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농은 매일 백초를 맛보느라 어떤 때는 하루에도 몇 차례 중독되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차'로 해독했다.
웰빙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차의 여러 이점이 알려지면서 차에 대한 관심도 날로 늘고 있다. 관련 서적도 꾸준히 출판되고 있고 차 관련 행사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차의 종류도 많고 만드는 방법도 다양하고 효과도 다양하니 나름 다도에 일가견을 갖고 있다고 자부할려면 공부할 것이 너무 많다.
아 다인의 길은 멀고도 멀다!!
벽라춘, 전홍, 고저자순, 황산모봉, 군산은침, 육안과편, 기홍, 태평후괴, 철관음, 서호용정, 신양모첨, 백호은침... 아 많다. 아직 남았는데... 목완에 담은 소유차
무엇을 말하는 지 아는 사람? 정답을 맞춘 사람은 나름 차(荼)에 대해 공부를 좀 한 사람이다. 차의 이름만큼이나 차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많다.
운남에 위치한 서쌍판납은 아름답고도 매력적인 곳으로, 기후가 사람 살기에 적합하고 일 년 내내 푸르다. 우수한 지리적 환경 덕에 셀 수 없이 많은 기이한 꽃과 나무와 진귀한 짐승들이 서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 십대 명차 중 하나인 보이차(普洱茶)의 고향이기도 하다. 서쌍판납에서 품질이 가장 좋은 보이차는 운남의 남나산(南糯山)에서 생산된다. 남나산의 보이차에 관하여 감동적인 전설이 하나 있다. 삼국시대 제갈량은 맹획을 생포하기 위해 서쌍판납의 남나산에 왔었는데 병사들이 물갈이를 하는 바람에 그 중 상당수가 눈병을 앓았다. 제갈량이 소식을 듣고 지팡이 하나를 남나산 군영의 바위에 꽂았다. 신기하게도 그 지팡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차나무로 변해 푸른 찻잎이 돋아났다. 그 잎을 따서 물에 우려내어 병사들에게 마시게 했더니 병사들의 눈이 모두 나았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이 차나무를 ‘공명차(孔明茶)’라 부르고 이 산을 ‘공명산’이라 불렀으며 공명을 ‘다조’로 받들었다. 오늘날까지도 이 지역 소수민족들은 ‘다조’ 공명을 기리기 위하여 공명의 생일인 음력 7월 16일이 되면 ‘다조회’를 열어 차를 마신다. 또한 달을 감상하고, 민족 전통춤을 추며 ‘공명등(孔明燈)’을 켬으로써 ‘다조’인 제갈량을 기념한다. - 『차의 향기』, 68~69p.
서장(西藏, 지금의 티벳)은 고원지대로 기후가 한랭건조하고, 사람들은 하루 세끼를 모두 육식 위주로 하며 과일과 야채는 거의 먹지 않았다. 당나라의 문성공주는 처음 서장에 도착했을 때 그곳 생활에 익숙지 않았다. 매일 이른 아침 여종이 우유를 가져오면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았지만 먹지 않을 수 없었기에 먹고는 늘 위가 불편해 고생하곤 했다. 그래서 그녀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먼저 우유를 반 컵 마신 후 차를 반 컵 마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부터는 정말로 위가 훨씬 편안해졌다. 이후 그녀는 아예 차즙을 우유에 넣어 함께 마셨는데 의식하지 않은 사이 차와 우유가 섞여 그 맛이 우유나 차 하나로 마실 때보다 더 좋았다. 이후로부터 아침에 우유를 마실 때 차를 넣었을 뿐 아니라 평소에 차를 마실 때에도 우유와 설탕을 넣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초기의 내차(奶茶, 우유차)이다. - 『차의 향기』, 145~146p.
차는 처음에는 약용이나 식용으로 인간과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위진 시대 이래 세상이 어지러워지면서 문인들 사이에서는 이를 바로잡을 수 없음을 한탄하며 청담을 나누는 풍조가 생겨났는데 대부분 술자리를 통해 공리공론을 나누었다. 종일 마시고도 취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차는 오래 마시면서도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어 청담가들은 점차 차를 즐기게 되었고 많은 다인들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요즈음은 차 맛이 사람 입맛에 맞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기호음료로 자리 잡았다.
차의 향기 - 리우이링 지음, 이은미 옮김/산지니 |
'산지니 책 >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0여년 전에 쓰인 차(茶)의 고전 (0) | 2009.07.04 |
---|---|
<무중풍경> -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 (4) | 2009.07.02 |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0) | 2009.06.02 |
인도인이 말을 잘하는 이유 (4) | 2009.05.12 |
근대 부산은 영화의 중심지였다. (2) | 2009.04.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