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과 굴욕을 모두 겪어야만 했던 지난날을 뒤로 하고 이렇게 쓸쓸히 세상을 등져야만 했던 마음은 얼마나 참담했을지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내 마음도 한없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하고, 인생이 뭔지 존재가 뭔지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인생 무상이라더니...
타니 타다시 지음, 권서용 옮김, 산지니
『무상의 철학-다르마끼르띠와 찰나멸』은 7세기 인도의 철학자 다르마끼르띠의 철학을 담은 책이다.7세기 인도에 혜성같이 출현한, 인도철학 역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철학자 다르마끼르띠는 '무상의 증명'에 필생의 철학적 노력을 기울였다.
일반적으로 '무상'은 시간이라는 존재 속에서 살아가는 한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생존의 덧없음'을 의미한다. 나 자신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비통한 슬픔이 '무상'을 꿰뚫고 있다.
'삶' 그것은 자기 자신 속에 이미 '스스로의 비재'로서 '죽음'을 내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는 순간적으로 비재화함과 동시에 '비재'로부터 회광반조(廻光返照)하여 새로운 독자적 존재의 섬광을 창발한다. 붓다의 최후의 말씀 즉, '거기로 향해 마음을 집중하고 노력을 집중하는 곳'은 바로 이 '순간'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를 논리로서 증명하는 것이야말로 다르마끼르띠의 철학의 핵심이다.
타니 타다시가 알려 준 무상의 두 가지 의미는 이렇다. 첫째 “삶이 죽음에 의해서 단절된다.”라는 의미에서 무상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존재의 덧없음을 한탄할 때 쓰는 표현이다. 둘째 “무상은 무상을 통찰하여 청정한 적정에 도달했다.”라고 할 때 무상이다. 여기서 삶과 죽음을 분리하는 경계선은 불탄다.
다르마키르티의 ‘무상의 철학’은 분명 존재의 실상을 알린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객관 사실에 대한 확인 절차가 아니다. 앞서 ‘죽음 극복’이라고 했듯이 그것은 우리 실존의 문제다. 매 순간 주고받는 질문과 대답이다. “죽음이라는 타자와 결정적 만남의 순간은 필연임과 동시에 우연이다.
그것은 나라는 자기동일성을 해체하고 단념하는 비재의 순간에 생의 한복판에 가로놓여 깊게 각인된다.” 생의 한복판에 일어나는 죽음. 이 비재의 순간에 다시 새로운 순간이 섬광처럼 일어난다. 저자는 ‘회광반조(廻光反照)’라는 선가의 용어를 빌려서 이 순간을 설명한다. 죽음의 한복판에서 다시 생을 비춘다. 만약 우리가 순간적 존재성을 인정하면서도 수행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 비재의 순간을 되비추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역자 서문에서도 밝혔듯 타니 타다시는 《찰나멸의 연구》라는 대저가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전문적인 책 말고 좀 더 대중적인 방식으로 찰나멸의 철학성을 설파하고자 했다. 《무상의 철학》은 바로 이런 의도로 쓰인 책이다. 하지만 스스로 한계를 지적한다. 맺는 글에서 그는 이 책이 “일반 서적으로는 너무 이론적이고 학술 서적으로는 너무나 주관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돌려주고 싶다. “일반 서적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심오하고 학술 서적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감동적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두 가지 일 것이다. 첫째, 저자는 삶에서 붙잡은 절실한 문제를 자신의 학문을 통해서 해결하고자 한다. 바로 성찰이다. 두 번째, 저자는 다르마키르티의 찰나멸 이론을 문헌학적인 사실 규명 차원에서 철학의 수준으로 한껏 끌어올렸다. 이것은 불교 공부하는 사람의 꿈이다.
찰나멸과 차이의 철학 / 김영진 (불교평론)
온 나라가 침울하기도 하고, 누구나 죽음을 생각하며 지난날을 반성하는 것 같다. 삶과 죽음은 종이의 앞뒷면이라고도 하고, 살아가면서 항상 죽음을 직시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존재를 '찰나멸'이라는 용어로 설명하며 죽음을 정시한 다르마끼르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도 가지가지일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그 죽음이 나한테 미칠 영향이 어떠한지를 먼저 계산하느라 바쁜 것 같다. 아직도 욕심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도 있을 테고, 겉으로만 슬퍼하는 척하며 속으론 쾌재를 부르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그 속에서 나는 <무상의 철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무상의 철학 - 타니 타다시 지음, 권서용 옮김/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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