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 개론>(이용주, 2012)은 기억에 대한 영화다. 기억이 ‘환기’의 힘으로 작용할 때 그것은 ‘되살려내는 힘’이다. 그러나 기억이 ‘고착’의 힘으로 작용하면 그것은 ‘붙들어 매는 폭력’이 된다. 세속의 이해는 이 영화를 풍속의 고고학으로 향수하지만, 실로 그 향수가 바로 기억의 나쁜 사례인 것이다.
음대를 다녔지만 아나운서가 꿈이었던 여자는, 그 이루지 못한 꿈을 지체 높은 남자와의 결혼으로 보상받으려 했던 것일까? 하지만 그런 결혼이 오래가기는 힘든 법. 여자는 가까스로 두둑한 위자료를 받아내고, 이제는 ‘첫사랑’을 찾아 기원의 자리를 더듬는다. 덧없는 이상을 좆아 살아왔던 여자에게, 세속의 난삽함이란 그렇게 상처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여전히 철들지 못한 여자는, 세속을 버리고 기억으로 만든 과거의 어떤 장소로 들어가 숨고 싶다. 다시 말해 ‘첫사랑’과 ‘고향의 옛집’이란 여자의 그 욕망이 빚어낸 기원으로서의 기억이 터하는 바로 그 장소다.
기원에 고착함으로써 세속의 번뇌로부터 벗어나려는 여자. 그러나 남자는 그 애달팠던 정념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여자를 단번에 알아보지도 못한다. 하지만 기원에 대한 그런 무심함이야말로 남자의 미덕이다. 여자가 들추어내고 자극한 기억 속에서 첫사랑의 정념은 다시 되살아나는 듯하지만, 그럼에도 남자의 현재는 결혼과 이민으로 펼쳐질 미래의 시간으로 충만하다. 남자에게 과거의 시간들은 가난과 실연의 상처로 얼룩져 있으며, 어머니의 희생적 사랑은 ‘부담’이고 ‘압박’이다.(제주공항에서의 고성(高聲)은 그 부담과 압박에 대한 일종의 발작이다.) 그 고통스럽고 진부한 세계로부터 벗어나고픈 열정이 탈주의 공간을 열어준다. 이처럼 남자에게 삶이란 공간(space)의 구축인 탈주이지만, 여자의 삶은 기억의 장소(place)에 대한 고착이다.
형이상학적 기원으로서의 고향집에는, 키를 쟀던 벽의 표시와 수돗가 바닥의 작은 발자국이라는 흔적(trace)이 남아있다. 그 흔적은 현실에서는 채울 수 없는, 영원히 상실해버린 그 무엇에 대한 대리보충의 대상물이다. 여자에게 건축은 공간의 장소화이며, 그것은 결국 저 흔적들을 보존함으로써, 채울 수 없는 욕구를 채우려는 덧없는 시도다. 아버지의 '상실’(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 두려움 속에서 남편도 자식도 없는 여자는 절박했을 것이 분명하다. 출렁이는 ‘바다’가 앞에 보이고 유년의 기억이 흔적으로 남아있는 제주의 고향집, 그 집을 첫사랑이 다시 복원해 짓는 이 프로젝트는, 여자의 그런 절박함으로 기획된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여자는 상실의 위기로부터 벗어나 다시 행복할 수 있을까? 여기서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은 과거와 현재를 매끄럽게 이어주는 그렇게 진부한 노래로 들어서는 안된다. “많은 날이 지나고 나의 마음 지쳐갈 때 내 마음속으로 스러져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찾아와 생각이 나겠지” 그러나 여자는, 마음이 지쳐도 기억은 그저 흘려보냈어야 했다. 그러므로 여자는 병든 아버지와 함께 그렇게 그 모든 흔적들의 집에서,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기억의 습작>을 들을 때, 그처럼 황홀한 표정을 짓지 말았어야 했다.
남자는 어머니와 첫사랑을 뒤로 하고, 지금의 사랑에 대한 충실함으로 비행기를 타고 떠난다. “너무 커버린 내 미래의 그 꿈들 속으로 잊혀져 가는 나의 기억이 다시 생각날까” 그는 그렇게 탈주함으로써 공간을 구축한다. 그러나 여자는 흔적들로 가득한 그 장소에서, 옛시절의 그 달콤한 기억들로부터 헤어 나올 수 있을까? 여자는 다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되었지만, 언젠가 아버지는 죽고, 첫사랑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기억으로 만든 향수의 장소가 진정한 위로가 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건축은, 때로 파괴함으로써 지어 올리는 그런 탈구축(deconstruction)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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