신명자 시인: 동생 회사로 시집을 몇 권 보냈는데, 그곳에서 근무하던 거제 출신의 한 부장님이 시집을 읽다가 돌아가신 자기 어머니 생각이 나서 앉은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시를 쓴 보람을 진하게 느꼈습니다. 〈곱다이고개〉의 주인공인 곱다이 아지매의 딸이 제 친척 조카의 친구였는데, 시집을 통해 어머니의 옛 모습을 접하고 감회를 전해오기도 했습니다.

Q13. 박태일 시인은 시집 전편에 흐르는 낙관주의와 웃음의 힘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무거운 삶을 해학과 비유, 입말과 웃음으로 넘어서게 만드는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신명자 시인: 우선 할머니가 떠오릅니다. 서른아홉에 홀로 되셨음에도 품위를 잃지 않고 비관 대신 해학과 웃음으로 고단함을 이겨내시던 할머니로부터 받은 가르침입니다. 모진 삶의 풍파를 겪으면서도 한마디 웃음으로 삶을 돌려세우던 고향(거제 바닷가) 특유의 풍속과 정서가 제 몸에 자연스럽게 체득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Q14. 칠순의 나이에 시를 공부하고 시집을 내신 경험이 일상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신명자 시인: 많이 달라졌지요. 예전 같으면 그냥 흘려보냈을 장면도 이제는 유심히 관찰하게 되면서 일상이 '탐구생활'이 되었습니다. 남들과 어울려 노닥거리기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오롯이 가치 있게 쓰게 되었고,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100% 높아졌지요. 말 한마디도 더 조심하게 되고,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의 품위 같은 것도 스스로 생각하며 내 삶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Q15. 앞으로 어떤 시를 더 쓰고 싶으신지, 시인으로서 향후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신명자 시인: 이제는 정말 파도로 깎은 시를 써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가 내 살아온 이야기를 조금씩 골라 쓴 정도라면, 앞으로는 더 깊이 들어가 내면의 아픔과 세월 속의 파도를 제대로 깎아내고 싶어요. 거창한 유명세를 바라기보다 내 삶의 한 부분으로 꾸준히 쓰면서, 어느 한 사람이라도 제 글을 보고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에필로그]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시인의 문장과 표정에서 인상 깊게 다가온 대목은 바로 일상을 '시적 탐구생활'로 삼는다는 점이었다. 칠순을 넘은 사람들이 흔히 갖는 '무료한 나날'이나 '노닥거림'에 빠지지 않고, 일상의 편린들을 시적 소재로 엄정하게 검토하는 삶. 그 단단하고 치열한 일상성이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시댁의 거대한 빚과 부동산 사기라는 모진 풍파를 억척같이 견뎌내면서 그 모든 고단함 삶을 비관으로 빠뜨리지 않고 해학과 유머로 돌려세우는 힘. 거제 바다가 파도로 돌을 깎아 몽돌을 만들듯, 그의 삶이 깎아낸 시편들은 그래서 더 맑고 따뜻하다.
왕복 5시간가량 남해안 길을 달린 긴 운전이었지만, 거제 남부면 바닷가에서 신명자 시인과 나눈 문학적 대화 덕분에 이번 취재는 가슴 가득 시원한 바닷바람을 품고 돌아온 참으로 기분 좋은 여정이 되었다.

◇ 신명자 시인
1953년 2월 23일, 경남 거제군 동부면 다대리 천막촌에서 출생.
1954에서 1957년까지, 군복무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동두천에서 거주.
1970년 2월, 명사중학교 졸업.
1976년 1월, 동부면 다포리에서 결혼.
1978년, 남편 근무지 따라 신마산 반월동으로 이사.
1979년, 창원 중앙동으로 이사.
1983년, 부산우유 상남보급소 운영 시작.
1989년, 창원 상남동에 삼성전자대리점 개소.
2008년, (주)창림이라는 조선기자재 회사 창업, 이사로 취임.
2015년, (주)창림을 폐업.
2016년, 현재까지 부업으로 부동산업에 종사.
2017년 9월, 경남대학 평생교육원 시창작반 수강.
2024년 《장소시학》 신인상 수상
2025년 12월 첫 시집 《거제, 파도로 깎은 시》 출간하다
출처: 조승현 기자, 2026년 8월 1일,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이 만난 사람】《거제, 파도로 깎은 시》 펴낸 신명자 시인, `절망의 끝에서 잡은
[프롤로그]올초 출간되어 한국 시단에 '본격적인 거제 장소시'라는 깊은 울림과 평가를 받는 시집 《거제, 파도로 깎은 시》. 그 뜨거운 시어들의 주인을 만나기 위해, 전국이 가마솥더위로 펄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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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파도로 깎은 시 | 산지니시인선 28 | 신명자
2024년 『장소시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한 신명자 시인이 첫 시집을 출간한다. 신명자 시인의 첫 시집 『거제, 파도로 깎은 시』에는 시인의 고향인 경남 거제를 무대로 써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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