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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현장에서 여성일까요, 노동자일까요? _ 『작업장의 페미니즘』 참세상 소개

by nineteen26 2025. 3. 10.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작업장의 페미니즘>이 여러 신문사에 소개되었습니다. 남성 다수 사업장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위해, 노동자성과 여성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분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있는 책인데요. 이현경 저자는 어떤 경로로 이러한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요? 

바로 저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현경 저자는 지하철 현장에서 20년 넘는 시간 동안 근무해왔는데요. 이른바 '남초 사업장'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활동해 온 여성노동자이자 활동가로서, 자신과 같은 조건에 있는 또 다른 여성노동자들, 여성활동가들은 어떤 고민과 전망을 갖고 있는지, 자신의 활동에 대한 역사를 어떻게 가늠하고 평가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마음에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와의 인터뷰를 읽으며, 책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을 함께 살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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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동자 페미니즘'으로 모두의 평등과 해방을

 

3월 8일 여성의 날을 앞둔 어느 날, 한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최근 《작업장의 페미니즘》이라는 책을 펴낸 이현경 씨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지하철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여성 노동자이고 여성활동가"라 소개했다.

작업장의 페미니즘에는 '여성'이자 '노동자'로서, 작업장과 노동조합을 실천의 공간으로 삼은 '활동가'로서 분투해 온 이들의 경험과 고민이 담겨 있다. '노동자성'과 '여성성'의 충돌과 긴장 사이에서 여성, 사회적 소수자, 노동자, 노동계급 모두의 '해방'을 모색하는 '여성 노동자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저자와 나눴다. 

《작업장의 페미니즘》(이현경 지음, 산지니 펴냄) 표지. 참세상

 

작업장의 페미니즘은 석사학위 논문을 정리하여 펴낸 책이다. 어떤 문제의식으로 연구를 시작하고 책을 펴내게 되었을까. 

"현장 노동운동의 현실과 전망에 대한 고민과 함께 중고령의 현장 여성활동가로서 자기 전망에 대한 답답함도 컸어요. 그런 마음으로 "머리칼 희끗해져서 여성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석사 과정에서는 마지막까지도 논문 주제에 대한 고민이 깊었어요. 지도교수님께서 결국 자신의 문제에서 주제를 길어 올리게 될 것이라 이야기하셨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고, 앞으로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마주하게 됐습니다. 

이른바 '남초 사업장'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활동해 온 여성노동자이자 활동가로서, 나와 같은 조건에 있는 또 다른 여성노동자들, 여성활동가들은 어떤 고민과 전망을 갖고 있는지, 자신의 활동에 대한 역사를 어떻게 가늠하고 평가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연구 주제는 '남초 사업장 여성 활동가의 페미니즘 실천과 재생산 연구'였어요.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이자 활동가인 여성들의 존재 위치를 파악해 보고, 이후에 이들과 같은 여성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지, 현실에서 극복되어야 될 문제들이 무엇인지 분석해 보고 싶었습니다." 

저자는 연구 과정에서 남초 사업장에서 일하는 열 명의 여성 노동자들과,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두 명의 여성 노동자를 만났다. 성별 구성의 차이가 작업장과 일터에 미치는 영향들을 비교해 그 안에서 여성 노동자이자 여성활동가들이 마주하는 공통의, 고유의 경험들을 살피려 했다. 

"연구에서 다루고 있는 사업장은 주로 남성들이 대다수인 대공장들입니다. 보통 이런 사업장들을 '남초 사업장'이라고 하는데, 작업장도 노동조합도 규모와 구조, 기본적인 질서 모두에서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적 질서가 관통하고 있는 공간이죠. 중소 사업장이나 여성 노동자가 다수인 사업장이라고 해서 그런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 존재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더욱 극명하게 그 가부장적 질서의 모순에 부딪히고 있을 거라 생각해 연구 주제와 공간을 한정해서 잡게 됐습니다" 

"남성 간부들, 남성 활동가들에게 노동조합의 남성 중심성은 외부에서 이야기하지 않는 한 인식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리가 숨을 쉬면서 공기를 늘 인식하고 있지는 않잖아요. 남성들이 거의 99%인 작업장과 노동조합에서는 '남초'라는 인식 자체를 하지 않죠. 어느 책에서 '주류는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남성 중심적인 질서와 분위기가 일상이고 자연스러운 공간 안으로 여성들이 들어가고자 하고, 여성의 자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해온 흐름들이 존재해 왔어요. 그런 노력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충돌하는지, 수렴되는지, 어떤 현실적인 모습들을 그려내고 있는지 보고자 했습니다." 

"작업장의 남성 중심성 질서를 한 축에 놓고, 제가 더 중심적으로 다루고자 했던 것은 노동조합의 남성 중심적 가부장적 질서였습니다. 제가 만나고자 한 여성들은 노동조합을 자기 활동의 기반으로 가지고 있는 여성 간부들이고 여성 활동가들이었기 때문에, 작업장의 현실과 함께 핵심적인 의제로 인식된 것은 노동조합의 가부장적인 질서, 권위주의였습니다. 노동조합 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여성과 남성을 비롯한 여러 성들이 고르게 섞여 다양한 모습으로 움직이고 실천하는 조직을 떠올리시나요? 그렇지 않잖아요. 우리가 노동자를 생각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사실 여성보다는 남성의 모습인 것처럼, 노동조합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 또한 남성들이 움직이고 있는 공간이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 공간에도 여성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여성활동가들이 그 공간을 자기 공간으로 삼고 실천하고자 굉장히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상태인데 그런 부분들이 충분히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고민과 실천들을 사회적으로 가시화하고 싶었어요." 

저자가 활동하는 노동조합 사무실에 걸린 현수막. 이현경 제공

 

책에서는 '남성 중심' 작업장과 노동조합에서 노동자이자 활동가인 여성들이 마주한 구조적 차별의 경험들을 톺아본다. 저자는 특히 노동조합이 여성활동가들에게 '허락하는' 제한적인 위치와 역할의 문제를 환기했다. 

"노동조합에서는 여성활동가들을 지속적으로 활동할 주체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여성활동가들이 노동조합에서 장기적으로 어떤 자기 위상을 인정받으면서 활동하는 경우는 굉장히 소수에 그칩니다. 노동조합의 어떤 실무자가 아니라 노동조합을 작업장에서의 자기 활동의 공간으로 그려내고, 지속적인 전망 속에서 실천을 이어가고자 하는 여성 활동가들에게 노동조합이 허용하는 위치와 역할이 무척 한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보통 노동조합 임원 임기가 2-3년 되잖아요. 집행부가 바뀌면 특정 역할을 맡아서 내실 있게 성과들을 만들어 오던 여성활동가들도 역할을 잃고 그동안 노력해 온 흐름들이 끊기는 경우도 많아요."

"노동조합 내부에서의 역할들은 여전히 성 편중적인 분담이 이루지는 경우가 많고요. 물론 여성활동가가 조직 내에서의 인정 속에서 처음으로 조직실장을 맡는 등의 사례도 있었지만, 그 경우에는 개인의 역량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너무 출중했던 것이었죠. 그런데 노동조합의 남성 간부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을 때 그 개인의 역할이 너무나 출중해서였을까요?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남성들이 핵심 직책을 맡는 건 너무 당연한 거고, 여성들에게는 어떤 집행부의 관대한 계획에서 한시적으로 주어지거나 아니면 아주 뛰어난 개인적 자질에 근거해서 인정받거나 이런 제한적인 경우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노동조합 활동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단체교섭인데, 책에서 소개했듯 여성 간부들이 교섭 석상의 교섭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조차 사측의 반대보다는 노동조합 내부의 반대로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아요. 노동조합의 요구안에는 여성노동자에 관한 요구안도 많은데, 물론 여성의 의제를 반드시 여성 간부가 이야기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엄연한 노동조합의 구성원으로서 여성 노동자들의 의사가 충분히 전달될 수 있도록 당사자인 여성 노동자, 여성 간부가 교섭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못한 일종의 '대리 교섭'이 이루어지고 여성 노동자들은 교섭의 결과를 통보받는 존재에 머물게 되는 것이죠. 책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한 대공장 남초 사업장 노조의 경우 2023년에서야 처음으로 여성활동가가 교섭위원으로 교섭에 참여할 수 있었어요. 제가 일하고 있는 현장의 노동조합에서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여성교섭위원이 교섭 테이블에 들어간 적이 없고요. 여성 간부가 어렵게 교섭에 참여하게 되더라도, 집행부가 교체되고 간부들의 역할이 조정된 후에는 그 흐름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아요. 여성 간부들이 교섭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구조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요구들이 있어 왔는데, 아직 구현되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성할당제에 대한 고민도 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작업장의 여성 노동자 비율, 노동조합의 여성 조합원 비율을 여성 간부 비율에도 반영하자는 요구들을 제기하면, 첫 번째로 나오는 말들이 "할 사람이 없다. 그렇게 할당제를 도입하면 사람이 없어서 조직을 구성할 수 없다"는 식의 이야기들이예요. 그런 이야기들이 10년이 넘도록 반복되어 왔습니다. 할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보다는 노동조합이 사실상 여성 노동자, 여성 조합원을 간부로 양성해 오지 않았다는 현실을 돌아보고 의식적으로 조직적으로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여성 조합원이 여성할당제로 대의원이 되더라도 현장에서 실질적인 역할과 권한을 갖지 못하는 현실도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선출직 대의원들이 경우 현장 관리자와 협상을 하는 등의 다양한 책임과 권한들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할당제 대의원들은 소속되어 일하는 현장은 있지만, 자신이 권한과 책임을 갖는 현장은 불분명한 것이죠. 노동조합의 어떤 의사결정 구조에 할당제 대의원들이 참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조합원들과 구체적으로 함께 소통하고 실천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과 책임을 갖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은 구조적 차별에 기반한 여러 제한들 사이에서도 노동조합을 삶과 활동의 주된 공간으로 삼고 분투해 온 여성 노동자들의 고민과 실천들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여성 간부'와 '여성활동가'의 개념을 구분한다. 이러한 개념의 분별은 어떤 고민을 담고 있는 것일까.  

"여성 간부는 그야말로 노동조합의 특정 위치, 그것에만 머무르는 개념이라 봐요. 여성활동가는 작업장과 노동조합, 그리고 그 둘을 넘어서 전체 사회를 지금과는 다르게 나아가도록 하려는 전망 속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전망 속에서 노동조합 운동은 중요한 한 축인 것이지, 노동조합의 간부 역할이 자기 활동의 전부가 되지는 않는, 어떤 '유산'이자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그런 '여성활동가'들이 작업장과 노동조합에서 경험하는 '노동자성'과 '여성성'의 충돌과 긴장에 대한 고민들도 짚었다. 

"저는 현장에서 여성일까요, 노동자일까요?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를 일차적으로 규정하는 정체성은 '노동자'예요. '여성성'을 힘주어 의식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노동자성' 안에 '여성성'이 놓이게 됩니다.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면 여성 노동자의 문제도 해결되는 거다, 굳이 여성 노동자 남성 노동자 나누어서 이야기해야 하나, 라든가 일단 노동 문제를 해결하고 여성 문제는 나중에 다루자"는 식의 노골적인 주장들도 공공연하게 있어 왔어요. 그런 주장들에 대한 저의 인식과 고민들은 과거와 비교했을 때 완전히 달라졌어요. 현장에 있는 여성활동가들이 힘주어서 더 강조해야 할 부분은 저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강조하거나 의식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노동자'로서만 보여지고 '여성' 노동자의 현실들은 '노동자' 의제의 다음에 놓이는 무언가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흐름들이 존재해 왔어요. 저는 노동 문제 다음에 여성 문제가 따른다거나, '노동자=여성' 식의 관점과 대응보다는 '여성'에 방점을 둔 여성 노동자의 고민과 실천들이 중요하다고 봤어요.

충돌하고 긴장하는 '노동자성'과 '여성성'에 대한 고민들은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혹은 변혁운동의 역사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노동계급 중심성과 여성주의, 여성 해방 담론들 사이의 논쟁과 긴장과도 닿아 있다. 

"저는 여전히 노동계급 운동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그러한 실천의 경로에서 제가 이탈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분명한 노동자이고 노동계급에 속한 성원이에요. 다만 노동계급인 동시에 '여성'으로서의 나의 '노동자성'도 중요하고 그것은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런 고민에서 저는 '여성 노동자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을 연구와 책에서 말씀드렸어요. 여성 노동자 페미니즘은 여성 노동자가 중심에 서서 현장에서 만들어 가는 페미니즘을 의미합니다. 아직 이론적으로는 정립하지 못한 개념이지만, 저의 고민은 '여성 노동자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나의 계급성을 탈각시키거나 노동계급 운동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경로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노동자성과 여성성, 계급운동과 여성운동이 각각 동등하다라든가, 동일 선상에 있다라든가, 어떤 선후의 관계로 봐야 된다라든가, 그런 것이 제가 취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라는 지점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같은 충돌과 긴장들은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과 억압의 구조적 원인을 어떻게 규명하는가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저자는 그 원인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저는 대단히 계급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고, 그 구조적 원인은 계급 모순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단 그 계급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여성의 문제가 연동해서 해결된다는 분석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책에는 '노동자성'과 '여성성' 사이에서 고민해 온 여성활동가들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의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엄격하다는 점도 짚었다. 이는 노동조합 안과 밖의, 노동운동, 사회운동의 많은 여성활동가들도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라 여겨진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게 된 저자에게 페미니스트라는 것은, 페미니즘은 어떤 의미일까. 

"저는 페미니즘이 여성의 삶에 어떤 중요한 기둥이라 생각해요. 그 기둥을 잡고 살아가고자 하는 여성들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고요. 지금의 우리 삶과 사회에서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굵직한 기둥이 바로 남성들의 기둥이라고 한다면, 여성들이 잡은 기둥은 결국 소수자들의 기둥이겠죠. 수에 있어서는 소수가 아닌데 정치적·문화적·사회적으로는 소수자로 치부되는 여성들이, 여성 스스로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고 주체로 살아가고자 할 때 필요한 이론, 그것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해요."

여성활동가들이, 여성 노동자와 시민들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하고 발화하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입안에서 구른다는 표현을 하죠. 저도 제가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것이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입 안에서 풍선껌처럼 굴려온 시간들이 되게 오랫동안 지속이 됐었어요. 그 말을 뱉으면 뭔가 낙인 찍힐 것 같고, 또 한편으로는 제가 만난 여성활동가들이 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내가 페미니스트일 수 있겠어"라는, 페미니스트라면 무언가 대단히 철두철미하고 의식적으로 또 각성돼 있고 생활에 있어서도 남성 중심적인 생활 습관이나 태도가 없어야 하고, 그런 엄격한 기준들을 생각하게 되고, 자신이 과연 그런 기준에 부합하는가 자신이 없게 되는 거죠."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그런 생각들을 떠나서 페미니스트라고 막 이야기하고 있어요(웃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막 이론적으로 쌈박해지고, 생활 태도가 전혀 친자본주의적이지 않고, 그렇게 달라진 것은 아닌데도 "나는 페미니스트 여성 노동자입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한번 뱉어야 하나 봐요. 한 번 뱉으면 계속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나는 페미니스트야"라고 하면 사람들이 일단 한 발짝 뒤로 가는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현장에서 조합원들하고 관계에서도 그런 반응들이 있죠.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라는 개념이 굉장히 왜곡되고 일종의 낙인으로 여겨지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페미니스트야",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페미니스트야"라고 하는 정체화와 발화가 우리에게 필요한 일종의 '자기 선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선언들이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그 일방적 흐름들에 균열을 내고, 그것을 깨뜨리고자 하는 하나의 신호가 될 수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것뿐만 아니라, 조직의 가부장적인 문화들과 권위적인 질서들에 어떤 긴장감을 주고,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현실에 대한 노동조합과 운동 조직들의 책임성을 부여할 수 있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평등한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하나의 실천일 수 있다고도 생각하고요."

노동계급운동에서 활동가들에게 페미니스트라는 자기 선언과 페미니즘적 실천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노동계급에는 여성도 있고 남성도 있잖아요. 계급 해방이라고 하는 것이 남성의 해방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고요. 남성과 여성, 모두가 해방되는 것이 계급해방인데 우리가 동시적으로 해방될 수 있으려면 그 주체들이 공통의 경험과 함께 자신의 고유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계급성을 자각하고 자기 요구와 실천들을 통해서 계급 해방으로 나아가는 거잖아요. 그 안에 여성이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저는 한 번도 제가 그 계급성을 포기하거나 회의한 적은 없어요. 저는 계급과 페미니스트, 여성 노동자가 따로 놓여 있고 따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계급 운동을 통해서 노동자들이 그려내고자 하는 세상이 지금 같은 세상은 아니잖아요. 여성들이 교제 중에 살해를 당하고, 밤거리를 거닐다가 폭행을 당했는데 그 여성이 오히려 비난을 받고, 직장 내 성폭력이 일어났는데 피해자가 일터를 떠나야 하는 이런 상황들을 바꾸고자 하는 거잖아요. 저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계급해방의 한 내용이라고 생각하지, 계급해방이 따로 있고 페미니즘이 그리는 세상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자는 '남성 중심적' 작업장과 노동조합의 질서, 더 나아가 우리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들을 바꾸는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의 계급적 연대가 가능하다고도 전망했다. 그러한 연대는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계기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번 12.3 비상계엄 이후 열린 광장에서 그런 계기들이 만들어지기를 바랬는데,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가 연대할 수 있는 공동의 요구와 구체적인 투쟁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공공부문과 관련해 이야기해 보자면, 총액임금제 폐지, 필수공익사업장 폐지, 공무원과 교사들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의 완전한 정치활동 자유 보장과 같은 핵심 요구들을 걸고 함께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금속 노동자들은 또 그들의 핵심 요구가 있을 것이고, 발전 노동자들,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또 환경과 생태문제와 함께 발전노동자들의 노동권을 고민하는 요구들이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정규직 철폐에 대한 요구들도 있고요. 이런 요구들이 광장에서 펼쳐지고 서로 연결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의 고유한 요구에 대해서도 충돌과 긴장을 두려워하지 않고 제시하고, 서로 토론하고 다투면서 공감과 연대를 넓혀갈 수 있다고 봐요."  

《작업장의 페미니즘》 뒤표지, 추천사. 참세상

 

현장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

"여성 노동자가 역사의 중심에 설 거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어요. 이미 여성들이 우리 사회와 민주노조 운동의 중심에서 역사를 만들어 왔고요. 그 여성 노동자들의 역사를 우리가 지금 제대로 평가하고, 사회화하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은 또 다른 과제일 수 있겠지만, 그 역사들을 우리가 고스란히 이어가고 있고, 다시 우리의 현재를 이후 세대들이 이어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 광장에 나선 여성들에 대한 기대가 되게 커요. 일종의 승리를 경험한 세대라는 생각을 했어요. 계엄을 선언했던 당사자는 탄핵이 될 것이고, 그것도 하나의 승리잖아요. 비상계엄 이후 탄핵에 이르는 과정에서 광장에 나가고, 남태령 고개에 함께하고, 한남동에서 눈보라를 맞았던 그 여성들이 그 자리에서 승리를 경험했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경험을 가진 세대들이 노동을 하면서, 현장에, 작업장에 들어와서, 이 고리타분하고 구태의연한 현장을 보고 그냥 순응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들과 현장의 선배 여성 노동자들이 함께 고민을 나누고, 무언가 일을 벌일 수 있다면 너무나 기쁠 것 같아요. 설령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어떠한 방식으로든 현장을 바꿔 나가는 주체로서 그들이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그래서 노동 현장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만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어떤 희망을 갖고 있어요. 결국 이들이 작업장의 새로운 불씨가 되지 않겠나 기대하고 있어요."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 있는가. 고민하고 있는 다음 주제는 무엇인가. 

"저는 이제 책의 절반을 썼다고 생각해요. '작업장에 우리가 있어, 우리는 여성 노동자이고 활동가인데 하나 더 붙여서 우리는 페미니스트야, 그리고 앞으로 작업장에서 페미니즘 없이는 페미니즘적으로 변화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어'라는 이야기를 썼다면, 그래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페미니즘은, 여성 노동자 페미니즘은 바로 이런 거야'라는 이론화 작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웃음)." 

"페미니즘은 학교 안에 머무는 이론이 아니라 여성의 삶을 바꾸고자 하는 이론이고, 실제로 우리의 삶을 바꿔 온 이론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 여성 다수가 노동자인 현실에서, 여성 노동자의 구체적 현장과 만나는 페미니즘 이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2025년 3월 7일, 류민 기자, 참세상

 

참세상::'여성 노동자 페미니즘'으로 모두의 평등과 해방을

《작업장의 페미니즘》에는 '여성'이자 '노동자'로서, 작업장과 노동조합을 실천의 공간으로 삼은 '활동가'로서 분투해 온 이들의 경험과 고민들이 담겨 있다. 저자 이현경 씨를 만나 '노동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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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의 페미니즘

저자는 남성 다수 사업장에서 일하는 열 명의 여성활동가와 대표적인 여성 사업장인 교육과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여성활동가 두 명을 만났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의 현장에서 어떤 갈등을 겪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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