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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책/문학211

“본능적이고 원시적인 것이 사랑이다” “우리집에 왜 왔니?”는 “우리집에 놀러와”라는 말과 천지차이다. 이 말을 듣는 자는 고스란히 ‘불청객’의 처지에 떨어지고 만다. 영화 는 자살미수에 그치곤 하는, ‘병희’네 집에, 정체불명의 여자 ‘수강’이 쳐들어온다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가택침입죄’에 해당하는 이런 일도, 영화니까 용서되고 하나의 스토리로 풀려나간다. 그렇다면 소설 『우리집에 왜 왔니-처용아비』는 어떨까? 박명호 작가는 ‘불청객’과 ‘가택침입’에 관한 스토리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안고, 지난 9일 부산작가회의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참석했다. 갑자기 만난 비 때문에, 조금 늦게 들어갔더니, 문학평론가 손남훈 선생님의 발제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손 선생님은 발제문에서 “박명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현재.. 2009. 6. 19.
바다와 육지, 그 사이에는 해안선이 있다 부산작가회의에서 개최하는 제46차 월례문학토론회에서 문성수 선생님의 를 다룬다는 소식을 듣고, 퇴근 후 곧장 서면을 향했다. 도착한 시간은 6시 40분. 동보서적 앞 회국수 집에서 충무김밥으로 서둘러 요기한 뒤, 서면메디컬센터의 토론장에 들어섰다. 아담한 지하 공간이 참석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래 묵어서 진가가 드러나는 것에는 골동품, 된장, 고추장 같은 것들이 있지요. 하지만 제 소설은, 반대의 경우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첫 소설집을 펴내는 데 10여 년이나 걸린 것은 기회를 찾지 못한 탓도 있지만, 게으르고 노력이 없었던 점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내고 보니 좋은 점도 있습니다. 바로 제 소설을 객관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문성수 선생님은 첫 소설집 토론회를 앞두고 이렇게 소감을 말.. 2009. 5. 19.
바다 냄새가 난다. “오늘은 양주 한잔하고 싶어요. 커티샥으로 하죠.” “커티샥?” “왜 대양을 헤쳐 가는 큰 범선이 그려진 위스키 말이에요. 1860년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빠른 배 이름에서 유래되었대요.” “정 기자는 범선에 흥미가 있는 거야 아니면 술에……. 그는 웃으며 웨이터를 불렀다. “꽤 부드러우면서도 이름만큼이나 빨리 취하죠. 그러면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듯한 여행 기분에 빠질 수도 있구요.” - 문성수, 「출항지」27p 소설 속 주인공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듯한 여행 기분'에 빠지기 위해 커티샥을 마신다. 커다란 범선 그림이 그려져 있는 화장품 ‘올드 스파이스’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뭇 남성들에게 선호되어 오지 않았을까? ‘커티샥’처럼 혹은 ‘올드 스파이스’처럼 이 소설에서도 바다 냄새가 물씬 난.. 2009. 4. 17.
너무나 문학적이신 교수님 “밤에 돌아댕기지 말고, 이쁜 여자 꼬신다고 따라가지 마소.” -그럼 안 이쁘지만 젊은 여자가 오라면 가도 되나? -『미완의 아름다움』 181p 따끈따끈 며칠 전에 나온 『미완의 아름다움』에 나오는 내용이다. 나이 드신 분이 하는 말이 아니라 이십대 신혼들이 하는 말 같지 않은가.ㅎㅎ 이 글을 쓰신 분은 부산대 독어교육과에 재직 중이신 교수님이시다. 교수님이라면 보통 점잖고 무게만 잡을 것 같은데 이상금 교수님(이 글의 저자)은 문학적이고 이웃집 아저씨 같은 분이시다. 『미완의 아름다움』은 교수님이 20여 년간 틈틈이 써온 글을 정리한 산문집인데 가벼운 신변잡기가 아닌 전문성이 묻어나는 산문집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빠져봤을 것 같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세계도 들여다볼 수 있고, 요즘 우리 사회의 심각한 .. 2009. 3. 26.
유배지에서 쓴 아빠의 편지 유배지, 아빠, 딸. 어울릴 수 없는, 아니 어울려서는 안 될 세 단어다. 그런데 아빠는 어느 날 홀연히 짐을 챙겨 유배지로 떠났다. 그리고 편지를 썼다. 두 딸에게. "소망한 것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좁쌀 한 톨처럼 작은 기억으로나마 남는 거였지. 훗날 아빠가 너희 곁을 떠난 뒤에라도 이 책을 펼치기만 하면 활자 하나하나에 아로새겨진 아빠의 사랑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여행 편지는 그렇게 시작됐다. -부산일보 서평 중에서 『유배지에서 쓴 아빠의 편지』, 신국판 변형, 316쪽, 값13,000원 20년 기자생활을 마친 저자가 전국 유배지를 돌며 역사와 삶의 이야기를 두 딸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엮었습니다. ▶유배지를 찾아 걷기 시작한 이유 "삶은 때때로 번민과 방황의 시간에 갇히기도 하는 .. 2009. 2. 24.
걷기의 즐거움 - 부산 경남의 인문 지리지 밤이 맛있는 마을, 밤마리. 낯설면서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멀리 있으면서 가까이 있는 이름이다. 생밤을 깨물듯 콕 깨물고 싶은 이름이다. 생각만 해도 밤꽃 향기에 정신이 어찔해지는 이름이다. 생각만 해도 밤꽃 향기에 옷자락이 옷소매가 물드는 이름이다. (본문 중에서) 천자는 마차를 타고 천재는 걷는다 언제부턴가 인간이라는 동물은 걷기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진화론적으로 볼 때도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가장 혁명적인 사건은 직립보행이었습니다. 천자는 마차를 타고, 천재는 걷는다고 합니다. 니체는 “창조력이 가장 풍부하게 흐를 때는 언제나 나의 근육이 가장 민첩하게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책은 시인이 근육을 가장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얻은 사색의 결과물입니다. 등단 20.. 2009.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