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문헌 연구 권위자 마르셀로 무스토 요크대 부교수 인터뷰 

 

 

마르크스 문헌학자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마르셀로 무스토 요크대 부교수는 “자본의 억압이 계속되는 한 마르크스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함께 칼 마르크스(1818~1883)는 ‘한 물 간 사상가’로 인식됐다. 그의 탄생 200주년을 맞은 지난해 한국 학계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마르크스는 그저 과거 인물에 불과한가.

마르크스의 문헌을 연구해온 마르셀로 무스토(43) 캐나다 요크대 사회학과 부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양극화와 불평등, 갑질, 금융위기 등 자본주의 병폐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마르크스의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마르크스의 미공개 초고, 발췌 노트 등을 정리하는 국제적 연구 작업인 ‘마르크스와 앵겔스 전집 프로젝트(MEGA TWO•114권 중 현재 70권 발간)’에 참여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마르크스 말년의 삶과 연구 업적을 조명한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1881~1883년의 지적 여정’이란 책을 냈다. 경상대 SSK 연구팀의 초청으로 최근 한국을 찾은 그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사람들이 마르크스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며 마르크스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수명을 다한 것 아닌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 20년 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숨죽여왔다. 침묵을 깨운 것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였다. 자본의 위기는 경제를 너머 정치 사회의 모든 분야의 갈등과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이다. 유럽과 중남미, 미국에서 포퓰리즘 정치 세력의 우경화 바람이 불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마르크스를 다시 주목하는 이유다. 보수정권이 집권한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한 마르크스 학술대회에는 정원보다 10배 많은 5,000명의 대학생들이 몰려 행사가 진행되지 못한 일도 있었다.”

 

 

-마르크스는 경제적 구조 관점으로만 사회를 바라봤다.

 

 

“명백한 오해다. 마르크스는 자본이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거듭할 수록 생태계를 위협하고, 여성들에 대한 억압과 불평등을 더욱 심화 시킬 것이라 경고했다. 생산량의 증가가 도시화, 공업화로 이어져 환경파괴를 가져올 것이라 우려했다. 특히 가부장제를 역사의 산물이라고 꼬집으며, 한 사회의 진보를 가늠하는 척도는 여성해방이라고 역설했다. 1880년대 쓴 프랑스 사회주의 노동자 강령엔 ‘남녀노동자 모두에게 동일노동 동일임금 지급’을 처음 강조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생태, 환경, 여성 억압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다.”

 

 

-마르크스의 말년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있나.

 

 

“마르크스 연구자들조차 1867년 마르크스가 자본론 1권을 집필한 이후 죽을 때까지 연구에 손을 놓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말년에 인류학 수학 지리학 등 영역을 확대하며, 자기가 기존에 주장한 이론에 대해 계속 검토하고 의심했다.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이어지는 단계적 사회 발전론에 대해서도 말년에 가선 획일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부정했다. 모순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나는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은 ‘자기비판’이라고 본다.”

 

 

-마르크스의 새로운 면모는 잘 부각되지 않았다.

 

 

“마르크스를 정치적으로만 소비하고 이용하는 탓이다. 한쪽에선 신화로, 한쪽에선 금기로 다뤄지고 있다. 지난해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에 맞춰 중국은 마르크스를 영웅으로 띄웠다. 시진핑 국가 주석의 집권 정당성을 위한 선전도구였다. 반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에서 마르크스는 여전히 금기다. 한국도 북한을 의식한 탓인지 연구가 자유롭지 못하다. 마르크스를 교조적 이념 틀에 가두면서 그의 진면목에 대해 알려고 들지 않았다. ”

 

 

-한국에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노노 갈등도 심하다. 최저임금도 논란거리다.

 

 

“가난한 자들끼리의 전쟁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노동자들끼리의 분열은 자본가들의 세력을 더 강화시킨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연대로 노동자들 간의 실제 차별을 없애는 게 모두에게 이롭다. 최저임금을 올리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경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높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반발에 부딪히면 최저임금이 ‘최대임금’으로 굳어질 수 있고, 자본가들의 착취 또한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투쟁은 반드시 필요하다. 마르크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삶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ㆍ사진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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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 10점
마르셀로 무스토 지음, 강성훈.문혜림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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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한국일보

 

 

[금주의책] 국가에 의한 민간인 학살… 그 유해 발굴의 진정한 의미는
노용석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

 

베트남전 학살 문제를 다룬 권헌익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학살, 그 이후’(아카이브)와 같은 계열의 책이다. 민간인 학살 연구자인 저자는 2006년 출범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한국전쟁 전후 학살된 이들의 유해발굴사업을 총괄했다. 이 책은 그 경험의 결산이다. 땅 속의 뼈를 다시 끄집어낸다는 건 유족들을 위한 것이지만, 단지 그 뿐만은 아니다. 유해발굴은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이자, 학살로 지우고자 했던 사회적 기억의 복권이기도 하다.

 

 

 

 

 

 

 포인트는 기억의 복권이 쉽지 않다는 점. 저자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족들조차 ‘양민’과 ‘빨갱이’를 애써 구분하려는 태도에 주목한다. 순수한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던 셈이다. 이 땅에서 피해자 노릇 하기가 얼마나 고단한 일인가를 말이다. 억울함에 앞서 그저 100% 순수한 피해자임을 입증해야 한다. 요즘 논란되는 ‘피해자다움’의 기원으로 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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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

노용석 지음 | 320쪽 | 25,000원 | 2018년 7월 31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연구와 유해발굴 사업을 주도해온 노용석 교수가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를 출간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전쟁 전후기 국가폭력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전개과정을 밝히고, 더불어 피학살자들의 유해발굴 과정과 그 상징적 의미에 대해 고찰한다.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 - 10점
노용석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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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연초에 묵직한 고전들의 출간이 잇따르고 있다. 출판 불황이라고 하지만 검증 받은 고전만큼은 출간 가치면에서나 꾸준한 판매 면에서 밑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창비는 아놀드 하우저(창비식 표기로는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1~4권 개정2판을 내놨다.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에서 찰리 채플린과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영화까지 다룬 이 책은 예술도 시대의 산물이라는 마르크스주의 방법론 때문에 ‘문예사’라는 별칭으로 불리면서 1970~80년대 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다. 크게 고치기보다 도판을 모두 컬러로 바꾸고 서체와 행간을 조정해 보기 좋게 바꿨다. 1999년 개정판이 나온 뒤 두 번째 개정판이다.

개정2판 서문에서 백낙청 전 창비 편집인은 영어본 제목은 그냥 ‘예술의 사회사’였고, 독일어본은 ‘예술과 문학의 사회사’였음에도 우리 번역본 제목에서는 문학이 앞세워진 것에 대해 “초판 출간 당시에는 문학 독자가 여타 예술분야 독자보다 훨씬 많았다”고 설명해뒀다. 문학이 적게 다뤄지는데 대한 나름의 해명인 셈이다. 창비 관계자는 “계간지 창작과비평 50주년을 맞아 한번 더 재정비해 내놓을만한 좋은 책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각 권마다 매달 몇 백권씩 꾸준히 나가는 책이다.

산지니출판사는 미조구치 유조의 ‘방법으로서의 중국’을 내놨다. 미조구치는 서구 중심의 세계관, 일본의 일방적인 서구 제국주의 추종을 비판하기 위해 중국을 그 대안 카드로 뽑아 들어서 1989년 이 책을 냈다. 욕할 것도, 칭찬할 것도 없이 중국이 자기만의 근대를 추구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자고 제안해 일본뿐 아니라 중국 학자들에게도 상당한 관심을 불러모았던 책이다.

지금 보면 결국 ‘현실 중국’을 미화하는 쪽으로 치우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21세기 들어 중국의 굴기가 현실화되면서 국내에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학자이기도 하다. 산지니도 “중국학연구소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지금 중국학의 방향을 정립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시아적 가치에서 중국을 바라보면 중국의 방향이 보일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현암사의 ‘자아연출의 사회학’은 1959년에 나온, ‘연극론적 사회학’의 창시자 어빙 고프먼의 첫 책이다. 보통 사람의 일상생활이 실은 고도의 연극적 장치들로 이뤄져 있다는 내용을 담은 미시사회학의 고전이다. 계급, 계층 문제에 집중하면서 대규모 통계처리기법이 사회학 연구를 휩쓸고 있을 무렵, 고프먼은 거꾸로 소집단에 대한 인류학적 관찰 보고서에 가까운 사회학 이론을 내놓으면서 눈길을 끌었다. 추천사를 쓴 김광기 경북대 교수는 고프먼을 “주류 사회학계에서 그토록 벗어나려 했던 사회학계의 이단아”라 평하면서 “그의 책 출간은 독자들에게 축복”이라고 했다.

일부에서는 고프먼 이론을 두고 ‘그래서 모두가 연극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얘기냐’고 비웃기도 했지만, 상징적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적 관계가 발생하는 과정을 정밀하게 묘사해낸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 받았다. 우리 누구나 자기가 어떻게 보일지, 새롭게 마주치는 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 끊임없이 탐색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조태성 | 한국일보 | 201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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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으로서의 중국 - 10점
미조구치 유조 지음, 서광덕.최정섭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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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설산 소금은 신이 준 선물”
시인 특유의 깊은 서사성 녹아 있는 시 56편 실려
삶의 태도·느낌 생생한 리듬 통해 이미지로 형성


한국출판진흥원은 최근 정일근 시인의 12번째 시집 <소금 성자>를 1월의 읽을만한 책으로 선정했다.

이 시집에 실린 56편의 시에는 정일근 시인 특유의 깊은 서사성이 잘 녹아있다.

그는 시가 하나의 ‘역’(驛)에 오래 머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이곳 저곳을 여행하는 기분까지 든다.

특정 장소를 바꾸지 않더라도 그의 시는 시어의 배열을 통해 이미지의 전환을 이뤄낸다.

수박, 앵두, 사과 같은 먹거리에서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바다와 경주 남산에서는 기다림이나 그리움 등을 그려낸다.

  
▲ 정일근 시인

특히 그의 시에는 고래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 시 ‘고래52’에서는 고래를 매개로 인간의 공격성과 사회의 구조적인 폭력성을 이야기하고,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

또 ‘고래는 사람의 칭찬에 춤추지 않는다’라는 시는 고래박물관 속 고래를 서사적으로 표현해내면서 인간의 무지와 오만함을 이야기한다.

칭찬한다고 돌고래는 춤추지 않는다/ 박수에 신이 나서 높이뛰기 하지 않는다/ 하루 24시간 장생포 수족관에 죄 없는 죄로 갇혀 살며/ 살기 위해 춤추고 먹기 위해 제 몸 날린다/ 그때마다 제 입으로 들어오는 한 끼니를 위해/ 돌고래는 죽자고 춤춘다/ 돌고래는 죽자사자 높이뛰기 한다. (‘돌고래는 사람의 칭찬에 춤추지 않는다’ 전문)



쉬운 시어로 짧게 쓴 것도 특징이다. 시인은 시 속 풍경만 제시할 뿐 시의 완성은 독자가 한다는 생각때문이다.

정 시인은 “길게 말하는 시일수록 독자들이 외면하는 것을 느꼈다”며 “독자들이 생각할 여백을 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는 표제시 ‘소금 성자’에도 드러난다. 이 시는 지난 2000년 시인이 에베레스트에 올랐을 때의 풍경을 옮긴 것이다.



히말라야 설산 높은 곳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물속에 숨어 있는 소금을 받아내는 평생 노역이 있다/ 소금이 무한량으로 넘치는 세상/ 소금을 신이 내려주는 생명의 선물로 받아/ 소금을 순금보다 소중하게 모시며/ 자신의 당나귀와 평등하게 나눠 먹는 사람이 있다. (‘소금 성자’ 전문)



시인의 30년 지기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이 시를 해설하면서 “시의 주인공과 그가 받아내는 소금을 각각 시인과 시로 읽어도 무방하다. 정 시인은 시인의 수행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시는 한 사람의 시인이 치열하게 삶과 만나는 과정임을 웅변하면서 이렇게 쓴 시가 읽는 사람들 속에 살아 있을 것임을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결하지만 그의 시에는 이미지와 리듬감도 살아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그의 시에는 삶에 대한 시인의 태도와 느낌이 생생한 리듬을 생성하고 살아 있는 이미지를 형성한다”고 말했다.

이는 ‘수세미꽃이 있는 풍경’이라는 시에서 잘 드러난다.



쇠숟가락으로 온기 먼저 담겨 오는 민물새우뭇국 받아들고/ 남루한 가족 모여 따뜻하게 먹는 저녁이 있었다/ 여흘여흘 흘러가던 저녁강 깊어지며 비로소 잠드는데/ 기다릴 사람 돌아올 사람 없지만/ 바람길 따라 에두른 돌담 위로 노란 등불 맑게 켜지는 밤이 있었다. (‘수세미꽃이 있는 풍경’ 전문)



진해에서 태어난 정 시인은 1984년 <실천문학>과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그리운 곳으로 돌아보라> <경주 남산>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등의 시집을 냈다. 시와시학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지훈문학상, 이육사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있으며, 현재 본보에 ‘정일근의 감성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산지니 펴냄. 102쪽. 1만원.


석현주 | 경상일보 | 201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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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성자 - 10점
정일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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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 시인이 평소 즐겨 찾는 밀양 얼음골 사과밭에서 잘 익은 사과를 들어보이고 있다.


- 등단 30년 맞아 12번째 시집
- 인세 전액 네팔지진 구호 내놔
- "윽박지르지도 요구도 않고
- 독자가 빈 공간 완성하게 해"

"신라 사람들이 지은 10구체 향가를 많이 생각합니다. 10구체 향가가 시를 쓰는 내 마음에 들어와 있어요."

정일근 시인에게 10구체 향가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10줄 안팎으로 짧게 쓰는" 긴장감 어린 형식미가 그 핵심이다. 10행을 채 넘지 않도록, 깎아내고 덜어낸 간결한 시행에서 생기가 돋아나 독자에게 닿는 상큼한 광경을 그는 1000년 전의 향가에서 본 듯하다.

'고추밭에 고추가 달린다. 고추는 주인을 닮는다며 나릿나릿 달린다. 서창 장날 천 원 주고 사다 심은 고추 모종이 달린다. 고추꽃이 달린다. 별같이 하얗고 착한 꽃이 달린다. 어머니에게 나는 첫 고추, 고추꽃 일어 고추 달고 달린다. 은현리에 고추가 달린다. 풋고추가 달린다. 아삭이 고추가 달린다…'(시집 '소금 성자'에 실은 '고추가 달린다' 중)

   

고추가 탐스럽게 열린 모습 같기도 하고, 잘 자란 아삭이고추 꽈리고추들이 은현리 마을을 뛰어다니는 듯한 생기 넘치는 모습 같기도 한데 이 시는 7행짜리 짧은 시다.

정일근 시인이 열두 번째 시집 '소금 성자'(산지니 펴냄)을 내놓았다.

"경남대 4학년에 다니던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가 당선되면서 저는 시인이 되었지요. 올해로 30년입니다. 때마침 운이 좋아 지금 모교 경남대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으니 이번 시집은 제겐 참 뜻깊네요."

'모두 다 받아줘서 바다라고 했다. 마침내 원자력발전소까지 받아준 바다가 말한다. 봐라봐라, 봐라봐라, 이 바다 사람이 다 받아야 할 밥성이다'('바다의 적바림'·15 전문) 

'쇠숟가락으로 온기 먼저 담겨 오는 민물새우뭇국 받아들고 / 남루한 가족 모여 따뜻하게 먹는 저녁이 있었다 / 여흘여흘 흘러가던 저녁강 깊어지며 비로소 잠드는데 / 기다릴 사람 돌아올 사람 없지만 / 바람길 따라 에두른 돌담 위로 노란 등불 맑게 켜지는 밤이 있었다'('수세미꽃이 있는 풍경' 전문)

10구체 향가의 마음을 생각하며 쓴 짧은 시는 "독자를 윽박지르지도 않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요구하거나 이끌려고 들지도 않고, 여백을 남겨 그걸 독자가 완성하도록" 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그는 말했다.

"2000년에 히말라야를 다녀왔죠. 그때 네팔에서 순수한 아이들을 만나 마음이 참 좋았어요." 그는 등단 30년을 맞아 펴낸 이 시집의 인세 전액을 대한적십자사 네팔 지진피해 구호성금으로 내놓는다. '소금 성자'는 입소문 덕분인지 출간 14일 만에 2쇄를 찍었다. 은현리 고추, 밀양 얼음골사과도 작은 씨앗에서 시작했음을 생각하며 힘을 보탠다는 마음이다.

'이 가을 가장 뜨거운 것은 사과 씨앗이다 / 어제의 사과에서 몸을 받아 오늘의 사과를 만들어낸 둥근 목숨 스스로 곡진하여 / 그 열기 어찌할 수 없어 껍질째 빨갛게 끓는다 / 밀양 얼음골 십만여 평 사과바다가 씨앗 하나로 창창히 깊어지고 / 씨앗 하나로 뜨거워져 넘친다'('끓는 사과' 전문)

정 시인은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있다.


조봉권 | 국제신문 | 201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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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성자 - 10점
정일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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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들의 대표작이 잇따라 개정 출간됐다.

'추리문학의 대가' 김 작가 
'최후의 증인' 개정판 출간 
'다시 시작하는 끝'도 눈길


추리문학의 대가 김성종 작가는 장편 추리소설 '최후의 증인'(전 2권·새움·사진) 개정판을 냈다.

'최후의 증인'은 1974년 한국일보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

추리소설이 명함도 못 내밀던 시절, 추리문학의 불모지에 '김성종 시대' 개막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는 심사위원들이 작품을 읽지도 않고 버릴 것 같아 추리소설에서 '추리'를 빼고 장편소설이라고만 표기해 작품 공모를 했지만 '한국전쟁의 비극을 추리적 기법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란 심사평을 받았다.

'최후의 증인'은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의 그늘 속 이념과 배신에 얽힌 인간의 욕망과 복수를 그린 작품.

일본과 프랑스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다시 시작하는 끝/조갑상


김성종 작가는 "수백만이 죽어 간 참혹한 전쟁을 이 작품 하나로 다 이야기할 순 없으니 앞으로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대하소설을 쓰는 것이 작가로서 마지막 소원"이라고 했다.

소설가 조갑상(경성대 국문과 교수)도 1990년 출간했던 첫 번째 소설집 '다시 시작하는 끝'(산지니·사진) 개정판을 냈다. 

25년 만에 다시 만나는 중견 소설가의 작품들은 지금 오히려 더 유효한 묵직한 삶의 이야기를 전한다.

첫 출간집에선 빠졌던 단편 '방화'도 추가했다.

조갑상 작가는 "등단 전 쓴 작품이고 자기 이야기 흔적이 보일까 쑥스러워 뺐지만 이번엔 다시 손을 봐 작품집에 넣었다"고 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를 관통하는 17편의 중·단편에서 제목처럼 '다시 시작하는 끝'을 만날 수 있다.


강승아| 부산일보ㅣ201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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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끝 - 10점
조갑상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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