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더위를 핑계로 두문불출하다가 모처럼 주말 산행에 나섰습니다.
목적지는 금정산성.
성벽과 길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능선을 타고 가는 길이라 힘에 부치지도 않고 무엇보다 확트인 시야가 시원해서 좋습니다.
금정산성 성벽의 총 길이는 약 17km로 국내 산성 가운데 가장 큰 규모입니다. 부산 금정구의 3개동(금성동, 장전동, 구서동)과 북구의 2개동(금곡동, 화명동, 만덕동) 일원에 걸쳐 있으며 사적 제 21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구불구불. 만리장성 저리가라죠.
규모가 이리 거대함에도 불구하고 언제 처음 쌓았는지 분명하지 않다네요. 신라시대부터 성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구요. 하지만 대략 조선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엄청난 난리를 겪고 난 후인 1703년(숙종 29)에 국방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해상을 방어할 목적으로 쌓았다고 합니다.
암벽에 붙어 있는 사람들이 보이시나요? 기암괴석들 덕분에 암벽등반 코스로도 인기랍니다.
해발 687m 원효봉 정상
원효봉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풍경. 멀리 광안대교와 바다가 보이시나요?
일제시대에 많은 문화재가 파괴되었듯이 금정산성이라고 피해갈 수 없었겠죠.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성벽이 결국 200여 년 후에 그 후손들에 의해 파괴되었던 것이죠. 1972년에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1974년까지 동, 서, 남문을 복원했고, 1989년 북문이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북문만 15년이나 지나 복원한 건 왜일까 궁금하네요.
코스모스 뒤 배경은 북문과 고당봉. 고당봉은 금정산의 최고봉.
범어사 뒤로 30~40여분 오르면 북문이 나옵니다. 금정산성의 4문 가운데 가장 아담하고 소박한 모습입니다. 동문이나 서문처럼 아치형의 장식도 없고 투박한 네모 문이지만 나름 거친 게 매력이라고 할까요.
역사의 장소, 북문
"초봄(1808년)에 오한원 부사의 지휘로 기둥과 들보를 100리 밖에서 옮겨오고, 벼랑 끝에서 험준한 바위를 깎아내어 메고 끌어당기는 사람이 구름처럼 많이 모여 들어서 만(萬) 사람이 일제히 힘을 쓰니 149일 만에 북문의 초루가 완성되었다" -금정산성부설비
성문을 짓는데 들었을 옛 사람들의 노고가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죽은 사람도 많았겠지요. 엊그제 파주에서 다리 공사중 상판이 무너져 14명의 사상자가 났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문을 통과하면서 무슨 생각들을 할까요. 저요? 가을 햇볕이 너무 따가웠던지라 성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서늘한 냉기가 참 고마웠죠. 한마리 딱정벌레가 되어 돌벽에 잠시 붙어 있었습니다. 1919년 3월 어느날 그 누군가는 이 문을 지나면서 가슴이 벌렁벌렁했을거예요.
일제 강점기 범어사 만세 운동 거사를 위해 기미독립 선언서와 독립운동 관계 서류를 품 안에 숨기고 경부선 물금역에 내려 금정산 고당봉을 넘어 청년암으로 온 통로가 바로 여기, 북문이었다고 하네요.
금정구 일대와 멀리 회동수원지도 보이네요.
부산 시민들이 즐겨찾는 금정산의 국립공원 추진화 기사(링크)를 신문에서 봤습니다. 환경부가 부산시에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을 위한 타당성 용역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했다고 하네요. 부산시는 머뭇거리는 눈치고요. "금정산은 사유지 비율(77%)이 높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지주들의 반발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이유랍니다.
국립공원이 되면 우선 입장료가 생기겠네요.^^;
지금처럼 동네 뒷산 가듯이 편하게 갈 수는 없을듯.
유명해져 등산객이 늘면 산림 훼손이 심해지지 앟을까 걱정도 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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