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후기'에 해당되는 글 50건

  1. 2016.05.27 유령을 만난 편집자::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이야기 (6)
  2. 2016.05.12 복잡해져가는 사회와 혼탁한 세상을 무탈하게 살아가게 하는 길잡이-『한비자』, 『한비자,제국을말하다』 (2)
  3. 2016.02.26 뜨거운 사상사, 아리프 딜릭의 『혁명과 역사』 편집후기 (1)
  4. 2016.02.12 행복하게 출판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다-『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5. 2016.02.03 묵묵히 선구자의 길을 걸었던 중국 연구자, 미조구치 유조 (4)
  6. 2015.12.15 <주간 산지니> 꼭 챙기세요! (1)
  7. 2015.07.08 매일 아침의 위기를 함께 넘긴 책 -『불가능한 대화들 2』 (5)
  8. 2015.07.03 사라져버린 학교에 문화를 그려내는 이들의 이야기:: 『폐교, 문화로 열리다』 (1)
  9. 2014.10.23 편집일기-산지니시인선의 1호 탄생기 『금정산을 보냈다』
  10. 2014.10.15 산지니에 배달된 호로록!-『이상한 과일』 (2)
  11. 2014.10.15 [출판저널] 설마 그 정인? 『만남의 방식』
  12. 2014.10.10 북적북적 대학로 페스티벌-『천 개의 권력과 일상』
  13. 2014.09.30 9월의 끝, 호박이 굴러들어온 날-『금정산을 보냈다』
  14. 2014.09.29 푸코가 말한 권력-『천 개의 권력과 일상』
  15. 2014.09.26 2014 가을독서 문화축제-표성흠 소설가가 말하는 “왜 문학인가”
  16. 2014.08.29 산지니시인선 첫 권! 최영철의『금정산을 보냈다』 (2)
  17. 2014.07.28 달콤한 방문-『숲에서 행복한 아이들』 (8)
  18. 2014.07.24 『천 개의 권력과 일상』소소한 편집후기 (3)
  19. 2014.07.22 [기획회의 출판사서평] 카를 슈미트는 누구인가─『반대물의 복합체』 (1)
  20. 2014.05.09 『유토피아라는 물음』편집자 후기
  21. 2013.08.27 윤여일의『상황적 사고』편집후기-불 끄고 생각 좀 해볼까 (3)
  22. 2013.02.14 지금, 소설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 《장미화분》
  23. 2013.01.25 출간임박『정신분석적 발달이론의 통합』-꼬박 2년. (2)
  24. 2013.01.03 교정지의 추억 :: 나눔의 가치를 실현하는 여자 '최문정'
  25. 2012.07.26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떠나는 버스 여행 -기획회의 324호 (1)


마지막으로 유령 이야기를 읽었던 것은 언제일까요?


출처: gholly-fromb.tistory.com


초등학생 때는 문방구에서 무서운 이야기 모음집을 사 읽곤 했습니다. 

손바닥만한 책에 나오는 귀신 이야기가 너무 무서워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계속 등 뒤를 돌아본 기억이 있는데요.


그 이후에 활자로 만났던 유령들은 

진지한 문학 작품의 상징적 인물이거나

사회과학 책에서 '냉전의 유령'과 같은 비유 정도여서,

해질녘 귀갓길에 마주칠 것 같은 존재로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나와 이 세계에 공존하는 존재로서의 유령은 

글보다는 무더운 여름 친구들이 담력 겨루기처럼 하는 수다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무심하게 꺼내시는 이야기에서 더 자주 만나는 것 같습니다.


무섭기는 한데 믿는다고 선뜻 말하기는 부끄러운 것.

저에게는 그런 존재였던 유령과 사람들의 관계를 연구하는 책이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입니다.



권헌익 교수의 베트남 2부작 완결판이라고 볼 수 있는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 베트남의 다낭과 인근 지역을 배경으로 합니다.

베트남에서는 '미국 전쟁'이라고 불리는 전쟁은 1975년에 끝났지만,

전쟁은 베트남인들의 삶 구석구석에 스며 있고

삶의 터전 그 자체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책에서 중요한 장소로 등장하는 껌레(Cam Re) 지역은 

전쟁 때 조성된 광활하고 오래된 묘지에 위치합니다. 

거의 모든 껌레 가구의 농지에는 십여 기 이상의 무덤이 있고요. 


출처: bettertour.tistory.com


베트남인들의 삶에서 유령은 낯선 이방인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들과 이미 관계를 맺고 있는, 

그리고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존재입니다.

한 남자는 밭에서 전쟁 중 죽은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기도 하고

어느 마을에서 늘 같은 길에 나타나는 외국 군인 유령은 주민들에게 익숙한 존재입니다.


책에서는 "누군가의 유령은 다른 이의 조상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지연, 혈연이 없고 때로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데도 

베트남인들은 유령들을 위해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립니다.

이러한 추모는 1980년대의 경제 개혁 이후에 뚜렷한 문화적 현상으로 부상했다고 합니다. 


유령을 위한 향과 가짜 돈.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seafaringwoman/5455195256/


저자는 베트남에서 

"망자의 역사와 산 자의 생동적 활동이 공존하는 상황"을 목격했다고 씁니다.

예를 들어, 책에서 중요한 인물인 '연꽃'이라는 소녀 유령이 있습니다. 

연꽃은 생전에 고아였고 생계를 위해 땔감을 모아 팔았는데, 

땔감을 모으던 중에 강물에 휩쓸려 자신이 살던 지역과 멀리 떨어진 강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자신의 시신이 묻혀 있는 마을에 사는 여자아이의 몸에 들어와 

그 아이의 가족들에게 시신을 찾아달라고 요청합니다. 


텃밭에서 어린아이의 시신이 발견되자 

연꽃은 그 가족에게 자신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족의 둘째 딸이 된 연꽃은 놀랍게도 

전쟁 당시 혁명 활동에 동참했던 이들 여럿이 있는 이 가족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정의를 위해 활동하는 유령으로 성장합니다. 

가족의 이웃인 찌엠 아저씨는 연꽃의 성장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혁명가를 길러내는 것은 그녀 가족의 전통이다." 

찌엠 아저씨에게 저자는 조심스럽게 질문합니다. 


“아저씨, 실례가 된다면 용서하세요! 당신은 연꽃이 진짜라고 진정으로 믿고 있나요?”

“조카야, 그녀가 진짜가 아니라면, 너는 왜 내게 그녀에 대해 묻고 있는 거냐?”


-유령의 변환 중에서

중요한 것은 유령이 실제로 존재하느냐, 망상이냐가 아닌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자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직접 유령과 대화하기도 합니다! 
제7장 유령을 위한 돈을 읽어보세요.)


조상을 위한 가내 제단. 

출처: travel.tourism.vn


베트남 문화에서 유령은 베트남인들이 집 안에서 추모하는 조상과 

국가적 기념의례의 대상인 전쟁영웅에 비해 주변적인 존재이지만, 

이들 못지않게 베트남인들의 일상에 함께하는 존재입니다.

특히,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향, 그리고 집이 아닌 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조상과 유령의 구분이 모호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런 맥락에서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은 유령을 '사회적 사실'로 연구하고 있다고 할까요. 



출처: www.theodysseyonline.com


문화인류학자들은 대체 뭘 공부하냐?는 질문에 대해, 이런 답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류학자들은 세계가 사실(fact)에 기대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꿈과 망상, 희망과 두려움, 상상과 야망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이해한다. 

인류학자들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일축하지 않는다. 

Savage Minds Interview: Sarah Kendzior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은 문화 인류학의 

"인류학적 통찰의 거의 완벽하고 경이로운 예"라는 찬사를 받았는데요,

(마이클 램벡 런던정경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의 평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베트남 전쟁 유령과 그들을 위한 의례의

선명한 사회적·정치경제적·종교적 함의에 놀라게 됩니다.


그런데 베트남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을 읽을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베트남의 냉전사와 우리나라의 상황을 겹쳐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규모 학살과 극단적인 '내 편' '네편' 구분으로 점철된 냉전을 겪은 한반도.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냉전은 끝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또, '거리에서의 비극적 죽음'으로 가족과 고향을 잃은 베트남인들의 이야기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이북의 고향을 떠나신 저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얼마 전 2주기를 맞이한 세월호 유가족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한국인들도 베트남인들도

상처를 겹겹이 축적한 채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한국은 베트남 전쟁 참전국이지요. 

베트남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한국인들이 

많은 베트남인들을 학살했다는 것을 기억하면

저는 베트남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

끝으로,

책이 나오기까지의 우여곡절에 대한 몇 가지 여담을 해보렵니다. 


1. 영혼이냐 유령이냐?!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의 원제는 Ghosts of War in Vietnam 입니다. 

번역서를 맡게 되면 언제나 큰 고민이 한글 제목을 어찌할 것인가?! 인데요.

눈썰미가 빠르신 권헌익 교수님 팬(...) 여러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동안 언론 기사에서 Ghosts of War in Vietnam은 

쭈욱 '베트남 전쟁의 영혼'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번역을 맡아주신 박충환, 이창호, 홍석준 교수님께서는 제목을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로 옮기셔서 저에게 원고를 보내주셨지요.

저는 원서와 교정지와 언론기사를 번갈아 쳐다보며 

유령? 정말 유령에 대한 책이란 말이야?? 라는 의심을 했지만 

이내 글에 빠져들었고, 

추상적인 느낌의 '영혼' 보다는 도발적인 '유령들'이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의 제목은 권헌익 교수님, 번역자 선생님들과의 논의를 거쳐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


2. 유령을 어떻게 표현하지?

혹시 눈치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글에서 '유령'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이미지를 단 한 컷도 쓰지 않았는데요,

그 이유는 한 번이라도 '유령'을 이미지 검색해보셨다면 아실 겁니다.

'유령' 하면 주로 납량특집에 나올 법한 오싹한 이미지뿐이라는 사실ㅠㅠ 


그래서 책의 표지 작업에도 사실 난관이 있었습니다. 

산지니에서는 담당 편집자가 디자이너님이 참고할 만한 이미지를 찾기도 하는데요,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의 경우 저는 

베트남인들이 거리에서 향을 피우거나 기도하는 모습 사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적당한 이미지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어정쩡한 사진들을 전달했고  

표지 시안이 나왔으나 디자이너도 편집자도 만족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침 부산의 민주공원에서

꾸준히 베트남인들의 전쟁 기억에 대한 작업을 해오신 

이재갑 사진작가의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

그런데 전시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

그런데 담당 편집자인 저는 오후에 해외로 출국해야하는 상황!!!


그야말로 절규... 할 뻔 했습니다


저는 부리나케 전시회에 가서 사진들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디자이너님과 적절한 작품을 골라

이재갑 작가님께 연락을 드리니 흔쾌히! 표지 이미지 사용을 허락해 주셨어요.

이 자리를 빌어 이재갑 작가님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표지에 사용된 이재갑 작가님의 작품 <빈딩성 가족무덤> .


이렇게 출간 전에 일어난 일들을 적다 보니 책이 드디어 나온 것이 새삼 놀랍고(ㅎㅎ)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임을 되새기게 됩니다.

이제는 독자 여러분들과 만날 일만 남았네요 :)

독자 여러분께도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과의 만남이 기억에 남는 일이기를 기대합니다!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 10점
권헌익 지음, 홍석준 외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편집자 기획노트]

 

 

복잡해져가는 사회와 혼탁한 세상을

무탈하게 살아가게 하는 길잡이

『한비자』, 『한비자,제국을말하다』

 

 정선재 | 산지니 편집자

 

 

 

 

 『맹자, 시대를 찌르다』가 나온 지 근 1년여 만에 산지니의 새로운 고전오디세이 시리즈가 출간됐다. 그것도 두 권이 동시에. 그동안 고전오디세이는 ‘논어’, ‘중용’, ‘삼국유사’, ‘맹자’ 등 현대 사회에 걸맞은 고전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자 했다. 이번에 출간된 고전오디세이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책은 통치학의 영원한 성전으로 불리는 ‘한비자’로 채워졌다. ‘한비자’는 치열한 경쟁과 암투, 부정과 모순 따위가 빚어내는 인간의 갖가지 행태들을 예리하게 분석하여 점점 복잡해져가는 사회와 혼탁한 세상을 무탈하게 살아가게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고전이다. 무엇보다 유교적 사고방식에 익숙해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더없이 필요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고전 번역서인 『한비자』와 한비자로 한국 사회를 이야기한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 처음 이 두 원고를 받았을 때는 걱정이 앞섰다. 고전과 관련된 원고를 맡아본 적 없었던 나에게 500페이지가 넘는 『한비자』는 오르기 힘든 높은 산처럼 느껴졌고,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는 시의성을 가진 원고라 책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으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작업이 진행될수록 이 두 권의 책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좋은 책에 대한 이유 없는 믿음과 역자이자 저자이신 정천구 선생에 대한 신뢰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비자’는 원문에 담긴 함의가 넓고 깊어서 그 의미를 단박에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에 정천구 선생은 명료한 번역으로 원문과 주석 없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하여 독자 누구나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는 한비자의 해석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흔들었던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며 비판과 통찰력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한비자’를 맹목적으로 답습하지 않고, 현재를 보는 꼬투리로 삼으며 재해석한 부분은 현 시대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는 더없이 복잡해지고 어지러워졌으며 인간관계의 모순과 경쟁은 더욱 심화됐다. 이러한 시대에 ‘한비자’ 읽기를 권한다. 엄정한 기본과 원칙을 기반으로 부국강병을 논하는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를 통해 인간사의 실상과 이치를 깨닫고,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를 통해 오늘을 진단하여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드는 초석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많은 독자들이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난세의 시대를 유유자적 돌파할 수 있는 밑천을 마련하길 바란다.

 

 

『출판저널』 2016년 5월호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 기획노트」에 게재되었습니다.

 

 

한비자 - 10점
한비 지음, 정천구 옮김/산지니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 - 10점
정천구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혁명과 역사 편집후기


기획부터 인쇄까지,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혁명과 역사』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눈뜨기』, 『포스트모더니티의 역사들』의 저자로 유명한 역사·인류학자 아리프 딜릭이 그의 박사논문을 바탕으로 집필한 책인데요. 


이 책을 맡게 되었을 때의 소감을 떠올려보면... 당시에는 정말 무념무상했습니다. 

혁명? 역사? 

단어에서는 엄청난 기운이 느껴지는데, 

너무나도 무난한 원서 표지를 보며 저는 별다른 생각을 떠올릴 수 없었습니다. 



아, '읽을 테면 읽어보렴' 하는 듯한 이 학술서의 정취-

그래도 내심 '그렇다면 해보겠다!'는 두근두근함도 있었던 것 같네요. 

사실 『혁명과 역사』는 제가 처음으로 편집을 맡은 외서이기도 합니다.

(『방법으로서의 중국』이 이 책보다 먼저 출간되긴 했습니다만, 이 책 작업을 먼저 시작했어요.)


『혁명과 역사』의 '풀네임'은 혁명과 역사중국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기원 1919~1937 』입니다.

20세기 초반, 중국의 역사학과 마르크스주의의 만남에 대한 책을 우리가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유물론적 역사 개념은 공식적인 비호를 받으며 역사학계를 독점했다. 또 그만큼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이 수많은 인민들의 역사의식에 녹아 있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주의가 중국에 처음 소개되었던 1910년대부터 중국의 역사관은 수년간에 걸쳐 과장 없이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 사상이 중국의 역사관을, 따라서 중국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리고 중국의 사상가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어떻게 활용하고 변형했는지를 기원에서부터 추적한다면, 중국의 마르크스주의가 어떻게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지 알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19191937, 이 년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919년 이후 중국으로 마르크스주의 역사 이론이 소개됨으로써 중국 역사에 대한 급진적 재해석의 가능성이 마련되었다. 

('문제' 중에서)


중국 지식인들은 1910년대에 이미 마르크스주의 역사 이론을 알고 있었지만, 초기에는 중국 역사에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적용시키는 데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1917년)이 일어난 이후,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을 겸비한 최초의 중국 역사 분석이 나타납니다. 


1919년 11월 『건설』에 다이지타오의 「경제적 관점에서 살펴본 중국의 혼란의 근원從經濟上觀察中國底亂源」이 발표되었다. 이후 수개월에 걸쳐 같은 잡지에 중국 사상사와 중국에서 친족 조직의 진화에 관한 후한민의 장편논문 두 편이 실렸다. 두 논문은 역사적 유물론을 중국 역사에 적용한 이 시기 가장 야심차고 인상적인 글이었다. 

(맥락 중에서)


이 글로 인해 유물론적 역사관에 대한 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1927년에 이르러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중국에서 분명한 경향이 됩니다.


1927년은 중국 역사학에 있어서 아마 가장 역동적이고 자극적인 경향이랄 수 있는, 소위 '사회역사논쟁'이 빠른 속도로 부상한 해였다. 이 시기 생산된 영향력 있는 저작들은 1930년대 역사적 작업에 확연한 흔적을 남겼다. 

(...)

1927년 이후 십여 년간 마르크스주의 역사학 활동이 집중적으로 전개됨으로써 마르크스주의 사회역사학 개념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고, 이에 따라 중국 지식인들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관점을 수립했다. 

('문제' 중에서)


사회역사논쟁의 주요 논자들이었던 타오시성(左), 궈모뤄(右)


그렇다면 딜릭은 왜 1937년을 책이 다루는 시기의 끝으로 설정한 걸까요?


출처: 위키피디아


1937년은 중일전쟁이 일어난 해입니다. 이 해 7월부터 1945년까지 전쟁은 계속되었습니다. 딜릭은 이 책에서 많은 학자들이 전쟁 이후, 정확히 말하면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1949년 이후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에만 집중해 혁명과 내전 이전, 혁명을 꿈꾸던 사상가들이 제시한 다양한 역사관을 무시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중국 역사학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의 가장 독창적인 공헌은 1949년 이후 역사연구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정통성이 확립되기 이전에 이루어졌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은 1949년 이후에도 중국 역사 연구에 지속적으로 공헌했으나 그들의 임무는 보다 단조로운 것들이었다. 거기에는 초기에 제기되었던 문제들을 퇴고하고 정제하는 것, 그리고 수정하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둘째로, 1949년 이후 역사기록에 집중했기 때문에,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주로 그 정치적 기능 때문에 중요하다는 인상이 심어졌다. 1949년 이후 공식적 역사관이 조성되면서 역사가들이 활용할 수 있는 해석의 폭은 좁아지고 말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1930년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 연구는 역사적 유물론적 개념을 이해하고 이를 중국 역사에 적용하는 데 있어 상당한 다양성을 띠고 있었다. 이 시기 역사는 관방의 지도나 강요로부터 자유로웠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의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소신은 그들의 역사 분석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정치와 역사 사이의 상호작용은 1949년 이후보다 훨씬 더 복잡했으며, 역사 저작에 있어 정치가 가지는 함의도 그러했다. 

('문제' 중에서)


국정화 교과서의 역사 다시쓰기가 논란이 되고 있는 지금, 

공식적 역사관이 조성되기 이전 중국의 사학자들이 과거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제시했다는 점을 특별히 눈여겨보게 됩니다.


번외로, 

편집자로서 이 책을 읽으며 재미있었던 점은 중국에 마르크스주의 서적들이 어떻게 소개되었는지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1910년대에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지식은 1차와 2차 자료가 뒤섞여 있는 일본의 선집뿐이었다고 하네요. 그러다 1920년대에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중역본重譯本이 아닌 중국어 번역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이 시기의 청년들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복잡성을 앞선 세대보다 정교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고요. 출판이라는 업이 어떻게 지식장/사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지를 엿볼 수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이 책의 매력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릴게요. 

"혁명이든 역사든 그 어느 쪽에 대해서도 목적론적 관점을 피했다는 것"

저자는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이 그들의 생각 때문에 추적, 검열, 투옥,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지만, 그들의 역사 연구에 대해 때로는 가혹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비판을 가하기도 합니다. 

본 연구의 맥락 내에서, 나는 모든 역사 저작들은 평가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따라 그들의 공헌을 평가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저작들은 역사로서 쓰였기 때문이다.(강조는 저자-역자) 이것이 그들이 행한 것을 진지하게 인식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서문' 중에서)


나는 그들의 학문에 비난받을 만한 결함이 있음에도,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의 개념이 종종 조악하게 조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이 중국 역사 연구에 지속적인 공헌을 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 사상적이고 정치적인 맥락 아래에서 형성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문제' 중에서)


『혁명과 역사』는 이렇게 뜨거운 사상의 역사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추적합니다.

 

1978년에 출간된 이 책은 2004년 중국에서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그리고 12년이 지나 한국의 독자들과도 만나게 되었네요. 

중국 역사와 마르크스주의를 바라보는 올곧은 시각을 갖추는 데에 이 책이 보탬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혁명과 역사: 

중국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기원 1919~1937

아리프 딜릭 지음 | 이현복 옮김 | 신국판 336쪽

978-89-6545-325-3 93910 | 28,000원 | 2016년 2월 15일 

중국 역사학의 혁명기를 다룬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가 중국에 소개된 이후 중국의 역사가들이 어떻게 유교적 역사관을 넘어 사회 자체에서 발전의 동력을 찾는 전대미문의 작업에 천착했는지 보여준다. 약 20년에 걸친 열띤 논쟁을 통해 중국에서 역사는 권선징악과 운명의 영역에서 사회경제 구조의 내재적 힘들이 상호작용하는 변화의 장으로 바뀌었다. 『혁명과 역사』를 통해 오늘날 중국 역사의 근저를 이루는 주요 역사학자들의 공헌과 한계를 파악하고, 혁명을 꿈꾸었던 역사학자들의 뜨거운 논쟁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혁명과 역사 - 10점
아리프 딜릭 지음, 이현복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행복하게 출판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다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김해 돗대산의 추억


3년 전 가을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부산이라는 공간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모습을 담은 책을 출판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이 말이다. 빨갛게 낙엽이 진 산길을 오르며 동료들과 함께 시인이신 신진 선생님의 자택으로 야유회를 즐겼던 추억이 아직도 눈에 선히 떠오른다. 출판사의 야유회이다 보니 마냥 즐거이 웃고 놀 수만은 없었다. 김해의 돗대산을 오르는 와중에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중에도 출판사 식구들 사이에서는 출판기획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졌음은 물론이요, 온통 책 얘기만 하다가 집에 갔으니 말이다. 등반에 이어 선생님의 농막에서까지 이야기꽃을 피웠지만, 기획에 관한 아이디어가 좀처럼 모아지지 않아 김해에서 다시 부산의 구포역으로까지 돌아와서 결국 야유회 아닌 기획회의(?)를 끝마칠 수 있었다.


당시 우리 출판사에서는 정기적인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출판에 관한 책을 읽고 토론하여 좋은 사례가 있으면 산지니에도 실천해보자는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읽었던 책들이 파격적인 편집자』『편집에 정답은 없다』『한국 전자출판을 말하다와 같은 책인데, 이 같은 다양한 책들을 탐독하면서 정작 왜 지역출판에 관한 책은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대표님께서 저자가 되어 책을 쓰는 게 어떨까 하는 질문을 야유회에서 넌지시 여쭈었지만, 대표님은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손사래 치셨던 게 기억난다.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단행본


이후, 몇 년이 지났다. 동료의 결혼과 퇴사, 새로운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입사와 같은 일상의 소소한 변화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출판사의 창업 10년을 맞이해 들뜬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러다 출판사의 10년을 정리하는 단행본을 기획해보자는 주문이 내게 주어졌는데, 담당자로서 갑작스런 곤혹감을 느꼈다. 그동안 수많은 저자들을 상대하면서 나름 내공이 쌓였지만, 우리가 저자가 되어 우리가 마감을 하고 우리가 제작하는 책이란 어떤 모양새를 띌지 도무지 가늠이 잘 안 되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업로드 되어 있는 저자와의 만남 사진 중 일부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다함께 쌓은 저력의 무기인 블로그가 있었다. 블로그에 실은 글을 우선으로 하여 출판사 식구들이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한데 모으고 나니, 원고의 뼈대가 얼추 잡혔다. 블로그의 글과 함께 담당편집자의 주문에 맞춰 새로이 글을 쓰고, ‘저자의 고통을 이제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며 마감일을 지켜준 출판사 식구들의 노력 덕분에 완성된 책이 바로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여담이지만 부제인 부산 출판사 산지니의 10년 지역출판 생존기는 담당편집자인 내가 아니라 권문경 디자인 팀장님께서 작성해주셨는데, 단순한 이야기 모음이 아니라 생존기에 방점을 두고 싶으셨다고 책의 결을 살려주셨다. 화룡점정의 표지디자인 덕분에 책을 받아본 독자들 모두 더 즐겁고 좋게 봐주신 것 같아 뿌듯했다.


금강산도 식후경부터! 아이스크림부터 먹고 일했던 2012년 무더운 여름날의 추억.


책의 제목에서도 강조했지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지역출판의 어려움이 아니다. 지역에서 출판하고 있음에도 행복하게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출판은 다들 어렵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외면하고 서점 수금도 힘들고, 무엇보다도 돈 안 되는직업이 출판업이라는 게 출판을 바라보는 세간의 이목이다. 하지만 몇 번의 직장을 체험한 내게 다른 직종과 다른 출판업의 매력은 이 아닌, 바로 사람에 있다. 따스하고 배려 깊은 마음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서로의 행복한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억대연봉의 직업보다 훨씬 더 큰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좀 더 많은 출판인들이 서울과 파주가 아닌 지역에서행복하게’ ‘출판할 수 있음을 느끼고 또 함께 좋은 책을 지역에서 만들어주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저널』 2016년 2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 10점
강수걸 외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제가 '미조구치 유조'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것은 지난 여름입니다.

세계적인 중국 연구자의 책이라는 소개와 함께 책을 한 권 건네받았는데, 표지를 봐서는 별달리 알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국내에서 '세계적 석학의 저서'라는 찬사와 함께 출간되는 책들의 표지는 대부분 이러한 저자의 프로필을 부각했기 때문일까요? 

흰 바탕에 검은 글씨. 상당히 절제된 느낌의 이 책이 『방법으로서의 중국』원서였습니다. 



호기심에 '미조구치 유조'를 검색해봤으나 국내 자료는 몇 없었습니다. 몇 권 번역되어 있는 저서의 저자 프로필에는 학력과 저서가 나열되어 있을 뿐이었지요. 


국내 출판된 미조구치 유조의 몇몇 저서들


중국 사상사, 그리고 사실상 중국학을 공부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름이 미조구치 유조이고,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 『방법으로서의 중국』이라고 들었는데, 

중국학에 문외한인 저는 딱히 미조구치 유조가 누구인지, 왜 중요한 사람인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미조구치 유조는 2010년에 타계하기 전까지 동아시아 지식인의 교류를 선도하며 왕후이, 쑨거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고, 중국에서는 사후에 전집이 출간될 정도로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일본 학자"로 주목받고 있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사진출처: 한겨레

천광싱 대만 자오퉁대학 교수는 미조구치 유조를 기리는 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지난 한 세기 넘게 유럽과 미국의 역사발전 경험과 그에 따라 형성된 지식틀이 아시아 학계에서 유일하게 참고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 틀로는 더이상 유럽·미국과 그밖의 여러 지역의 역사경험을 해석할 수 없다. 이제 참고할 대상을 어떻게 확대해 다원적 좌표를 만들고 새로운 지식의 방식을 창조해낼 것인지가 전세계 학술계가 마주한 공동의 문제이다. 그 다른 길을 찾는 여정에서 우리는 미조구치가 이미 그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줄곧 외롭게 그 길을 걸어왔다.

미조구치가 1980년대 제기한 명언인 “중국을 방법으로 하는 것은 세계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는 당시 일본 지식상황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전까지는 ‘세계’를 방법으로 중국을 가늠했다. 하지만 이 ‘세계’는 실제로는 유럽과 미국이었다. 중국을 방법으로 하는 것은 더이상 유럽을 기준으로 타인을 가늠하지 않는 다원적인 구성이다. 유럽, 중국,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모두 이 세계를 구성하는 원소다. 즉 중국의 역사를 입구로 라틴아메리카를 바라보고 아프리카 역사에서 출발해 유럽을 보는 것처럼, 다원적 진리의 대화 과정에서 더 높은 수준의 세계의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인식을 가져야만 이론상에서 ‘제국주의’를 피할 수 있다." 


'중국을 방법으로 하여 세계를 보는 것'에 대한 미조구치의 시각이 선명하게 정리되어 있는 곳이 바로 그의 첫 저서,『방법으로서의 중국』입니다. 1989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중국에서 '공사公私'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본에서의 의미와 비교해 명확히 드러내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미조구치가 훗날 더 깊이 파고들게 되는 주제들에 대한 열정적 논의를 엿볼 수 있습니다. 



50년 넘게 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미조구치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또한 동아시아 지식인 간의 교류였습니다. 그는 중국의 저명한 학자 왕후이, 쑨거 교수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중국 사회과학원의 쑨거 교수와는 1990년대에 함께 ‘중·일 지식인 회의’를 이끌었고 "스무살이 넘는 나이 차이와 국경, 전공을 넘어 친구"로 지냈다고 합니다. 쑨거는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미조구치 유조의 '방법으로서의 중국'을 언급했지요. 



“어떤 국가든 사회든 인식 상대를 나와 관계 없는 외재적인 개체라고 생각하면, 상대를 숭배하거나 무시하게 되어 ‘평등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때문에 다케우치 요시미나 미조구치 유조(1932~2010) 같은 일본의 사상가들은 일본인이 일방적으로 미국을 숭배하는 현상을 보면서 어떻게 중국이나 아시아를 방법으로 삼아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을까 고민했죠.” 

같은 인터뷰에서 쑨거 교수는 미조구치의 이론을 차용해 '방법으로서의 한국'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미조구치의 이론은 『방법으로서의 중국』이 출간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동아시아적 탈근대론을 모색하는 연구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노년의 미조구치 유조. 사진출처: 이와나미쇼텐


그러나 재미있는 점은 미조구치 본인이 자신은 이론가가 아니라고 말했다는 점인데요. 미조구치의 제자 이토 타카유키에 의하면, 그는 줄곧 "나는 이론가가 아니라 장인(職人)"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목공이 물건을 만들듯이, 담론을 만드는 일도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어떤 실체를 구성하는 작업이란 말일까요. 

온라인 번역기의 도움을 빌린 의역입니다만, 이토 타카유키의 이야기를 잠시 읽어보시죠. 

"[미조구치에게는] 현장 감각을 가진 사람 같은 모습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광맥을 찾아내, 시대적 사조와도 겹치는 동물적인 육감 같은 것을 느끼게 했다. [그에게는] 한때 사정이 있어 가업을 잇고, 그 약진이 경제지에 취재된 것이 자랑거리였다. 일본에 온 해외 연구자 때문에, 자가용으로 가재 도구를 나르기도 했다.  『주자 어류(朱子語類)』의 강독 세미나에 참가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윤독회에는, 사망 반년 전까지 건강 악화를 무릅쓰고 발걸음해 그것이 사는 보람처럼 되어 있었다."


미조구치의 '현장 감각'은 가업을 이었던 경험에서 온 것일까요? 땀을 뻘뻘 흘리며 동료의 이사를 돕는 학자의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2010년 타계 직전까지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의 모습은 '장인'의 꾸준한 수련을 연상시키네요. 


///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방법으로서의 중국』 담당하게 되었을 때는 막막한 느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번역되어 세상에 나온 책을 만나니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네요ㅎㅎ

"故 미조구치 유조의 대표작이 드디어 한글로 나왔어요!"


『방법으로서의 중국』을 통해 더 많은 분들이 

새로운 중국, 그리고 새로운 세계와 만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책소개 읽기


참고자료

서구의 틀을 벗어나 세계를 보다 (한겨레, 천광싱

“사람들이 상식으로 여기는 인식 방식 없애는 게 내 역할” (한겨레, 쑨거 인터뷰)

中国思想のエッセンス』 소개글 (이와나미쇼텐)


방법으로서의 중국 - 10점
미조구치 유조 지음, 서광덕.최정섭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안녕하세요. 온수 편집자입니다:)

달력을 보니 2015년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올해 산지니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가장 큰 사건은

부산 출판사 산지니의 10년 지역출판 생존기『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가 

출간된 게 아닐까 합니다.


알....고 계시죠....^^?




책을 구매하고도 <주간 산지니>를 받지 못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독자분이 계실까 봐 미리 알려 드려요^^


이 책을 구매하신 분께는 별책부록으로 만든 <주간 산지니>(오른쪽)를 드려요.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를 구매하시는 분들께 드리는 책이니 

혹시 받지 못했다면 서점 직원분에게 꼭꼭 문의해 주세요.


물론 비닐로 꽁꽁 묶어 출고되기 때문에 빠질 일이 없지만요^^







일부러 이 페이지를 찍으려고 한 건 아닌데... 

펼치니까 제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일부러 그런 건 절대로 절대로 아니에요^^;;



이 책을 읽으신 분들에게

산지니가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마음껏 웃고 응원해 주세요.



우와 축하한다면 하트를 눌러 주세요!



 

Posted by 동글동글봄

지난 몇주간, 저는 아침마다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여러 번 지각을 할 뻔하기도 하고, 하루를 제대로 시작하지 못해 종일 찜찜한 기분이기도 했어요. 

매일 아침 '오늘은 도대체 뭘 입지?'의 고민과 함께 저를 괴롭힌 이 질문은 바로 - 

'오늘 아침엔 도대체 뭘 읽?!'

출판편집자에게 읽을거리야 언제나 넘쳐납니다만 (교정지님 안녕;_;), '통근시간만큼은 읽고 싶은 것을 읽겠다!!!'는 마음으로 저는 아침마다 소설이나 시를 읽습니다. 어쩌다보니 주로 한국문학을 읽고 있고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얼마 전 신경숙 소설가의 표절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어서 한국문학 내 권력체계에 대한 비판이 일었습니다. 독자로서, 저는 놀라기도 했고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이런 사건을 맞아 발현되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최근에는 한국문학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출근길에 단편소설에 빠져 시간 지나는 줄 모르던 저에게, 한국문학계의 위기(?)가 매일 아침의 위기로 나타난 것이죠.

그러던 중, 한국의 작가 10인과의 대화를 담은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불가능한 대화들 2

이 책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부터 저는 이 비관적이면서도 고집스러운 제목이 좋았습니다.

소통이 아니라 '불통'의 나라와 시대라고 하지만, 그 수많은 어긋남들 속에서도 실제로 우리는 어떻게든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하길 원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저는 '그럼 이거라도 읽자'는 심정으로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오늘날 한국문학이라는 너른 마당 속에서 뚜렷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열 명의 소설가와 시인을 젊은 비평가들이 만났습니다.

정유정, 김유진, 고은규, 김성중, 최진영, 

이승우, 서효인, 김경인, 조혜은, 이안. 

저에게 '그래도, 그러니까 한국문학'이란 생각을 들게 한 글귀 몇 구절을 옮겨 적습니다. 



정유정


저는 소설을 ‘이야기의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전환점과 결말의 상황(극화)을 통해 이야기를 안으로부터 뒤집어 보여주고 싶고, 그것을 통해 ‘나는 인간을, 삶을, 세계를 이렇게 바라본다’라고 제시하는 것이 미학적 요소를 구현하는 제 나름의 방식이고요. 저절로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가 하나쯤 있다 해서 한국문단이 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차별화된 소설이란 그런 의미입니다. (22~23쪽)



김유진


소설은, 서사가 간소화되어 있지만, 서사를 부정하진 않았습니다. 인물의 감정을 절제하는 것과 배제하는 것은 다른 의미인것 같고요.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하지는 않았어요. 모든 묘사와 풍경, 방향, 인물들의 행동은 저의 머리를 통해, 제가 드러내고자 하는 정서와 분위기, 감정의 결을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한 폭의 그림처럼 읽히고자 했으나, 그림으로 보이고자 하진 않았습니다. 제가 쓰고 있는 것은 소설이니까요. (63쪽)



고은규


저를 자주 흔들어놓는 감정은 연민입니다. 연민이 저를 움직이게 하고 글쓰기를 재촉합니다.  () 아프다고 소리치는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고, 자신의 프레임에 넣어 엉터리로 사건을 재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사회는 나쁜 곳으로 굴러 떨어지겠지요. 문학이 낭떠러지를 지키며 미력하나마 울타리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도 찾고 있습니다. (87~88쪽)




김성중


보이지 않는 손’에 맞서는 ‘보이는 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 손은 당연하게도 우리의 팔에서 뻗어 나온 두 손, 나의 두 손이겠지요. 약하고 무디고 쉽게 다쳐 잘 아물지도 않지만 바로 이 손이야말로 유일한 손입니다. (…) 그 손을 치켜들게 만드는 다른 상상들, 꿈과 질문들이 새로운 서사를 이뤄나갈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102~103쪽)



최진영

이 세계와 내가 너무나 닮았다는 것. 이 세계의 무자비함과 폭력성이 바로 나의 속성라는 것. 저는 이제 겨우 그만큼 압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실, 아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도 힘에 부쳐요. 그러니 저는 주장하기보다 보여주고 싶고, 말하기보다 듣고 싶어요. 각자의 탈출구, 각자의 희망, 서로 같을 수 없고, 같아서도 안 되는 무수한 욕망과 그것을 담은 삶, 고독하게 메아리치는 저마다의 질문을. (138~139쪽)



이승우

나는 인간이 좀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우리가 가진 그물, 법과 이성으로 다 덮을 수는 없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우리의 이해의 그물 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 근거이고,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의 방법입니다. () 세계는 없다고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세계만 있는 건 아니다, 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163쪽)

 


서효인


시는 학대받는 언어를 그러모으는 작업이 아닐까요. 이것은 서정시에 대한 옹호가 아닙니다. 습관적인 언술과, 비슷비슷한 이미지로 무한히 반복하는 여러 시들은 SNS의 안부인사와, 유튜브의 엽기 영상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언어’가 아닌 ‘예술’에 있다고 봅니다. 생채기 난 언어를 모아 생채기를 부각시키는 일 혹은 망가진 언어를 모아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것. (183쪽)




김경인

저는 언어는 근본적으로 투명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나조차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는데요. 그래서 시인은 잘 받아 적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듣는 사람」에서 저는 타인의 슬픔을 위무하는 것은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치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트레이싱 페이퍼처럼요. 그것이 설령 타인의 인생에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타인을 내 안에 깃들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12쪽)



조혜은

제 시에서는 소통하고 싶어 하는 화자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것들이 잘 전해지지 못했을 때, 자폐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 것 같습니다만 제 시의 화자들은 자폐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순간에도 누구보다 소통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청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화자와 청자는 다른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소통에 서투르고, 관계 맺기에 서투르기 때문에 어긋나고 있을 뿐, 서로를 향해 분명히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모든 관계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236쪽)



이안


시, 또는 세계가 호락호락, 단순하게 구성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면(裏面)이나 전면(全面)을 포함하지 못하는 단편적 현상 제시는 세계 인식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고 보고요. 앞으로 시를 써나가면서 경계하려고 하는 대목입니다. 대상과 관계 맺는 방식에서 언어의 끈을 결코 느슨하게 풀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며, 어느 한쪽에 맥없이 투항해버리지도 않으리라 다짐하고는 합니다. (266~267쪽)

Posted by 비회원




사라져버린 학교에

문화를 그려내는 이들의 이야기

 

양아름 | 산지니 편집자

 

내게 있어 학교는 집 근처의 가까운 동년배의 아이들과 함께 추억을 쌓던 곳으로 여전히 기억되는 곳이다. 예전 살았던 동네를 방문하면 그곳에서 교복을 입고 언덕에 있던 학교를 오르내리던 기억이 절로 떠오르는 까닭도 그런 연유에서이다. 그렇게 고향과 동의어로 추억되는 학교를 몇 년 전 다시 찾은 적이 있었다. 주말에 찾은 학교의 풍경은 학생들이 없어 쓸쓸한 느낌이 있었지만 아직도 변함없는 학교 앞 서점과 문구점, 학교 안의 조경들을 통해 십 대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충분한 다리가 되어주었다. 그런데 이런 공간이 사라져버린다는 건, 과연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게 되는 것일까?


얼마 전 출간되었던 폐교, 문화로 열리다는 제목 그대로 사라진 학교인 폐교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 저자의 집필 계획을 듣고는 폐교라는 단어가 주는 슬픈 느낌에 어떤 식으로 책이 구성될지 조금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에게서 최종원고를 받고선 그런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보내온 폐교의 사진과 원고의 내용은 폐교가 주는 닫힌 느낌보다는 훨씬 생동감 넘치고 활기 넘치는 기록들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한 폐교 답사기를 넘어 폐교 문화공간이 지역 구성원 간의 소통이 부재한 현대사회에 있어 어떤 소통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책에 소개된 사례 대다수가 처음 들어본 문화공간이었지만 그런데도 무리 없이 잘 읽혔던 것은 저자가 학교의 공간을 담아내기 이전에 이곳의 사람들을 조명했기 때문이다. 버려지는 학교들을 애정으로 보듬어 관광객들을 유치한 기획자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듣노라면, 왜 버려지는 폐교 공간이 관공서의 행정시설이나 기업의 공장이 아닌 문화공간이 되어야 하는지 절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문화기획자들은 독특하게 공간을 재활용하며, 사람들이 발길을 끊은 도시마저 다시 불러오게 하는 기획력을 통해 다양하게 폐교가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너무나 안타까운 건, 책에서도 드러나지만 이들 기획자들에 대한 행정적 뒷받침이 부재한 현실이었다. 이 책은 폐교 공간을 구성한 기획자들과의 인터뷰 내용이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다. 강원도 영월군과 같이 지방자치단체에서 폐교 문화공간에 대한 지원을 전폭적으로 하고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교육청과 임대료로 인한 갈등으로 곤란을 겪는 곳이 대다수였다. 매년 오르는 공간의 공시지가를 그대로 반영해 기획자에게 더 높은 임대료를 요구하는 모습에 원고를 읽는 내내 안타까웠다. “공간은,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가지는 의미와 가치가 달라진다고 하는 저자의 말처럼, 버려진 공간 속에 주민 간 소통과 예술인들의 창조적 활동을 담으려는 노력들은 수익적 목적보다는 공익적인 효과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공간 속에 이야기를 담아내려는 이들 기획자들의 이야기가 책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형박물관, 미디어기자박물관, 연극촌, 도서관 등 지금껏 변화무쌍하게 모습을 달리한 폐교 공간이 앞으로는 어떤 기획자의 손을 거쳐 또 어떻게 변화될지 기대가 되고, 아울러 이 책을 통해 사회적으로 페교 공간을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지기를 바라본다.


『출판저널』 2015년 7월호 「편집자 기획노트」에 게재되었습니다.



폐교, 문화로 열리다 - 10점
백현충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겨울부터 봄 그리고 여름 지금 가을까지

산지니시인선의 탄생


출판사에 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않는 시인, 그리고 언제나 헤어질 때는 막걸리 하자며 술 약속을 어김없이 하는 시인. 시인인가 출판인인가 가끔 헷갈리지만 그래도 그의 시를 읽으면 역시 시인이야! 하며 무릎을 치게 만드는 시인.


바로 최영철 시인입니다:)


지난겨울부터 산지니는 산지니시인선을 준비했습니다. 부산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지역에 시인들을 만나보자며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역시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1호는 어떤 시인이 좋을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1호는 두말없이 최영철 시인. 부산에 뿌리를 둔 산지니, 그리고 부산을 고향에 둔 최영철 시인. 생각만 해도 궁합이... 그렇게 조심스럽게 최영철 시인과 시집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뜨거웠던 논의는 '대담'


시인선을 준비하면서 본문에서 가장 뜨거웠던 논의는 해설과 대담이었습니다. 해설과 대담 모두 장단점이 있는데요, 새롭게 시작하는 만큼 차별화 지점을 만드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으로 대담에 마음에 조금 기울었습니다. 그러나 장단점이 뚜렷했던 터라 깊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대담을 싣는 게 도전이기도 했지만, 독자들에게 조금 더 쉽게 다가가 보자는 의미로 격렬한(?) 논의 끝에 대담을 싣기로 했습니다.







대담자는 누가 좋을까?


그러나 한 고개를 넘으니 또 한 고개가 나오더군요. 그럼 누구랑 하면 좋을까. 

퇴근하고 어디론가 새지 않고 오랜만에 집에 일찍 귀가하던 날이었습니다. 이부자리에 누워 심각(?)하게 고민하던 차에 불현듯 『문학을 탐하다』의 최학림 기자가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부산일보> 논설위원이십니다) 『문학을 탐하다』는 부산 경남의 작가 18명(소설가 7명, 시인 11명)을 소개한 산문집으로, 문학기자 최학림이 기자 생활 20년 동안 작가들과 애정으로 보낸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책에는 최영철 시인도 나오는 데요, 최학림 기자는 최영철 시인에게 부산 문화의 감수성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 책에서는 부산을 누볐던 두 분의 추억과 최학림 기자가 전하는 최영철 시인의 시 세계를 읽을 수 있습니다. 글을 읽는데 왜 두 분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을까요.


<부산일보>로 떨리는 마음으로 총총 가서 최학림 논설위원에게 조심스럽게 대담을 제안하자

망설임 없이 "최 형이면 해야죠" 라고 하셨습니다:)








“시집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시집 편집을 하고 있을 때, 세월호 침몰 사건이 있었습니다. 온 국민이 눈물을 흘리며 마음 아파하던 날들이었지요. 사건 이후 최영철 시인은「난파 2014」를 시집에 추가했습니다. 그외 시집 구성을 바꾸면서 처음보다 다소 어두워졌는데요, 어둡다는 말보다는 어둠을 직면한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어떻게 해야 할까.


편집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시「금정산을 보냈다」는 이 질문에 대한 시인의 답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이거야, 라고.



엎어진 채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엎질러진 채 축포가 터지고 있었습니다 허물어진 채 거대한 준공식이 계속되었습니다 몹쓸 우환이 알을 까고 무엇인가를 주워 담아 뒤춤에 숨기느라 위아래 아무도 듣지 못했습니다 보지 못했습니다 정적은 숨넘어가는 아우성이었습니다 환호는 조용한 통곡이었습니다 그날 날려 보낸 새들이 이제 막 날아오른 새들과 함께 차창에 부딪혀 한꺼번에 머리가 깨졌습니다(…)


-「난파 2014」중에서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먼 서역으로 떠나는 아들에게 뭘 쥐어 보낼까 궁리하다가 나는 출국장을 빠져나가는 녀석의 가슴 주머니에 무언가 뭉클한 것을 쥐어 보냈다 이건 아무데서나 꺼내 보지 말고 누구에게나 쉽게 내보이지도 말고 이런 걸 가슴에 품었다고 함부로 말하지도 말고 네가 다만 잘 간직하고 있다가 모국이 그립고 고향 생각이 나고 네 어미가 보고프면 그리고 혹여 이 아비 안부도 궁금하거든 이걸 가만히 꺼내놓고 거기에 절도 하고 입도 맞추고 자분자분 안부도 묻고 따스하고 고요해질 때까지 눈도 맞추라고 일렀다() 


-「금정산을 보냈다중에서





“제가 얼마나 머리를 싸맸는데요”


문학과지성사는 시인의 얼굴을 캐리커쳐로 그리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게 좋을까 고심했고, 아아 부단히도 도서관을 다닌 권디자이너. 그래서 시인의 사인을 책 표지에 은은히 넣기! 책 등에 "최영철"이라는 사인이 보이시죠?










“괜찮아~ 재밌잖아”


편집자로서 최영철 시인과의 인연은 『어중씨 이야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중씨 이야기』 발간 후 최영철 시인과 이가영 그림작가와 출판사 근처에서 출간 축하 자리를 조촐히 있었지요. 『어중씨 이야기』는 도시에 살다 시골에 간 어중씨가 마님 심부름으로 장터에 가면서 일어난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린 청소년 성장 소설입니다.


술자리가 끝나고, 최영철 시인은 산지니 식구들에게 사인 본을 선물해줘야 한다며 산지니 식구들을 붙잡았습니다. 저희는 괜찮다고 다음에 사무실에서 해달라고 손사래를 쳤지만요. 그러자 최영철 시인은 “괜찮아~ 재밌잖아” 합니다. 그러나 산지니 식구를 챙겨주신 그 마음 왜 모르겠어요.


산지니 식구들에게 한 명씩 사인을 해주시고는 급기야는 발행인에게도 사인을 해주십니다.

얼마나 웃었는지요.






하하호호 최영철 시인과 이가영 그림작가 




“001이 좋겠다.”


시집이 쓸모없다고 하지만, 시만이 할 수 있는 일. 

시가 아니면 금정산을 통째로 아들에게 보낼 수 없었겠지요.



시집 나오기 전에 한 잔, 출간을 앞두고 한 잔, 시집이 나오고 한 잔, 

기자간담회가 끝나고 한 잔, 또 어딘가에서 한 잔. 


그래도 술이 부족하다고 자꾸 느끼게 하는 최영철 시인ㅎㅎ

그 취기 덕분에 즐겁게 시집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최영철 시인이 안내한 수영 맛집 물회, 

정말 맛있어요:) 배 반, 회 반이랍니다.



이렇게 산지니시인선 1호, 『금정산을 보냈다』가 나왔습니다.

독자분들의 손에 손을 거쳐 쑥쑥 자랐으면 좋겠네요.

마구 마구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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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을 보냈다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산지니에 배달된 떡보의 하루!

누가 보낸 걸까!









주인공은 바로 서정아 소설가!


얼마전 산지니에서 서정아 소설가의 첫 번째 소설집을 

따끈따끈하게 출간했지요.


어떤 책인지 궁금하다면 



여기로


사심 홍보 듬뿍듬뿍 






빠르게 흥미롭게 긴장감 있게 책장이 넘어갑니다. 

호로록 읽을 수 있어요. 홍홍



*

이상한 과일 - 10점
서정아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정인 소설집 『만남의 방식』

 

                       설마설마하니 진짜 그 정인(情人)이다. 저자가 소설가로서 지은 자신의 이름 정인 말이다. 저자는 소설집 『만남의 방식』을 출간한 다음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애인을 “늘 그립고, 위안과 고통을 함께 주는 존재”라고 했다. 독자로서의 나는 그립다는 말이 주는 서정이 좋았으나, 편집자로서의 나는 누군가의 타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연인이라는 존재가 고독하고 연약해 보였다. 그 사랑이 진행 중이든 이미 단절되었든 상관없이 연인은 결국 누군가의 연인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만인의 연인이라 할지라도) 물론 이것은 금방 부정되어 머릿속에서 사라진 감상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고통과 고백, 치유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설집 『만남의 방식』 중 가장 어두운 편인 작품 「밤길」에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등장하는데, 예를 들면 이렇다. “마지막엔 변기에 오줌을 눠놓고 화영의 얼굴을 몇 번씩이나 처박았다. 마침내 화영이가 오줌물이 뚝뚝 흐르는 얼굴로 울음을 터뜨리자 깔깔거리며 말했다. 다음엔 똥이야!” 나는 괴로워하며 초교를 보고 이후 교정할 때마다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한번은 나의 고통을 호소하며 이런 장면을 쓸 때 힘들지 않느냐고 묻기도 했는데, 작가는 쓸 때는 힘들지 않은데 쓰고 나서 힘들다는 요지의 답을 했다. 지금도 나는 쓰고 나서야 비로소 찾아오는 힘듦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잘 모르며, 다만 그 말을 곱씹을 때마다 어떤 강인함을 느낄 뿐이다. 대적자를 순식간에 압도하는 종류와는 다른, 이를테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냄으로써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린다는 말을 기어코 참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묵묵한 끈질김. 그것 때문에 나는 『만남의 방식』에 실린 작품 여덟 편이 앞다투어 모국어를 잊어야만 했던 남자, 딸이 자살한 여자, 성폭행을 당하고 그 기억을 잊어야만 하는 소녀, 혼자 요트를 몰고 악명 높은 파도를 뚫는 남자 들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려주어도 지나치게 괴로워하지는 않게 되었다. 독자 여러분도 그러시기를 바란다. 물론 괴롭지 않다는 말은 외면이 아니라 용기와 가까워야 할 것이다.


2014년 5월 상하이대학교와 함께하는 동아시아 문학교류를 위해 부산의 여러 소설가, 시인, 평론가와 함께 상하이에 다녀왔다. 정인 소설가도 일행이었다. 문학포럼을 경청하고 문학의 밤 행사에서 우아하게 작품을 낭독하던 작가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남다르게 기억하는 것은 작고 개인적인 일화이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와이파이가 일행 중 유독 저자에게만 불통이었다. S.O.S.를 받고 옆방으로 건너간 내가 휴대전화를 들고 이것저것 건드려보아도 해결하지 못해 다시 여기저기에 물었으나 끝내 저자는 상하이에서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했다. 저자는 답답했을지언정 이제 와 다시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구석도 있다. 그 넓은 대륙을 쥐락펴락하는 전파도 저자에게는 감히 범접하지 못한 게 아닌가. 억지가 좀 심했나? 그래도 정인은 강인하다. (출판저널 2014년 10월호 편집자 출간기에 게재된 글입니다)

 

 

 

 


Posted by 비회원


북적북적 대학로 페스티벌



따뜻한 가을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입니다. 

북적북적 대학로 페스티벌 소개하고 갈게요ㅎㅎ


북적북적 대학로 페스티벌은 10월 한 달 동안 '청춘들의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매주 저자를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자를 만나는 것은 물론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감상을 발표하는 시간도 있네요. 


이번 여름 산지니에서 발간한 『천 개의 권력과 일상』도 청춘들의 인문학에 들어가네요. 와우! 이 책은 현대철학자 들뢰즈와 푸코의 이론을 알기 쉽게 설명한 책입니다. 10월 29일 수요일 저녁 7시 30분, 카페 헤세이티에서 열립니다.


자세한 내용과 약도 첨부합니다^^











천 개의 권력과 일상 - 10점
사공일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9월의 끝, 호박이 굴러들어온 날

-최영철 시인의『금정산을 보냈다』


오늘 9월의 끝이네요. 아침에 출근하면서 

시 한 편 읽고 업무 시작해야지 했습니다.

(마음속으로 편집자 좋은 직업이네)

제 마음대로 고른 제 마음에 드는 오늘의 시입니다.




광안대교를 건너며



어느 날 느닷없이 내일이 없어진다 해도

오늘의 마지막이라 해도

괜찮아 다 괜찮아 첫날 같은 마지막 날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온 날

밥은 두어 숟갈만 먹어야지

(중략)

남은 생의 절반, 한나절을 허송해야지

이젠 네가 내일이면 꼭 온다고 해도

가슴 설렐 일 없으니 좋아라

다시는 오지 않을 어둔 밤이 코앞이니 좋아라

뒤척이며 잠 못 들 일 없으니 좋아라

(하략)


-「호박이 굴러들어온 날」일부 , 최영철의 『금정산을 보냈다』



매일매일 새로운 날이 주어지지만 어제를 살았기에 오늘을, 내일을 때로는 기대하고 때로는 두려워합니다. 첫날 같은 마지막 날, 오늘이 마지막이라도 괜찮다, 라니...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시인이 괜시리 미워집니다. 오늘을 잘 살아야 하는데. 9월과 작별하고 다시 없을 새로운 10월이 옵니다. 



*

금정산을 보냈다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오늘 <한겨레> 신문에 푸코의 사상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마침 『천 개의 권력과 일상』에 나온 이야기라 발췌해서 덧붙입니다^^







진태원의 다시, 변혁을 꿈꾸다

-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예술적 주체를 생산하는 '규율 권력'의 작동


68년 5월의 반역은 정치 권력을 탈취하지 못했고 가시적인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화를 이끌어내지도 못했지만, 프랑스철학사에서는 하나의 단절을 산출했다. 그것은 지배의 핵심은 사회경제적 지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 질서에 순응하는 예속적 주체의 생산에 있다는 통찰이 낳은 단절이었다. 실제로 알튀세르는 68년 반역 직후 저 유명한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1970)이라는 미완의 논문을 발표하여,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예속적 주체를 생산하는지 탐구했다. 또한 들뢰즈와 가타리는 1972년 <반오이디푸스>를 써서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를 욕망하는 대중들의 욕망의 도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분석하려고 했다. 그리고 푸코는 <감시와 처벌>(1975)이라는 책을 써서 권력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2014년 9월 29일 <한겨레> 일부분/ 원문 읽기




지배의 핵심은 사회경제적 지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 질서에 순응하는 주체의 생산에 있다는 말이 핵심인데요. 


이 책 역시 일상에 편재된 권력과 순응하는 주체 생산에 대해 면밀히 파고들고 있습니다. 



권력에 대한 균형감각을 기르기 위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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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권력과 일상 - 10점
사공일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2014 가을독서 문화축제

-표성흠 소설가가 말하는 왜 문학인가





지난 20일부터 21일까지 이틀 동안 열린 2014가을독서문화축제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행사 마지막 날인 일요일 3시부터 5시까지 롯데백화점 광복점 다목적홀에서 진행된 표성흠 소설가를 만났습니다.


표성흠 소설가는 산지니에서 발간한 문익점 장편소설『목화』를 집필한 작가입니다. 붓두껍에 목화씨를 가져왔다는 문익점의 일화에 작가의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이 더해 장대하게 펼친 작품입니다. 소설의 배경은 한때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던 KBS드라마 <정도전>과 같은 시기로 고려말~조선초입니다. 


표성흠 소설가


이날 강연은 소설『목화』에 관한 이야기보다 

문학이 왜 필요한지 표성흠 소설가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작가는 시간을 세 가지로 나눴습니다.

① 동물적인 시간

② 문명의 시간

③ 원의 시간


①번 동물적인 시간은 먹고 자고 싸는(?) 동물이든 사람이든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시간입니다. ②번 문명의 시간은 인간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한 시간을 말합니다. 그리고 ③번이 원의 시간입니다. 역시 우리가 궁금한 건 원의 시간이겠죠.


젊은 시절 해군순항훈련에 작가의 자격으로 승선한 적이 있는데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순항을 견딜 수 있었던 건, 타히티에 가 보고 싶어서라고 합니다. 타히피는 풀 고갱이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그린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곳에 4박 5일 동안 머물면서 우리는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봤다고 합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무수한 이야기들은, 단군신화조차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말해주는 것처럼, 결국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생명은 시간 줄에 매여 있고 이 시간이 끝나면 죽게 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상상하며 우리의 근원에 대해 탐구합니다. 그 상상의 시간이 문학이고 문학에는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표성흠 작가는 우리가 문학을 읽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지만 

문학을 읽는다면 마음에 무지개를 안고 살아갈 수 있게 될 거라고...말합니다. 


마음속에 무지개. 그건 각자가 해석해야 할 몫이겠지만

어렴풋이 그 무지개가 마음속에 피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청명한 가을, 오랜만에 광복동에 왔고 작가의 비밀스러운 고백을 들은 것 같아 

기운이 퐁퐁 샘솟는 하루였습니다.


가을은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책 판매 부수가 주는 시기입니다.

책 읽는 게 조금 힘들다면 책과 작가를 만나는 축제에 함께하면서

책의 향기를 잊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럼 내년에도 기약할게요


*

목화 : 소설 문익점 - 10점
표성흠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최영철 시인의 열 번째 시집 금정산을 보냈다가 출간되었습니다.


산지니로서는 야심차게 준비한 산지니시인선의 첫 권으로  

최영철 시인이 그 첫 번째 문을 열었습니다. 







문이 없었을 때는 아무 일 없었다

문이 없었을 때는 열고 닫고 잠그고 부수고

몰래 넘어갈 일 없었다

모두 문이요 모두 안이요 모두 밖이었으니

들어오시오 나가시오 들어오지 마시오 나가지 마시오

문이 없었을 때는 이런 말도 없었다

(…)

모두 문이 아니고 모두 안이 아니고 모두

밖이 아니게 되었을 때 어디가 어딘지 몰라

다들 기웃거리게 되었을 때

참 이상하게도 문이 너무 많이 생기고 나서

긴 파국은 시작되었다 _「문이 생기고 난 뒤」 부분 




이번 시집에는 세월호에 관한 시 뿐만 아니라 지금의 혼란을 반영한 시들이 많습니다. 

시인은 지금의 혼란과 어둠을 직면하는 시편들로 우리가 지켜야 할 세계가 무엇인지 시로서 다시 한 번 당부합니다. 그리고 그 당부는 삶의 희망으로 전해집니다.


강인하지만 아름다운 시편들로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온 최영철 시인.

반갑습니다.


이제 막 나온 따끈따근한 시집입니다.

지금의 이 온도가 시집을 읽는 독자에게도 뜨겁게 전해졌으면 합니다.


그럼 신간소개와 편집자 일기로 이야기 이어갈게요. 

금정산을 보냈다많이 사랑해주세요.




Posted by 동글동글봄


더위에 노릇노릇 지쳐가고 있을 때쯤

『숲에서 행복한 아이들의 저자 

최현숙 원장님이 산지니를 깜짝 방문하셨습니다.

알록달록 달콤한 케이크도 사오셨구요. 

더위에 지친 사무실에 활기찬 에너지로 생기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책 발간 축하드려요:)



"미끄럼만 타야 하는 미끄럼틀, 매달리기만 해야 하는 철봉처럼 미

리 쓰임새를 정해주고 거기에 맞는 행동만 하도록 하는 그런 딱딱하

고 삭막한 곳이 아닌, 스스로 상상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지 않으

면 안 되는 숲은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조금은 낯설고 불편할지도 모

릅니다. 하지만 이런 다양하고 규정되지 않은 환경이야말로 아이들

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데 가장 좋은 공간일 것입니다."


숲에서 행복한 아이들 중에서





Posted by 동글동글봄

『천 개의 권력과 일상』편집후기



안녕하세요. 온수 편집자입니다:)

화려한 액션이 펼쳐지는 편집후기는 아닙니다. 

늘 그런 게 없다고 생각해서 편집후기를 미뤘지요.


그러나 생각해보면 담당 편집자인 저에게는 특별했지요.

오랜만에 들뢰즈와 푸코 두 철학자의 사유를

맛본 즐거운 시간이었거든요.


야외극장에서 상영되는 단편영화 같은 느낌으로

『천 개의 권력과 일상』을 편집하면서 

느꼈던 소소한 이야기를 독자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저자의 이력이 특이했습니다


투고 원고로 시작한 이 원고는 저자의 이력과 원고를 면밀히 검토하는 것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자의 이름도 특이했지요. 사공일. 필명이 아닐까 했지만 본명입니다. 이때 제가 찾아본 이력은 이러했습니다.


1.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후 다시 공부를 시작한 점

2. 대학 다닐 때 연극반을 한 점


어떻게 보면 평범하고 어떻게 보면 특이한 이 이력을 보고 저는 저자를 만나게 되면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산지니 내부에서 면밀한 검토와 열렬한 토의 끝에 이 원고를 책으로 출간하기로 했고 드디어 저자와 미팅 날이 잡혔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보다 더 궁금했던 건 들뢰즈였습니다. 저자의 이력에는 논문 이외에도 『들뢰즈와 창조성의 정치학』, 역서로 『들뢰즈와 음악, 회화, 그리고 일반예술』과 『일상의 악덕』으로 온통 들뢰즈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들뢰즈의 매력에 대해 저도 좀 엿듣고 싶었지요


첫 미팅을 한 날, 원고에 대해 또다시 면밀한(?) 대화를 나누면서 저는 살며시 저자에게 이력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대학 때 연극반에 푹 빠지게 되었고 이후 연극이론을 공부하다 들뢰즈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고, 이후 들뢰즈 연구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퍼즐이 착착 맞춰지는구나!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저는 저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서문에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을 때 저자가 어떤 계기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서술되어 있으면 그 책을 읽는데 몰입도가 훨씬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자에 대한 충성도도 높아졌고요.


물론 그런 의미도 있지만 저자에게도 그러했듯 들뢰즈가 독자에게도 흥미로운 존재로 다가가길 원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이 책의 프롤로그입니다. 다소 어려운 부탁이었지만 흔쾌히 집필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제가 좀 거창하게 썼네요. 독자분도 재밌게 읽어 주세요. 하하


+ 프롤로그 9쪽

"회사 생활 동안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연극에 대한 생각이 한 번씩 표출되다가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은 2년 차에 가까워지던 때였다. 정확히 21개월 된 후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입학해 영문학 희곡비평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원을 입학한 후 비평이론을 공부하면서 들뢰즈를 처음으로 조우했다. 2000년 당시 국내에는 들뢰즈에 대한 연구가 초기 단계라서 한글로 된 다양한 책이 없었기에, 들뢰즈 이론이 상당히 난해했다. 


하지만 들뢰즈 이론은 지적 호기심에 목말라 있던 나의 텅 빈 머리를 조금씩 채워주는 역할을 하면서, 세상을 차이와 생성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들뢰즈와의 만남은 대학 연극반이 20대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나에게 또 다른 하나의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와 의 만남은 나의 인생에서 새로운 의미가 생성된 사건이자,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한겨레신문에 기사가 났을 때 첫 문장이 이러했습니다. 


"복잡하기로 이름난 현대철학자 들뢰즈와 푸코의 이론을 대중적으로 쉽게 설명하며 일상의 권력을 분석했다." 한겨레신문 2014년 7월 14일자 학술. 지성 새책


사실 저 역시 이 책을 편집하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들뢰즈와 푸코는 어렵다. 심지어 들뢰즈와 푸코는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을 편집하면서 이런 생각은 깨끗이 없어졌습니다. 오히려 들뢰즈와 푸코는 내 취향이야, 라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물론 알기 쉽다고 해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나름 철학 이론을 설명한 책이니까요. 그러나 저자가 영화나 드라마를 예로 들면서 알기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고, 다소 어려운 이론은 다음 장에서 다시 한 번 정리해서 서술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구간과 쉬운 구간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어느새 읽기에 탄력이 붙으며 두 철학가의 매력에 빠진답니다.


무엇보다 권력이 특정한 계층의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 일상 곳곳에 편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권력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제 생활에도 소소한 변화가 있었는데요. 철학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생각의 변화도 있었지요.


조금 더 주체적으로!

조금 더 능동적으로!


이 책이 가져온 소소한 변화가

독자분들에게도 전해졌으면 합니다.



▲ 책 소개가 궁금하시면 사진을 클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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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물의 복합체』
20세기 법학과 정신과학에서 카를 슈미트의 위상

헬무트 크바리치 외 지음 | 김효전 편역
인문 | 신국판 양장 | 552쪽 | 38,000원
2014년 6월 13일 출간 | ISBN :
978-89-6545-254-6 93300

독일 슈파이어 행정대학원에서 열린 카를 슈미트 세미나에서 발표된 논문 모음집. 카를 슈미트의 정치신학, 정치사상, 헌법사상 세 가지 관점에서 논문 11편을 골라 번역하고 카를 슈미트 연보와 저작목록, 관련 인명록, 저작과 서평, 참고문헌과 색인을 더한 카를 슈미트 백과사전이다.

 

 

 

 

 

 

 

 

 

 

 

 

 

 

 

 

카를 슈미트는 누구인가?
기획회의 372호 출판사 서평

 

번역 초고를 받고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칼 슈미트’를 입력해 보았더니 진짜 칼이 나왔다. 철자는 다르지만 우리말로 하면 영락없이 똑같은 칼 슈미트다. 물론 『반대물의 복합체』는 주방용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책이며, Carl Schmitt는 독일 사람이므로 카를 슈미트라고 표기한다.


20세기에 독일 법률가가 집필한 글 중 가장 주목받은 글을 발표한 저자이며, 자신의 전문영역을 넘어선 호응과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학자이며, 비슷한 영향력을 지닌 다른 독일 법률가를 찾을 수 없는 법률가인 동시에 나치스의 어용학자라는 오명을 지닌 학자 카를 슈미트. 계파를 막론하여 인용과 연구가 거듭된 그의 사상은 한국에서는 유신 헌법의 배경으로도 작용했다.


원래 ‘반대물의 복합체’는 카를 슈미트가 가톨릭 교회를 설명하면서 언급한 단어이다. 하지만 “나치스 체제를 지지” 함과 동시에 그에 견줄 만한 다른 독일 법률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남긴 그를 설명하기에, 그 다양성과 모순성을 한마디로 요약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반대물의 복합체』는 위에서 인용한 모든 수식어로 설명 (불)가능한 정치학자이자 법학자인 카를 슈미트가 세상을 떠난 뒤 독일 슈파이어 행정대학원에서 개최된 특별 세미나를 정리한 책이다. 그동안 카를 슈미트 저작 대다수를 소개하며 국내 카를 슈미트 연구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진 역자 김효전 교수는 본문에 연보와 저작목록, 저작과 서평 소개, 참고문헌과 색인, 100여 쪽에 달하는 인명록을 더해 카를 슈미트 백과사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방대한 저서를 완성했다.


<20세기 법학과 정신과학에서 카를 슈미트의 위상>이라는 대주제 아래 1986년 개최된 이 세미나는 각국의 국법학자, 정치학자, 사회학자, 역사학자 등 60여 명이 참가하였고 한국인으로는 갈봉근 교수가 참가하여 「한국의 헌법생활에 미친 카를 슈미트의 영향」이라는 글을 투고하였다.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토론한 사람들은 대다수가 슈미트의 제자나 관련 인사, 친척이다. 따라서 이 세미나는 슈미트를 탐구·해명하고 사죄하거나 단죄하려고 하기보다는 학문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지만 슈미트의 정치신학, 정치적인 것의 개념, 구체적 질서사고, 결단의 개념, 헌법제정권력 등 헌법학과 정치학에서 종래 많이 논의되었던 중심테마에 초점을 맞추어 슈미트의 사상이 현대에 미친 영향을 확인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카를 슈미트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러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혹은 골동품 같은 관심만을 끌고 있는지 묻는다. 편집자는 아직 칼 한 자루를 발견했을 따름이지만 독자들은 이토록 치열한 물음과 답, 비판과 연구 속에서 자기만의 카를 슈미트를 발견하시기를 바란다.

 

 

 

반대물의 복합체 - 10점
헬무트 크바리치 외 지음, 김효전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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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라는 물음』

   <해석과판단> 비평공동체 지음






* 이 글은 <출판저널> 5월 호에 실린 편집자 출간기입니다.



아직 회사 책상에 앉아보기도 전에 그러니까 내가 가장 먼저 출근한 곳은 회사가 아닌 비평공동체 <해석과 판단>의 포럼이 열리는 자리였다. 입사를 코앞에 둔 나는 긴장도 됐지만 아 포럼이라니, 이거야말로 출판사 편집자다운 일이구나 하며 은근히 좋아했다. 물론 지금은 그런 마음이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것 같지만……. 그날 포럼은 <해석과 판단> 멤버들이 정해진 주제에 따라 각자 공부한 내용을 발제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공부 주제는 하나였지만, 각자 발표한 내용은 모두 달랐다. 그들은 모두 젊었고 그때는 여름이었고, 그래서일까, 나는 조금 뜨거워진 듯했다.

그때의 인연으로, 나는 줄곧 <해석과 판단>을 담당해 왔다. 비평공동체라는 수식을 붙이듯, <해석과 판단>은 학교도 전공도 서로 다른 젊은 비평가들이 해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정기적으로 만나 공부하며 교류하는 모임이다. 그리고 한 해 동안 각자 공부한 결과물을 책으로 묶어 낸다.

<해석과 판단>이 2006년에 결성된 이후 우리 출판사와는 지금 소개할『유토피아라는 물음』까지 총 일곱 권의 비평집을 발간했다. 그중 나는 지난해 발간한 『공존과 충돌』까지 두 권의 책을 그들과 함께했다. 담당 편집자라는 말에는 사실 많은 의미가 들어 있는 것 같다. 늘 그렇듯, 편집자는 책을 만드는 동안 작가의 원고 사정뿐만 아니라, 작가의 사정도 고려해야 하니까 말이다. 이번 비평집도 그렇듯, 서로 다른 멤버들의 원고를 잘 묶는 일도 큰일이었지만, 무엇보다 큰일은 각자의 사정이었다. 멤버들은 대부분 대학에서 시간 강사를 하는 젊은 비평가들이다. 대학에 인문학과가 통폐합되면서 그나마 시간 강사의 자리도 불안한 시대가 되었다. 마감 날짜에 맞춰 조금씩 업그레이드되는 각자의 사정을 듣고 있으면 지역에서 젊은 비평가로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음을 느낀다. 그러나 각자 다른 사정 속에서 함께 공부한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그들은 알 것이다. 소설조차도 잘 팔리지 않는 시대, 비평은 어떤 자리에 있어야 할까, 그들은 그 질문을 놓지 않고 있다.

이번 비평집에서 그들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유토피아에 대한 다양한 개념을 논의하고 유토피아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이 아니라 활발하게 표출해야 된다고 말한다. 멤버들은 책 표지에 문이 닫힌 지금의 사진을 실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책 뒤표지 역시 문 사진을 실어 달라고 했다.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다시 나오자는 의미로.

이번 책에는 멤버들의 수만큼, 소설, 영화,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비평이 담겨 있다. 그들이 펼쳐내는 비평의 다양성이 우리가 조금 더 다양한 삶의 주제로 살아갈 수 있는 표출이 되기를, 나는 독자들에게도 이 책에 담긴 그들의 표출이 미약하게라도 전해졌으면 한다. 




Posted by 동글동글봄



 책 소개 


윤여일의『상황적 사고』

불 끄고 생각 좀 해볼까



    중국에 가 있는 저자 윤여일 선생에게서 메일이 왔다. 중국에서 체류하는 기간이 예정보다 길어졌고 사쿠라이 다이조 씨에게도 책을 전달하고 싶으니 중국에 『상황적 사고』를 보내줄 수 없냐고. 저자는 책 작업 마지막까지 한국에 있었고 제작에 들어갔을 때 중국에 갔기 때문에 책을 받아볼 수 없었다. 원고가 오가는 동안 일찌감치 중국에 간다고 말했지만 나는 이 상황이 마치 소설의 발단처럼 느껴졌다.

저가 윤여일이 말한 사쿠라이 다이조는 텐트연극을 하는 극작가이자 배우다. 단 한 편의 연극을 공연하기 위해 한 장소에 텐트를 세우고 한 차례의 공연이 끝나면 텐트를 걷고 떠난다. 서울 광화문에서는 3·11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 지 1년 후에 팔레스타인, 광주 그리고 후쿠시마에 관한 연극을 했다. 저자는 이번 책에 사쿠라이와 텐트연극에 대해 아주 흥미롭게 썼다.

이처럼 이 책은 꼭 이명박 정부를 비판한 글만 모은 건 아니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주어진 자신의 상황 속에서 쓴 글들을 묶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사상은 가능한지 묻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사상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익숙하게 사고하고 행동한다. 이러한 사고는 주체적인 자신의 사고가 아닌 타인에게 주입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상황일수록 자신의 사상의 가능성을 찾고 개성을 회복하길 원한다고. 그건 우리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에 함께 살기 위한 당연한 노력이다. 무력한 현실 정치에서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자신의 삶의 무기. 저자는 그것을 사상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내 삶의 무기는 무엇일까. 나 역시 조심스럽게 사유의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잠자기 전 불 꺼진 방에서 오늘 하루를 생각하는 시간, 오늘의 반성과 내일의 희망, 이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내 인생이 비루하다고 비관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동안은 밤에도 컴퓨터를 끄지 않고 시간에 쫓겨 겨우 잠들 때가 많았다. 나는 이 책이 가지는 매력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천천히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게 하는 힘, 어느새 바쁜 일상 속에 사라진 사유의 시간을 되찾게 하는 동력.

저자에게 한 통의 메일이 더 왔다. 멀리까지 책을 보내줘서 고맙다며 사쿠라이의 텐트 연극 사진을 보내왔다.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땀과 열정. 매일 똑같은 근육만 쓰는 내 근육이 부끄러워졌다. 드디어 소설의 발단이 시작된 걸까.

나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여러분도 짐작하셨겠지만 이 책은 밤 같은 책이에요, 그러나 저자와 사유의 시간을 가지며 그 밤을 잘 걸어 나간다면, 지금의 무기력한 현실에서 우리만의 무기가 생기지 않을까요, 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자신만의 발단을 이 책에서 시작했으면 좋겠다.                                           

윤은미 산지니 편집부















위에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발행하는『기획회의』350호의 출판사 서평 코너에 실린 내용입니다. 『상황적 사고』에 대한 편집자 서평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보도자료 형식에서 벗어나 편집자가 편집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나 일화, 개인적인 서평 등을 진솔하게 쓰는 코너입니다. 글에도 나오고 블로그에도 공개하려고 했던 사진이기에 이렇게 공유합니다. 다만 저자가 사쿠라이 다이조 선생 외에 얼굴 공개는 자제해달라고 부탁하셨기에 그때의 상황을 전하고자 합니다. 아쉽게도 눈물과 땀이 범벅된 배우들의 얼굴과 뜨거운 텐트 안에 연극은 저 혼자 봐야겠네요. 사진도 글처럼 아주 멋지게 찍으셨네요. 사진은 지난 6월 30일부터 7월 8일까지 저자 윤여일의 텐트연극 기록입니다. 



상황적 사고 - 10점
윤여일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지금, 소설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 《장미화분》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에 무슨 함의가 담겨 있을까. 과연 소설이 킬링타임용이 아닌, 한 독자에게 있어 어떤 가치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책 본연의 기능을 충실하고는 있는 걸까. 편집자로 일하면서 소설 원고를 받을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이었다. 소설의 주요한 가치는 ‘재미’에 있음을 부정하지 않지만 재밌는 원고를 나름 출판하였음에도 사실 독자들은 소설보다는 에세이나 다른 교양도서에 관심 있는 게 통계에서도 드러난 사실이니까. 그렇게 문학작품에 과연 어떤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회의가 들 무렵, 『장미화분』 원고를 접하고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캄보디아에서 맨몸으로 시집와 고난의 한국생활을 겪는 이주여성의 삶이 담긴 표제작 「장미화분」은 그 무렵의 나의 고민과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담당편집자로서 초고를 읽으며 소설의 재미를 따지기 전에 이 원고의 가치를 찾기부터 바빴던 것 같다. 김현 작가가 보여주려 하는 바는 실로 뚜렷했다. ‘이주여성’, ‘노인’, ‘제주 해녀’, ‘5·18 가해자’ 등 사회의 어두운 속살을 과감히 드러냄으로써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인문서가 아닌 문학으로 ‘받아들이게끔’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문학이 갖는 의미란 이러한 사회상을 비추어내는 그 본연의 사실에 있다는 것을 배운 셈이다.


실제로도 김현 작가는 자신이 체험하지 않은 타인의 삶을 그려내기 위해 취재의 방식으로 다가섰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주여성이나 노인 문제, 해녀의 목소리들이 제각기 다름에도 우리의 ‘아픈 이웃’이라는 어떤 한 목소리로 나올 수 있었던 구심점에는 김현 작가의 부단한 노력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편집자로서 주인공의 삶을 전해 듣기 위해 이주여성을 직접 만났을 소설가의 삶을 짐작해보았다. 소설을 집필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또 그 사람의 인생과 그 사람 주변의 모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했을 소설가의 또 다른 삶을 상상하게 된다.


「장미화분」 속 캄보디아 이주여성만이 아니다. 김현 작가는 작품 「연장」 속에 등장하는 가야금의 이야기를 보다 진실하게 전하기 위해 가야금을 만드는 장인과 교류하며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소설집 속 개개인의 목소리는 각 개인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소설의 이름을 가장한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이라 봐도 무방한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소설을 읽을 때의 그 먹먹한 감정을 겪어보았으리라 짐작한다. 소설을 편집하며 출간하기까지 이 소설집에 방점을 두었던 것은 소설의 ‘현재성’에 대한 가치이다. 김현 작가는 그런 점에서 이 사회를 예리하게 관찰하여 소설 속에 지금 ‘현재’를 담아낸 관찰자적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지금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바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타인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이 아닐까. 소설을 읽으며 이주여성에 대해 주위를 환기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 주위의 시선을 타인에게 돌린다면 우리는 좀 더 건강한 사회를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회과학 도서 『88만원 세대』 속 도입부가 장 폴 뒤부아의 『프랑스적인 삶』의 인용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훗날 사회적 문제를 환기시킬 때 소설이란 장르가 가장 강력한 상징으로 작용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양아름 산지니 편집부

**출판저널 2월호 <편집자 출간기>에 게재되었습니다.




장미화분 - 10점
김현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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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지고 추위에 바람도 깊어지는 어제 저녁.





정신분석적 발달이론의 통합 최종 교정과 표지파일 확인을 위해 

번역자 박영숙 선생님과 장대식 선생님께서 출판사를 방문하셨다.

교정 확인을 위해 작가 선생님들이 출판사를 방문하다 보면 

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조금씩 정이 든다. 

선생님께서 출판사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데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반가웠던지….


정신분석적 발달이론의 통합은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연구자, 선생님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교재로 사용되었지만, 400쪽 가까이 되는 두꺼운 분량의 이 원서를 누구도 번역하지 못했다.


2년 전, 지금처럼 밤도 깊고 바람도 깊어지는 저녁.

선생님들은 텔레비전에 배우들이 상을 받는 연말 시상식을 보면서

우리도 한번 한 해를 마무리하는 무언가를 해보는 게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날 저녁. 이 책을 번역하기로 마음먹으셨단다.


그러나 번역에서 책이 나오기까지 이맘 때였으니 꼬박 2년이 걸렸다. 

몇 번을 읽고 수정하고 읽고 수정하며 퇴고하는 긴 시간을 회상하시면서

그날의 다짐이 이렇게까지 긴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고 선생님들은 수줍게 웃으셨다.



원서를 한글로 번역한 원고가 1차,2차,3차 교정을 보기까지 원고의 양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을 쪼개어 매일 책을 번역하는 그 밤을 상상하니,

선생님들은 힘들어도 함께 해나가는 즐거움과 

한국어로 번역되는 보람을 느꼈으리라. 


마지막 최종원교를 보면서

선생님들은 아이처럼 좋아하면서 작게 탄성을 지르셨다.




최종원고를 보시면서 환하게 웃으시는 박영숙 선생님



‘와, 이제 그럴듯해졌네요.’

(선생님, 아니에요, 아주 훌륭합니다)


긴 여정이 끝나고 이제 곧 책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상이 아니라

한 해를 시작하는 상이 있다면


선생님들께 꼭 드리고 싶습니다.


아직 제작 기간이 남았지만

선생님, 책 발간을 축하합니다.



최종원고를 확인하시는 장대식 선생님과 박영숙 선생님



이제 국립중앙도서관에 책을 납품하고 (후대를 위한 기록)

보도자료를 쓰고 책을 언론사에 홍보하고 (책을 홍보하고 알리는 방법) 

서점에 유통하는 (독자를 만나는 과정) 나머지 마무리 시간은 저에게 맡겨주세요.  


그동안 고생하셨으니 당분간 출간할 이 책만 상상하시면 됩니다. 

이제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좋은 동반자가 되길 바라며.



긴 여정이었지만,

선생님들과 함께 책을 만들어 갈 수 있어 저 역시 아주 기뻤습니다.






Posted by 동글동글봄


오늘도 어김없이, 서점에 한 권 책을 보낼 게 있어 택배 아저씨의 전화번호를 찾느라 주소록을 뒤지다 최문정 선생님과 작업했던 몇 달 전의 포스트잇을 발견하고 웃어버렸네요:-D


보통 교정지를 주고받으면서 간단한 서신을 주고 받는 게 통상적인데 선생님께서는 직접 손으로 포스트잇으로 적어주셔서 아직까지 잘 간직해 두고 있답니다. 아직까지도 이 포스트잇만 보면 기분이 참 좋아지더라고요.


'이거라도 드시면서 하세요^^'


여기서 '이거'란 약과였어요. 교정지와 함께 딸려온 과자에 저는 헤벌쭉하며 맛있게 얌얌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12월 말에는 최문정 선생님께서 그만두신 실업센터 송년회도 다녀왔어요.


이 사진은 그날의 풍경입니다.


부산실업극복센터 2012년 송년의 밤 행사 사진


원고 속에서만 만나던 등장인물들을 실제로 만나보고, 또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나오던 사물들을 실제로 보는 시간들은 그야말로 유쾌한 시간이었어요.



"같이 해서 행복합니다." 꼭지에 실렸던 바로 그 메모지예요^^ 책을 읽으셨다면 이해하실 수 있는 장면입니다.


"같이 해서 행복합니다." 꼭지에 실렸던  바로 그 메모지예요^^

 책을 읽으셨다면 이해하실 수 있는 장면입니다.


작년 한 해도 이렇게 또 가고, 또 2013년 새해가 다가왔네요.

올해는 『짬짜미, 공모, 사바사바』의 저자 최문정 선생님처럼 저도 '나눔'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산지니 독자 여러분.

모두 즐거운 한 해 되세요.~♥



최문정 선생님 블로그>>

http://pang79.tistory.com/



짬짜미, 공모, 사바사바 - 10점
최문정 글.그림/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기획회의 324호(2012. 7. 20일자)에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의 출판사 서평이 실렸습니다. 이에 블로그에도 함께 소개하오니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자가용 자동차가 없는 내가 애용하는 교통수단은 지하철이다. 노선도만 보면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편리함 때문에 지하철을 오르내리지만, 사실 깜깜한 지하 속에서 잘 알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멀뚱하게 시선을 주고받는 어색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다 노선도만 봤을 때는 금방 도착할 것 같더니, 환승하면서 기다리는 시간을 더하면 지하철이 결코 빠른 것만도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자주 가게 되는 장소에 대해 미리 차편을 알아봐서 버스를 타려 노력하고 있다. 버스 타기의 백미는 아무래도 경치 구경에 있으니, 일부러 지하철을 타 그 구경거리를 놓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인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기자가 떠난 여행지는 ‘경상남도’다.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는 경남도민일보 기획기사 연재물을 엮어 책으로 재구성한 것인데, 원고는 기사 원문이 아닌 블로그 글과 사진으로 받았다. 편집을 하면서 블로그 특유의 구어체와 함께, 시집을 발간하기도 했던 저자의 문학적 수사어구들을 그대로 살리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연재순으로 받은 원고를 계절별로 분류해서 재구성해 보았는데, 어떤 여행 ‘정보’를 준다는 의미보다 저자가 떠난 여행의 흐름을 따라가며 독자가 그 안에 담겨있는 계절의 변화를 함께 읽어내고 함께 여행에 동참하는 느낌을 갖길 바랐다.


 책을 출간하자 휴가철이 본격적으로 다가오면서 다양한 여행서적들도 함께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서 특히 이 책은 최근 유행처럼 불고 있는 걷기 여행 서적과 맥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똑같이 걷는 여행이더라도 ‘시내 버스’를 타고 여행지로 떠난다는 것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차별화 지점이다. 어차피 그렇고 그런 여행 서적이 또 나왔거니, 하며 치부해버리기엔 이 책이 갖고 있는 메시지가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시내버스 타기는 환경에 좋고 걷기는 건강에 좋습니다. 이에 더해, 드는 비용도 적으니 일석삼조라 하겠습니다. 자가용 자동차를 ‘지참’하지 않는 보람은 이밖에도 여럿 있습니다. 알맞추 걸은 뒤 상쾌한 정도에 따라 술을 마시고 취해도 되고, 원래 출발한 데로 돌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자가용이 없으면 이렇게 매이지 않으니 그만큼 더 자유롭습니다.”


 사실, 저자인 김훤주 기자는 전작 『습지와 인간』으로도 산지니와 꽤 인연이 깊다. 전작이 기존의 환경 서적이 다루지 않은 습지 속 ‘인간과 역사’, ‘지역’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이 책 또한 여행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 이야기’와 경상남도라는 ‘지역’을 다루고 있다. 많은 이들이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만 여행책을 읽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작정 가방 하나만 메고 떠날, 훗날의 여행을 예비하기 위해서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는 한 번쯤 읽어볼 만한 꽤 괜찮은 여행 지침서가 될 것이다.


산지니 출판사 편집부 양아름


시내버스 타고 길과 사람 100배 즐기기 - 10점
김훤주 지음, 경남도민일보 엮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