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송동은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동네입니다. 하지만 반송동을 찾아가려고 해운대 바닷가나 신시가지 쪽에서 택시를 잡아타면 요금이 10,000원도 더 나옵니다. 같은 해운대구 내에 있지만 반송은 그만큼 해운대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반송 전경. 장산을 중심으로 윗반송과 아랫반송으로 나뉜다


충렬사가 있는 동래 안락로타리를 돌아 명장동, 서동을 거쳐 꽃시장으로 유명한 석대를 지나면 갑자기 창밖 풍경이 달라집니다. 왼쪽은 산, 오른쪽은 논밭이 펼쳐지고 이제 부산을 벗어나 한적한 시외로 향하는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얼마간 가다보면 반송 마을이 짠~ 하고 나타납니다. 반송으로 들어가는 길은 한 길밖에 없어 189번, 112번 등 시내버스의 종점이고 그 너머는 기장, 울산으로 이어집니다. 반송은 부산에서도 끄트머리 변두리에 위치한 동네입니다.


한국전쟁으로 수많은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몰려 들었고, 산이 많은 부산의 지형상 평지가 모자라니 사람들은 산으로 산으로 판잣집을 지어 올라갔습니다. 자연히 산동네가 만들어졌고 그래서 부산에는 유난히 산복도로가 많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부산시는 도심재정비사업을 위해 이런 판자촌을 없앨 계획을 세우고 부산의 변두리 지역인 반송동, 반여동, 서동 등에 집단이주촌을 만들어 철거민들을 이주시켰습니다.

1970년대 반송천에서 머리 감고 빨래하는 아이들


반송은 1968년부터 1975년까지 수정동 산동네, 조선방직 부지, 경부선 철도변에 살고 있던 철거민들이 집단으로 옮겨오면서 마을의 기본 틀이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부산에서도 반송하면 ‘못사는 동네’, ‘교통도 안 좋고,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동네’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그런 반송이 20여년 설움의 세월 끝에 지난 2005년 10월 진주에서 열린 제5회 전국 주민자치센터 박람회에서 당당하게 최우수상을 차지하였습니다. 그 뒤에는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현, 희망세상)이라는 지역 공동체와 반송 주민들이 흘린 땀, 눈물, 노력이 있었습니다.

희망세상 :
1998년 생긴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7년동안 반송 지역에서 지역활동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희망세상’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지역공동체. 행복한 나눔가게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인 느티나무 도서관을 운영하며 어려운 이웃 돕기나 농촌 자원 봉사 활동, 좋은 아버지 모임 등을 꾸려 나가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http://www.sesang.or.kr/hope/main.html


스스로 놀라버린 어린이날 행사

어린이날 우리 아이들을 어디로 데려갈까? 고민하다가 시작한 것이 ‘어린이날 놀이한마당’이었습니다. 1999년 운봉초등학교에서 열린 제1회 어린이날 놀이한마당은 제2회부터 반송에 있는 동부산대학 캠퍼스에서 10년째 열리고 있습니다. 행사는 해마다 커지고 내용은 더 풍성해졌고 주민들은 이런 너른 공간을 제공해준 대학을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어린이날 놀이공원이나 북적대는 인파 속에서 시달리고 지친 경험이 있는 부모들과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습니다. 이제 어린이날 놀이한마당은 ‘희망세상’의 가장 중요한 행사이면서 반송 지역의 축제로 자리잡았습니다. 지금은 소문이 나서 반송뿐만 아니라 부산의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들 찾아온다고 합니다.

반송에서 지역축제로 자리잡은 어린이날 놀이한마당



또 하나의 날개, 좋은 아버지 모임


초기 ‘희망세상’의 회원은 대부분 주부들이었습니다. 다양한 소모임이 꾸려지고 저녁 회의도 잦아지면서 주부 회원의 남편들은 퇴근해 집에 오면 저녁에 아내가 없다고 불평을 해댔습니다. 그러나 '마을'이란 지역공동체의 주체가 낮에 집에 있는 주부들만의 몫은 아니지요. 아버지이자 남편인 남성들도 당연히 마을의 주체입니다. 고창권 샘은 밤마다 술병을 들고 가정방문에 나섰습니다. 회원들의 집을 찾아가 남편들을 설득하기 시작한 거죠.

아이들과 아버지만 참가하는 '좋은 아버지 캠프'에서 아이들이 그려준 옷을 입고 의기양양한 아빠들


드디어 희망세상에 가입한 아빠회원들이 10명을 넘어섰고 정식으로 ‘좋은 아버지 모임’(조아모)이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장산 해맞이 행사나 어린이날 행사, 집회활동 등 지역현안문제에 이들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거, 거의 머슴 돌쇠 수준으로 부려 먹는구만’ 푸념을 하기도 했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힘도 좋은 아빠회원들은 여러 활동에서 유감없이 실력발휘를 했습니다.


'좋은 아버지 캠프'에서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 하는 도전 골든벨 - 아빠가 즐겨보는 TV프로는?



빈 벽에 그리는 희망, 벽화 그리기

벽화 2호는 반송1동 진입로 벽에 어린이동화를 주제로 그린 그림인데, 주민들이 힘을 모아 벽화를 그린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방송사에서 취재를 나왔다고 합니다. 마침 한 주민이 수고한다며 집에서 국수를 삶아왔는데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자며 스무 번은 넘게 사진을 찍더니 정작 방송에는 국수 가져오는 장면이 안나왔다네요. 사람들의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답니다.

반송1동 입구에 그려진 벽화2호. 벽화를 직접 그리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통일가족기행

희망세상 회원들이 여비를 조금씩 모아 통일가족기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체험활동이나 짧은 역사기행은 많이 했지만 3박4일 동안 아이들까지 데리고 통일을 주제로 하는 기행은 처음이었고, 33인승 버스를 빌려 타고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숙식은 야영으로 해결하는 만만치 않은 여행이었습니다. 한국전쟁때 민간인 학살이 이루어진 경산의 폐코발트광산을 시작으로 천안 독립기념관, 광릉수목원, 오두산 통일전망대, 임진각을 거쳐 연세대에서 열린 통일대축전까지 참가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여행이었습니다.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서 아이들과 함께 통일을 염원하며...


교육, 복지, 문화가 함께하는 좋은 학교 만들기

2000년대 초 반송에는 네 개의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그 중 한 학교는 학교 형편상 1,2학년에게는 급식을 안했습니다.

'오늘도 밥을 못 먹었다.  내일은 밥을 먹을 수 있을까?'

당시 한 저학년 학생의 일기내용입니다. IMF 이후 가정은 붕괴단계에 있었고 저소득층이 많은 반송 지역에서 점심 한 끼 해결하기 힘든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이 일기내용은 결국 교육청에까지 전달되었고 저학년 급식을 위한 추가예산이 지원되었습니다.

희망세상에서 실천한 교육복지사업 중 가장 인기프로그램인 '청소년 농촌 활동'에서 땀흘리며 배우는 아이들


반송의 세 개 중학교와 희망세상이 연계해 실시하는 농촌봉사활동과 청소년 문화축제는 반송지역의 특성을 잘 살린 사업으로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학부모들도 많은 호응을 보내고 있고, 학생들도 새로운 세상을 접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므로 참여율이 매우 높은 편입니다.


반송동 주민자치센터와 희망세상을 방문한 일본 치바대학 나가사와 교수와 학생들


지금 반송은 한마디로 잘나가는 동네가 되었습니다. 땅값이 오르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기 때문이 아니라, 주민들이 행복한 동네가 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부산에 도서관이 있는 마을이 얼마나 될까요. 반송에는 느티나무도서관이라는 마을도서관도 생겼습니다. 해운대구에서 지어준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십시일반하여 부지를 구입하고 건물, 내부 인테리어, 장서 등은 책사회(책읽는사회국민운동본부)와 기업체의 지원, 자체적인 조달, 또 이러저러한 도움의 손길로 마련했다고 합니다. 전국 어느 지역보다 주민자치활동과 자발적인 지역주민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으로 손꼽히며 견학도 많이들 온답니다. 멀리 일본에서도요.


고창권 지음

부산 해운대 반송 지역 주민들과 그곳에서 지역 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가 살기 좋은 지역공동체를 만들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루어가는 소중한 실천적 삶의 이야기이다. 주요 지역 활동으로 마을신문 발간, 벽화 그리기, 다양한 소모임 활동, 어린이날 놀이 한마당, 좋은 아버지 모임, 산업폐기물 매립장 반대운동이 소개되고 있다.



<반송사람들>의 저자 고창권은 어린 시절 부산 해운대 반송에서 자랐으며 의과대학 졸업 후 부산경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였다. 1995년 반송에 해인의원을 개원하면서 지역주민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1998년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라는 주민모임을 만들어 이끌면서 지역 활동에 전념하였다. 2005년 <반송사람들>이란 책을 써 주민들과 함께 문화공동체, 자치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경험과 활동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5년간 지역주민모임을 이끌면서 창의적인 지역 활동의 여러 모범을 만들었으며 2002년 지방선거에 출마하여 현재 해운대구 구의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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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조용래 2009.05.04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희망세상회원입니다. 저희단체 소개를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해 놓으셨길래 제 블로그로 퍼갑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 바랍니다. 끄벅OTL

  2. 지나가는 행인 2009.06.19 1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좋은 내용 잘 보았습니다.

    근데 어쩨 제목이 글쓰는 사람으로써, 좀 그러네요..(물론 반송에서 살았던 1인으로서도 말입니다.)

    • 산지니 2009.06.19 2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나가는 행인님. 제목은 <반송사람들> 속의 구절을 일부 빌려온 것인데 맘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책을 쓴 고창권 샘도 30여년 넘게 반송에서 살아오면서, 특히 어린 시절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산, 아니 전국 어느 동네에서도 해내기 힘든 일을 반송사람들이 해냈고 지금도 하고 있다는 점이 뿌듯합니다. 제가 비록 반송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요.

  3. 지나가는 행인2 2014.05.26 2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한마디 남길게요.

    사실 반송은 지역적으로 중간에 석대동이라는 그린벨트지역으로 떨어져 있어서 더욱 그 지역을 돋보이게 하는 측면은 있습니다. 물론 부산의 낙후된 지역 중 한 군데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사실 알게 모르게 부산은 그런지역이 많습니다. 위에서 언급하신 반여, 서동 등 외에도 재송 그리고 멀리 만덕, 영도, 그리고 아예 서구나 사하구쪽은 전체지역이 낙후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감만, 보수동, 안창마을 등등 매우 많지요. 다만 반송이란 지역이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지역적으로 끄트머리에 있고, 인접지역과 떨어져 있다는 점이 이 지역을 더 특수하게 만들지요.

    문제는 사람들의 행동입니다.
    반송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활동을 하는 것은 좋으나 그러한 활동이 무척이나 대단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너무 안좋았던 면만을 강조하는것조차 별로 좋아보이지 않네요. 반송사람들이 대단한 일을 했다고 이런 글을 퍼왔다고 한들, 못살고 낙후된 동네였다고 계속 언급하는 것을 반송사람들이 더 좋아할까요? 제 생각에는 이는 반송사람들에게 더 상처를 주는 일이며, 저런 활동을 한 몇사람에게만 공이 돌아가는 행위 아닐까 싶네요. 일례로 고창권씨는 애초에 의사로 잘 사는 사람인 것이고, 지역사회의 운동을 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정치권에 들어가서 구의원, 국회의원후보, 시장후보에도 나오고 있더군요. 오히려 저 사람이 자신의 스펙을 위해 반송을 이용한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제가 지역사회운동에 대해 퍼온님만큼 많이 알지 못해, 저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는 모르겠지만, 사실 반송에는 이미 다른 지역과 달리 시립도서관도 있고, 대학교도 2개나 있어, 도서관시설을 활용하기에는 다른지역보다 월등히 뛰어납니다. (현재는 오히려 이용자가 줄어 열람실을 줄였을 정도이지요) 그런과정에서 생긴 느티나무 도서관,. 왠지 제 생각에는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무언가를 해냈다는 것을(일종의 성과) 만들기 위해 한 게 아닌가 싶네요. 물론 그런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어떤 일이든 순기능이 있는 반면 역기능도 있습니다. 지역사회운동을 하는 분들을 기본적으로 존경합니다. 저 또한 서울의 모 지역에서 야학교사 생활을 했기에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이런 이런 일을 해냈다고 책을 쓰기 시작하고, 그러한 유명세로 정치권에 나간 사람이라면, 그 책의 내용이 어떤 의도로 씌였건 간에 일단 목적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정치계로 나가기 위해 자신을 알리는 목적이 크게 된 셈이지요. 그런데 책에 묘사된 반송지역은 어떻습니까? 아이러니컬하게도, 반송 사람들이 해냈다고 하는 일이 대단하다고 할수록, 책에는 반송의 낙후된 모습을 지나치게 대비해서 많이 보여줄수밖에 없고, 그러한 점은 오히려 지금도 묵묵히 살아가는 반송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내용이 될 것 같네요. 또한 이렇게 퍼나르는 행위도 물론 그에 일조할 수 있는 것이구요.

    어차피 이런글조차 이 블로그에 쓴다는 것이 웃길수 있다는 거 압니다. 왜냐하면 자기 출판사에서 낸 책을 홍보하는 것은 자본주의관점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댓글을 보면, 적어도 과거 그리고 현재 반송사람들이 이런글들이 알려지고 서로 퍼가는 것을 좋아할지는 의문입니다. 그런 것에 대한 배려는 없는것 같네요.

  4. 반송역사가궁금... 2015.04.07 2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죄송한다 반송의 역사적배경을 알수있을까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산지니는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주력으로 하는 종합기획 출판사이다. 종합출판이라 나오는 책들도 다양하다. 부산이라는 지역과 관련된 책들도 많이 냈지만 진보와 보수 지식인의 저서나 인문교양서, 자기계발서, 문예지까지 여러 다양한 스펙트럼의 책들을 내고 있다.

2006년 중국정부로부터 번역료 일부를 지원받아 내놓은 『부채의 운치』, 『차의 향기』,『요리의 향연』이 있고, 『진보와 대화하기』는 2006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사회생물학,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는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이야기를 걷다-소설 속을 걸어 부산을 보다』, 비평의 자리 만들기』,『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는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선정하는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었다.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NGO의 정책 제언』, 당신이 판사-재미있는 배심재판 이야기』는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청소년권장도서, 『단절-90년대 이후 중국사회』는 2007년 11월 이달의 책 및 2008년 대한민국 학술원 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산지니가 부산에 있기 때문에 불리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국내외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성격의 기획출판을 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는 아니다. 산지니는 기획부터 교정, 편집, 디자인 필름 출력까지 모두 부산에서 완결하고 인쇄와 제작은 경기도 파주출판단지를 이용하고 있다. 전국의 큰 서점들과는 직거래를 하고 서울의 유통총판을 통하여 전국적으로 책을 배급하기 때문에 전국에 책을 유통시키는 데는 큰 문제점이 없다. 관건은 기획 능력과 다품종 소량출판을 통해 좋은 책을 꾸준히 시장에 내놓는 데 있다.

우리 출판사는 3등 전략으로 나간다. 서울의 대형출판사들이 손대지 않는 틈새시장을 공략해 지역출판사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다. 지역출판사로서 지역의 특성을 살린 책을 낼 수도 있고 서울의 출판사들이 미처 다루지 못한 보석들을 발굴하여 책으로 만들어 틈새시장을 찾아낼 수도 있다.

지역출판사가 활성화하지 못하는 것은 수금문제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 출판계는 서점들과 직접 만나야 수금이 원활하다. 일본의 경우도 도쿄에 출판사 70%가 몰려 있는 등 수도권 집중현상이 있지만 우리는 거의 95%가 수도권에 몰려 있으니 훨씬 집중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 지방에도 출판사는 많지만 지방관련 책을 만들어 그 지방 내에서만 유통시키는 형태의 출판사나 지역문예물을 찍어내는 인쇄소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아직도 지역(local)의 독자들은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을 고르기 때문에 지역색이 짙은 책을 출간하면 판매에 문제가 있다. 부산 출신 유명작가의 책을 냈는데 부산에서는 몇 권 안 팔리고 오히려 서울에서 많이 팔리는 경험도 했다. 지금도 지역저자의 원고는 많이 준비되어 있지만 앞으로 이 딜레마를 잘 해결하는 것이 과제다.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최하는 문학나눔 사업에서는 우수문학도서를 선정할 때 5% 지역 쿼터제를 실행한다. 제도를 시행한다는 점 자체에는 큰 점수를 줄 수 있으나 5%는 매우 부족한 수치라고 본다. 그나마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75권을 선정했다면 그중 5%는 3.75권이다. 그렇다면 4권은 선정해야 맞을 것 같은데 겨우 3권만 뽑는다든지 하는 식이다. 나눔의 의미를 생각했을 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에는 지역출판을 지원하는 제도가 전무하다. 지역 출판사들이 늘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거창하게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자리, 즉 지역(local)을 기반으로 할 때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건 예술이건 출판이건 내가 살고 있는 이 자리에서 즐기고 누리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절실하다. 중앙정부에서뿐만이 아니라 지방자치정부에서도 그런 인식은 부족한 듯하다. 산지니로 하여 부산의 이미지가 좀 더 따뜻해지기를 바라며 지역을 다루되 보편성에 이르게 되는 것이 바람이다.

초발심을 잃지 말자

마지막으로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초발심으로 간직하고자 하는 생각들을 이야기하며 이글을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문화의 지역화와 문화민주주의의 심화에 도움이 되는 출판사 둘째,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 마지막으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자신에게 질문해 보았다.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행복과 공동체의 행복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산지니의 책들이 나와 공동체의 소외를 극복하고 자본주의사회의 여러 중독에서 해방되어 행복해지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출판을 하고 있다.

작가와 독자를 잇는 매개가 출판인이자 편집자이다. 출간할 책들이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책이 될 수도, 아까운 나무만 없애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이 책이 세상에 정말 필요한 책인지 항상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갈수록 소규모 출판사는 살아남기 힘든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현재의 시장 상황이 그렇다. 그러나 출판을 한다는 것은 철학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발은 땅에 딛고 있으되 머리와 가슴은 좋은 책을 세상에 남긴다는 높은 포부를 가지도록 노력하겠다.(끝)

●지역에서 출판하기(1)
지역에서 출판하기(2)
지역에서 출판하기(3)
지역에서 출판하기(4)
지역에서 출판하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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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불계화상 2009.09.24 1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우연히 오게 되었는데, 재미난 내용이 많네요
    죄송하게도 여기서 나온 책은 아직..ㅡㅡ
    ㅎㅎ
    건강하세요

  2. BlogIcon 클레오파트라 2009.10.27 1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산에도 출판사가 있구나......아주 당연한 건데, 왜 이렇게 생소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네요. ^^:
    우연히 타고,타고 들어왔는데, 좋은 친구를 소개받은 느낌입니다.
    이번 기회에 '부산을 쓴다'를 사보려구요.
    앞으로도 오랫동안 부산의 멋진 출판사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 BlogIcon 산지니북 2009.10.27 15: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클레오파트라님. '부산을 쓴다' 사보신다니 더 반갑네요^^ 읽고 소감 올려주시면 더 고맙구요. 블로그에서도 자주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무중풍경-중국영화문화 1978-1998』은 2006년도 영화진흥위원회 출판지원도서로 선정된 책이다. 중문학 박사과정에 있는 후배에게 중국책 가운데 좋은 책이 있으면 추천해달라고 하니 이 책을 권해주었다.

다이진화 지음, 이현복 성옥례 옮김, 신국판, 값 20,000원


중국영화계에서는 작은 고전이 된 책으로 저자 다이진화는 사유의 깊이와 폭넓음에 있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학자이자 작가인데, 글쓰기에 있어서도 정확한 어휘 선택과 개념정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번역이 여간 까다롭지 않은 책이었다. 그래서 책의 중요성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지만 섣부르게 번역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단 에이전시를 통해 판권 확인에 들어가고 계약을 추진하면서 영화진흥위원회에 출판지원도서로 신청하였다. 그런데 이때 똑같은 책을 두 팀이 신청한 것이었다. 하지만 판권을 확보한 우리 출판사에게 몫이 돌아왔다. 번역 기간이 많이 걸려 출간 시한을 꽉 채워서야 출간하기는 했지만 두툼한 이 책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12돌을 맞이하는 지금, 부산 하면 국제영화제를 꼽을 정도로 부산은 영화의 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영화 관련 아이템은 지역에서 출판하기 좋은 소재라 생각하고 창업 초기부터 관심을 두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영화 관련 출판 시장이 아직은 작고, 영화에 대한 관심 또한 예전만 못한 현실에서 영화 관련 책을 기획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2008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부산일보 사진제공


하지만 여러 가지 형태로 틈새시장을 찾아본다면 기회는 있을 거라고 본다. 지역에서 영화를 공부하는 소장 학자들의 연구 결과물 위주로 출판에 대한 요구가 있기도 하다. 앞으로 나올 <근대부산영화사>도 그런 결과물 가운데 하나이다.

출판사를 창업한 2005년에는 부산에서 APEC이 열리던 해였다. 부산시는 APEC 행사에 최대한 집중하여 홍보를 하고 있었고, 많은 시민단체들이 APEC에 대한 반대 모임을 만들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 탄생배경과 기본원칙, 주요국의 대외경제정책, 신국제질서의 성격에 대한 분석을 통해 아시아태평양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진정한 연대와 협력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한 단행본을 기획하게 되었다.

이때 만난 사람이 부산외국어대학 이광수 교수이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이광수 교수는 인도 관련 책도 쓴 바 있고, 아시아평화인권연대 공동대표로 활동을 하며 APEC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었는데, 그에 대한 원고 청탁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기를 놓쳐 이 기획은 계속 추진되지 못했지만 이후 <아시아평화인권연대>와 함께 『의술은 국경을 넘어』를 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 나카무라 테츠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 20여 년 동안 의료 활동을 해오고 있었다.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는 지구촌 한 구석에서 묵묵히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평화를 전파해온 일본의 시민단체 <페샤와르회>와 의사 나카무라의 활동에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한 <아시아평화인권연대> 회원이 감동을 받아 이 의사의 이야기를 국내에 소개하기로 하고 번역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민족과 국경을 초월한 진정한 인도주의의 의미를 되새기고, 함께하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한국의 엔지오 단체들이 정부 프로젝트 혹은 기업 후원금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또한 그런 형태에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일본 후쿠오카의 시민단체 <페샤와르회>는 철저하게 회원 4,000명의 회비와 민간 모금에만 의존하여 파키스탄 의료 활동을 지원하고 있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범사례라고 생각하고, 출판에 의미를 두었다.


이후 <아시아평화인권연대>, 이광수 교수와의 인연은 계속되고 있으며 인도관련 서적들도 꾸준히 출간하고 있다. 『인도사에서 종교와 역사 만들기』, 『인도의 두 어머니 암소와 갠지스』, 『내가 만난 인도인』, 『인도인과 인도문화』, 『힌두교, 사상에서 실천까지』, 『무상의 철학-다르마끼르띠와 찰나멸』 등이 나온 책이다.

그 가운데 『인도인과 인도문화』는 인도인의 진면목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20년째 인도에 살면서 현재 델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도영 교수가 썼는데,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눈에 보이는 표면적 현상뿐만 아니라 인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을 곁들여 이면을 탐구한 실질적인 내용을 강조한 책이다. 이 책은 『어려운 시들』과 함께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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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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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는 오래 버티는 매

출판사 작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하겠다. ‘산지니’는 산속에서 자라 오랜 해를 묵은 매로서 가장 높이 날고 가장 오래 버티는 우리나라의 전통 매를 뜻하는 이름이다. 전투적인 이름이지만 이 이름은 80년대 대학생활 시 대학교 앞에 있던 사회과학서점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 시절에 그 서점에서 사회에 대한 관심을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고, 그 기억이 나에게 산지니란 이름을 가슴에 새기도록 해주었다. 또한 이름을 통해 망하지 않고 오래 버티고 싶은 꿈도 담았다고나 할까. 이름은 듣기 쉽고 외우기 쉽고 말하기 쉬워야 한다는데, 이름이 어려웠는지 만나는 사람마다 무슨 뜻인지 물어왔다.

덩그러니 사무실만 열었을 뿐 원고 하나 없이 출발해서 여러 사람을 만나러 다녔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번역 출판을 해야겠다 싶어 출판사를 차린 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에이전시를 통해 번역서를 검토하던 중 마음에 드는 책이 있어 판권을 문의하였다. 일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었는데, 내용이 괜찮았다.

그러나 일본 출판사로부터 받은 답신은 서울이 아니라 지방에 있는 출판사가 어떻게 번역 출판할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결국 그 번역 출판 건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이 일은 나에게 Local First를 출판철학으로 가지게 만든 사건이었고 이후 지역(local)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2005년 10월, 출판사를 차리고 8개월 만에 첫 책이 나왔다.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 『반송사람들』 두 책이었는데 홍보를 위해 지역신문사 문화부 기자를 찾아갔다. 처음으로 신문기사가 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정작 기사는 두 책에 대한 내용보다도 부산에 이러이러한 출판사가 생겼으니 많은 관심과 발전을 바란다는 요지였다.

홍보를 위해 책 두권을 들고 부산 동보서적을 찾아갔는데 서점 관계자가 표지디자인이 촌스럽다고(대놓고 얘기하진 않았지만) 애정어린 충고를 해주었다. 요즘은 책 내용도 중요하지만 겉표지는 더 중요하다고. 그래야 독자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다며.


서울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출판사가 생겼다가 사라지는데 지역(local)에서는 출판사를 설립한 것만으로도 뉴스거리가 되는 현실, 이게 바로 지역출판의 현실인가 싶어 자조적인 웃음이 나는 것과 동시에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결심 또한 생겨났다.

한 달에 한 권 정도 꾸준히 책을 발행하면서 전국 일간지 기자들에게 계속 책을 보내다보니 “웬 지역출판사에서 이렇게 꾸준히 책을 내나?” 싶어 관심을 가져주는 기자들이 생겨났다. 이게 바로 지역출판사의 이점이라면 이점이다. 한겨레신문사의 임종업 선임기자도 그중 한 사람이었는데, 서울에 올라오면 한번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다. 마침 서울 쪽에 있는 서점을 돌아볼 일이 생겨 올라간 김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장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기자의 질문은 역시나 날카롭기도 하고, 이것저것 묻는 것도 많았다.

어쨌든 한겨레신문에 기사가 크게 나고부터 지역신문사 기자들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후 동아일보, 부산일보, 한겨레21, 출판저널, 연합뉴스, 국제신문 등과 인터뷰를 하고, 기사도 실렸다. 없던 원고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언론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다음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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